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31. 07:2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1(손진길 소설) 

 

사실 일본의 역사와 현실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허판관이다. 그에게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고 있다. 그날 곽생원의 설명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戶)에서 쇼군(將軍)바쿠(幕府)를 통하여 전국을 지배하고 있어요. 각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大名)들이 숨을 죽이고 쇼군의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따르고 있지요. 하지만… “;

허현령의 표정이 진지하므로 잠시 숨을 쉬고서 곽생원이 얼른 말한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서남번(西南藩)의 젊은 하급무사들이 서양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구미(歐美)지역으로 밀항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여러 해를 지내면서 선진문물을 배워 귀국하여 은밀하게 자신들의 고향에서 소위 ‘부번강병책’(富藩强兵策)을 실시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

곽생원의 조심스러운 결론이 다음과 같다; 이대로 세월이 가면 소인이 보기에는 먼저 일본의 통치체제가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일종의 서구화(西歐化)가 그곳에서 발생할 것이고요. 장차 이웃나라 일본이 서양처럼 산업선진국이 되고 신식군대를 가지게 된다고 하면 우리 조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

그의 놀라운 설명을 들으면서 허판관이 끄응 신음소리를 내면서 내심 중얼거리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마냥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가는 그 옛날 임진왜란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250여년 전 그때는 충무공 이순신이 있어서 왜적을 물리쳤지만 장래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

함께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병방 곽수림과 통역 장병화도 깊은 시름에 잠기는지 아예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허현령이 도호부사 조덕룡과 함께 함선을 타고서 울도(鬱島)로 향하고 있다. 함선의 흘수선 아래 배안에서는 여러 명의 수군들이 박자에 맞추어서 동시에 노를 젓고 있다.

그리고 선상(船上)에는 평범한 범선처럼 보이도록 돛대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흘수선 위 배 안의 양쪽 옆구리에는 필요한 경우 급히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평시에는 대포의 출구를 미닫이 문으로 막아 놓고 있다. 따라서 무관과 수병들이 그 모습을 선상에 드러내지 아니하면 평범한 범선의 무역선인지 혹은 전함인지 쉽게 구별할 수가 없다.

그렇게 잘 위장이 되어 있는 전함을 타고서 수군들이 교대로 이틀간 노를 저어 항해를 한 다음에 조덕룡 부사와 허굉필 현령은 무사히 무인도인 울도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일까?...

울도가 멀리 보이는 지점에서 조부사가 허현령에게 한 장의 지도를 보여준다. 그가 동해상에 있는 큰 섬 울도를 지도에서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우리 도호부가 어렵게 동래의 왜관에서 구입한 조선과 일본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한 장의 지도입니다. 50 전에 일본인이 작성한 것인데 조선은 노란색으로 일본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지요. 그런데… “;

조부사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지도의 부분을 허현령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의 귀에 자상한 조부사의 설명이 들려온다; “우리 조선의 울도(鬱島)를 그들이 제멋대로 연안 가까이에 배치하고 울도에서 동남쪽으로 2백리나 떨어져 있는 바위섬 독도(獨島)를 일부러 크게 확대하여 죽도(竹島)라고 표시하고 있군요. 하지만 조선의 영토라고 하는 의미에서 전부 노란색으로 칠하고 있어요. 그리고… “.

허굉필이 다시 한번 지도를 살펴보니 과연 그러하다. 조덕룡 도호부사가 다음과 같이 말을 맺는다; “독도의 동쪽에는 조그만 바위섬이 또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울도에 상륙하여 전체적으로 한번 시찰을 하고자 합니다. 허판관, 내릴 준비를 하시지요!... “.

두사람은 수병 10명과 함께 하선하여 울도에 들어선다. 그리고 곧장 등산을 하듯이 높은 봉우리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한 것이다. 울도는 마치 영덕과 같이 산이 높고 바다가 깊다. 그리고 울창한 산림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것과 같다.

그렇게 열심히 남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과 동쪽을 두루 살핀 다음에 함선으로 다시 돌아온다. 사실 그들은 배에서 가지고 간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저녁식사와 잠자리는 함선의 선실에서 편하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튿날에는 긴 칼을 사용하여 우거진 풀과 잔나무가지를 쳐내면서 울도의 해변길을 따라 가면서 위 아래를 동시에 살핀다. 그런데 그들이 조금 진행하자 해풍을 맞으며 잘 자라고 있던 해송들이 상당부분 사라진 자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좀더 진행을 하자 산지 깊숙한 곳에서 자라고 있던 아름들이 적송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휑한 자리를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조덕룡 부사가 노여운 표정으로 말한다; “왜놈들이 겁도 없이 우리의 울도까지 들어와서 몰래 그 귀한 해송과 적송을 이렇게 남벌하여 가지고 가다니! 이놈들이 울도에서 여전히 왜구 짓을 하고 있구만. 그냥 둘 수가 없어. 우리 도호부에서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해!... “.

그 말을 듣자 현령 허굉필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렇군요. 왜인들이 몰래 벌채하고 목재를 뗏목으로 만들어 조류를 이용하여 멀리 일본의 서남번으로 가지고 갔군요. 그들 서남번들은 남몰래 산업화를 이루고자 이렇게 좋은 나무가 필요한 것이었고요. 그 중의 일부가 갑작스러운 해류의 변화로 우리 해변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겠군요. 그렇다고 하면 울도를 경비하는 군사를 배치해야 합니다. 군사적으로 대책이 시급합니다!”;

조덕룡 부사가 허현령의 예리한 분석에 깜짝 놀라면서 말한다; “허판관은 벌써 이러한 일이 울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사건의 내용을 추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도호부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어요?... “.

그 말에 허판관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부사 나으리, 울도의 산림자원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조정에 보고한 다음에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시지요.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일부 수군을 배치하고 또한 그들을 돕기 위하여 필요한 관노비를 이곳으로 함께 보내어 울도를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이 평시에는 어업을 경영해도 좋고요. 그리고… “.

조부사가 젊은 허현령의 진언을 경청하고 있다.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이 들려온다; “공식적으로는 조정에서 무인도로 발표하고 은밀하게 도호부와 우리 현에서 그렇게 조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정기적으로 함선을 보내어 시찰도 하고 차제에 울도에서 생산한 말린 생선과 귀한 산나물도 육지에 가져다 팔면 주둔비용을 상당히 충당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도호부사 조덕룡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좋은 생각입니다. 함선이야 어차피 돛대와 노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니 크게 비용이 들지 않지요. 그리고 수군을 좀 더 뽑아서 별도정원으로 삼아 이곳으로 보내면 되고요. 게다가 허현령이 관노비를 이곳에 보내주겠다고 하시니 그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

문신인 조부사가 재정에도 밝다. 그가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울도에서 그들이 고기도 잡고 산나물도 뜯어서 말리면 돈이 되지요. 그 생산품을 정기적으로 울도 주변을 시찰하는 함선을 이용하여 우리 지역에 가져다 팔면 됩니다. 그러면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지요. 그것 참 신통한 방법입니다. 좋아요, 좋아! 우리 그렇게 은밀하게 한번 추진해봅시다, 하하하… “;

두사람이 울도 시찰을 마치고 돌아와서 일단 조정에 현황보고를 하고 그 대책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도호부와 현청에서 추진한다. 그러므로 조선의 기록에는 공식적으로 남기지 아니하고 울도에 수비대가 생기고 일부 백성이 살게 된다. 그리고 일년에 4차례 춘하추동으로 함선이 그 일대의 순찰에 나서게 된다.

훗날 허판관은 자신이 영덕현의 수령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에 유능한 도호부사 조덕룡을 만나 함께 울도를 시찰하고 그와 같은 대책을 은밀하게 마련하여 실시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또 한가지 사실을 그의 비망록에 남기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18522월에 영덕 현령으로 부임한 허굉필2년간 줄기차게 신작로 건설에 매진하였더니 18542월초에 그 일이 일단 마감이 된다. 이제는 북쪽 해안 신작로로 쉽게 울진()으로 갈 수가 있다. 더구나 서편의 산지에 넓혀진 신작로가 생겨서 쉽게 청송(靑松)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렇게 되자 영덕현에서 생산한 어물이 내륙으로 신속하게 많이 팔려 나가게 된다. 그 결과 어민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육방의 관속과 현민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 허현령도 최다모와 함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러자 허굉필은 그해 2월 중순에 병방 곽수림을 통하여 곽생원장통역을 은밀하게 사또의 집무실로 불러들인다. 그 자리에서 허판관이 곽병방과 곽생원 그리고 장통역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4명이 비밀리에 곽생원이 제안한 그대로 일본의 서남번을 한번 살펴보고 오는 것이 어떻겠어요?... “.

그 말을 듣고서 3인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들의 귀에 허현령의 조용한 설명이 들려온다; “시찰기간을 한달정도로 잡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현령인 내가 여러분들과 함께 동래의 왜관을 시찰하는 것으로 위장을 하고서 말입니다!... “.

곽병방과 곽생원 그리고 장통역이 듣고 보니 그럴 듯한 계획이다. 따라서 곽병방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실무적인 의견을 말한다; “좋습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공식적인 명분은 동래의 왜관을 시찰하고 우리 현청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하지요. 호위는 무인인 저 병방이 맡는 것으로 하시고요. 그리고 일본으로 가는 배는 장통역이 선장으로 있는 그 어선을 이용하면 됩니다. 또한 바닷길 안내는 일본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곽생원이 맡으면 되지요. 저는 찬성입니다!... “.

곽생원은 일찍이 자신이 제안한 건이므로 좋다고 말한다. 장통역은 옛날 동래의 왜관에서 일하던 기억이 나는지 그도 좋다고 찬성한다. 따라서 허판관은 그들 3인과 함께 18542월 하순에 큰 모험에 나선다. 장통역이 선장으로 있는 어선을 타고서 그들이 바람의 방향을 살피면서 몰래 일본의 조슈번(長州藩)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 4인은 과연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며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