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29. 02:4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9(손진길 소설) 

 

이방을 비롯하여 육방의 관속들이 동헌의 마당에 도열한다. 허판관이 동헌 마루에 올라가서 현령의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이방 최기수(崔基樹)부터 시작하여 육방의 아전들이 줄줄이 자기소개를 한다.

그날 허현령은 이방 최기수와 호방 장규원(張圭元) 그리고 병방 곽수림(郭水臨)의 이름을 우선적으로 머리에 입력한다. 기타는 공방 전광수(全光洙), 예방 옥인걸(玉仁杰), 형방 정명종(鄭明鐘) 등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알기 쉽게 전공방, 옥예방, 정형방이라고 기억한다.

그날 허현령이 이방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방 최기수는 내일 업무보고를 준비하여 본관에게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향청의 좌수(座首)를 모레 방문하고자 하니 그 준비를 해주세요.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다모(茶母) 최선미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부터 현청의 관노비에 대한 관리는 최다모가 맡도록 조치를 해주세요. 육방의 향리 여러분,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

그 말을 하면서 허판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육방의 관속을 향하여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육방의 향리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까지 향리로 살아오면서 신임 현령이 자신들에게 먼저 허리를 숙여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 진귀한 모습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에 서있던 이방 최기수가 너무나 황송하여 급히 허리를 숙인다. 그 뒤를 이어 호방 장규원, 병방 곽수림, 공방 전광수, 예방 옥인걸, 형방 정명종 등이 줄줄이 허리를 굽혀서 다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최다모가 아들 허지동을 안고서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제부터 영덕 현령이 된 허굉필은 과연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 일은 허판관이 이방 최기수로부터 영덕현의 업무보고를 받고나서 구체화가 되고 있다. 먼저 허현령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이방, 그대의 업무보고를 받고 보니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군요. 그것은 우리 영덕현을 둘러싸고 있는 3가지 문제점이 그대로 엿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방 최기수가 아연 긴장하면서 신임 현령 허굉필을 쳐다본다. 그때 그의 귀에 차분한 설명이 들려온다; “첫째로, 영덕현은 동에는 바다, 서에는 곧바로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한없이 뻗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판이 적어서 농업소득이 별로 많지 아니하여 먹고 살기가 힘든 현입니다. 둘째로… “.

일단 허현령이 말을 끊고 있다. 그리고 잠시 최이방을 바라본 다음에 설명을 계속한다; “높은 산맥 덕분에 주로 서남쪽에서 불어오고 있는 태풍의 피해가 적어서 그런대로 살만한 고장입니다. 셋째로, 영덕 대게를 비롯하여 대구와 명태, 고등어와 오징어 등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그나마 어업에 의존하여 현민들이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관은… “.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이제부터이다. 최이방이 긴장을 늦추지 아니하고 허현령의 입을 쳐다본다. 그때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온다; “첫째, 어민들이 동해바다에서 목숨을 걸고서 잡아온 생선을 이웃 고을에 빨리 수송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본관은 유통단계를 줄이고 신작로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둘째… “.

 신임 허현령의 대책이 더 있는 모양이다. 최이방이 계속 경청한다. 젊은 신임 현령의 말이 다음과 같다; “풍흉이 심한 동해바다에서 보다 안전하게 어로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현업에서 은퇴한 경험 많은 선장들을 모아서 일종의 어업지도서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그에 대하여 본관은 최이방의 의견을 알고 싶군요?... “.

최이방은 신임 현령인 허판관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내심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째서 그러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러한 복안을 말한 현령이 없었다. 그런데 왕도인 한성부에서 관료생활을 하고 전라도 구례현에서 현감을 지낸 신출내기 현령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영덕현의 복일까? 아니면 고생 거리일까? 일단 한번 얼마나 그 생각이 굳은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따라서 최이방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이곳 영덕현에서 향리로 오래 일한 저의 경험에 의하면 첫째로, 수산물 유통에 대하여 유통단계를 줄인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웃 현으로 가는 신작로를 건설한다고 하는 것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저희 현의 재정상태로는 무리입니다. 둘째로, 그렇지만… “.

최이방은 말을 하면서도 신임 현령 허판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쳐다본다. 그리고 말을 맺는다; “어업현장에서 은퇴한 선장들을 불러모아 안전한 조업을 위한 지도와 지침서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저 이방의 좁은 소견입니다. 그저 참조만 해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허판관이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옳은 말씀입니다. 역시 본관이 최이방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본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뒤에 있는 호방의 견해를 알고 싶군요. 장호방, 그대는 생선판매를 위한 유통단계를 줄이자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본관은 어민들이 잡아온 생선을 빨리 소비자에게 팔고 싶습니다마는… “.

호방 장규원이 앞으로 나서서 진솔하게 대답한다; “저 역시 영덕 출신이라 그런지 생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뱃전에 나가서 금방 잡아온 생선을 사는 것이 일과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첫새벽에 어시장과 물양장(物楊, 생선을 끌어올리는 현장)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요;

 따라서 유통단계를 줄이자면 잡아온 생선을 물양장에서 곧바로 분류하여 경매에 붙이고 신속하게 많이 팔릴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두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

 경험이 많은 장호방의 말이기에 허판관이 귀를 기울인다. 그의 견해가 다음과 같다; “분류한 생선을 담을 수 있도록 나무상자나 망태를 사전에 많이 제작하여 빨리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중매인의 수를 늘려서 경매장에서 되도록 많은 물량을 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

장호방이 조심스럽게 허현령의 눈치를 보면서 말한다; “중매인들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유지가 그 뒷배가 되고 있으므로 그 수를 확대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지요. 그리고 생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제작하는 것은 전공방과 상의를 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 말을 듣자 허판관이 단숨에 말한다; “좋은 견해입니다. 그대의 말이 맞아요. 따라서 본관은 내일 좌수어른 김용학(金龍鶴)을 만나서 수인사를 하면서 그 문제를 한번 상의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공방 전광수는 생선을 빨리 담을 수 있는 편리한 그릇을 어떻게 하면 싸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 수가 있는지 고안하여 본관에게 보고를 해주세요. 좋은 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육방의 얼굴을 쭈욱 둘러본 다음에 허현령이 말한다; “곽수림 병방은 이 자리에 잠시 남아 주세요. 본관이 따로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곽병방과 최이방을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이만 돌아가서 업무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하면서 허현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육방의 장들이 역시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다. 그렇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처음이니까 나이가 많은 향리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겸손한 자세이리라.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고 하듯이 그 태도가 고자세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야! 아무렴, 그렇고 말고… ‘.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의 단견이다. 왜냐하면 허판관은 영덕 현령 자리에서 훗날 물러날 때까지 그러한 겸양의 자세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영덕현의 향리들의 말을 빌리면 역대 현령 가운데 허굉필 판관이 가장 특이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허현령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이방 최기수에게 먼저 말한다; “최이방은 내일 김 좌수어른을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시고 나중에 본관에게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만 돌아가서 업무를 보시기 바랍니다!“. 최이방이 동헌에서 물러나자 허판관이 이제는 곽수림 병방에게 눈길을 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곽병방, 최근에 울도(鬱島)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지요? 동해의 안보와 관련하여 혹시 내가 미리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차제에 말씀해 주세요!... “. 그 말을 듣자 곽병방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한다. 그 내용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동해는 서해와 달리 수심이 깊고 바다가 넓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해안 가까이 높은 태백산맥이 달리고 있어 그 골짜기에 해당하는 바닷속이 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선들이 곧바로 깊은 바다에 나서고 이내 망망대해를 항해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동해는 내해(內海)의 성격이 아니고 참으로 망망한 대해로 나아가게 되는 일종의 근해(近海)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함선이나 어선들이 그 운행에 각별히 조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멀리 남쪽에서 북진하고 있는 난류와 한반도 북쪽의 대양에서 남진하고 있는 한류가 동해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따라서 그 수량의 크기에 따라 해류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일반적으로 겨울철이 되면 난류가 약해지고 한류가 강해진다. 그에 따라 북진하던 난류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동해의 연안 쪽으로 계속 밀리게 된다. 한마디로 해류의 방향이 남서향(南西向)이 된다. 그와 반대로 여름철에는 천천히 남동 방면의 일본 열도로 해류가 흐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태풍이 발생하여 일본 열도를 들이칠 때이다. 그런 경우에는 해류의 방향도 급격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서남부 해안으로 흘러가고 있던 뗏목이 작년부터 그 일부가 우연히 영해와 영덕의 해안가로 밀려왔다. 그것을 발견하고서 조선의 수군을 관장하고 있는 영해 도호부에서 긴장하고 있다;

 질 좋은 해송(海松)적송(赤松)으로 이루어진 그 뗏목이 어디에서 벌목이 된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좋은 목재를 가지고 무엇을 건조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것이 안보상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 옛날 임진왜란 때처럼 조선을 침략하려고 혹시 튼튼한 함선을 제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연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곽수림 병방의 긴 설명을 듣고서 허굉필 판관은 과연 어떠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