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28. 10:3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8(손진길 소설) 

 

9. 영덕 현령 허판관이 현지에서 직면하는 일들

 

18522월 초순이므로 아직 추운 겨울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3년전 1월 하순의 겨울에는 허굉필최선미가 한양에서 구례로 부임하였다. 그때에는 두사람이 각각 말을 타고 달렸기에 몸에서 열이 많이 나서 크게 추운 줄을 몰랐다. 게다가 섬진강 상류에서는 큰 배를 타고서 이동했다. 강바람은 차지만 선실 안은 따뜻했다.

따라서 두사람은 그때 비교적 빠른 속도로 남행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아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가고 있는데 그 진행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그 이유는 말을 타고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마차를 이용하여 천천히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굉필최선미2돌이 갓 지난 아들을 데리고 먼 길을 가고 있기에 빨리 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와 마차에 타고서 이사를 가고 있는 그 가족들이다.

지금 최선미는 간단한 가재도구를 싣고 있는 마차의 앞부분에 앉아 있다. 그녀는 품에 아들 허지동을 꼭 껴안고 있다. 그리고 그들 3가족은 차가운 겨울 날씨 때문에 두꺼운 솜을 많이 넣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신임 영덕 현령과 그의 가족이라고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차를 몰고 있는 28세의 허굉필이 평민 복장을 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종5품 판관 벼슬을 지니고 있는 조선의 벼슬아치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낮에는 마차를 몰고 해가 지기 전에 주막을 찾아가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아침에는 주모에게 돈을 주고  주먹밥을 구입한다. 그것을 점심시간에 먹으면서 열심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허굉필은 이번 기회에 전라도 남부의 구례에서 시작하여 경상도 남부의 하동을 지나 남해안의 마을들을 쭉 돌아보면서 동래까지 일단 가고자 한다. 그리고 동래의 초량에 살고 있는 왜국 말 통역 김준우를 만나본 다음에는 동해안을 타고서 북진하여 영덕현까지 들어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먼 길이다.

그와 같은 일정을 선택하고 있는 허굉필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새로운 임지가 경상도 동해안의 영덕 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름대로 자료조사를 좀 했다. 그 결과 영덕 현과 이웃하고 있는 영해에 도호부가 있으며 종3품의 부사 나리가 동해안을 지키고 있는 중임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영덕 현령은 군사적으로 영해 부사의 명령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그만큼 동해 바다와 연안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 그들 벼슬아치들의 가장 큰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허판관은 부임하는 길에 군사적인 측면에서 동해안의 마을들과 지형지물을 천천히 살피면서 북진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전라도를 벗어나기 전에 최선미허굉필에게 묻는다; “여보, 당신은 나를 구례현의 다모에서 영덕현의 다모로 변경하는 인사절차를 잘 마무리했나요?... “. 그 말을 듣자 마차를 몰고 있는 허판관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선미, 당신이 그 질문을 언제할까? 하고 사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오, 하하하… “.

최다모가 마부석에서 웃고 있는 허판관을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인다. 허굉필의 설명이 들려온다; “나는 지난달에 정6품 좌랑에서 종5품 판관으로 승차하자 곧바로 지방 현령으로 발령이 날 것으로 짐작했어요. 따라서 전라관찰사에게 돈을 주고서 사전에 부탁했지요. 당신을 내가 가는 현으로 인사이동을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

허굉필이 마차의 속도를 늦추면서 천천히 말한다; “관찰사 영감은 내게 영덕 현령으로 발령한다는 조정의 관보를 보내오면서 동시에 당신에 대한 인사명령서를 함께 보내왔어요. 김관찰사는 돈을 받으면 확실하게 반대급부를 주고 있는 정확한 인물이더군요. 그 덕분에 나는 당신을 데리고 이렇게 함께 영덕현으로 가고 있지요. 그런데… “.

최다모가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허판관이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 내가 종5품 현령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다모의 인사는 직접 조치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더 이상 심려하지 말고 안심해도 됩니다. 다만 당신 친정 집안의 사면과 양반신분의 회복을 얻기 위해서는 조정에서 결정이 되어야 하므로 시간이 상당히 걸릴 거예요!...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세도정치를 하고 있는 안동 김씨들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조작한 사건이다. 외조부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니 그것이 어떻게 쉽게 해결이 되겠는가? 허판관이 염두에 두고 있으니 훗날에는 반드시 신원회복이 될 것이야! 내가 힘껏 도와 주어야지… ‘.

동래 초량에 다다르게 되자 허굉필은 마차를 몰고서 통역 김준우가 살고 있는 료칸으로 들어선다. 허굉필의 간단한 이사짐을 보고서 김준우가 방문을 환영하면서 질문한다; “허상, 오래간만입니다. 어디로 이사를 하시고 있습니까?... “.

수년 전 허굉필은 밀수를 하는 무리들을 절영도에서 소탕할 때에 김준우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료칸에서 묵었다. 그때 자신의 본명을 김준우에게 알려주었기에 그가 지금 허굉필을 일본식으로 허상’()이라고 친밀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친절하게 대답한다; “김상(), 우리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영덕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수년 간 그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내 아들을 이곳에 좀 맡겼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왜국말과 일본의 문화를 배우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

그 말에 김준우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불감청(不敢請)이지만 고소원(固所願)입니다. 어린 아드님이 꽤 총명하게 보입니다. 우리 부부가 훗날 맡아서 일본아이처럼 잘 키워줄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 조선과 일본의 앞날을 위하여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하하하… “.

그날 오래간만에 김준우의 료칸에 하루 묵으면서 허굉필은 김통역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화는 주로 조선과 일본과의 교역과 문화교류에 관한 것이다. 그러다가 허굉필이 지나가는 얘기처럼 슬쩍 물어본다; “요즘에는 조선의 동해안에 일본의 해적들이 출몰하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지요!... “.

김준우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대답한다; “그렇지요. 별로 없어요. 그 이유는 이곳 동래의 왜관에서 조선의 쌀과 문물을 충분하게 가져갈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요즘 일본의 조정에서는 흑선’(黑船, くろふ) 구로후네라고 불리고 있는 서양의 큰 배들이 열도에 자주 출몰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

그 말에 허굉필이 문득 생각이 나는지 물어본다; “김상, 그렇다고 하면 훗날 그들 서양의 큰 배들이 우리 조선의 동해안에도 출몰할지 모르겠군요. 우리 가족은 영덕지방에 가서 살려고 하는데 앞날이 걱정인데요!... “.

갑자기 김준우가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허상은 걱정이 팔자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미리 걱정하는 것과 같아요! 서양의 큰 배들은 일본정부와 공식적으로 무역을 하고자 개항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 문제가 먼저 해결이 되어야 그 다음에 조선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하하하… “.

그렇지만 허굉필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세력은 일본보다 먼저 청나라에 외압을 행사하여 강제로 개항하게 하고 벌써 그들의 물건을 팔고 있다. 그리고 조광권(租鑛權)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조선과 일본에 대하여 쇄국의 빗장을 풀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조정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 곧 조선의 조정에도 외압을 가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가 않다고 보아야지!... ‘.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서 허굉필은 처자식을 마차에 태우고 동해안을 북상하고 있다. 그는 일본 및 서양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서 조선의 해양방어태세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비가 참으로 허술하기 이를 데가 없다.

동래에는 나름대로 일본과의 마찰을 염두에 두고서 경상 좌수영이 설치가 되어 있지만 동해안에는 그 대비가 허술하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영해 도호부를 두고서 부사의 지휘하에 흥해, 영덕, 영해 지역의 해안선을 전부 방어한다고는 하지만 그 수하의 전함과 수군의 수가 얼마 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므로 허판관은 어떻게 하면 동해안의 수비에 철저를 기할 수가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그가 영덕 현령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주안점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영덕 현청에 들리기 전에 먼저 영해 도호부를 찾아가서 종3품인 도호부사 조덕룡(趙德龍)을 만난다.

도호부에 들리기 전에 주막에 묵으면서 허판관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관복으로 갈아 입는다. 어엿한 영덕현의 신임 현령의 복색이다. 그 다음에 그는 마구간에서 마차를 끌고 있던 말을 한 필 꺼내어 그 말을 타고서 영해의 도호부를 찾아간다;

신임 영덕 현령이 가장 먼저 도호부사인 자신을 방문하여 전입신고를 하자 부사 조덕룡이 그렇게 좋아한다. 따라서 그가 다음과 같이 환영인사를 하는 것이다; “허판관, 환영합니다. 영덕이 비록 큰 현이기는 하지만 동해안의 방어에 있어서는 현령이 도호부사인 본관의 지시를 따르도록 되어 있지요. 앞으로 우리 사이좋게 동해안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도록 합시다!... “.

조부사는 누가 보아도 무관이다. 50이 되어 보이는 호걸형의 인물이다. 28세에 불과한 허판관이 그를 보고서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대답한다; “많은 지도편달을 해주십시오. 저는 8년전에 문과시험을 보고서 주로 한성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

조덕룡 부사가 편안하게 판관 허굉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앞에서 허판관이 말을 이어간다; “지방수령으로는 지난 3년간 작은 현 구례에서 근무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수군의 국방업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개인적으로 집안의 큰 형님으로 알고서 아우의 도리를 다하고자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조부사가 껄껄 웃으면서 허판관의 손을 꼬옥 잡는다; “하하하, 오늘 좋은 아우를 만났군요. 좋습니다. 우리 사나이 답게 한번 손을 맞잡고 조선의 국방을 위하여 그리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수고를 다해봅시다. 봄이 되면 본관이 범선을 타고서 동해에 있는 우리 조선의 큰 섬 울도(鬱島)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때 허현령도 함께 가도록 하시지요. 그러면 그때 뵙도록 합시다, 하하하“.

허판관도 호탕한 조부사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영해 도호부에 먼저 들린 다음에 허판관이 주막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다모와 아들 지동이를 데리고 영덕 현청으로 간다. 그는 말을 타고서 관복을 입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문지기들이 얼른 동헌에 모여 있는 육방에게 기별을 한다.

과연 영덕 현청의 향리들을 만나게 되는 신임 허현령은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