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21. 11:5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5(손진길 소설)

 

정월 하순 조선의 밤은 춥다. 그렇지만 주막에서는 여러 손님이 자고 가는 봉놋방에 군불을 많이 지펴 두었기에 밤새 방안의 온기가 상당하다. 다만 한옥집은 단열이 되지 아니하여 이불속과 아래목은 굉장히 뜨끈뜨끈하지만 동시에 외풍과 위풍이 너무 심하다. 그 온도 차이 때문에 겨울철에 감기 걸리기가 딱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허굉필 일행은 절절 끓는 구들방에서 하룻밤을 푹 쉬고 아침 일찍 뜨끈한 국밥을 주막에서 사 먹는다. 그 다음에 허굉필최선미는 모친 하수련을 수원의 관아로 데려다 준다. 물론 그 전에 허굉필최선미로 하여금 모친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주라고 미리 조치를 해 둔다.

딸이 주는 돈을 받으면서 하수련은 사위가 되는 허좌랑에게 인사한다; “고마워요, 참으로 고마워. 부디 먼 초행길에 안전하게 임지로 부임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내 딸을 끝까지 잘 부탁해요. 나중에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 

허좌랑은 최다모와 함께 다시 두 필의 말을 각각 나누어 타고서 남쪽으로 길을 달린다. 수원에서 전라도로 가는 길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말을 달리면 하루에 2백리에서 3백리 정도는 너끈하게 가게 된다.

매일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주막을 찾아 들어가 식사하고 하루의 피로를 푼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조반을 함께 하고 다시 말을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임실(任實) 들어서게 되자 허굉필최선미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여기부터는 말을 배위에 싣고 섬진강 줄기를 따라 남하하도록 합시다. 구례가 섬진강 유역에 있으니 미리 수로(水路)를 한번 살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농사를 짓자면 강물이 중요하지요!... . 허좌랑의 말에 최다모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미소를 짓는다. 물론 그녀도 찬성이다;

그리고 그녀가 속으로 생각한다; ‘서방님이 벌써 구례현에 도착하여 선정(善政)을 베풀 준비를 하고 있구나. 현민들이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으니 그들의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섬진강 물줄기를 사전에 살피고 싶은 것이야. 좋은 생각이다!’.

허굉필은 고향이 경상도의 남부인 김해이다. 김해에는 영남 땅에서 보기 드물게 나름대로 넓은 평야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만석꾼 집안이 몇 있다. 하지만 경상도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주로 산지이고 들판이 드물다. 따라서 경주 월성지역에 교리 최부자가 유일하게 만석꾼 집안이다.

그런데 허굉필이 일찍 고향에서 듣기로 전라도에는 비옥하고도 넓은 평야가 있어 소출이 많고 백성들이 무척 살기가 좋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해로 들어가는 영산강과 남해로 들어가는 섬진강이 호남의 여러 평야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어  농사가 잘 되는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허좌랑이 차제에 섬진강을 타고서 남하하는 큰 배를 이용하여 구례현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는 최다모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배를 타고 가면서 섬진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직접 관찰하고자 한다. 그와 같이 벌써 현민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좋은 현감이 새로 부임하고 있는 허굉필인 것이다;

본래 종6품 주부 벼슬이면 외직으로 나가는 경우 현감(縣監)의 자리를 맡을 수가 있다. 그런데 허굉필은 벌써 그보다 품계가 하나 높은 정6품 좌랑이다. 만약 그가 한 계급 더 진급한다면 종5품 판관으로서 큰 현의 수령인 현령(縣令)의 자리를 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허좌랑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는 요란하게 구례현으로 부임하는 것이 아니다. 은밀하게 최다모와 단 둘이서 밀행하여 그곳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그 배에 타고 있는 주민들이 그가 신임 구례현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 도중에 배가 곡성 나루터에 잠시 정박했을 때에 탑승하고 있는 손님 가운데 조선말이 아니라 청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 젊은이가 2사람 있다. 그들을 환송하기 위하여 노인 부부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루터로 나왔는데 그들도 청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범선을 타고 있는 조선사람들이 두사람의 젊은이의 정체가 궁금하여 말을 붙이고 있다. 그때 두 젊은이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저희 형제는 8년전에 청나라를 떠나 조선으로 이민을 왔어요. 서구와의 전쟁이 발생하였기에 고향을 버리고 안전한 이곳 조선으로 피난을 온 것이지요. 지금은 조선인 아내를 얻어서 잘 살고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함께 탑승하고 있는 조선인들이 더 자세하게 묻지 아니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새로운 문물을 탐구하기 좋아하는 허굉필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두 젊은이의 옆으로 가서 은근하게 물어본다; “서구와 청나라가 전쟁을 쳤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

당시 청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종주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요컨대 지역패권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청나라의 영향권 아래 있는 조선의 국왕은 오로지 청의 황제를 주군으로 섬기고 그 신하로서 황제의 명령에 따라 봉신국을 통치해야 한다.

가장 큰 황제의 지시사항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오로지 종주국인 청나라하고 교역해야 하며 다른 나라와의 교역과 내왕을 일체 금한다. 또 하나는, 청나라가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하여 군대를 요청하면 신하국은 충성을 다하여 군대를 파견하여야 한다.

그 가운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첫번째의 명령이다. 조선은 청나라를 제외한 기타 나라들과 내왕을 해서도 안되고 무역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특별하게 그러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전에 청나라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조선은 청국의 신하국이기에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실시하는 은둔의 나라인 것이다.

종주국인 청나라가 가르쳐주지 아니하면 기타 나라의 정보를 전혀 얻을 수가 없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청나라가 서구제국의 침입으로 전쟁에 져서 패가망신을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조선에 일체 알려주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조선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의 정보가 최신정보이다.

두 사람 가운데 약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청나라가 졌어요. 전쟁 때문에 많은 백성이 죽고 패전으로 중요한 항구를 빼앗겼지요. 청나라가 마치 종이호랑이 같아요. 우리는 차제에 아예 청나라를 버리고 조선으로 피난 오고 말았지요!... “.

청나라 소식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허굉필과 그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최선미는 깜짝 놀라고 있다. 그때 허굉필이 많은 돈을 주고서 자신과 최다모가 빌려서 함께 사용하고 있는 선실 안으로 두 젊은이를 초대한다. 음료수와 떡을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더 나누고자 한다.

그날 즐거운 대화를 통하여 허굉필이 파악하고 있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두 젊은이의 집안은 특이하다. 한족(漢族)이 아니고 그 조상이 돌궐족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북방 유목민으로 살고 있던 조상들이 남하하여 남송(南宋)시대에 번창하기 시작한 광동성(廣東省)복건성(福建省)에서 집단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은 독창적인 둥근 성채모양의 집단주택을 지어서 이웃 한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면서 누대를 살아오고 있다. 따라서 한족들이 그들을 일컬어 알기 쉽게 객가족’(客家族)이라고 부르고 있다;

둘째, 만주의 여진족이 ()나라를 건설하고 한족의 ()나라를 치고서 천하를 통일했다. 그때 객가족들은 같은 북방계였으므로 크게 번창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어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찾아서 청나라로 들어오게 되자 그것이 아니다. 청나라의 장래가 암담해지면서 서구와의 전쟁 때문에 객가족들도 안전이 위험해지고 있다. 따라서 복건성의 객가인들이 먼저 안전한 대만섬과 조선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광동성의 객가인들이 더 멀리 동남아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셋째, 1841년경 (), (), () 등의 서구(西歐) 연합군의 군대에게 청나라 군대가 밀리게 되고 전쟁터에 가까운 주민들에게 피해가 닥치자 차제에 젊은이의 부모는 가족을 솔거하여 아예 멀리 조선으로 피난을 왔다;

그들이 하동(河東)에 도착하자 지방수령이 호의적으로 그들에게 살길을 마련하여 주었다. 부모님은 큰 형과 함께 곡성(谷城)으로 이주하고 둘째인 자신은 구례(求禮)로 이주하고 막내 동생은 하동에서 살게 되었다.

넷째, 부친의 이름은 이광요(李珖饒)이고 형의 이름은 이천룡(李天龍)이며 동생의 이름은 이인용(李仁龍)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자신의 이름은 이지룡(李知龍)이고 여동생들은 대만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다. 자신들이 맡은 일은 지방 관아에서 청나라말을 통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3형제는 조선인 여자와 가정을 이루어서 벌써 7년간이나 살고 있다. 따라서 조선말에도 능숙한 편이다. 특히 이지룡이 구례 관아에서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조선말에 상당히 능통하여 선실에서 허굉필최선미가 그와의 대화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허좌랑은 이지룡 형제를 배안에서 알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따라서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나자 다음과 같이 그에게 말한다; “지룡, 그대는 나와 동갑이고 또한 조선말에 능통하여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앞으로도 우리 서로 좋은 벗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청나라 사정과 문물에 별로 아는 것이 없으니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

허굉필이 다정하게 그의 손을 잡고서 거듭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것을 보고서 이지룡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허형같이 청나라의 사정을 알고자 하고 또한 새로운 문물에 대하여 크게 호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을 만나게 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저는 조선문물에 아직 어둡습니다. 앞으로 서로 돕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날은 그 정도로 대화를 마치고 서로 헤어진다. 그러나 뱃길로 이틀이나 가고 있기에 그 동안에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허좌랑은 구례에 도착하게 되면 이지룡에게 부탁하여 청나라말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청나라와 그곳에 진출하고 있는 서구열강에 대하여 너무나 아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벌써 19세기 중반의 청나라는 지역 맹주로서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서구열강의 선진 무기체계가 밀어 닥치자 패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 신하국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의 미래가 어떻게 변천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 점을 미리 생각하면서 허굉필은 구례 현감으로 주어진 시간을 은밀하게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등 알뜰하게 보내고자 작심한다. 

그리고 그는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구례현으로 가면서 백성들의 생활상을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그는 배를 타고 있는 5일 동안 선상에서 백성들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다. ‘과연 어떠한 목민(牧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경상도 시골 김해(金海) 출신 선비 허굉필이 전라도 구례 현감으로 은밀하게 부임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그가 구례현에 도착하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