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7. 00:3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2(손진길 소설)

 

두 대신이 처음에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도중에 이판 김용범 대감의 일갈이 나타난다; 조명우 영감, 우리 안동 김씨는 그동안 조정에서 풍양 조씨를 정치적 조력자로 알고서 함께 조선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여 모든 수고를 다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의 날개를 꺾기 위하여 교묘하게 내 아들을 살인범으로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조명우 영감이 김대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서 말한다; “김대감, 지나친 억측의 말씀을 삼가하세요. 우리 풍양 조씨가 재작년 영수의 죽음으로 그 세가 크게 꺾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조정에서는 두번째의 세력입니다.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요;

 내 아들이 일부러 김대감 아들에게 덫을 놓았다고 주장하시는데 그것은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그런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

그러자 이판 김용범 대감이 자신의 품안에서 한 장의 진술서를 꺼낸다. 그것을 조용히 금위대장 조명우 영감에게 보여준다. 그 글을 읽으면서 조영감의 눈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 적지 아니하게 놀란 눈치이다.

그가 말을 더듬으면서 김대감에게 질문한다; “이판 대감, 이 진술서는 도대체 어디서 얻은 것이요? 그 내용이 전부 사실이요?... . 그 말에 김용범 대감이 자신 있게 대답한다; “사실이다 마다요! 이미 내부적으로 수사자료로 제출된 것을 내가 부탁하여 한 부 복사하여 가지고 온 것이요. 이제 진실을 아시겠어요?... .

조명우 영감이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무인 답게 말한다; 좋습니다. 그것이 정확한 내용이라고 한다면 김대감의 아들은 살인범이 아니라 과실치사(過失致死)의 죄를 범했군요. 그렇지만 치사에 이르게 한 그 과실도 그냥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 아들이 개인적으로 약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어영청의 종사관이 경솔하게 칼을 뽑았으니 더이상 무관으로 근무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 파면이 마땅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이판 김용범 대감이 입술을 깨물면서 대답한다; 좋습니다. 어영청의 일은 금위대장인 조영감이 어영대장과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세요. 그렇지만 댁의 아들이 내 아들의 계급장을 고의적으로 떼어버린 일은 내가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그 점 명심하세요!... “;

두사람이 그 정도의 선에서 정치적인 타협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기방 기생 살인사건이 한성부의 손을 떠나 포도청에 넘겨졌지만 재판과정에서 종사관 김학수에게는 단순하게 과실치사죄를 물어 파직이 결정되고 만다.

허주부가 최종사관의 증언을 추가로 받아내지 아니했다고 한다면 그는 살인죄로 처형이 되었을 판국인데 그 정도의 파직으로 살인사건이 종결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놀랄 일은 그 다음에 발생하고 있다.

그 사건이 전부 끝나고 두 달이 지나 9월 하순이 되자 강무관이 허주부에게 다음과 같이 최신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주부 나으리, 최근에 종로골목에서 쌍문점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목이 어영청에서 종사관으로 일하던 김학수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

그 말을 듣자 허주부가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천천히 강무관에게 말한다; “이판의 아들 김학수는 약관의 나이에 당당하게 무과에 급제한 인물입니다. 그만큼 무예가 빼어나지요. 그리고 어영청에서 종사관이 될 때까지 10년 세월을 계속 무관으로 지내면서 대단한 무예의 고수가 된 인물입니다. 사실은… “;

돌연 허주부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범행이 벌어진 그날 밤에 그가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우연히 내 발에 걸려서 넘어졌지요. 그가 지금 양지에서 음지로 들어갔으니 이제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어둠의 권력을 장악하려고 단단히 결심한 것이군요!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판 김용범 대감을 모시고 있는 장교리가 한성부 야경담당관 허주부의 집무실로 찾아온다. 최다모가 가지고 온 차를 마시면서 그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허굉필에게 조용히 말한다; “감사합니다. 모든 일이 허주부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이제 두 달이 지났기에 주위에 보는 눈들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 이판 대감께서 허주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면서 말한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국사에 바쁘신 이판 대감께서 어떻게 미미한 벼슬을 하고 있는 저에게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저는 진실을 진실로 밝혔을 뿐 별로 일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해주시지요… “.

그 말에 장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역시 허리를 굽히면서 말한다; 그러지 마시고 언제 한번 우리 대감의 집으로 찾아오시지요. 제가 직접 만나도록 조치를 하겠습니다.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그렇게 해주세요. 우리 이판 대감은 은원(恩怨, 은혜와 원한)이 아주 분명하신 어른이시지요!... .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김대감과 장교리의 선심을 물리칠 수가 없다. 따라서 허주부가 대답한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루 쉬게 되는 이틀 후 저녁에 대감 댁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허굉필이 이틀 후 저녁시간에 대감 댁에서 만난 이조판서 김용범은 한마디로 호상(虎相)이며 대신다운 면모가 일신에 풍기고 있는 인물이다. 위엄이 있으며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대장부의 풍모를 지닌 김대감이 허주부를 보고서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표시이다.

그 성품 그대로 김용범 대감이 다짜고짜 허주부에게 말한다; “정말 신세를 졌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보답을 하고 싶어요. 청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세요!. 허굉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두가지 청이 있습니다; 첫째로, 저는 지금 주부이지만 일계급 승진을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이제는 외직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조그만 성읍의 현감이라도 좋습니다. 감히 부탁을 올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용범 대감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주부의 성격이 나하고 비슷하군요. 정확하게 용건만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벗인 한성판윤 김대감과 상의하여 그 청을 들어주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나를 많이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해가 지나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여전히 허굉필은 한성부의 야경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빨리 외직으로 나가야 최다모를 데리고 떠날 수가 있는데 그것이 안되니 속으로는 좌불안석이다. 따라서 허주부는 최선미에게 이판(吏判)을 만난 이야기를 아직 못하고 있다.

막상 이듬해 1849년 정월 중순이 되자 정기적인 인사명령이 발표가 된다. 무엇보다 한성부 관료들이 깜짝 놀랄 일이 그 가운데 들어있다. 주부 허굉필이 일계급 승진하여 정6좌랑(佐郞)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전라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오지 구례현(求禮縣)현감(縣監)으로 발령이 나고 있다.

허굉필은 연초의 정기인사인지라 차제에 대과동기인 한성부의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인사내용을 챙겨서 본다. 그들이 모두 종7직장(直長)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그날 인사발표를 보고서 한성부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대과 및 입사동기인 한우진, 심한수, 윤일윤이 한꺼번에 허굉필을 축하하고자 찾아온다.

그들은 허굉필이 한성부를 떠나 멀리 전라도 남부의 구례현감으로 가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함께 근무하지 못하게 되어 서운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같은 야경부서에서 오래 함께 일하고 있는 한우진 직장이 덥석 허굉필 좌랑의 손을 잡으면서 그의 눈을 한참 쳐다본다.

그리고 한우진이 울먹이듯이 말한다; “이거 야경꾼 총책을 여기서 떠나 보내게 되어 정말 섭섭합니다”. 그 말에 허굉필이 웃으면서 말한다; “이제부터 내 벗인 한우진 자네가 야경꾼들의 부책임자이니 나는 안심하고 떠날 수가 있지요. 한우진,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그 다음에는 절친 심한수가 갑자기 허굉필의 허리를 안으면서 말한다; “굉필아, 언제 이렇게 다시 너를 만날 수가 있을까? 나는 동기 가운데 너와 가장 친했는데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참으로 섭섭하이… “.

마지막으로 윤일윤이 억지로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굉필, 외직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남대문으로 나가거라. 이제는 나 직장 윤일윤이 그 대문의 책임자이니까! 하하하… “. 그 말에 모두들 웃고 있다.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인사발령을 보고서 가장 기뻐하는 인물이 바로 다모 최선미이다. 그녀는 당장 허좌랑에게 말한다; 빨리 판윤 대감에게 말씀을 드려서 저를 구례로 데리고 가주세요. 이틀간 말미를 드릴께요!... “;

그 말을 듣자 허좌랑이 빙그레 웃으면서 최다모에게 말한다; 이틀 전에 사실 나는 이번의 인사 건에 대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었어요. 따라서 판윤 대감의 허락을 하나 받아 두었지요. 그것은 다모 최선미를 신임 구례현감 허좌랑이 데리고 가도 좋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 인사 명령입니다!... .

깜짝 놀라서 최다모가 그 문서의 글을 읽어본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한성부의 관비인 다모 최선미를 전라도 남부의 구례현감에게 보낸다. 신임 현감 허굉필 좌랑은 다모 최선미를 인계하여 관비로 삼도록 하라. 한성판윤의 명령을 교리 심원익이 문서로 기록합니다. 헌종 15년 정월 14일 심교리의 서명.

그 문서를 읽고서 최선미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허굉필에게 말한다; “당신은 나를 관비로 데리고 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아내로 데리고 가기를 원합니까? 나는 후자를 원합니다!”. 그 말을 듣자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허굉필최선미를 힘껏 안는다.

그 순간 허좌랑의 부드러운 음성이 최다모의 귀에 들려온다; “나는 반드시 최선미 당신을 관비의 신세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요. 그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최선미 당신하고만 동침할 것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

먼 훗날 허굉필의 약속과 최선미의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무엇과 함께 조선에 밀어닥치게 되는 것일까? 나아가서 허굉필최선미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그들 나름대로 무엇을 준비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