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4. 09:33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0(손진길 소설)

 

6. 한밤중 종로 기방의 살인사건

 

두사람이 돌아오자 홍종사관이 급히 질문한다; “허직장, 추격하던 마차 둘은 어떻게 되었는가?. 허굉필이 상심한 표정으로 보고한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마차를 그대로 몰고서 바다로 뛰어들고 말았어요. 낭떠러지에서 발생한 일이라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낭패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홍종사관이 허직장을 위로한다; “나중에 그 흔적을 찾으면 되겠지요. 어쨌든 오늘의 작전은 대성공입니다. 밀수꾼들을 전부 소탕했어요. 왜선까지 나포를 하였으니 성공이고 말고요. 하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아니하고 무영 남매와 부두목 장우가 대항하였기에 그만 죽고 말았어요. 그 때문에 우리 병사들도 절반이나 전사하고 말았지요;

 강무관도 부상을 입었으니 먼저 의원실을 찾아가 보세요!... .

그 말을 듣자 최다모는 얼른 강무관의 상처를 살피기 위하여 함께 가자고 허직장의 팔을 이끌고 있다. 다행히 강무관의 상처가 깊지는 아니하다. 그 자리에서 강무관이 다음과 같이 허직장에게 말한다; 나는 부두목 장우와 일대일 대결을 했는데 겨우 그 자를 이겼어요. 그런데 장우는 죽고 나는 이 정도로 부상을 입고 말았어요. 하지만… .

허직장이 귀를 기울이자 강무관이 이어서 설명한다; “홍종사관과 야왕 무영과의 결투가 압권이었어요. 두사람의 무예가 절정의 솜씨라 모두가 숨을 죽였지요. 그런데 홍종사관이 승자가 되었어요. 그를 이제부터 조선 제일검이라고 불러야 하겠어요. 내가 아는 한 홍종사관의 검술을 당할 자는 조선천지에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해요. 그리고… “.

강무관이 잠시 호흡을 고루는 사이에 얼른 허직장이 말한다; 무영의 여동생 무솔도 무예가 대단했겠지요? 그래 그녀는 어째서 사망을 했지요?. 강무관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녀의 비도술은 절정의 솜씨였어요. 그대로 두면 너무 많은 병사들이 쓰러질 것 같아서 홍종사관이 일제히 화살을 쏘라고 명령했어요. 따라서 그녀가 고슴도치가 되어 죽고 말았어요. 그것으로 적들이 완전 항복하고 말았지요!... .

설명을 들어보니 혈전(血戰, 피 튀기는 전투)임이 틀림없다. 허직장과 최다모는 자신들의 은밀한 일을 처리하느라고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날의 결과는 동래부사 정일용의 장계에 의하여 곧바로 한양의 조정에 보고가 된다. 허직장 일행과 홍종사관은 동래부사에게 사의를 표하고 전리품을 끌고서 한양으로 되돌아간다. 그날의 결투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서 허굉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홍재덕 종사관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허직장이 속으로 생각한다; 야왕 무영을 꺾다니 홍종사관은 조선제일의 검술을 지닌 자가 맞아. 게다가 그는 왕비의 당숙이 아닌가! 앞으로 안동 김씨 세도가 들이 한양에서 바짝 긴장을 해야 하겠군... .

그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 된 조정에서는 대체로 3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한성부 판윤과 금위영의 수장은 가장 큰 규모의 밀수단을 소탕한 자신들 부하의 공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많은 병사를 잃어버린 동래부사에게 조정에서 그 공을 치하하고 동시에 병사를 보충하여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호판 김대감은 두가지 사실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 하나는, 무영 남매와 부두목 장우가 죽었기 때문에 자신의 비리가 들통나지 아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막대한 양의 밀수품이 전부 호조의 관리 하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야왕인 무영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 쓰고 있던 조정의 대신들은 그가 죽어버렸기에 속이 시원하다. 따라서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쉬고 있는 것이다.

이듬해 2월에 그 일에 대한 논공행상이 벌어진다. 그 일을 성공시킨 홍종사관과 허직장이 가장 먼저 2계급 특진을 한다. 그 결과 허굉필 직장은 일약 종6품인 주부가 된다. 그리고 홍재덕 종사관은 종5품 판관이 된다. 강천무 부사맹 역시 2계급 특진을 하여 종7품 부사정이 된다.

그런데 최다모에게는 역시 관비이므로 상급으로 재물만이 하사가 된다. 그 재물로 최선미는 얼른 한양 도성의 바깥에 있는 논밭을 더 사고 있다. 이제 그녀 소유의 전답이 10마지기나 된다. 그 정도의 규모이면 매년 농업소득으로 한 가정이 먹고 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헌종 14년인 1848 2월에 비록 허굉필이 종6품 주부의 벼슬에 올랐지만 쉽게 외직인 현감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한성부의 야경담당관인 주부 오창명이 진급하여 그만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어 그 자리가 공석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윤 김대감이 그 자리에 새로 주부가 된 허굉필을 얼른 임명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일이 돌아가자 허굉필이 은밀하게 최선미에게 말한다; 어쩔 수가 없어요. 일단 야경총책을 맡으면서 외직으로 나갈 길을 모색하도록 합시다. 금년 말까지 노력하면 그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

최선미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허굉필과 정식으로 합방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기다려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아니하다. 허굉필의 성실함과 일편단심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자꾸만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에 허주부가 24세이고 최다모가 23세이다. 당시 조선의 나이로는 참으로 노총각과 노처녀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앞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야만 한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그 기회가 우연히 그해 7월에 찾아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종로 기방의 살인사건이다. 과연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일까?...

7월 중순 그날 밤 한성부의 야경꾼을 총지휘하고 있는 주부 허굉필은 무관 강천무와 다모 최선미를 대동하고서 운종가가 자리잡고 있는 종로통을 일일이 순찰하고 있다. 앞서 한성부의 야경꾼과 금위영의 순라군이 차례로 지나갔지만 한 식경 뒤에  그 뒤를 밟고 있는 것이 야경담당관인 허주부의 직무인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은 허주부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종로의 여러 기방이 자리잡고 있는 골목을 한번 순찰하자고 말한다. 그 말에 강무관이 씨익 웃고 있다. 그런데 최다모는 은근히 미소를 지으면서 허주부를 쳐다본다.

그리고 종내 다음과 같이 농을 걸고 있다; “그렇게 하시지요, 주부 나으리. 그런데 혹시 술생각이 나시는 것이 아닙니까? 예쁜 기생들이 부어주는 그 술이 그리우신 모양이지요!... “. 그 말을 듣자 먼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강무관이 하하라고 웃고 있다.

감히 한성부 야경꾼 총책임자인 허주부에게 그렇게 대놓고 농담하는 것을 보니 최다모가 여장부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말에 흠칫 놀라고 있는 허주부의 모습도 혼자서 보기에는 아까운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에 허주부의 대답이 두사람에게 들려온다; “내가 평소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던 기방이 이 근방이지요. 이곳의 기방에서 금위영의 홍판관을 만났고 호판의 자제인 김박사하고는 여러 번 술자리를 함께 했어요. 사람 사귀기에는 다시 그만인데 문제는 술값이 고액이라는 것이지요,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강무관이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한다; “주부 나으리, 그렇게 혼자서만 재미를 보시지 마시고 언제 저를 한번 데리고 그 기방에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합니다, 하하하… “. 최다모도 지지 않고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저도 남장을 하고서 거기에 가고 싶어요. 주부 나으리 부탁드립니다, 호호호… “.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로 이야기하는 사이에 정작 허주부가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종로 그 기방의 대문 가까이 그들이 접근하고 있다. 그때 대문을 박차고 골목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선비가 한사람 있다. 그의 손에는 장검이 들려 있는데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허주부가 가장 가까이에서 그 선비를 쳐다본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거의 본능적으로 그 자의 다리를 걸어서 흙바닥에 나뒹굴게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강무관이 속으로 말한다; “놀라운 반사신경이다. 문관인 허주부가 만약 무관이라고 한다면 그 실력이 가히 고수급이다. 이거 놀라운 발견인데!... “.

강무관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흐르고 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최다모가 유심히 지켜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서방님은 문관이지만 그 숨겨진 실력이 대단한 무인이다. 나는 동래를 다녀오면서 벌써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은연중에 그만 그 실력이 들통나고 있다. 이거 큰일인데!... ‘.

 그때 허주부가 수하인 두사람에게 지시한다; “강무관, 빨리 이 자에게 오라를 채우세요. 그리고 최다모는 즉시 기방으로 들어가서 누가 이자의 칼에 맞았는지 파악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그 다음에 허주부가 최다모를 따라서 기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살해현장을 살핀다. 동시에 그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아무도 이 방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현장을 제멋대로 이탈하는 자가 있으면 범인과 한패라고 의심을 받을 것입니다!... “.

조금 후에 강무관이 도망자를 포박한 채 그 자리에 나타난다. 그리고 일동에게 말한다; “이자가 피 묻은 장검을 들고서 이 집을 빠져나와 도망치는 것을 잡았어요. 저기에 쓰러져 있는 기생이 이 자의 칼에 죽임을 당한 것이 맞습니까?... “.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주부가 증인들에게 다가가서 인적사항을 재빨리 기록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살해사건의 증인임을 자필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방에 있는 사람 가운데 2명의 선비와 2명의 기생이 모두 그렇다고 확인하고서 서명까지 하고 있다.

그 문서를 허주부가 품에 간수한 다음에 모두에게 질의한다; “여기 죽임을 당한 기생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째서 살해가 되었지요. 아시는 대로 답변해주세요!... “. 죽은 기생을 품에 안고 있던 기생이 즉시 설명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선비의 칼에 맞아 죽었어요. 지금 오라에 묶여 있는 그자가 살해범입니다. 그자는 세도가 이판의 아들입니다!“.

그 말에 허주부가 깜짝 놀라고 있다. 강무관과 최다모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여러 증인이 있는 자리에서 빨리 조사를 끝내는 것이 상책이다. 허주부의 질문이 계속된다; “살해동기가 무엇이지요?”. 그 기생이 즉시 대답한다; “아까 증인으로 나선 2선비와 살해범이 서로 벗입니다. 그들이 오늘 내 친구 월향(月香)을 앞에 앉히고 술을 따르게 했지요. 그런데… “.

허주부는 증언을 하고 있는 그 기생의 이름이 명월(明月)임을 이미 알고 있다. 평소에도 알고 있지만 조금전에 서명을 할 때에 다시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조용히 명월의 말을 듣고 있다;

그녀가 이어서 말한다; “선비들이 농을 주고 받다가 그만 그들이 모두 월향을 품에 안고서 동침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낄낄 웃었어요. 그러자 화가 난 이판의 아들이 구석에 세워 둔 장검을 뽑아서 졸지에 월향의 가슴을 깊숙이 베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허주부는 그 사실을 일일이 자신의 장부에 기록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증인들의 서명을 받고 그 시간까지 적어 둔다. 훗날을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흔히 세도가의 집안에서 사건을 일으키게 되면 거짓 증인을 조작하여 내세우고 때로는 거짓 범인을 만들어 내어 처벌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명월은 자신의 증언 가운데 그 살인자의 이름이 이판(吏判) 김용범(金容範) 대감의 아들 김학수(金鶴壽)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손수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있다. 세도가 김대감의 아들이 범인이라고 증언하고 직접 서명까지 하는 것을 보면 명월이 보통 담력을 가진 기생이 아니다.

그날 밤 한성부 야경담당관실에 돌아온 허주부는 그날의 사건을 일일보고에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긴다. 과연 한밤중 종로 기방의 살인사건은 별탈 없이 그대로 수사가 진행되고 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