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1. 18:0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7(손진길 소설)

 

허굉필이 몰고 있는 쌍두마차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 이유는 마차에 싣고 있는 짐이 궤짝 2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은괴 120개를 2개의 상자에 나누어 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낮 시간 동안 하루에 200리나 되는 길을 매일 달리고 있다.

그렇게 허굉필이 열심히 쌍두마차를 계속 몰았더니 엿새가 지나자 벌써 한양성이 멀리 보이고 있다. 한양에 들어서기 전에 허굉필은 가장 먼저 우시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동래를 떠나올 때에 팔아버린 소와 비슷한 체격의 황소를 한 마리 구입한다;

허굉필은 마차에서 2마리의 말을 떼어내고 그 소가 마차를 끌 수 있도록 조치한다. 쌍두마차가 다시 우마차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시장 부근에 있는 마시장을 방문하여 두 마리의 말을 팔아 치운다. 그리고 천천히 우마차를 몰면서 성문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성문에서 허굉필은 성문지기에게 자신이 한성부의 허직장이라는 신분을 먼저 밝힌다. 그리고 고향의 재산을 처분하여 은괴로 바꾸어 한양으로 옮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어렵지 아니하게 짐검사를 통과한다.

허굉필은 종로 어느 골목에 쌍문점이 위치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쌍문점 골목 살인사건을 조사한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래에서 장사치 장만수쌍문점의 위치를 설명할 때에는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있었다. 김광수라고 하는 가짜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에 허굉필장만수 앞에서 쌍문점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종로에 와서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정확하게 쌍문점이 있는 골목으로 우마차를 천천히 몰고 간다. 그리고 허굉필은 쌍문점에 도착하자 행수 장우를 찾는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자신이 장우라면서 30대 중반의 무사가 나타난다.

허굉필이 그 자의 모습을 보니 마치 잘 벼루어진 한자루의 검과 같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한성부의 무관 강천무에 비하여 결코 하수가 아니다. 대단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 자이구만. 그렇다고 하면 두목인 무영의 실력은 얼마나 뛰어난 것일까?... ‘;

그는 호기심을 감추고 일단은 행수 장우에게 우마차와 거기에 실려 있는 2상자의 은괴를 인계한다. 장우가 손수 궤짝을 열고서 그 속의 은괴를 일일이 점검한다. 정확하게 120개임을 확인한 후에 김광수로 가장하고 있는 허굉필에게 질문한다; 수고비는 이미 동래에서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는가?... .

대답 대신에 허굉필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가 만족하면서 말한다; “되었네. 물건을 정확하게 받았으니 그대는 이제 가보아도 좋아. 하지만 이 사실을 온전히 비밀로 붙여야 하네. 누설이 될 때에는 자네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수고 했어!... .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쌍문점 골목을 나서면서 허굉필이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보통 놈들이 아니야. 이거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하겠군. 11월초에 절영도에서 현장을 급습하여 일망타진을 하자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만전을 기해야 하겠어.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군!... .

과연 허굉필은 어떻게 그 일을 마무리할 것인가?... 그런데 한달간 고향을 다녀온 허직장이 한성부 야경담당으로 다시 일하면서 은밀하게 9월말에 강무관최다모와 수사관계 회의를 가진다. 허굉필은 간략하게 그가 지난 한달간 고향방문을 하는 길에 이웃하고 있는 동래의 절영도를 탐사하고 다녀온 이야기를 해준다.

대충 설명한 다음에 허직장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한다; “내가 보기에 절영도야 말로 무영 일당이 은괴와 철전을 밀수하고 있는 장소가 맞는 것으로 보여요. 거기에서 만난 왜인 기무라(木村)가 그렇게 말했거든요금년 115일경에 다시 방문하면 왜국의 은괴를 살 수가 있다고 내게 말했어요. 그리고… “.

두사람의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허직장이 부연한다; “기무라에게 돈을 넉넉하게 집어주었더니 그는 왜국에서 은괴를 싣고서 선박이 111일과 3일 사이에 절영도에 들어온다고 내게 말했어요;

 그러니 우리는 그때 밀수현장을 덮쳐서 놈들을 삽시간에 전부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무관 강천무와 다모 최선미가 잠시 생각을 한다. 역시 먼저 입을 연 자가 강무관이다; “직장 나으리, 그런데 우리 한성부의 병사로는 그 먼 곳 동래까지 파견나가 밀수꾼을 소탕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동래부사의 협조를 얻어서 그의 군사를 지원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추진하실 생각입니까?... “.

허직장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그렇지요.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금위영(禁衛營)홍재덕(洪在德) 종사관과 합동작전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홍종사관은 금위영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지금은 왕비 마마의 당숙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서면 동래부사가 적극 협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허굉필이 덧붙이고 있다; “금년 11월초의 검거작전은 무엇보다도 비밀유지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나의 생각으로는 여기 한양에서는 최소의 관계자만 정보를 공유하고 움직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10월 하순에 우리 3인과 금위영의 홍종사관 정도만 동래로 이동하는 것으로 할까 합니다!... “.

허직장의 설명에 두사람은 이의가 없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다음날 허굉필은 최다모를 별실로 부른다. 그리고 긴히 그녀에게 말한다; “최다모는 금년에 나이가 22세인 것으로 내가 알고 있어요. 나이로 보면 벌써 혼인을 하고도 남을 터인데 어떻게 혼담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이요?... “.

의외의 질문을 받아서 그런지 순간 여장부인 최다모의 얼굴이 붉어진다. 역시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허굉필이 유심히 그녀의 표정변화를 읽고 있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비록 다모로 일하고 있지만 신분이 관비입니다. 관에 매인 노비가 어떻게 평민처럼 결혼을 생각할 수가 있겠어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말한다; “최다모의 신상에 대해서는 3년간 내가 상관으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조금 파악하고 있어요. 외조부가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서 돌아가시고 모친이 처녀로서 관비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다행하게도 모친이 지방수령인 부친을 만났지만 관비의 신세를 면한 것은 아니더군요… “.

그녀에게 가슴이 아픈 이야기인지라 허굉필이 아주 나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최다모가 아무 말이 없이 묵묵하게 듣고 만 있다. 따라서 그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서 진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그 내용이 우선 다음과 같다; “그렇지만 부친이 그대를 한성부에서 다모로 일할 수 있도록 일찍이 스승을 붙여서 학문과 무예를 가르쳐준 것으로 저는 듣고 있어요. 그런데 그러한 속사정을 파악하게 되자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것은… “.

참으로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제안을 허굉필최선미에게 하고 있다; “그대만 괜찮다고 하면 나는 앞으로 최다모가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방도를 한번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대는 나와 함께 살아갈 생각이 있습니까? 솔직하게 진심을 말해주면 고맙겠어요. 나는 그대만 좋다면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요!... “.

그 말을 듣자 최다모의 눈이 엄청 커지고 있다. 너무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장부인 그녀이지만 그 신분이 관비이다. 그런데 양반이며 뛰어난 문관인 허직장이 자신의 체면을 돌보지 아니하고 신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허굉필의 이야기가 최다모 자신을 얻기 위한 단순한 사탕발림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허직장의 내심을 깊이 파악하고자 하는 최다모의 두 눈이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듯이 응시하고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나더니 최다모가 후유숨을 쉬고서 조용히 말한다; “제가 보기에 나으리는 진심이시군요. 23세의 유능한 직장 나으리께서 어째서 아직도 결혼하지 아니하고 계시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더니 저를 마음에 두고 계셨군요. 그런데 저는 신분이 관비이므로 사대부인 당신의 부인이 될 수가 없어요. 직장 나으리는 어떠한 복안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내가 최다모를 여인으로 좋아하는 것만큼 최선미도 나 허굉필을 남편감으로 마음에 품을 수가 있는지를 먼저 물었어요? 그것부터 대답해주세요”. 그 말에 최선미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한다; “언감생심이지만 저는 그것을 바라고 있어요!... “.

최선미의 결심을 듣자 허굉필이 자신의 계획을 말한다; “나는 두가지 단계로 그 일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빨리 이곳 한성부에서 진급하여 종6품 주부가 되면 외직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대 최다모를 내가 지방 관아로 데리고 나가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면 함께 생활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두번째는“.

최선미가 그의 놀라운 이야기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 허굉필의 말이 계속 들려온다; “당신의 신분을 회복할 수 있는 복안이 내게 있어요. 하지만 당장은 안되고 시기를 기다려야 해요. 그것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끝내는 것과 궤적을 같이하고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내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 생각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눈을 빛내면서 조용히 묻는다; “혹시 저의 신분을 양반으로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가능한가요?... “. 허굉필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서 정확하게 대답한다; “가능하고 말고요. 내가 가진 증거를 들이댄다고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당신은 본래의 신분을 되찾을 수가 있지요!“.

그날의 대화가 있은 후에 허굉필최선미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다. 서로 합방만 하지 아니했다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벌써 서로가 평생의 배필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며칠 후에 허굉필이 둘만이 있는 시간에 자신이 동래를 다녀온 이야기를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의 말을 듣자 최선미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우리가 11월초에 밀수현장을 덮치게 되면 분명히 엄청난 은괴와 조선의 철전을 얻게 되겠군요. 그것들이 조정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요. 그렇지요?... “. 허굉필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과연 그녀는 허굉필에게 어떠한 제안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