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9. 14:0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5(손진길 소설)

 

일명 장필우의 정탐록에는 쌍문점(雙聞店)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두목 무영 남매의 출신성분과 부두목에 대한 정보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어떠한 불법사업을 통하여 큰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허굉필의 눈에 들어오고 있는 중요한 정보가 하나 더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왜국과의 밀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아니하다. 내가 아직 그들의 신임을 그만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만은 파악했다. 그것은 작년 5월과 11월에 왜국에서 무영 일당이 불법으로 은괴와 조선의 철전을 주조하여 들여왔다는 것이다. 물론 금년 5월에도 밀수가 이루어졌다. 한해에 2차례나 대량 밀수하고 있으므로 하루 빨리 조정에서 이를 근절시켜야 한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허굉필이 깊은 생각에 빠지고 있다. 잠시후에 그가 눈을 뜨고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금년 184711월에도 무영 일당이 왜국에서 은괴와 조선의 철전을 들여올 것이다. 그 현장을 급습하여 전원 소탕해야 한다. 그런데 그 교역의 장소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어떻게 하면 사전에 그 장소를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이 당면 과제이구나!... “;

그때부터 허굉필은 한성부와 포도청 그리고 의금부의 서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혹시 과거 왜국과의 밀수가 이루어진 장소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수사자료가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이 되기까지 무려 2달 동안 끈질기게 모든 수사자료를 찾아보면서 그 정보를 얻고자 진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그 일을 추진하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그런데 8월 중순이 되자 의금부의 서고 깊숙한 곳에서 뜻밖에 놀라운 정보가 실리어 있는 수사자료를 한권 발견한다. 그것은 경상감영에서 순조시대에 의뢰한 건에 대하여 의금부가 수사한 내용이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동래부사가 경상감사인 본인에게 비밀리에 보고하기를 절영도(絶影島)에서 왜국과의 밀수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현장을 급습하여 일망타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밀수꾼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밀수한 은괴를 한양에 유통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 호조의 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본관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 인적사항을 비공개로 통보하니 의금부에서는 내밀하게 수사하여 주시기 바란다”.

20년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밀수의 장소가 동래에서 가까운 절영도라고 하는 대목이 이채롭다. 허직장은 고향이 김해이므로 그 지역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알고 있는 편이다. 그가 생각할 때에 육지에서 약간 떨어져 있으며 인적이 드문 절영도 섬이라고 하면 충분히 왜국과의 밀수가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가 있다;

특히 절영도는 일기가 좋으면 대마도(對馬島)가 멀리 보이는 곳이다. 밤새 노를 저으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니 배로 밀수품을 실어 나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판단한 허직장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고향을 한번 다녀와야 한다는 핑계로 한성부에서 한달동안 휴가를 얻어낸다.

허굉필이 말을 타고 번개같이 경상도 방향으로 달린다. 그는 절영도에 가서 현지실태를 한번 면밀하게 조사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동래에 들리자 가장 먼저 향하고 있는 곳은 왜국에서 수입한 은괴를 팔고 있는 점포이다.

김해에서 나고 자란 허굉필이기에 경상도 말이 익숙하다. 그 억양으로 그가 점포주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번에 집안의 논과 밭을 팔았어요. 한양으로 재산을 옮기고 싶은데 아무래도 은괴()를 사서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만큼 귀 점포에 은이 있을까요?... “;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주인장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보아하니, 고향이 이곳 동래가 아닌 모양입니다. 농촌 시골에서 전답을 처분하여 재산정리를 해보아야 그 값어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점포에 있는 은만 하더라도 시골부자의 재산에 비해 적어도 10배는 될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필요한 은괴의 개수나 말씀하시지요,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약간 바보스런 촌티를 내면서 말한다; “그 정도로 은을 많이 보관하고 계시는군요. 나는 고향 김해의 논 20마지기와 밭 10마지기를 전부 팔았어요. 그러니 적어도 은괴 60개의 값어치는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주인장… “.

그 말을 듣자 점포주인이 은근슬쩍 허굉필의 팔을 끌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그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주인장을 따라서 안채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때 주인장이 자기소개부터 한다; “나는 이곳에서 은괴장사를 한지가 벌써 10년이나 됩니다. 이름이 장만수(張萬壽)이지요. 그런데 귀하는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

주인장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으므로 허굉필도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급한 김에 미리 생각해둔 다른 이름으로 통성명을 한다; “저는 김해에서 온 김광수(金光洙)입니다. 이렇게 은을 많이 취급하고 있는 거상 장만수 어르신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말에 장만수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김광수 손님을 일부러 안채로 모신 것은 차제에 부탁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전답을 전부 정리하고 은으로 바꾸어 한양으로 가신다고 하시니 마침 잘 되었습니다, 허허허시골의 논 20마지기와 밭 10마지기를 팔고 전부 은으로 바꾼다고 하시니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고 있는 은괴 큰 것으로 환산하면 60개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

장만수가 정작 김광수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음과 같다; “상경하는 김에 추가로 은괴 120개를 맡길 터이니 그것을 한양 종로에 있는 쌍문점으로 좀 전해주십시오. 확실하게 전달되면 수고비로 은괴 2개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도중에 관아의 검색이 있게 되면 시골의 전답 90마지기를 전부 팔아서 상경하는 길이라고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좀 도와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안입니다만!… “.

김광수로 가장하고 있는 허굉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 답변한다; “잘 알겠습니다. 크게 어렵지 않는 부탁이군요. 게다가 은괴 2개를 수고비로 주겠다고 하시니 한번 그렇게 해보도록 하지요. 그러면 제가 열흘 후에 환()을 가지고 장만수 어르신의 점포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아무쪼록 말씀하신 은괴를 모두 운반하기 좋게 꾸려 놓아 주십시요!”;

장만수와 헤어진 허굉필거제도(巨濟島)에서 큰 멸치어장을 경영하고 있는 선주(船主)당숙(堂叔)을 찾아간다. 3년전에 과거에 급제한 당질 허굉필이 찾아오자 당숙 허영도(許英道)가 그렇게 좋아한다. 당숙모에게도 절을 올린 다음에 사랑방에서 허굉필이 긴히 당숙에게 부탁한다.

다짜고짜 허굉필이 부탁하는 말이 다음과 같다; “제게 시골 전답 30마지기에 해당하는 ()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열흘 후에 제가 그것을 은괴 60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서로 값이 맞을 것이니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그렇게 편의를 좀 보아주십시오. 제가 그 환이 꼭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

당숙 허영도가 한참동안 당질 허굉필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천하의 귀재인 자네가 이 당숙에게 일부러 부탁하는 일이다. 그 청을 내가 들어주게 되니 내 마음이 기쁘구나. 우리 허씨 집안의 기대가 당질에게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겠지? 그 점만 명심하고 있으면 된다. 굉필이 네가 말한 그 환은 5일 안으로 내가 준비해 놓을 것이니 그때 들려서 가져가도록 해라!... “.

참으로 시원한 대답이다.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넙죽 당숙에게 절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허영도가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굉필이 너는 딸만 있고 아들이 없는 이 당숙에게 있어서는 마치 아들과 같다. 그 점을 네가 알고 있으면 나는 정말 기쁘겠구나,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당숙은 제게 있어서 아버지의 4촌 형님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시지요. 그러니 이렇게 무리한 일도 일부러 찾아와서 부탁을 다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허굉필이 어디 가서 이런 엄청난 부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

당숙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고나서 허굉필은 시간을 아껴서 동래로 다시 간다. 그는 배를 빌려 타고서 절영도에 들린다. 말을 키우고 있는 섬이므로 사람이 별로 살지 아니하고 있다. 육지에 아주 가까운 섬이지만 동래사람들이 그곳에 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그 대신에 왜인(倭人)들이 촌락을 이루어 그 섬에 살고 있다. 왜국에서 건너온 그들이 어째서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조선에서 왜국으로 가고 오는 물건을 배에 싣고서 운반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라고 하면 동래에서 영업하는 것이 더욱 편리할 터인데 그리하지 아니하고 왜인들이 구태여 절영도 한쪽에서 집단으로 모여서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인들이 쳐들어오면 얼른 도망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선인들을 두려워하면서 멀찍이 살아가고 있는 왜인들인 것이다;

그와 같은 실태를 허굉필이 관심있게 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속으로 생각한다; ‘이들이 분명히 조선과 왜국 사이의 밀무역에 개입하고 있다. 그들의 눈을 속이고서 절영도에서 밀수를 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 가운데 누구와 접촉하여 무영일당의 밀수 건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을 것인가?... ‘.

일단 허굉필은 동래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돈을 주고서 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 그리고 다시 절영도에 들어온다. 그에게 통역을 부탁하고서 그 섬에 살고 있는 젊은이를 한사람 찾아서 데리고 온다.

그리고 다짜고짜 통역을 통하여 질문한다; “나는 은괴가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은이 너무 비싸다. 어떻게 하면 왜국의 은을 좀 구할 수가 있는가? 알려달라. 내가 사례금을 두둑하게 주겠다!... “.

왜인 젊은이가 머리를 긁적이고만 있다. 그것을 보고서 얼른 허굉필이 조선돈을 제법 그 자에게 쥐어 준다. 적지 아니한 사례금이다. 그때서야 통역을 통하여 그 젊은이의 말이 들려온다; “내가 간직하고 있던 은괴를 이미 전부 처분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11월 초순에 다시 많은 은괴를 가지고 있을 수가 있어요. 그때 나를 찾아오면 되지요!...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은 그것이 중요한 정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따라서 즉시 물어본다; “11월초라고 하면 언제를 말하는가? 며칠이 지나야 되는지를 확실하게 말해주면 내가 틀림없이 이곳에 들릴 것이다. 좀 말해줄 수가 없겠는가?... “.

그 말에 그 젊은이가 말하다; “배가 111일에서 3일 사이에 들어오니까 빨라도 5일이 되어야 내가 은괴를 만질 수가 있다. 그러니 5일에 오면 된다. 그 이전에는 은괴가 없다!... “.

더 이상 얻을 정보는 없다. 허굉필은 그 젊은이의 이름이 기무라’(木村)라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115일날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철석같이 약속한다. 동래로 돌아오면서 허굉필은 수고한 통역에게도 추가로 넉넉하게 사례비를 준다. 그는 이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