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3. 06:3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2(손진길 소설)

 

허굉필이 호판의 집사인 김호길을 처음 만난 시기가 18473월 초순이다. 그날 저녁에 호판 김형술의 아들인 김유진이 오래간만에 기방으로 허굉필을 불러내었다;

 그 자리에서 김유진은 자신이 일계급 승진하여 이제는 정7품인 박사가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친구를 한사람 허굉필에게 소개한다.

술을 제법 마셨는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김유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굉필 아우, 내가 오늘 진급하여 이제는 박사가 되었어. 그래서 여기 내 벗 홍재덕(洪在德)이 축하한다고 한잔 사는 거야. 그런데 나는 문득 아우 생각이 나지 뭐야. 그래서 자네를 여기로 부른 거야. 두사람은 오늘 처음보지! 내가 소개를 하겠네. 그러니까 “.  

그 사이에 허굉필이 얼른 말한다; “유진이 형, 축하해요. 이제는 박사 나으리라고 불러야 하겠네요. 그리고 홍재덕 나으리,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한성부의 미관말직인 허굉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 말을 듣자 홍재덕이 미소를 띠면서 말한다; “홍재덕이라고 합니다. 금위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벗인 김박사로부터 평소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두사람의 인사말을 듣고 있던 김유진이 크게 웃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벌써 서로 인사들을 하고 있구만. 그건 무효야, 무효. 이제부터 내가 정식으로 두사람에 대하여 소개를 해주겠네. 잘 들어들 보시라고, 하하하… “.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김유진이 계속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 여기 내 벗 홍재덕은 지금 한양에서 모두들 애써 사귀고자 하는 인물이야. 왜냐하면, 3년전에 금상의 새 왕비가 되신 남양 홍씨 가문의 실세이기 때문이지. 왕비의 당숙이니 그 위세가 대단한 것이지,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굉필홍재덕의 얼굴을 다시 본다. 그의 귀에 김유진의 음성이 계속 들려온다; “나와 죽마고우이지만 사실은 나보다 나이가 한살이 많아요. 그리고 무과에 합격하였는데 나보다 1년이 빠르다고. 진급도 빨라서 벌써 종사관이야. 지금은 한양을 지키는 금위영의 순라군을 지휘하고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속으로 생각한다; ‘한양 출신이고 일찍 무과에 합격하여 궁궐과 한양을 지키는 금위영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군. 국왕의 처족이 되기에 출세가 빠른 것이야. 26세에 종6품 종사관이라고 하면 그 위세가 실로 대단하군. 게다가 순라군을 지휘하고 있다고 하니 한양의 밤을 통제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야!... ‘;

홍재덕은 술이 취해 있는 김유진의 말을 그냥 듣고 있다. 드디어 김박사가 허굉필에 대하여 홍재덕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재덕이 형, 허직장은 말이지 3년전 문과에서 차석을 한 수재야. 2년전부터 한성부에서 야경담당 봉사로 근무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작년에 인심매매범을 일망타진하여 일약 직장 벼슬을 얻었어요. 이렇게 유능한 아우님과 형님이 모두 나의 벗들이니 나는 한양의 밤이 조금도 두렵지가 않아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홍재덕김유진에게 한마디를 한다; “그 말은 허직장을 불러내기 전에 벌써 내게 설명한 말이 아닌가? 이 친구 오늘 아주 취했구만, 그래. 다음달이면 새 신랑이 될 사람이 이렇게 취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는가?... 내가 집으로 데려다 주어야 할까 보다!... “.

그 말에 허직장이 깜짝 놀라서 홍 종사관에게 묻는다; “아니, 종사관님. 유진이 형이 다음달에 결혼을 합니까? 신부가 누구인데요?... “. 홍재덕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나도 오늘 처음으로 그 소식을 들었어요. 신임 예판 최대감의 따님이랍니다. 호판과 예판이 서로 사돈이 되게 생겼으니 축하를 해야지요, 하하하“.

허굉필향옥 낭자가 신부인 것을 금방 깨닫는다. 두 집안 사이에 작년부터 혼담이 있더니 드디어 성사가 된 것이다. 허직장은 축하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방문을 열고 기녀가 들어서더니 김박사에게 말을 전한다; “박사 나으리, 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

그 말을 듣자 김유진이 술이 확 깨는지 금방 대답한다; “그래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 방안으로 중년의 사내가 들어온다. 서생으로 보이는데 녹록하지 아니한 인상이다. 그를 보자 김유진이 말한다; “집사 어른, 여기까지 나를 찾아오신 것을 보니 아버지가 내게 직접 하실 말씀이 이 밤에 있는 모양입니다. 이왕 오신 김에 한잔 하시고 저와 함께 들어가시지요!... “;

그 말을 하면서 김유진이 술을 한잔 집사어른에게 권한다. 그 자가 거절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술잔을 비운다. 그리고 말한다; “무슨 중요한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서방님,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시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유진이 좌중을 둘러보고서 웃으며 말한다; “이 분이 저의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는 집사 나으리 김호길 어른입니다. 제게는 친척 형님이 되시지요. 앞으로 두 분은 저를 본 듯이 집사 나으리를 잘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그 말을 듣자 김호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다; “제가 김호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냥 있을 수가 없다. 허굉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호길 집사를 보고서 인사를 한다; “저는 허굉필입니다. 김박사님보다 한살이 적습니다. 집사 어른 잘 부탁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홍재덕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집사를 보면서 인사를 한다; “동네에서 더러 뵌 적이 있지만 오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홍재덕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받고 보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집사가 반색을 하면서 말한다; “, 왕비 마마의 가까운 친정 어르신이군요. 이거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허굉필이 속으로 생각한다; ‘왕비의 친정 당숙이라. 그것이 대단한 신분이군. 조정의 실세인 호판을 모시고 있는 집사어른이 저렇게 겸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

그날 밤 그렇게 수인사가 있어서 그런지 한달이 지나 4월 보름에 두 집안 사이의 혼사에 가서 허굉필김호길 집사를 만난 김에 깍듯하게 인사를 했더니 그가 그렇게 반가워한다;

 김유진으로부터 허직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허굉필이 그날 은근슬쩍 제안한다; “집사어른, 다음에 제가 한번 모시겠습니다. 별도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김호길은 그 말을 듣고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아이구, 이거 허직장 나으리께서 저를 대접하겠다고 하시니 감지덕지입니다. 연락을 주시면 제가 기쁜 마음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허허허… “.

18475월초 허굉필은 마침 비번이 되자 그날 일찍 김호길 집사에게 종로의 기방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취한다. 저녁시간에 김호길이 정확하게 참석한다. 그날 허굉필은 작심을 한 듯이 김집사에게 좋은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대접한다.

사전에 기생에게 김집사를 취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런지 그 기생이 김호길의 술잔을 계속 채워주고 있다. 김호길이 참으로 기분 좋게 취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자신도 술에 취한듯이 자꾸만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리고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김집사에게 물어본다; “집사어른께서는 호판 대감의 심복이시니 모르는 것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운종가에 나서면 모두가 절을 하겠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직무를 맡고 계신 분이시지요! 그렇지만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도 있겠습니다. 그런 놈이 있으면 제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김집사가 기분이 좋아서 허허라고 웃다가 갑자기 안색을 구기면서 술김에 말한다; “그렇지요. 모두가 내 앞에서 굽실굽실하지요. 내가 호판의 심복인 것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주 괘씸한 녀석이 하나 있어요. 그 놈은 처음에는 마치 입의 혀같이 내게 살갑게 굴다가 3년전부터는 완전히 태도가 달라졌어요. 무영이 그 놈은 이제 마치 나의 상전처럼 굴고 있다니까요! 아주 괘씸한 놈이지요… “.

그 말에 허직장이 기지를 발휘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 참,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요. 젊은 놈 같은데 중년의 연장자이신 집사어른에게 버릇없이 굴다니요. 아주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물인 줄 아는가 봅니다! 어쨌든 그 놈이 그래도 힘 깨나 쓰는 모양이지요?... “.

허직장의 유도 질문에 김집사가 그만 걸려들고 있다. 그래서 취중에 진실이 드러난다; “하기야 무영 그 놈이 한양의 밤거리에서는 강자이지요. 그래보아야 우리 대감의 사냥개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내게 잘 보여야 제 놈이 계속 대감의 신임을 받게 될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설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하하하… “;

결국에는 김집사가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면서 통쾌하게 웃고 있다. 그날 밤 허굉필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사적으로 돈을 많이 썼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자 허직장이 정기적으로 강무관 및 최다모와 회의를 가지는 석상에서 슬쩍 무영이란 친구가 3년전부터 한양의 밤거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러자 강천무가 먼저 말한다; “, 3년전부터 한양의 밤거리에서 야왕’(夜王)으로 불리고 있는 강자가 한사람 있지요. 그 자를 혹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

별호만 알 뿐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최다모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3년전부터 한양의 밤에 강자로 군림한 자는 야왕한사람 뿐입니다. 그러니 본명이야 무엇이든 그 인물이 틀림없어요. 그 야왕을 만나자면 종로 뒷골몰에 있는 쌍문점을 찾아야 합니다. 혹시 직장 나으리께서 그자에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

그 말을 듣자 허직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자신의 말을 시작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