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31. 04:0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0(손진길 소설)

 

호조판서 김형술 대감이 자신의 저택 사랑방에서 두사람의 심복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사람은 주용필 상단에서 행수로 일하고 있는 우대용(禹大容)이다. 또 한사람은 그 상단에서 호위무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조상철(趙相哲) 대장이다.

얼추 중요한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김 대감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 언급을 한다; “내가 주용필 대행수를 새로운 대방으로 삼고 죽은 오칠성 대방의 상단을 맡도록 조치를 했지만 그가 앞으로 상단을 어떻게 꾸려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므로 우행수가 주대방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예의 주시하고 이상한 조짐이 있으면 내게 곧바로 보고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

그 말을 듣자 우행수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한다; “대감께서 분부하신 내용을 명심하고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호판이 상단의 호위대장 조상철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말한다; “조대장은  앞으로 내 지시가 있으면 언제라도 호위무사를 지휘하여 나의 특명을 차질없이 수행하도록 하세요. 그 뒤는 내가 확실하게 책임을 져줄 것이요! 이상”.

두사람이 절을 하고 사랑방을 나선다. 조금 지나자 호판이 집에서 자신의 명을 집행하는 집사 김호길(金好吉)을 방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김집사는 쌍문점에 가서 무영(無影)에게 내 말을 전하라. 해시(亥時)가 시작되면 곧바로 나를 찾아오라고!”.

김집사가 급히 대문을 나선다. 그는 운종가(雲從街)를 따라가다가 중간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든다. 저 멀리 파란 등불이 대문을 비추고 있는 집이 하나 있다;

 그 집의 대문위에 쌍문점’(雙聞店)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것은 세간의 정보를 팔고사는 점포라는 의미이다. 김집사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건장한 장정이 다가온다.

그 자가 집사 김호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씨익 웃고서 안으로 안내한다. 그 저택의 사랑채 가운데 하나로 들어서자 얼굴의 절반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자가 쉰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김집사 어서 오시요. 몇 시에 내가 대감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요?... “;

김호길은 무영의 그 탁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전 호판 대감의 명령을 전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오늘 밤 해시가 시작되면 정확하게 대감 댁 사랑방으로 찾아오라고 지시하셨어요. 그러면 그때 뵙지요… “.

무영은 그 말을 들었지만 약간 고개를 끄떡거릴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자 김호길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 집을 나선다. 그렇지만 아니꼬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골목길에서 인상이 구겨지고 있다.

종래에는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무영 이놈, 우리 대감 덕분에 자기가 한양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제는 거만하기가 이를 데가 없구만. 내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줄을 모르고 있으니 말이야때가 되면 내가 네놈의 버르장머리를  한번 고쳐 놓고 말 것이야!... “. 

김집사가 무영을 아니꼽게 여기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연유가 있다. 김호길은 본래 안동 김씨이며 호판 김 대감의 일가붙이이다. 그런데 학문이 부족하여 도저히 과거에 합격할 수가 없다. 그것을 보고서 족질(族姪)이 되는 그를 호판이 가까이 곁에 두고서 집사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심덕 하나는 쓸만하다. 따라서 집사로 부리고 있는 지가 벌써 10년이 넘고 있다. 그런데 무영이라고 하는 시골 왈패 출신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성도 없는 천민출신이다. 그렇지만 정보를 염탐하고 왈패들을 모아 험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한 근본도 없는 녀석을 호판이 가까이 두고서 나름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 세월이 벌써 5년이나 된다. 처음 2년 동안은 무영이 집사 김호길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선물공세도 하고 마치 형님을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그러나 3년째가 되자 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이제는 마치 자신이 한양의 밤을 지배하고 있는 강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무영은 몸이 빠를 뿐만 아니라 완력과 검술실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실제로 수년 동안 한양의 밤거리에서 강자들과 겨루어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 따라서 그가 얻고 있는 별호가 야왕(夜王)이다.

그러한 위치에까지 도달한 인물이 무영이기에 김호길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호판 대감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김집사의 눈에는 상당히 거슬리고 있다. 적어도 낮시간대에 육의전(六矣廛)이 있는 운종가에 나서게 되면 김집사의 위세가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더러운 일을 자신을 대신하여 처리해줄 인사로는 입이 무겁고 실력이 좋은 무영이 적임자인 것이다. 금년에도 오칠성 대방과 그의 딸 오찬미 행수를 해치우는데 있어서 무영과 그의 부하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날 밤 해시에 사랑방을 방문한 무영에게 호판 김형술 대감이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무영, 네가 은밀하게 처리해줄 일이 하나 있다. 예조판서 심덕구(沈德求)를 미행하다가 아무도 보는 눈이 없을 때에 그의 목숨을 거두도록 하라. 결코 무영 너의 정체가 탄로나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엄청난 내용의 지시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영은 검은 복면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저 그 탁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얼마에 그의 목숨을 사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대감이 씨익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영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상금이 주어질 것이다. 그런데 예판 역시 수하가 많은 인물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감쪽같이 그를 처리할 수가 있겠는가?... “.

그 말에 조금 생각을 하다가 무영이 신중하게 대답한다; “그렇지요. 예판 심대감은 젊은 주상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혜비(惠妃)의 부친이고 나름대로 조정에서 하나의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영수이니까요;

 그렇지만 낮이 아니고 밤이라고 하면 그를 해치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대감께서는 그 대가를 두둑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호판 김대감은 무영이 마음에 든다. 무영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5년간 무영을 불러서 내밀하게 온갖 일을 시켜보았지만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생각보다 더 나은 고급정보를 물어오고 정적을 제거하는데 있어서도 그 일처리가 아주 깔끔하다.

그래서 호판 김형술은 조정에서 가장 세력이 큰 안동 김씨 파벌에서 손꼽히는 실세의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파벌의 재정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적을 해치우는데 있어서 앞장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술은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안동 김씨 세력에게 도전할 만한 인물이라고 하면 조정의 대신이거나 왕족이거나 가리지 않고 모조리 해치우고 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호판이기에 조정에서 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호판 김대감의 위세가 모두 무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파벌에서도 무영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호판은 무영을 자신의 칼로 사용하면서도 그 정체를 결코 노출시키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호판의 집사인 김호길이다. 김집사는 상전인 호판의 명령을 무영에게 전달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무영의 전력과 존재를 나름대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1847년 조선의 헌종 13년 봄부터 은근히 김호길에게 접근하고 있는 인물이 한사람 있다. 그가 바로 한성부의 야경담당인 직장 벼슬의 허굉필이다. 허직장이 어째서 김집사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