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27. 18:33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8(손진길 소설)

 

4. 불태워지는 치부책과 살아남는 치부책

 

한성부에서는 장종사관과 허봉사가 연일 오대방 상단의 무역선에서 체포하여 온 대행수 한사람과 두명의 행수를 포함하여 상단의 일꾼 60명 및 호위무사 120명을 취조하느라고 바쁘다;

 그리고 최다모는 그 배에서 구출해온 20명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납치를 당한 배경과 과정 그 집안의 배경까지 면밀하게 조사하느라고 바쁘다.

기타 한성부의 부서에서는 부상을 당한 병사들과 상단의 일꾼 및 호위무사들을 치료하는 한편 죽은 자들을 가족들에게 인도하여 장례를 치르기에 분주하다. 200명에 이르는 인신매매범 일당을 토벌하였기에 그 뒷처리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3일간 그 일에 정신없이 매어 달렸던 봉사 허굉필은 시간을 내어 강천무 별장 및 최선미 다모를 별실로 불러내어 함께 회의를 한다. 먼저 허봉사가 두사람에게 말한다; “어느 정도 보완조사하고 취조한 성과가 있나요?... “.

그 자리에서 최다모가 다음과 같이 먼저 보고한다; “저는 20명의 처녀들을 전부 불러서 참고인조사를 실시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양반가문의 딸들과 잘사는 중인가문의 딸들입니다. 한마디로 학식도 있고 규수로서의 예절도 잘 배운 양질의 처녀들이지요. 그들이 하나같이 청나라로 끌려가서 인신매매를 당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허봉사가 말한다; “그렇군요. 그렇게 교육수준이 높은 좋은 처녀들을 청나라에 강제로 데리고 가서 아주 좋은 값을 받고 명망가와 부자들에게 팔았겠군요. 그 수익이 대단했겠습니다. 저는 그 점과 관련하여 잡혀온 대행수와 행수들에게 그 수익에 대하여 질문했더니 실로 놀라운 대답을 들었지요. 한마디로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고 해요. 죽일 놈들!... “.

그 다음에는 강별장이 보고한다; “제가 얻은 깊숙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인신매매단 토벌과 관련하여 지금 조정에서는 두가지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고 해요. 하나는, 오대방 상단의 재산을 전부 몰수하고 그 뒤를 보아준 조정의 배후를 모두 색출하여 차제에 확실하게 처벌하여야 한다는 의견이지요. 또 하나는, 호판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의견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것은… “;

강별장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천천히 설명한다; “일단 재산을 몰수하되 호조에서 새로운 대방을 실무자로 세워서 상단을 예전처럼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더구나 확실하게 조정대신 가운데 배후가 밝혀지지 아니하면 더 이상 문제를 확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지요. 그 이유가 정치적 안정과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

그 말을 듣자 허봉사와 최다모는 이해가 확실하게 되지 아니하여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지만 조정대신들이 논의하고 있는 국사에 대하여 함부로 평을 하거나 사견을 제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일단 입들을 다물고 있다.

610일이 되자 한성판윤 김윤갑 대감이 조사결과서를 가지고 의정부에 들어가서 3정승을 만난다. 상세하게 조사결과를 보고하였더니 3정승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호판의 실무적인 판단이 충분한 현실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니 판윤 대감은 이제 범인들을 전원 포도청에 넘기도록 하세요. 혹시 조정에서 그 뒷배를 보아준 자가 있는지는 우리 정승들이 의금부를 통하여 계속 조사할 것입니다!... “.

김윤갑 대감으로서는 홀가분하다. 따라서 그렇게 처리를 하도록 한성부에 돌아와서 수하들에게 지시한다. 그 명령을 듣고서 장인식 종사관과 허굉필 봉사는 군말없이 그대로 집행을 한다.

그렇지만 허봉사는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역시 실세인 호판을 비롯한 안동 김씨 세력이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구만! 3정승이 의금부를 통하여 계속 조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면피용일 따름이야. 벌써 이 사건을 축소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뒷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야! 그것참, 대단한 실세 파벌이야, 허허허“.

그동안 분주했던 인물이 사실은 호조판서 김형술 대감이다. 그는 한성부의 교리 심원익을 호판의 집무실로 정기적으로 불러서 인신매매범 일당에 대한 수사결과를 계속 파악한다;

 심교리는 한성판윤 김윤갑 대감을 직접 모시고 있지만 안동 김씨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호판 김형술 대감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다. 그만큼 그는 권력의 줄을 잘 타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김형술 대감은 3정승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처리방안을 강하게 밀어 부치고 있다; “오대방 상단의 재산을 몰수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대방을 임명하여 그 상단을 잘 운영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입니다. 그리고 정재계의 유착이라고 계속 몰아가면 안됩니다. 정치적 안정과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태평성대를 이루는 길입니다!... “.

3정승이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김형술 대감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이 조정의 실세인 안동 김씨가 꿈꾸고 있는 태평성대이지만 그에 대하여 토를 달 수는 없다. 따라서 호판 김형술 대감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대방으로 주용필(周容泌) ()행수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3정승의 사전승인을 받자 호판은 자신의 집으로 오대방 상단에서 대행수로 일하고 있던 주용필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엄명한다; “내가 자네를 이번 기회에 오대방 상단의 대방으로 승진시키고자 한다. 네가 할 일이 두가지이다; 첫째, 인신매매사업을 제외하고 모든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여 이익을 남겨서 나에게 가지고 와야 한다. 둘째, 전임대방 오칠성이 내게 말한 그 치부책을 찾아서 반드시 내게 가지고 와야만 한다!”;

대행수 주용필은 상단의 새로운 주인 주대방이 된다. 그는 당장 호위무사를 이끌고 안가 두 곳을 샅샅이 수색한다. 종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제일 안가에서는 그 치부책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두번째 안가를 수색하다가 우연히 지하로 연결이 된 통로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치부책을 발견한 것이다.

새로운 대방 주용필이 그 치부책을 김형술 대감에게 바치자 그때부터 그가 크게 호판의 신임을 얻게 된다. 든든한 뒷배를 얻게 된 주대방의 전성시대가 운종가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치부책의 내용을 면밀하게 살핀 호판 김형술은 그 내용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필사하고 난 후에 원본을 불태워버린다.

그가 필사한 내용은 자신의 파벌이 아니라 다른 파벌에 관한 뇌물의 내용들이다. 그것을 그는 정치적인 비밀무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을 그렇게 틀어쥐고 있으면 정치적으로 다른 파벌을 효과적을 통제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호판 김형술 대감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생전에 대방 오칠성이 똑똑한 자신의 막내딸인 행수 오찬미에게 지시하여 치부책을 또 하나 필사하여 만들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죽어가는 오찬미 행수에게서 봉사 허굉필이 얻은 바가 있다;

그것을 일체 외부에 공개하지 아니한 채 허굉필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당장 이 치부책을 조정에 내놓을 일이 아니다. 정재계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 목숨도 위험해진다. 그것보다는 아주 효과적으로 훗날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때까지 내가 비밀리에 보관하는 것이 상수이다!... “.

22살에 불과한 신출내기 관료가 허굉필이다. 그러나 그는 아주 심지가 굳고 용의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꿈꾸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창출하기 위하여 그 치부책이 훗날 필요하다고 그는 판단하고 있다. 그때가 과연 언제인 것일까?...

그해 184610월이 되자 한해를 정리하기 전에 정기적인 인사가 한성부에서 이루어진다. 그때 놀랍게도 장인식 종사관과 허굉필 봉사 그리고 강천무 별장이 각각 2계급 승진을 한다. 6장인식 종사관이 단번에 종5품인 판관이 된다. 그가 바야흐로 한성부의 병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다;

그리고 종8품인 허굉필 봉사는 종7품인 직장에 올라선다. 이제 대과에서 장원을 하였다고 하는 종6품 주부까지는 2자리 진급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종9품인 무관 강천무 별장이 종8품인 부사명이 되고 있다.

다만 관비의 신분인 최선미 다모에 대해서는 진급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 대신에 물질적인 보상이 따르고 있다. 그녀에게 2년치에 해당하는 급료가 한꺼번에 포상금으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 돈으로 최다모는 얼른 한양 도성 바깥에 있는 논밭을 일부 사고 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재물을 묻어둘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어쩐 일인지 젊은 선비 허굉필이 은근히 웃고 있다.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