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7. 27. 10:4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손진길 소설)

 

184661일 새벽에 마포 나루터에서 발생한 한성부 병사들과 오대방 상단 일꾼 및 호위무사와의 일전은 아침이 되자 끝나게 된다. 그날 상단의 호위무사와 무장한 일꾼들 200명 정도가 그 좁은 상선 내에서 죽기 살기로 한성부 병사들과 혈투를 벌였지만 그 결과는 그들의 참패이다.

실제로 100명이 넘는 상단 호위무사들의 무예는 한성부 병사들보다 분명히 한 수 위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가 500명이나 되므로 도저히 중과부적인 것이다;

 더구나 나루터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상단 호위무사들의 가슴팍에 얼마나 정확하게 꽂히고 있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10여명의 호위무사들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장인식 종사관은 그날 나루터에서 강궁을 사용하여 화살을 계속 날리고 있는 허굉필 봉사의 모습을 인상깊게 보고 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는 크게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무관으로 10년이나 한성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신보다 문관인 허봉사의 활솜씨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병사를 지휘하면서 장종사관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재작년 대과에서 차석을 한 수재가 허봉사이다. 그는 분명히 문과시험을 치루었다. 그런데 어떻게 무과시험에 합격한 자들보다 더 뛰어난 명궁의 솜씨를 지니고 있는가?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만!... “.

그러나 허봉사가 날린 화살 덕분에 목숨을 구한 강별장과 최다모는 누가 강궁을 나루터에서 쏘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워낙 위급한 순간에 구함을 받았고 또한 적과의 혈투가 계속되었기에 나루터로 얼굴을 돌려서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인신매매범인 상단의 무리들이 모조리 소탕이 되었다. 그 수가 200명이나 된다. 장종사관이 별장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죽은 자의 시신을 별도로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먼저 포박하여 우마차를 이용하여 우선 한성부로 보낸다. 그리고… “;

 잠시 숨을 쉬고서 장종사관의 명령이 이어진다; “살아남은 적들을 모조리 결박하여 한성부 감옥으로 끌고가라. 무역선은 우금식(禹今植) 별장이 부하들과 함께 나루터에서 지키도록 하라. 그 배는 이 시간부터 한성부가 관리할 것이다! 또 한가지 강제로 끌려가고 있던 처녀들 20명은 강별장이 최다모와 함께 한성부 야경담당실로 데리고 가서 조서를 받도록 하세요”.

그 말을 하면서 장인식 종사관이 허굉필 봉사의 얼굴을 살핀다. 그러자 허봉사가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은 그렇게 강별장과 최다모에게 지시해도 좋다는 의사표시이다. 그것을 보고서 장종사관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마음에 드는 동생이 허봉사라는 뜻이다.

그와 같이 나루터에서 조치를 한 후에 한성부에 돌아와서 장종사관과 허봉사는 감옥에 갇힌 무리들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단의 무리들 및 한성부의 병사들 그리고 한성부에서 참고인조사를 받고 있는 처녀들을 일일이 점검한다. 그 다음에 그들은 판윤 대감을 모시고 있는 심원익 교리를 방문한다.

자세한 보고를 받자 심교리가 두사람에게 말한다; “참으로 큰 수고를 하셨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제가 먼저 판윤 대감에게 보고를 간략하게 드리고 오겠습니다”. 일다경(一茶頃,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임)도 지나지 아니하여 심교리가 대감의 집무실에서 걸어 나온다. 그는 장종사관과 허봉사를 데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회의용 탁자의 상석 자리에 앉아 있던 김윤갑 대감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만면에 미소를 띄고서 그들을 맞는다. 그리고 그 방을 벗어나려고 하는 심교리에게 말한다; “심교리, 비서실 다모에게 말하여 이 방에 차를 내오도록 하세요. 그리고 자네도 여기와서 합석하도록 해요. 내가 오늘 3사람에게 긴히 지시할 사항이 많아요!... “.

그 말을 듣자 허봉사가 속으로 혼자서 생각한다; ‘판윤 대감이 심교리까지 합석한 자리에서 지시사항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를 증인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야.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가 있기에 미리 자신의 뜻을 비서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이겠지!... ‘.

허봉사의 지레짐작이 맞다. 그날 마포 나루터에서의 경과를 끝까지 듣고나서 판윤 김 대감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주범인 오칠성 대방과 그의 딸인 행수 오찬미를 연행하여 취조하는 것이군요. 물론 오늘 잡아온 무리들도 주리를 틀어야 하고요. 그 일을 신속하게 장종사관과 허봉사가 병사를 데리고 가서 처리하세요. 나는 곧바로 의정부에 오늘의 일을 전부 보고할 것입니다”.

그런데 장종사관이 허봉사와 함께 병사 200명을 데리고 신속하게 운종가에 있는 오 대방의 큰 점포를 급습하지만 두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들은 종로 골목안에 있는 오 대방의 저택을 뒤졌지만 역시 오칠성 대방과 오찬미 행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날 아침에 대방 오칠성은 딸 오찬미와 함께 호조판서 김형술 대감을 은밀하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감은 아침 댓바람에 자신의 집으로 급히 찾아온 오 대방과 오 행수를 맞이하여 그들의 말을 듣기에 바쁘다.

아무도 보는 눈이 없음을 파악하고서 대방 오칠성김형술 판서에게 강압적으로 말한다; “호판 대감,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어요. 내가 목숨을 걸어 놓고 인신 매매까지 하여 청국에서 벌어온 돈을 대부분 호판을 통하여 정치자금으로 내놓았지요“.

오칠성이 낮은 음성으로 그러나 결단력이 실린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대감의 파벌은 나를 보호해주어야 해요. 그러하지 아니하면 나는 내가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는 치부책(置簿冊)을 온세상에 공개하고 말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내 말은 결코 엄포가 아닙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니까요!... “;

그 옆에서 그의 딸 오찬미 행수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고 있다. 그녀는 한때 호판의 며느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어쨌든 조정의 실세 파벌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선 살아남아야 뒷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두사람은 호판의 집을 나와서 자신들의 집으로 가지를 못한다. 오늘 자신들의 점포와 저택에 병사들이 밀어닥칠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사람은 미리 준비해 놓은 안가(安家)로 들어간다. 큰 장사를 하다가 보면 정객들과 어울리게 되고 정치자금이 뒷돈으로 들어가게 되면 때로는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러한 때를 대비하여 한양에 두 군데 안가를 별도로 두고 있다. 그 중에 비교적 운종가에 가까운 안가에 오 대방과 오 행수가 들어가서 몸을 은신하면서 조정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당일 한성부의 군사들이 자신들의 점포와 저택을 수색했다는 소식까지 듣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밤이다. 한밤중에 검은 복면을 하고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안가를 침입한 것이다. 안가를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들과 대판 결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침입자의 수가 너무 많다. 그것을 보고서 오 대방과 오 행수가 얼른 뒷담 쪽문으로 피신한다.

그들이 좁은 골목길을 채 벗어나기 전에 일단의 복면인들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이제는 꼼짝 없이 죽은 목숨이다. 두사람을 쭈욱 둘러싼 복면인 4명 가운데 한사람이 오 대방에게 말한다; “치부책을 내어놓으면 목숨을 살려주마. 빨리 내어놓아라!”.

그 말에 오대방이 급히 대답한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지 않다. 내가 치부책이 숨겨진 곳으로 안내하겠다. 그러니 나를 따라오너라!... “. 오 대방이 앞장을 서고 두사람의 복면인이 그 뒤를 따른다. 그 다음에 오 행수가 따르고 그 뒤를 나머지 두사람의 복면이 따르고 있다.

그들 6명이 골목길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다른 복면인 3명이 그들을 막아 선다. 그것을 보고서 오 대방을 감시하고 있던 두사람의 복면인이 칼로 오칠성의 가슴을 순식간에 베고 만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 두명의 복면인이 앞장을 서고 있는 행수 오찬미의 등을 역시 칼로 깊숙하게 벤다.

그것을 보고서 새로 나타난 복면인 3명 가운데 2명이 급히 4명의 복면인을 향하여 칼을 휘두른다;

 그 칼을 가볍게 막아내고서 복면인 4명이 골목안으로 도망하고 만다. 그때 나머지 복면인 한사람이 급하게 오 대방의 상태를 살핀다. 이미 절명하였다.

그 다음에는 오찬미 행수의 상처를 살핀다. 그때 오찬미가 품에서 힘겹게 책을 한권 끄집어 낸다. 그리고 말한다; “이 치부책을 온세상에 알려주세요. 우리만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요. 돈은 그들이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는데 어째서 우리 부녀가 죽어야 하나요? 참으로 억울해요“.

그 말을 끝으로 오찬미 행수마저 숨이 끊어지고 만다. 오 행수의 손에서 그 책을 급히 챙긴 복면인이 나머지 두사람에게 말한다; “내가 살펴보니 두사람이 모두 숨이 끊어졌어요. 우리도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겠어요. 빨리 서두르도록 합시다!... “.

골목 몇 개를 지나온 다음에 3사람이 복면을 벗는다. 그들의 정체가 허봉사와 강별장 그리고 최다모이다. 그 가운데 허봉사의 손에는 피가 좀 묻어 있다. 그가 오 대방과 오 행수의 상처를 살피다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것이다.

조심스럽게 허봉사는 자신의 품속을 손으로 더듬어본다. 그가 슬쩍 오 행수의 손에 있던 치부책을 자신의 품에 갈무리를 했는데 그 존재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조선의 조정에 다시금 피바람이 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허 봉사가 한성부에 출근하자 오전에 장 종사관이 그를 찾아온다. 그리고 은밀하게 말한다; “허 봉사, 간밤에 오 대방과 그의 딸 오 행수가 골목에서 칼을 맞아 절명했어요. 누가 그들을 해쳤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군요. 몸조심하세요. 그런데 허 봉사, 그대의 활솜씨는 가히 명궁의 경지이더군요. 그것참 부럽습니다, 허허허“.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웃으면서 장인식에게 대답한다; “무관으로 잔뼈가 굵은 형님에게 비하면 무예라고 내세울 것이 아니지요. 그저 과거준비를 할 때에 고향에서 심심풀이로 해본 활솜씨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제 몸 하나는 혼자서 지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한때 열심히 활시위를 당긴 것은 사실이지요, 하하하… “;

그 말에 장인식 종사관이 역시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자네가 궁술 뿐만 아니라 검술까지 익혔다고 하면 무과에도 급제를 하였을 것이야. 참으로 대단하이. 나는 문무를 겸비한 유능한 동생을 둔 셈이야, 하하하… “.

그날 오후부터 장인식 종사관과 허굉필 봉사는 한성부 감옥에서 한사람의 대행수와 두명의 행수를 끌어내어 취조를 시작한다. 그때 강별장이 허봉사에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한다; “봉사나리, 제가 접촉하였던 상단의 호위무사 오돌석이 그만 배에서 전투 중에 사망하고 말았어요. 참고하세요“.

허굉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그는 장인식 종사관과 함께 행수들을 취조한다. 과연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오 대방의 안가를 습격한 복면인들의 정체는 과연 누구일까? 또한 은밀하게 허봉사가 습득한 치부책은 장차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