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2. 02:4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1(손진길 소설)

 

허굉필 1846 6월초 안가에 숨어 있던 오대방과 그의 딸 오행수가 복면인들의 공격으로 무참하게 살해가 되는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다. 그가 강별장과 최다모와 함께 급히 복면을 하고서 달려갔지만 괴한들이 잽싸게 오대방과 오행수를 척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강별장과 최다모가 4명의 복면인을 공격하는 동안에 허굉필은 칼을 맞은 두사람의 상세를 살폈다. 불행하게도 현장에서 모두 절명하였다. 하지만 오행수는 죽기 전에 상단의 비밀장부인 ‘치부책’을 허굉필에게 맡긴 것이다. 

그때부터 허굉필은 은밀하게 치부책을 보관하면서 그 내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크게 보아 오대방이 뇌물을 건넨 상대방이 4곳이다. 그 내용을 분석하여 수재인 허굉필은 아예 머리속에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1)  첫째가 조정의 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안동 김씨의 재정 담당인 호판 김형술 대감이다. 그들 가문이 순조의 왕비와 헌종의 왕비를 내고 있다;

(2)  둘째가 역시 외척에 속하는 풍양 조씨 가운데 실세인 이판 조인영 대감이다. 지금의 주상인 헌종의 모친이 바로 풍양 조씨이며 그녀가 대비이다. 그리고 지금의 왕대비는 승하한 순조의 왕비로서 안동 김씨이다;

(3)  풍양 조씨는 지금의 주상인 헌종의 생모이기에 대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순조의 왕세자였던 그녀의 남편은 일찍 죽고 국왕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순조의 왕세손인 그녀의 아들이 국왕이 되자 그녀의 남편은 추존이 되어 익종이라고 불리고 있을 따름이다. 요컨대, 지금의 주상인 헌종은 조상인 영조와 정조와의 관계와 같이 자신의 조부인 순조의 뒤를 곧바로 계승한 왕세손인 것이다.

(4)  셋째가 나름대로 조정에서 하나의 파벌을 이끌고 있는 예판 심덕구 대감이다. 그의 파벌은 국왕의 외척이 세도를 부리고 있는 것을 나름대로 견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외척의 세도정치를 끝낼 수가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 그들의 화두인 것이다;

(5)  넷째가 특이하게도 다시 왕족이 된 남연군의 4남인 흥선군이다. 남연군은 본래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6대손이다. 그의 이름이 이채중(李采)이다. 유교사회인 조선에서는 왕자의 자손에게 주고 있는 ‘군’() 칭호가 3대에 한하도록 되어 있다. 왕자의 증손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면 고손자부터는 국록이 사라지고 그냥 전주 이씨의 하나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봉토도 없고 봉록도 없으므로 그 삶이 고단하다.

(6)  따라서 그냥 전주 이씨의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이채중의 유일한 꿈은 죽은 왕자의 양자라도 되어 다시 ()으로 불리며 국록을 얻어서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다그의 꿈이 놀랍게도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사망한 정조의 둘째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그가 입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채중은 졸지에 남연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7)  그런데 순조때부터 외척의 세도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안동 김씨의 대신들이 뒷일을 우려하여 사전에 유능한 왕족들을 제거하고 있다. 그 학살의 현장에서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천우신조로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이 된 남연군과 그의 똑똑한 아들 이하응흥선군인 것이다.

(8)  이재에 밝은 오칠성 대방은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훗날 흥선군이나 그의 피붙이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뇌물을 주자면 궁한 시기에 주는 것이 가장 효력이 있다. 따라서 타고난 장사꾼인 그는 은밀하게 별로 권력이 없는 흥선군에게 약간의 뒷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정조의 첫번째 이복동생이 은언군인데 그의 서손자가 헌종의 뒤를 잇게 되는 철종이다. 은언군의 아들이 전계군인데 그의 가족이 안동 김씨가 조사한 역모사건에 휘말려서 1844년에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전계군에게는 서자인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이원범이다. 서자이기에 군의 칭호가 없다.

그렇지만 한양에서 태어난 이원범이 억울하게도 14세에 강화도로 끌려가서 5년간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힘이 될만한 일가붙이가 한사람도 없어서 참으로 고된 삶을 강화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양에서 겨우 소학(小學)까지 공부한 이원범은 역적의 자식으로 낙인이 찍혀 있기에 비록 왕손이지만 군의 칭호도 없고 평민보다도 못한 처지였다;

그러한 처지의 이원범에게 조선의 왕이 되는 기이한 일이 3년후 18497월에 발생한다. 안동 김씨가 혈혈단신이며 서자 출신의 왕족 그것도 역적의 후손인 소위 강화도령을 국왕으로 삼은 이유는 이원범에게는 이렇다할 뒷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19세가 될 때까지 5년간 이원범은 강화도에 살면서 역적의 아들이라고 천시를 받아왔기에 결혼도 하지 못한 떠꺼머리 총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신분을 안동 김씨가 지배하고 있는 조정에서 덕완군’(德完君)이라고 불러주고 동시에 조선의 국왕으로 삼은 것이다.

그와 같이 외척인 안동 김씨가 왕족들을 제거하고 있는 시대이므로 이재에 밝은 오칠성 대방이 비록 양자에 불과한 왕족이지만 현재 한양에 살고 있는 흥선군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있다. 왕의 대가 끊어지면 훗날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사꾼으로 잔뼈가 굵고 또한 큰 상단의 주인으로 성공한 오칠성 대방의 정치적인 감각은 남다른 바가 있다. 만약 그가 호판이 보낸 자객들에 의하여 일찍 살해되지 아니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면 자신의 촉이 맞았다고 하는 사실을 훗날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1863년에 강화도령 출신 철종이 붕어하자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이 당시의 대왕 대비인 조대비와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자신의 적자 가운데 둘째 아들을 철종의 뒤를 잇는 국왕으로 졸지에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모르고 있지만 허굉필은 시간이 나는 대로 은밀하게 치부책의 내용에 의지하여 오대방의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그가 1846 10월에 종8품 봉사에서 종7품 직장으로 크게 승진하였지만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해가 가기전에 갑자기 예판 심덕구 대감이 한밤중에 암살자들에 의하여 살해가 되고 만다. 그 일을 가장 먼저 접한 관리들이 순라군과 한성부의 야경꾼들이다. 야경담당인 허직장은 예판의 죽음을 보고서 홀연히 무언가를 깨닫고 있다; “조정의 실세들이 암흑가의 무리들을 동원하여 정적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새해가 되자 비어 있는 예판의 자리에 이미 은퇴한 바가 있는 전직 예조참판 최광요(崔光饒)가 임명되고 있다. 안동 김씨의 조정에서 어째서 최광요를 대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그해 봄에 밝혀진다. 새로운 예판 최광요 대감의 딸인 최향옥이 호판 김형술의 아들 김유진과 혼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18474월 보름에 한양의 중심지에서 거행이 된 그 혼사에 한성부의 일개 야경담당인 종7품 직장 벼슬의 허굉필이 초대가 되어 참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여 예판 최대감의 딸인 향옥 낭자가 허직장을 마치 친정 오라비처럼 대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굉필은 개인적으로 호판 김형술 대감의 아들 김유진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세도가의 아들인 김유진이 사석에서는 소탈하게도 시골출신이지만 머리가 좋은 신진관료인 허굉필을 마치 친아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허직장보다 1살 연상이며 과거급제가 2년이 빠른 김유진은 그 사이에 일계급 승진하여 이제는 벼슬이 정7품인 박사이다. 그러므로 허굉필은 그에게 깎듯이 형 대접을 해주고 있다.

그와 같은 변화를 바라보면서 허굉필이 개인적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그는 가장 먼저 호판의 집사인 김호길에게 18475월초부터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허굉필김호길에게서 어떠한 정보를 캐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