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8. 05:53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4(손진길 소설)

 

하룻밤 야간 순찰을 하게 되면 허직장은 다음날 낮시간에는 집에서 푹 쉴 수가 있다. 그것이 한성부 야간순찰 담당에게 주어지고 있는 특전이다. 그와 같은 특혜는 모든 야경꾼과 강무관 그리고 최다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지고 있다.

허굉필은 밤샘 근무를 끝내고 하숙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한 다음 자기 방에서 푹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방안에서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운동이 보타진경에 따른 운기를 하는 것이다. ()시진 정도 내공수련을 하였더니 온몸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다.

허직장은 잠시 방을 나서서 하숙집이 있는 남대문 근처를 산책한다. 6월 중순의 초여름 좋은 날씨가 그를 반기고 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출근을 한 모양이다. 동네가 조용한 것이 허굉필이 혼자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는 그날 따라 기분이 좋아서 아예 남산까지 등산을 한다. 남산 중턱까지 천천히 허굉필이 올라가고 있을 때에 놀라운 인물을 두 사람 그가 만나고 있다. 그들 두사람이 마치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이 그렇게 가파른 남산을 신나게 달려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내공수련을 오래 하였기에 남달리 시력이 좋은 허굉필이 그들 두사람의 인상착의를 금방 파악한다; 한사람은 30대 중반의 사내인데 키가 큰 편이다. 제법 덩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몸놀림이 가볍다. 따라서 허직장은 그 사내가 필시 무예수련을 오래 한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는 사람은 사내가 아니라 여인이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아낙네인데 그녀도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아니하다. 한마디로 경쾌하다. 빠른 속도로 사내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데 분명히 오래 신체단련을 한 여인이다.

허굉필은 고향에서 홀로 산속에서 보타진경에 기록되어 있는 무예수련을 오래 한 까닭에 그 두사람의 단련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방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보타진경과 같은 천하의 무예지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저 정도의 몸놀림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20년 정도의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도대체 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

그들 두사람이 자신의 옆을 지나쳐서 남산의 정상을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다고 하여 23세의 허굉필이 자신도 몸을 가볍게 하여 그 뒤를 따라 달릴 수가 없다. 그는 고향에서부터 자신의 무예를 남에게 완벽하게 비밀로 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빠른 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마침 남산 정상에서 두사람이 심호흡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가까이 접근하여 기분 좋게 인사를 한다; “오늘 날씨가 원체 좋아서 남산에 올랐는데 참으로 진귀한 구경을 하였습니다. 저보다 연상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남산을 달려서 오르고 계십니까? 그런 분을 저는 오늘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30대 중반의 키가 크고 몸집이 있는 사내가 먼저 응대를 한다; “허허허, 이거 괜히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군요. 나는 소싯적부터 고향에서 무도관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달려서 산에 오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요. 오래간만에 내가 살고 있는 한양에서 남산을 한번 달려서 올라와 보았습니다. 기분이 상쾌하군요, 하하하… “.

사내 옆에서 심호흡을 마친 여인이 한마디를 한다; “오래간만에 오라버니와 함께 달리기 경주를 했더니 기분이 좋네요. 다음에 한번 더 경주를 하면 내가 이길 것 같아요, 호호호… “. 허직장이 보기에는 한마디로 지기를 싫어하는 여인이다. 그녀가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니 두사람은 남매사이인 모양이다.

오누이인 그들 두사람의 모습이 보기에 좋아서 그날 허굉필이 자기도 모르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는 멀리 남도에서 한양에 올라와 살고 있는 시골뜨기입니다. 별명이 살괭이이지요. 두 분도 남도 출신이십니까?... “;

혹시 동향인지도 몰라서 별명만 대고서 허직장이 물어보고 있다. 그들 가운데 오라버니라고 하는 인물이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 남쪽 바다가 가까운 남도 분이시군요. 우리 남매는 바다가 없는 경기도 남부 출신이지요… “.

그 다음에는 여동생으로 알려진 여인이 호호 웃으면서 말한다; “고향에서는 우리 남매가 워낙 몸놀림이 날렵해서 남들이 날다람쥐제비라고 불렀어요, 호호호한양에 올라온 지 벌써 5년이 지나가고 있군요. 젊은이, 인연이 있으면 또 보도록 하지요. 먼저 내려갑니다!... “;

그날은 그 정도로 인사만 하고 그들 사이의 대화가 끝나고 있다. 하지만 하숙집에 돌아와서도 허굉필은 그들 두사람의 달리기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아니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 두사람은 어째서 30대의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게 신체단련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인데!... ‘.

오래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는 방문을 잠그고서 전날 밤에 죽은 사내 장필우(張筆友)에게서 얻은 책자를 살핀다. 가장 먼저 수록되어 있는 정보가 무영과 그의 심복에 관한 것이다. 조용히 그 내용을 읽다가 갑자기 허굉필이 깜짝 놀라고 있다.

다음과 같은 글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영은 금년에 35세인데 경기도 이천 출신이며 고향에서의 별명이 날다람쥐이다. 그는 대지주인 옥왕유()씨 여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욕심이 많고 성욕이 강한 옥부자는 수많은 여종을 건드려서 자식을 생산했으며 모조리 종으로 부린 인물이다. 그러므로 무영은 주인의 아들이 아니라 완전히 남종으로서 그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남산에서 만난 그 사내가 분명히 30대 중반이고 경기도 남부 출신이라고 했다. 게다가 별명이 고향에서는 날다람쥐라고 그의 여동생이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사내가 바로 무영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허굉필의 짐작이 틀리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그 다음 구절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무영 남매에 대한 기록이다; “옥부자는 그래도 자신의 소생이므로 무영과 그 여동생 무솔을 어릴 때부터 이천에 자리잡고 있는 청도관에 보내어 무술을 연마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악명이 높은 대지주인 자신을 노리고 있는 인물들이 주변에 많으므로 그들을 무인으로 만들어 자신의 호위를 맡도록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근골이 튼튼하고 몸이 날쌘 무영무솔은 열심히 무예수련을 했으며 청도관에서 인정을 받았다. 한마디로, 장래가 촉망이 되는 수련생이었다. 그런데… “.

그 다음의 내용이 흥미롭다; “불행하게도 청도관 관장인 황달성이 이천지역의 왈패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별명이 황귀신인데 그가 무영 남매를 자신의 패거리에 간부로 끌어들였다;

 무영 남매는 어차피 종의 신세였기에 낮에는 집에서 옥부자의 호위를 맡고 밤에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 이천시내에서 황귀신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들 남매의 별명이 정확하게 날다람쥐제비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다음의 내용에 허굉필은 더욱 혹하고 있다; “돌연 한양으로 상경한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황귀신 패거리의 행패가 극심하자 관청에서 일제소탕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때 검거를 피하고자 무영 남매가 관병을 해친 것이다. 또 하나는, 모친 무씨가 그만 병으로 죽고 만 것이다. 두사람은 자신들을 줄곧 종으로 부려먹은 옥부자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한양으로 피신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

호판이 야왕인 무영에게 심어 놓은 첩자 장필우가 정보수집에 있어서는 참으로 탁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정보까지 파악하여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천 땅을 떠나기 전에 그들 남매는 황귀신으로부터 한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목 천하림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받았다. 천하림이 본래 정보를 사고 파는 쌍문점의 주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파악했는지 장필우가 특종을 기록하고 있다; “천두목이 정보장사에 그치지 아니하고 정계와 재계의 청탁을 받아 살수 영업에 나서자 기존 암흑가 살수계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권이 큰 청탁살인업종이기에 영역싸움이 치열했다. 그 과정에서 천두목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무영 남매가 쌍문점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으며 또한 한양의 밤을 지배하는 강자로 3년전에 부상한 것이다. 그리고… “;

무영 남매에 대한 신상이야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쌍문점의 주인이 두사람이다. 한사람은 청부살인을 맡고 있는 무영(無影)이다. 또 한사람은 정보를 사고 파는 무솔(無率)이다. 그리고 무솔의 남편 장우(張雨)가 두목인 무영과 무솔을 도와서 부두목의 직책을 맡고 있다. 장우 역시 무예가 뛰어난 강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

허굉필의 독서실력은 대단하다. 글을 읽고 암기하는 속도가 남다르다. 따라서 벌써 쌍문점의 영업부분을 읽고서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겉으로는 고급정보를 사고 파는 것이다. 하지만 안으로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두가지 사업이다; 하나는, 살인청부업이다. 무영은 돈만 넉넉하게 주면 어떤 살인이라도 저지르고 증거를 일체 남기지 아니하기로 유명하다. 또 하나는, 밀수이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

장필우가 죽어가면서 허굉필에게 남긴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나라에서 ()을 밀수하고 아예 그곳에서 조선의 철전(鐵錢)을 만들어 들여오고 있다. 그것을 완전히 소탕하여 근절하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 조선의 경제는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호판(戶判)은 더 이상 무영을 가까이 두어서는 아니된다. 조선의 앞날을 위하여 그를 제거해야만 한다!... “.

그 내용을 파악하게 되자 허직장은 장필우야 말로 호판의 심복 중의 심복인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는 죽고 말았고 그가 남긴 책자는 자신이 지니고 있다;

 그것을 불쑥 호판 김대감에게 가져다 바칠 수는 없다. 허굉필은 그가 스스로 그 문제를 처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종7품 직장 벼슬에 불과한 23세의 허굉필은 밤의 지배자 무영 일당을 어떻게 척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