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1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2. 04:0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18(손진길 소설)

 

진실로 최다모(崔茶母)가 놀라운 제안을 한다; 몇 년 내 우리가 지방의 관아로 가게 되면 내적으로는 부부가 될 것이고 자녀가 생산이 되겠지요. 그때 우리의 자식들의 신분을 관노(官奴)로 그냥 둘 수는 없어요. 신분을 당장 평민으로 만들자면 많은 재물이 필요해요. 나으리는 그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세요?... “;

역시 최선미(崔善美)는 똑똑한 여인이다. 벌써 수년후의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다. 허굉필로서는 당장 해결방법이 없어서 그녀의 눈만 쳐다보고 있다. 그때 그녀의 대범한 구상이 들려온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그 은괴와 철전을 모조리 호조(戶曹)에 넘길 필요가 없지요. 그 중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우리가 은밀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재물이 있어야 신원회복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보다 우리에게 급한 일은 없어요!”;

한참 생각에 잠기던 허굉필이 천천히 말한다; 10월 보름에 우리 두사람은 좀 일찍 동래(東萊)로 내려가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그러한 준비까지 하자면 시간이 별도로 필요하겠어요. 그러면 나는 이제부터 열흘동안 모든 계획을 추진하겠어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과연 허굉필은 열흘 동안 어떠한 준비를 한양에서 마치고자 하는 것일까?... 그가 가장 먼저 방문하고 있는 인물은 금위영의 종사관인 홍재덕이다. 갑자기 사전에 연락도 없이 곧바로 금위영 순라담당관실로 홍종사관을 찾아갔더니 그가 깜짝 놀란다.

그렇지만 화급한 일로 한성부의 야경담당인 직장 허굉필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므로 그가 별실인 소회의실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 자리에서 허직장이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말한다; “형님, 소제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실로 화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

조용히 허직장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홍종사관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간단하게 질문한다; “아우, 그것은 개인적인 용무인가? 아니면 조정의 대사에 관련된 일인가?... “. 그 말에 허굉필이 진지하게 대답한다; “형님,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그것도 시급한 일이지요!”.

홍재덕이 소회의실에 자신들만 있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서 묻는다; “여기는 자네와 나 두 사람 뿐이니 안심하고 내용을 말해도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 허굉필이 핵심을 말한다; “형님, 큰 밀수 건이 하나 발생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한양이 아니고 멀리 경상도 동래의 절영도입니다. 그 정보를 최근에 비밀리에 제가 입수했어요”.

홍종사관이 급히 질문한다; “멀리 동래 바닷가의 섬에서 발생하게 되는 일을 여기 한성부에서 야경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아우가 알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한양의 밀수꾼들이 모의하고 있는 내용이겠군!... 어느 패거리인가?...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조용히 홍재덕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한양 밀수꾼의 동태에 대하여 평소 많이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군. 혹시 그들과 어떤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거 괜히 엉뚱한 인물에게 비밀정보를 주는 것이 아닐까? 왕비의 당숙인 그도 정치자금으로 재물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

그렇지만 일단은 홍종사관을 믿어 보는 도리 밖에 없다. 따라서 허직장이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한양의 밤을 지배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 야왕(夜王)이 그 일을 도모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밀수 현장에서 그들을 체포하지 아니하면 증거불충분으로 그들을 어찌하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형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요!... “.

그 말을 듣자 홍종사관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뗀다; “내가 알기로 야왕은 청부살인과 밀수를 통하여 최근 3년간 한양에서 큰 돈을 벌고 있는 인물이야. 그런데 그가 어떻게 아우에게 꼬리가 잡혔을까?... 그래, 아우님의 말 그대로이지. 그 현장을 덮치지 않으면 결코 그를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야. 그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는 고관들이 한양에 많거든!… “.

허굉필이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나이가 나보다 3살 연상에 불과하지만 홍재덕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군. 조정의 고관과 한양의 검은 세력이 어떻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당히 파악하고 있는 눈치이군. 그렇다면 그 역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하여 어딘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인데과연 어느 쪽인가? 나중에 알게 되겠지!... ‘.

일단은 홍종사관의 직위와 정치적인 영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허굉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님, 이 일은 비밀유지가 일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저는 형님과 저의 수하들만으로 그 일당을 현장에서 소탕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한번 도와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홍종사관이 확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아우님이 파악한 정보를 내게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왜냐하면, 그들의 자금줄을 끊어버리는 것이 내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지요, 허허허… “.

홍재덕의 말을 듣자 허굉필이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다행이군, 최소한 홍종사관이 야왕 패거리와 같은 편은 아니야. 26살에 불과한 홍재덕이 그동안 금위영에서 순라군담당으로 일하면서 암흑가의 일을 많이 알고 있어. 그리고 조정 대신과의 연결고리까지 얼추 살피고 있는 인물이야. 앞으로 정치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는 구만. 나는 그 성향을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겠어!... ‘;

허굉필로서는 당장 홍종사관의 도움이 절실하다. 따라서 그날 그에게 자신이 그동안 취득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자초지종을 전부 들은 다음에 홍재덕이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내가 10월 하순에 동래부사를 만나 그의 군사를 빌리도록 하겠네. 그리고 우리가 절영도로 가서 그 밀수의 현장을 급습하고 그들을 전원 체포하도록 하자고! 아우님의 계획대로 내가 적극 협조할 것이야. 안심하시게”.

시원한 답변이다. 그의 확답을 듣자 허굉필은 한성부로 돌아와서 강무관과 최다모에게만 그 소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음날 강천무를 데리고 금위영으로 가서 홍재덕에게 그를 소개한다. 두사람이 함께 한양을 출발하여 10월 하순에 동래까지 가서 동래부사의 군사를 빌리라고 요청한다.

그 자리에서 허굉필이 첨언한다; “나는 미리 동래로 가서 더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생각입니다. 과연 절영도 어느 지점으로 밀수꾼들이 배를 가지고 들어오는지 말입니다. 야왕 일행은 왜국의 밀수꾼으로부터 은괴와 조선의 철전을 받는 대신에 조선의 물건을 내어줄 텐데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도 상세하게 파악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

허굉필이 미리 작성하여 온 지도를 한 장 품에서 꺼내어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제가 동래에서 머물 곳은 초량의 왜관 가까이에 있는 통역 김준우(金俊宇)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강무관은 홍종사관 나으리를 모시고 이 지도를 참조하여 나를 찾아오세요. 그러면 우리는 10월 하순에 동래에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홍재덕허굉필의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지만 허직장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군. 은밀하게 행동하면서 상대방의 협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그를 나의 편으로 삼으면 참으로 유용해. 하지만 적이 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거야!... ‘.

하지만 홍재덕은 이번에 허굉필의 계획에 최대한 협력을 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야왕 패거리의 밀수규모가 엄청나서 조선의 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 자금의 일부가 어느 정치집단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번에 그 연결고리를 전부 끊어 내야 한다.

사실 홍재덕은 작년 말에 살수(殺手)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예판 심덕구(沈德求) 대감과 정치적인 연합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그런데 심대감이 너무나 허무하게 타계하고 말자 그 사건을 나름대로 수사하고 있었다.

금위영에서 잔뼈가 굵은 홍종사관은 두가지에 중점을 두고서 그 사건을 다루었다; 하나는, 심대감의 죽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가?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살수의 솜씨와 뒤처리가 너무나 깔끔하다. 한양의 암흑가에서 누가 그 정도로 매끄럽게 청부살인을 시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홍재덕의 접근방법이 뛰어나기에 어렵지 아니하게 그 배후와 살인집단이 밝혀지고 있다. 금년 초에 새로운 예판으로 최광요(崔光饒) 대감이 들어서고 그가 4월에는 호판 김형술 대감과 사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야에 묻혀 있던 최광요보다는 조정의 실세인 호판 김형술 대감이 그 배후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홍종사관은 한양의 밤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강자들과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살수들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는 금위영의 무관이다. 따라서 그는 작년말에 예판 심덕구 대감을 살해한 집단이 바로 야왕의 살수집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솜씨가 너무나 매끄럽고 뒤처리가 깔끔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사실 홍종사관은 비밀리에 자신의 수하를 파견하여 호판 김형술 대감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김대감이 은밀하게 만나고 있는 인물들을 조사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 결과 야왕의 꼬리가 밟힌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야왕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자신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들린 허직장에게서 야왕의 정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것이다. 그 자가 종로의 쌍문점에 꽈리를 틀고 있는 무영이라고 하는 무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가 엄청난 밀수를 통하여 큰 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단지 야왕 무영의 패거리의 조직적인 이익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조선의 어떤 정치집단이 그 돈을 이용하여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홍종사관은 이번 기회에 무영 일당을 현장에서 검거하고 그 배후를 밝힘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심덕구 대감의 원한을 풀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도 강화해줄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과연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