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6. 11:4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1(손진길 소설)

 

그런데 허주부가 다음날 출근하자 그의 집무실로 한사람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이판 김용범 대감을 모시고 있는 교리 장천웅(張天雄)이라고 말하면서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한다.

허주부가 그를 자리에 앉게 하고 최다모에게 차대접을 부탁한다. 최다모가 차를 두고서 집무실을 나서자 장교리가 천천히 입을 뗀다; “전날밤 종로의 기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현장에 허주부께서 직접 나타나서 사건조사를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시는 김대감의 아들이 살인 누명을 쓰고서 한성부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입니다… “;

묘하게도 말꼬리를 흐리고 있다. 그러면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교리가 자꾸만 허주부의 표정을 읽고자 한다. 허주부는 그 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전혀 표정의 변화를 얼굴에 나타내지 아니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자 장교리가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날 술자리를 같이한 선비 가운데 한사람이 사실은 우리 도련님을 충동하여 그 사단을 낸 장본인입니다. 그 자의 이름이 조항준(趙恒俊)인데 평소 풍양 조씨인 그는 안동 김씨인 우리 대감의 아들 김학수를 시기하고 있었지요… “.

 장교리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허주부에게 말한다; 조항준은 겉으로만 친한 벗으로 행세하고 있지 속으로는 그렇게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그만 그 놈의 도발에 우리 도련님이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부디 그 점을 한번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조용히 대답한다; “잘 알겠습니다. 일부러 찾아오셔서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시니 제가 성심성의껏 참조하여 다시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우리 한성부에서 일차 조사가 끝나면 곧바로 포도청으로 사건을 넘길 것이니 그 점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멀리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잘 살펴가십시오!.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오면서 장교리가 속으로 생각한다; 상당히 신중한 인물이구나.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겠군. 이거 우리 도련님을 무사히 빼내자면 내가 무지하게 바빠지겠어. 어쨌든 이판 김용범 대감의 외아들이니 살인범이 되어서는 안되지!... . 과연 그날 하루 동안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허굉필은 교리 장천웅의 말이 사실인지 한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전날밤 기록한 장부를 다시 살펴본다. 거기에 남자 증인 두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한사람은 장교리가 벌써 언급한 바 있는 조항준이다. 또 한사람은 그 이름이 최준걸(崔俊杰)이라고 적히어 있다.

허주부는 조항준최준걸의 인적사항은 물론 살해범으로 지목이 된 김학수의 인적사항까지 다시 한번 챙겨본다;

(1)  첫째, 김학수는 이판 김용범 대감의 외아들로서 어영청(御營廳)에 종6품 종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무관이다. 이판 김용범 대감은 호판 김형술 대감과 더불어 조정에서 발언권이 센 안동 김씨 출신의 권신이다. 그가 외아들 김학수 종사관을 끔찍이 아끼고 있는 것이다;

(2)  둘째, 조항준은 풍양 조씨로서 종2품 금위대장인 조명우(趙明佑) 영감의 아들이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후 줄곧 금위영에서 근무하여 그 벼슬이 역시 종사관이다. 부자(父子)가 나란히 금위영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3)  셋째, 최준걸은 조항준과 마찬가지로 금위영에서 근무하고 있는 종사관이다. 그런데 그는 부친의 성함을 밝히지 아니하고 단지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는 경주 최씨라고만 알려지고 있다. 최준걸은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금위영에서 계속 근무하였으며 금위대장의 아들인 조항준과 친한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허굉필은 조항준과 최준걸이 모두 금위영에서 근무하고 있는 종사관으로서 오래 전부터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하는 사실에 유의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조항준김학수를 충동질하여 칼을 휘두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가 최준걸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따로 최준걸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준걸 종사관이 원당 출신의 경주 최씨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자 허주부가 말을 타고서 급히 남대문 근처에 있는 하숙집에 들린다. 그는 다짜고짜 집주인 최경수(崔慶水)에게 질문한다; “아저씨, 혹시 원당에 사실 때에 일가로서 무과에 급제한 최준걸을 알고 지내지 아니하셨어요?... ”.

혹시 싶어서 질문했는데 역시 집주인 최경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알다마다요. 준걸이가 나와는 원당 세거부락(世居部落)에서 함께 살았지요. 우리는 촌수가 10촌 이내로 가까운 일가인걸요. 그는 출세가 빨라서 벌써 금위영에서 종6품 종사관이지요. 그런데 허주부가 어떻게 내 친척 동생 준걸이를 알고 있나요?...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일전에 기방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아주 호감형의 무관이더군요. 하도 인상이 좋아서 아저씨께 혹시 아시는지 여쭈어 본 것입니다. 성품도 아주 좋아 보이더군요, 허허허… “.

그 말에 최경수가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성품이 좋지요. 같이 한잔 술을 나누게 되면 더 다정한 사람이지요. 무골호인이고 말고요. 그런데 술과 기생을 너무 좋아해서 그것이 다소 문제이지요, 하하하… “.

그날 허주부는 금위영을 방문하여 종사관 최준걸을 은밀하게 불러내어 만난다. 그리고 질문한다; “종사관님, 수사에 있어 꼭 필요하여 일부러 제가 직접 방문하여 참고인 진술을 받고자 합니다. 그날 밤 어째서 그러한 사단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한번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시겠습니까?... “.

최종사관이 허주부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전날밤 이미 진술을 했습니다. 그 이상 아는 바가 없습니다만!... “. 그 말을 듣자 허주부가 싱긋 웃으면서 최종사관에게 호의를 보인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종사관님, 참으로 기이하게도 제가 알고 있는 하숙집 주인 최경수 아저씨가 바로 일가형님이 되시더군요. 그분이 최종사관님은 참으로 좋은 친척동생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최경수 아저씨와 친한 사이이고 평소 그분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진술이라도 해주시면 조금도 종사관님께 불리한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사람 좋은 최종사관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경수 형님을 통하여 벌써 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오셨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지요. 사실은 그날 저녁에… “.

허주부가 한마디도 놓치지 아니하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최종사관이 진지하게 설명한다; “저는 퇴근하면서 금위영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조종사관과 동행했어요.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평소 김종사관이 좋아하고 있는 기생 월향을 우리가 번갈아 가면서 품었다고 그에게 약을 한번 올리자고 말했어요. 저는 그것이 그냥 장난삼아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서 그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지요. 그런데… “.

최종사관이 갑자기 후유 한숨을 쉬고서 말한다; “그날 밤 조항준이 많이 지나쳤어요. 너무 상세하게 월향이 앞에서 김학수에게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해보니 어떠어떠 하더라고 떠벌렸어요. 그 말을 듣자 김학수가 그만 그치라고 소리를 쳤어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대목이 이제부터이다; “조항준김학수의 경고를 무시하고서 실실 웃어가면서 끝까지 남녀상열지사를 진하게 묘사하면서 김학수월향이를 모독했지요. 그러자 참지 못한 김학수가 모서리에 세워 둔 자신의 검을 들고서 조항준을 겨냥했어요. 그런데… “.

경청하고 있는 허주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최종사관이 이어서 설명한다; “조항준도 얼른 자신의 검을 들고서 맞상대를 했어요. 김학수가 연이어 공격을 가하자 교묘하게도 조항준월향이 옆으로 몸을 피했지요. 그 순간 미처 피하지 못한 월향이의 가슴이 그만 김학수의 검에 깊이 베이고 말았어요. 피를 보자 술이 깨는지 김학수가 얼른 검을 들고 바깥으로 도망쳤어요. 그 틈에… “.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최종사관이 하고 있다; “냉정하게 조항준이 실내에 있는 기생들에게 입막음을 시켰어요.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무조건 화가 난 김학수월향을 베어버린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어젯밤 사건의 전말입니다. 필요하면 제가 재판관 앞에서 진술을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얼른 허굉필이 자신의 장부에 최종사관의 증언내용을 기록한다. 그것을 그에게 내밀면서 말한다; “우선 여기 제가 기록한 글을 읽어 보시고 사실과 합치하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부기하고 서명을 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 조치는 제가 알아서 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

최종사관은 허주부의 일처리가 꼼꼼하고 치밀한 것을 보고서 고개를 계속 끄떡이고 있다. 그는 무인 답게 자신이 진술한 내용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따라서 기분 좋게 허주부가 기록한 내용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이라고 글로 적고 자신의 서명을 남긴다.

그날 허주부가 받아온 그 참고진술이 훗날 기방 기생 살인사건의 재판과정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조정대신들의 힘겨루기에 있어서 금위대장 조영감이 이판 김대감의 기세를 꺾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만 놓치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문제를 두고서 다음날 이판 김용범 대감과 금위대장 조명우 영감이 대좌를 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과연 어떠한 정치적인 타협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그 사건의 재판과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허굉필의 신상에는 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