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18. 03:4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3(손진길 소설)

 

7. 최다모의 부모를 은밀하게 만나고 구례로 밀행하는 허굉필과 최선미

 

조선의 24대왕 헌종 15년인 1849121일 아침에 허굉필최선미와 함께 남대문을 통과하여 한양을 벗어나고 있다. 그들이 남행길에 나서는 것이다. 전라도 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구례현으로 가자면 한양에서 남행하여 천리가 넘는 길을 부지런히 가야만 한다;

남대문을 통과할 때에는 대과동기인 윤일윤 직장이 좌랑 허굉필에게 구례현감으로 잘 부임하시라고 직접 배웅을 해주고 있다. 윤직장과 헤어진 허좌랑과 최다모는 남대문을 벗어난 다음 곧장 교외지역에 있는 마시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건장한 두 필의 말을 구입하여 각각 나누어 타고서 남쪽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막상 한양을 떠나게 되자 허굉필의 머리속에서는 지난 5년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다. 허굉필 자신에게 무척 호의적이었던 한성부 판윤 김윤갑(金潤甲) 대감의 공명정대했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세도가 안동 김씨 출신이지만 파당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있는 훌륭한 대신이었던 것이다.

그가 한성부의 수장으로 있었기에 종8품 봉사에 불과했던 허굉필이 인신매매범을 소탕하자 2단계나 진급하여 종7직장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밀수꾼들을 토벌하자 그때에는 종6주부의 자리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종로 기방의 기생살인사건을 재조사하여 공을 세우자 드디어 정6좌랑이 된 것이다.

비록 이조판서 김용범(金容範) 대감의 특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주부를 허좌랑으로 진급시킨 인사권자는 한성부의 수장인 판윤 김윤갑 대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한성부에서 지내는 5년 동안에 빠르게 승진을 거듭한 허굉필로서는 판윤 대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묘하게도 남산 부근에 있는 하숙집 주인 부부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다. 집주인 최경수(崔慶水)와 그의 아내인 안성댁이 하숙생들에게 참으로 친절했다. 경주 최씨인 40대의 선비 최경수는 본래 경기도 원당의 집성촌에서 자랐지만 그의 부모님이 과거를 준비하는 아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남산골에 큰 기와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렇지만 최경수가 번번이 낙방을 하자 그만 그 집을 아들에게 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그 큰 집에서 하숙이라도 쳐서 먹고 살도록 조치한 것이다. 최경수는 참으로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허굉필은 자신이 5년간이나 출근하던 야경담당 부서가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린다. 6품 좌랑 벼슬에 오르게 된 허굉필은 한성부 야경꾼 총책임자의 자리를 금번 정기인사에서 종6품 주부로 승진한 하대수(河大洙)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부책임자는 종7품 직장으로 승진한 대과동기인 한우진(韓宇進)이다.

허굉필한우진과도 친하지만 더 친한 과거동기는 서고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 심한수(沈漢水)이다. 그는 마당발이고 정보통이다. 그가 허굉필 자신과 한잔 하는 자리에서 취기가 오르자 대과 동기인 안동 김씨 출신 김호선(金好善)이 어떻게 장원이 되고 종6품 주부 벼슬을 단번에 제수 받게 되었는지 그 배경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억울하게 차석이 되고 만 허굉필은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자 절치부심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정6좌랑 벼슬에 올랐다. 하지만 김호선은 벌써 종5판관 자리에 올라 있다. 결국 그와의 간격을 완전히 좁히지는 못한 것인가?... 허좌랑은 여전히 입맛이 쓰다.

허굉필최선미 두사람이 각자의 말을 타고 열심히 달렸더니 점심 무렵이 조금 지나자 한양에서 남쪽 백리에 자리잡고 있는 큰 성읍인 수원(水原)이 나타난다. 그들은 주막에 찾아 들어가서 우선 국밥을 주문하여 허기부터 달랜다;

그리고 허굉필최선미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선미, 여기 수원에 왔으니 친정 부모님을 잠시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최선미의 눈에 갑자기 이슬이 맺힌다. 씩씩한 여장부인 그녀가 어째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친정 어머니의 신세를 생각하자 슬픔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모친 하수련(河水蓮)은 아직도 관비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수원 유수부에서 노비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부친 최대환(崔大煥)이 정5품 정랑 벼슬을 지내고 현직에서 물러난 후 계속 수원에서 살고 있다.

최선미허굉필을 이끌고 가장 먼저 방문하고 있는 곳이 부친 최대환의 집이다. 일찍이 경기도 용인(龍仁)의 현령과 이조 정랑의 벼슬까지 지낸 최대환이다. 용인 현령으로 있을 때에 역적의 딸이 되어 관비의 신세가 된 하수련을 만나 딸 최선미를 얻었다.

그후 최대환은 승진하여 이조 정랑이 되었을 때에 하수련을 용인현에서 수원 유수부의 관비로 옮겼다. 그는 사랑하는 하수련을 관비에서 빼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역적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양에 가까운 수원으로 그녀를 옮기고 그녀의 딸인 최선미를 한성부로 들여보냈다.

이조 정랑인 최대환은 비록 관비의 신세이지만 딸 최선미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무예를 익히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스승을 붙여준 것이다. 그 덕분에 최선미가 한성부의 다모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상관으로 허굉필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나이가 환갑과 진갑을 지난 최대환은 벌써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선영이 있는 고향 수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식이라고 해보아야 아들 최문식(崔文植)이 있고 딸로는 최선미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딸 최선미가 한성부의 다모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신분이 관비이므로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최선미는 부친의 집을 더러 방문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렵지 아니하게 그 집을 찾아서 들어서고 있다. 허굉필도 그녀를 따라 말을 끌고서 그 집에 들어선다. 마침 최문식의 아내 한가운(韓佳運)이 집안으로 들어서는 최선미를 보고서 반가워한다; “아가씨 어서 오세요!”.

다음 순간 한가운은 시누 최선미를 따라 집안으로 성큼 들어선 허굉필을 보고서는 적지 아니 놀란다. 잘 생긴 선비가 시누의 뒤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마리의 말을 끌고서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도대체 이 선비가 누구인가?’, 한가운은 그것이 궁금하다;

  

그렇지만 한가운은 우선 사랑채로 가서 시아버지에게 보고부터 한다; “아버님, 오래간만에 선미 아가씨가 집에 왔어요!” . 그 말에 최대환은 엄청 반가워서 사랑방의 방문을 활짝 연다. 마당에 딸 최선미와 어떤 선비가 한사람 서 있다. 그리고 말 두 마리를 며느리가 끌고서 마구간으로 가고 있다.  

딸의 모습을 보자 최대환은 다정하게 말한다; “선미가 왔구나! 잘 왔다. 한겨울 정월이라 날씨가 무척 차다. 그 선비를 모시고 이리 방안으로 빨리 들어오도록 하려무나!”. 부친을 보자 최선미의 얼굴에 기쁜 빛이 떠오른다. 그녀가 허굉필의 팔을 끌면서 급히 말한다; “우리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그 다정한 모습을 두 필의 말을 끌고서 마구간으로 가고 있는 올케 한가운이 보고서 픽 웃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즐거워한다; “아가씨도 역시 여자로군! 사내보다 더 왈가닥인 선미 아가씨가 저렇게 저 선비의 팔을 끌어 당기면서 정답게 말하고 있다니, 호호호… “.

방안으로 들어서자 최선미허굉필최대환에게 큰 절을 올린다. 최대환은 딸 선미의 절은 그냥 받지만 선비 허굉필은 초면이라 그도 약간 고개를 숙여서 반절로 맞이한다. 그리고 두사람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서 말한다; “선미야, 이 분 선비는 누구신가?... “.

최선미가 방긋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부친에게 대답한다; “아버지, 누구긴 누구겠어요. 앞으로 이 집의 사위가 될 허굉필 선비이지요,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최대환이 허굉필의 용모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리고 그가 속으로 흠칫 놀라고 있다; ‘천하의 기재의 상이구나. 선비 중의 선비이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내 딸과 혼인을 하려고 하는가?... ‘. 관직에서 물러나자 최대환은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그동안 여러가지 서적을 많이 읽었다;

그 가운데는 풍수지리와 관상을 보는 서적도 들어 있다. 자연히 사람의 상을 보는 안목이 어느 정도 열려 있다. 그러한 최대환의 눈에 젊은 허굉필의 모습이 범상하지 아니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그때 허굉필의 굵직한 음성이 들려온다; “장인어른, 오늘 처음으로 절을 올렸지만 저는 한성부에 근무하면서 따님 최다모와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따님을 제게 아내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말을 듣자 나직하게 최대환이 말한다; “자네는 내가 보기에 귀한 상을 지녔으니 분명 한성부에서 상당한 직위를 가진 관료이다. 그대는 양반의 신분인데 어떻게 관비의 처지인 내 딸과 혼인하려고 하는가? 사대부와 노비와의 혼인은 국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 말에 허굉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정식 혼례는 안되겠지요. 그렇지만 서로 절개를 지키고 한평생 부부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야 국법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최대환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서 말한다; “자네는 사고무친인가? 분명 고향에 부모님이 구존하실 터인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

허굉필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지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도 나름대로 복안은 있습니다. 그러하니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걸음이라고 생각하시고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장인어른!”.

최대환으로서는 말릴 도리가 없다. 그리고 속으로는 말리고 싶지가 아니하다. 따라서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자네를 보니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보는 것과 같군! 생각이 그러하다면 나는 허락하겠네. 그러니 부디 그 마음 변치 말고 내 딸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주게. 잘 부탁하네!... “.

최대환은 그 자리에서 허굉필의 관직이 무엇이고 어떠한 출신성분인지 전혀 묻지 아니하고 있다.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서 최선미가 부친에게 식사자리에서 전부 말씀을 드린다. 딸의 설명을 들으면서 최대환은 연신 고개를 끄떡일 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인물을 우리 선미가 부군으로 맞이하고 있구나!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다‘.

식사가 끝나자 최대환이 두사람에게 말한다; “나는 허락하였으니 두사람은 이제 수원 유수부를 찾아가서 모친 하수련을 만나도록 하라. 그녀는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침방에서 옷을 만들고 또한 수선하고 있을 것이야!... “.

허굉필최선미와 함께 최대환에게 하직인사로 절을 한다. 그리고 두사람은 하수련을 만나고자 수원의 관청 유수부로 가고 있다. 과연 그들은 관비로 생활하고 있는 하수련을 은밀하게 만나서 그녀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