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2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25. 15:4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26(손진길 소설)

 

8. 구례현감 허굉필이 현지에서 실시한 역점사업

 

한성부의 관료였던 허굉필최선미가 산 좋고 물 좋은 구례현(求禮縣)에 도착한 시점이 조선의 헌종 15년인 18492월초이다. 정6좌랑(佐郞) 벼슬을 가지고 있는 허굉필과 비록 관비의 신분이지만 유능한 다모(茶母)최선미가 선박에서 내리자 함께 내린 말 2필을 각자 끌고서 보는 눈이 많은 구례현의 나루터를 서서히 벗어난다;

두사람은 차제에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구례현의 산천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튿날 점심식사 후에는 현청으로 들어가야 할 예정이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정찰시간이 일박이일(一泊二日)에 불과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곧 말을 타고서 구례의 외곽지대를 빠르게 둘러본다.

북쪽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섬진강이 서쪽에 있는 곡성(谷城)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굽이를 쳐서 구례현을 서에서 동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 강물이 남진하면서 남해로 들어가기 전에 하동 땅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구례가 전라도, 하동은 경상도이다. 그렇지만 인위적인 구분과는 상관없이 섬진강은 굽이 굽이 남행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섬진강을 동쪽에서 굽어보고 있는 산줄기가 한번 불끈 솟아올라 그 유명한 지리산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려한 지리산이 상당히 가깝고 또한 산수가 좋은 고장이 구례현이다. 그러므로 인심이 순하고 주민들이 서로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하다.

좋은 풍경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감상하던 허좌랑이 잠시 달리던 말을 멈추고 최다모에게 천천히 이야기한다; “선미, 구례현은 산수가 빼어난 좋은 지역이군요. 하지만 평야가 생각보다 넓지 않아요. 농토를 넓히자면 하천유역을 개간해야 할 텐데 그것이 상당히 힘이 들겠어요. 넓은 천변에 자갈이 많아서 그래요. 그렇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최다모가 눈을 깜빡이면서 말한다; “맞아요, 저도 말을 달리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현민들의 소득을 높이자면 무엇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를 넓히는 일이 최우선이지요. 그런데 하천유역을 개간하자면 그것이 정말 어렵겠어요!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니 천상 관청과 지방유지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저는 생각해요... “.

그 말을 듣자 허좌랑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은근히 속으로 생각한다; ‘이심전심인가! 함께 한성부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가? 아니면 벌써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여행을 오래 하고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 두사람의 생각이 이제는 많이도 닮아 있구나!... ‘.  

지방수령으로 부임하기 하루 전에 구례현을 둘러보다가 두사람이 그와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보자 허굉필이 속으로 결심한다. 그리고 기분 좋게 최선미에게 말한다; “내가 이곳의 사또로 일하는 동안에 이조천변을 농토로 개간해보도록 합시다! 그것이 나의 역점사업이 될 것입니다”.

이튿날 점심식사를 주막에서 마치고 허좌랑은 최다모와 함께 말을 끌고서 구례 현청을 방문한다;

 현청의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 두사람이 허좌랑과 최다모의 모습을 살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현청의 누구를 방문하고자 하십니까? 아직 신임현감이 부임하지 아니하여 이방어른이 업무를 대신 보고 있습니다만!... “.

그 말을 듣자 허좌랑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나는 한성부에서 오래 근무한 좌랑 허굉필입니다. 오늘 이곳 구례현의 현감으로 부임하고자 합니다. 안으로 안내를 해주면 고맙겠어요!... “. 그러면서 허굉필은 자신의 호패를 끄집어 내어 문지기에게 보여준다. 분명히 좌랑(佐郞) 허굉필()’이라고 각자(刻字)가 되어 있다.

그 문지기가 갑자기 장창을 바로 세우면서 큰소리로 외친다; “포교 황인주(黃仁住)가 삼가 신임 현감을 뵙습니다. 미처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가 앞장을 서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친다; “신임현감 허좌랑께서 납시었습니다. 모두들 나와서 영접을 하십시오!”.

그 뒤를 허굉필이 뒤따르고 있다. 그 뒤에서는 최선미가 두 필의 말을 끌면서 뒤따라가고 있다. 그때 현청 안에서 이방을 비롯한 육방의 관속들이 마당으로 뛰어나온다. 가장 먼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물이 인사를 한다; “잘 오셨습니다. 사또 나으리, 이방 강이섭(姜耳燮)이 인사를 올립니다. 먼저 동헌으로 올라가시지요. 사또께서 좌정하시면 모두들 이곳에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강이방의 말한마디에 육방관속들이 동헌을 올려다보면서 마당에 도열한다. 그때 강이방이 얼른 황포교에게 지시한다; “그대는 사또 나으리의 말 두 필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도록 하세요”.

허좌랑이 동헌에 마련한 지방수령의 자리에 착석하자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한 사람 씩 자신의 소개를 한다. 이방(吏房) · 호방(戶房) · 예방(禮房) · 병방(兵房) · 형방(刑房) · 공방(工房) 육방(六房) 가운데 호방과 형방의 이름이 금방 기억이 된다. 그들의 이름이 외우기 쉽기 때문이다; 호방의 이름이 김호준(金好俊)이다. 형방의 이름이 정주형(鄭柱衡)이다.

공방의 이름도 그렇게 어렵지가 아니하다. 장사무(張思務)가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억센 사내의 모습이다. 그리고 예방과 병방은 그냥 알기 쉽게 허좌랑이 ()예방, ()병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얼추 인사가 끝나자 허좌랑이 최다모를 그들에게 소개한다; “한성부에서 다모로 일하다가 이번에 나와 함께 구례현으로 왔어요. 다모 최선미입니다. 벌써 다모로 일한 지 7년이 넘었어요. 최다모를 통하여 내가 관노비들을 전부 다스릴 것이니 그렇게 알고 협조를 잘 해주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허좌랑이 이방 강이섭에게 지시한다; “우선 두가지를 준비해 주세요. 하나는 구례현의 현안보고를 준비해주시고, 또 하나는 구례현의 좌수를 비롯한 유지들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세요”. 그 말을 듣자 당장 강이방이 예에하고 대답을 한다.

이튿날은 하루 종일 강이방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듣느라고 바쁘다. 그 다음날이 되자 허좌랑이 강이방을 앞세워서 구례현의 좌수를 맡고 있는 향교의 우두머리 손주영(孫柱榮) 진사의 집을 방문한다;

 작년에 진갑을 지냈다고 강이방이 미리 언질을 허현감에게 주었다. 그러나 허굉필이 손좌수를 직접 만나보니 정정하기 이를 데가 없다.

비록 벼슬은 허굉필이 정6품 좌랑으로 높지만 지방 유지이며 60세가 넘은 손좌수이므로 그 앞에서 먼저 절을 하고자 한다. 그것을 보고서 황급하게 손좌수가 맞절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사또께서는 비록 젊은 연세라고 하지만 우리 고향 구례에서는 가장 어른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다고 하여 큰 절을 넙죽 받아서는 안되지요,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허좌랑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저는 고향이 경남 김해입니다. 고향의 아버지가 손좌수님보다 적은 연세입니다. 그러니 제가 아버지의 선배 친구분을 여기서 뵙고 절을 올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게다가 저는 잠시 다녀가는 지방수령이지만 좌수 어른은 이 지방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터줏대감이 아닙니까? 하하하… “. 

그 말에 손좌수가 마주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고향이 경남이고 김해 허씨이군요. 저는 이곳 구례에서 누대를 살아오고 있기에 편리하게 구례 손가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경주 손가입니다. 그 옛날 신라 초창기에 6부촌장이 모여서 왕가를 세웠지요. 당시 저희 조상이 대수촌(大樹村)구례마(俱禮)였는데 후에 한자를 사용하여 ()가가 되었어요. 그런데… “;

시골 양반은 그 특징이 족보에 밝다. 양반 뼈대가 지방에서는 큰 자랑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사인 손좌수도 자신의 족보를 열심히 설명한다; “경주 월성의 손가 일부가 전라도에 들어와 살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묘하게도 그 지명이 구례(求禮)이지요. 한자는 달리 사용하지만 그 발음이 구례이니 묘하게도 조상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지요. 허허허, 그러니“.

정작 손좌수가 허사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음과 같다; “우리 구례 손가 역시 경주 손가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그러니 경상도 중부의 경주 손가나 남부의 김해 허씨나 따지고 보면 먼 친척들인 셈이지요,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허좌랑이 역시 웃으면서 응수를 한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김해 고향에 가면 우리 김해 허가의 집성촌에 경주 손씨의 딸네들이 많이 시집와서 살고 있습니다. 조선사람은 몇 집만 건너가면 모두가 친구이고 친척이라고 하는 말이 맞지요. 그러니 좌수어른께서는 아무쪼록 이 젊은 사또를 앞으로 집안 조카로 여기시고 많이 지도 편달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간청을 드립니다!... “.

허좌랑이 허리를 굽히며 부탁을 드린다. 그 말을 듣자 손좌수가 마주 예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무나 겸양의 말씀이십니다. 제가 한양에 있는 벗을 통하여 진작에 신임현감으로 오시는 허좌랑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수년 전 대과에서 차석을 한 대단한 인재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지요. 그러니 진사에 불과한 제가 앞으로 지도를 받아야 할 입장입니다, 허허허… “.

밝게 웃으면서 손좌수허좌랑의 손을 다정하게 잡는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다. 허굉필손좌수의 손을 자신의 두손으로 포개면서 말한다; “제가 시간이 나는 대로 좌수어른의 집에 들리겠습니다. 물리치지 마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허좌랑손좌수 사이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마치 발이 달린 것처럼 지방유지들 사이에 전해진다. 그리고 산중에 있는 스님들에게도 알려진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여론이 형성된다; “젊은 사또가 예의범절이 있는 모양이야. 지방유지인 좌수 어른에게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렇게 좋은 여론이 처음부터 형성되고 있기에 미혼인 허좌랑최다모를 불러서 매일 잠자리를 같이해도 크게 흉이 나지 아니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그저 수청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두사람은 평생 부부로 살아가자고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황파악을 하고 고을의 유지들을 만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다음에 허사또가 이방 강이섭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이방, 이곳 구례현은 인심이 좋고 살만한 고장이라 사또가 크게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왕 내가 신임 사또로 왔으니 한가지 역점사업을 펼쳤으면 합니다. 그것이 개간 사업입니다!”.

강이방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만 같아서 급히 묻는다; “사또 나리, 개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혹시 미개발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드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하면, 어디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요?... “.

허좌랑이 즉시 대답한다; “본 사또는 이조천변의 넓은 지역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곳을 개간하자면 돈이 많이 들겠지요? 얼마나 들까요?... “. 강이방이 조금 생각을 하다가 대답한다; “많이 들고 말고요! 논을 사는 값의 절반은 든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개간하여 만든 논에서 2천석을 얻자면 천석꾼의 재산을 전부 투입해야 하지요. 그런 실정이니 그렇게 큰 재물을 투자하여 개간을 하고자 하는 부자가 없지요”.

이방 강이섭의 말을 듣고 허굉필이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는 어떠한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