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8. 30. 04:2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0(손진길 소설) 

 

병방 곽수림의 긴 설명을 모두 들은 다음에 영덕 현령 허굉필이 두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영덕현 내에 일본에 관하여 박식한 인물이 있으면 그 이름을 말해 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왜국 말에 능통한 통역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에 대하여 곽병방이 빙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현령 나리, 마침 우리 현에 그런 인물 두사람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저의 친척 가운데 곽병기 생원이 있습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인물이라 수년 전에 은밀하게 왜국을 구경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또 한사람은 장병화입니다. 그는… “;

곽병방이 신이 나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요. 그는 젊은 시절 10년간 동래의 왜관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왜국말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서 선친의 어선을 물려받아 선장일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때로는 여기서 통역일을 겸하고 있어요. 말씀만 하시면 두사람을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현령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군요. 본관이 그 두분에게 훗날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을 것 같군요. 잘 알겠습니다. 나중에 한번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탁합니다”.  허굉필은 과연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일까?...

이튿날 허판관은 사시(巳時)에 최이방을 대동하고 영덕현의 향청의 우두머리인 좌수 김용학 진사의 댁을 방문한다. 큰 대문 앞에서 최이방이 신임 현령께서 좌수 어른을 찾아오신 것이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자 행랑채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대문이 활짝 열린다.

행랑아범이 깊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안으로 드시지요. 진사 어른께서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이방은 간단하게 고개만 까닥이고서 마당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허굉필은 그것이 아니다. 그가 행랑아범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먼저 한다. 그 인사를 받자 나이가 50줄인 행랑아범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생전 처음 영덕 현령의 인사를 각별하게 받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그 모습을 멀리 사랑채에서 방문을 활짝 열고서 김용학 좌수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신임 사또가 보통 인물이 아니구나! 나를 대하듯이 행랑아범을 대하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처신이 아니다! 오늘 내가 한번 제대로 살펴보아야 하겠구나“.

최이방이 앞장서서 안내하는 대로 허현령이 사랑채로 들어선다. 그리고 김좌수를 바라본다. 얼추 환갑이 되어 가는 연령으로 보인다. 28세인 허판관 자신보다는 곱절의 인생을 살아온 어른이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허현령이 큰 절을 올린다. 그 모습을 뒤에서 살펴보던 최이방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그 절을 받고 있는 김좌수의 태도가 이상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그 절을 끝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최이방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허현령이 비록 서른이 안된 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영덕현에 있어서는 가장 어른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김좌수가 나이가 많다고 하여 어른행세를 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엄청난 결례인 것이다.

그러나 허판관은 눈 하나 찌푸리지 아니하면서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르는 사람의 집을 처음 찾아가더라도 그 집의 가장이 자신의 부모님의 연령대이면 마땅히 어른 대접을 해주는 법이지요. 좌수 어른의 연세가 저의 아버지 연배이시니 제가 처음으로 큰 절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

그 말을 듣고서 김좌수가 약간 긴장을 한다. 그의 귀에 진중한 허현령의 말이 들려온다; “오늘 이렇게 진사어른을 처음 뵙고서 어른 대접을 하여 큰 절을 드렸으니 다음부터는 일일이 큰 절을 좌수어른께 올려드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꾸짖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도 영덕현의 현령으로서 마땅히 제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아무쪼록 앞으로 많은 협조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좌수어른!... “.

그 말을 듣자 김좌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답례로 큰 절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허판관이 얼른 마주 절을 한다. 그때 배석하고 있던 최이방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김좌수가 젊은 신임 현령의 배포를 한번 시험한 것이구만. 그런데 별로 흔들림이 없고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으니 이제서야 대장부임을 알아보고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이야! 한마디로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쉽게 판가름이 나지 아니한다는 말임)이구만, 허허허… ‘.

일단 첫인사가 끝나자 다짜고짜 허판관이 김좌수에게 부탁한다; “좌수 어른, 어제 본관이 현청에서 업무보고를 받고 보니 무엇보다도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을 물양장에서 속히 중매인에게 넘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이 되었어요. 따라서 중매인의 수를 늘려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르침과 도움을 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김좌수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오늘 제가 신임 현령으로부터 큰 절을 한번 공짜로 받고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돕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권한은 중매인을 2명 정도 더 증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증원이 필요하다면 향청에서 지방유지들과 상의를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말에 허판관이 한번 더 일어나서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좌수어른, 방금 한번 더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니 부디 향청에서 논의하여 중매인의 수를 현행 20명에서 30명으로 늘려주십시오. 그 대신에 제가 영덕 현령으로 복무하는 동안에 생선이 상하지 아니하고 이웃 현으로 빨리 운송이 되도록 신작로(新作路) 건설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좌수가 말한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울진(蔚珍)으로 가는 북쪽 해안길을 넓혀 주시고, 무엇보다 내륙 청송(靑松)으로 가는 서편 길도 넓혀주십시오. 생선은 역시 내륙지방에 팔아야 좋은 값을 받을 수가 있지요. 그리고 생선을 언덕에서 말린 후에 팔 수 있도록 덕장(우리말 ''은 나뭇가지 사이나 양쪽에 버티어 놓은 나무 위에 막대기나 널을 걸쳐 맨 시렁이나 선반을 말함. 그에 따라 순 우리말인 '덕장'은 생선 따위를 말리기 위하여 ''을 매어 놓은 것임)도 확충하여 주시지요. 허현령께서 이제부터 하셔야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하하… “;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연령을 떠나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다. 따라서 허판관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용학 좌수의 지혜가 담긴 깊숙한 눈을 바라본다. 동시에 김좌수도 젊지만 그 생각이 깊은 신임 허현령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그 순간 김좌수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한다; ‘생각보다 비범한 인물이구만.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실천할 의지가 엿보이고 있어. 우리 영덕현의 홍복이야... 앞으로 내가 향청에서 허현령을 많이 도와주어야 하겠구만!... ‘.

그날의 행사가 끝나자 최이방은 김좌수와 허현령의 대좌에서 발생한 일을 기타 육방의 향리들에게 재미나게 설명한다. 그 이야기가 동헌 바깥으로도 전파가 된다. 그러자 현민들이 신임 현령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게 된다.

재임 기간에 신작로도 넓히고 중매인 수도 늘리고 생선바구니도 많이 만들어서 공급하겠다고 현청에서 말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한번 지켜보고자 한다. 그런데 젊은 현령 허굉필은 말만 하는 인물이 아니다. 직접 그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 따라서 그는 부임하자마자 육방의 관속들과 함께 현내의 역점사업 실시에 매일같이 매달리고 있다.

공방에서는 생선바구니를 새로 제작하고 실경비만 받고서 어민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특히 선주들과 중매인들이 사용을 해보니 편리하고 좋아서 많이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북쪽과 서편으로 신작로를 넓히는 일에는 관민이 모두 힘을 합하여 매달린다.

일단 길을 넓혀 놓으면 누구나 대를 이어가면서 그 혜택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호응이 좋다. 특히 겨울철 농한기에 그 일을 시작하였으므로 부역이 순조로운 것이다;

그리고 허현령은 차제에 이웃 영해 도호부에도 연락을 취하여 신작로의 확충을 군사적인 측면에서 지원하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 도움을 받게 되니 생각보다 공사에 진척이 크게 있다;

그런데 봄이 되고 4월 하순이 되자 영해 도호부에서 통지가 온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425일 범선이 출발하여 열흘간 울도를 면밀하게 살피고 돌아올 계획이다. 영덕 현령도 합류할 수 있도록 차비를 차리고 당일 오시(午時)까지 도호부로 오기 바란다. 이상. 도호부사 조덕룡(趙德龍) 직인”;

여러가지 사업을 벌려 놓았기에 허현령이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는 아니하다. 하지만 동해안에 있는 큰 섬 울도를 차제에 한번 방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가 판단하고 있다. 그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는 동해를 건너오는 왜구들 때문에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왜인들이 조선의 조정에서 백성이 살지 아니하도록 비워 놓고 있는 큰 섬 울도에 몰래 들어가서 무슨 일을 자행하고 있는지 차제에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허판관은 미리 병방 곽수림에게 부탁하여 일본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생원 곽병기와 통역 장병화를 만나보고 있다.

곽생원은 일찍이 혼자서 밀항하여 일본 열도를 살피고 온 인물이다. 그가 허판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언제 기회가 되시면 소인과 함께 은밀하게 일본에 있는 규슈(九州)와 그 인접 지역을 한번 다녀오도록 하시지요. 그곳은 일본의 큰 섬들 가운데 우리 조선과 가장 가까운 지역입니다. 일본의 서남번(西南藩)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

어째서 곽생원이 나를 데리고 규슈 지역을 한번 방문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일까?... ‘, 의아하게 허판관이 생각했지만 그의 설명을 듣자 그는 큰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된다. 곽생원의 말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무신들이 전국을 통치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마치 그 옛날 고려 말기 무신시대의 한반도와 같지요. 그런데 중앙에서는 말입니다… “.

곽생원의 설명은 과연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