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2. 16:1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2(손진길 소설) 

 

18542월 하순에 판관 허굉필은 병방 곽수림의 호위를 받으며 생원 곽병기 및 통역 장병화와 함께 은밀하게 일본으로 출발한다. 영덕 현령인 허판관이 공식적으로는 한달간 동래의 왜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역이며 선주인 장병화의 어선을 이용하여 그들 4인은 일본 서남번의 정세를 살피고자 정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 혼자서 일본에 밀항하여 서남번의 부번강병책(富藩强兵策)을 목격하고 돌아온 곽생원의 말을 듣고 허판관이 그 허실을 탐지하고자 이번에 밀행에 나선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사전계획을 세울 때에 벌써 일본 밀항의 경험이 있는 곽생원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제로 제가 다녀온 곳은 조슈 번(長州, 오늘날의 야마구치 현)사쓰마 번(摩藩, 오늘날의 가고시마 현)입니다. 조슈는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서쪽 끝에, 사쓰마는 규슈(九州) 섬의 서남단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곳을 방문하였기에 3달이나 걸렸지요. 하지만… “.

 곽생원이 구체적인 일정과 주의사항을 말한다; “이번에는 기간이 한달이므로 그 가운데 조슈에만 들리도록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빨리 일정이 끝나면 동래에 들려도 좋고요! 그리고 복장은 모두들 일본인으로 꾸며야 하기에 제가 집에 보관하고 있는 것 4벌을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길잡이로 곽생원이 바닷길을 인도하고 있기에 장선장의 어선이 2월말에 무사히 조슈 번의  북쪽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하기시()에 도착한다. 그들은 벌써 일본인처럼 보이고자 옷을 바꿔 입고 있다. 그곳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곽생원이 앞장서서 배를 부둣가에 매어 두고서 하기시 성내로 성큼 들어선다;

그가 일행을 이끌고 찾아가고 있는 곳은 3년전에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에 친하게 된 인물 다마키 분노신(玉木文之進)이 생도를 모아 가르치고 있는 조그마한 사숙이다. 오후 늦은 시간이므로 생도들이 모두 돌아가고 다마키상훈장실에서 혼자 졸고 있다.

2월말이므로 서서히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후 시간이 되면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특히 40대 중반의 나이인지라 다마키상이 그러하다. 그것을 보고서 곽생원이 성큼 훈장실 방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곽생원이 일본말로 말한다; “하이, 다마키상, 시바라꾸데스네. 와다시와 곽데스. 오겐끼데스까?”. 갑자기 방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 다마키상이 졸린 눈을 뜨고 있다. 그런데 손님이 이라고 말하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친다; “혼도니 곽상데스까? 오히사시부리데스네!... “;

그 말을 알아듣고서 통역 장병화가 빙그레 웃고 있다. 하지만 왜국말을 모르고 있는 허판관과 곽병방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때 곽생원다마키상에게 일행 3사람을 일일이 소개한다; “고노 히도와 허상데스. 에또 고노 히도와 곽상데스. 소노 히도와 장상데스. 젠부 와다시노 도모다찌데스”.

그 말을 듣자 다마키상3사람에게 일일이 자기이름을 말하면서 동시에 오네가이시마스라고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한다. 그러자 허판관을 위시한 3사람도 머리를 숙이면서 오네가이시마스라고 인사한다. 그 정도의 일본말은 곽생원과 장통역을 통하여 허판관과 곽병방이 미리 배워 둔 바가 있다.

그날 저녁에는 다마키상이 인근에 있는 자기집에서 벤또(, 도시락, べんと)5개나 싸온다. 그것을 하나씩 먹은 다음에 그들 5명은 생도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둘러앉아서 밤새 토론을 한다;

 먼저 곽생원다마키상에 대하여 일동에게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겸하여 한가지를 부탁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다마키상2가지에 밝은 선각자입니다; 하나는, 나름대로 서양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는 분이지요. 특히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서양세력의 선진무기체계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병법에 대하여 탁월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마키상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에게 부디 그대가 알고 있는 서양의 문물에 대하여 좀 설명을 해주세요. 그러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다마키상이 일동을 한번 둘러본 다음에 다음과 같이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조선이나 일본은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일본 열도에 서서히 접근하는 서양의 큰 선박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853년 7월에 미국의 페리(perry) 제독4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에도(江戶)우라가()항에 들어와서 일본의 통치조직인 바쿠(幕府)에 개항을 요구했지요. 그렇지만“;

다마키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허판관 일동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된다; “쇼군의 바쿠는 미처 국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일단 그들을 설득하여 돌려보내고 내부적으로 개항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바쿠가 가지고 있는 서양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없어서 갑론을박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

다마키상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나의 조카이자 제자인 노리카타(矩方, 훗날의 요시다 쇼인)가 그때 마침 에도에 있었기에 나중에 내게 자세하게 알려주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소위 흑선(黑船, 구로후네)이라고 불리고 있는 서양의 함정은 그 크기가 대단하고 증기로 움직이며 초대형 대포를 장착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 그들과 전쟁하게 되면 일본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지요!... “.

처음 듣는 상세한 설명에 허판관과 그의 일행은 기침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그때 다마키상의 놀라운 견해가 나타난다; “제가 볼 때에 지금의 쇼군과 바쿠는 서양의 세력에게 밀려서 개항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이지요. 서양의 요구에 굴복한 쇼군의 바쿠를 가지고서는 장차 서양세력과 경쟁하여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상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

다마키상은 자신의 설명을 멈추고 허판관 일행을 조심스럽게 둘러본다. 자신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조선사람들은 아무도 알 수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 눈치이다. 그렇지만 허굉필은 속으로 다마키상의 생각을 대충 짐작하고 있다.

따라서 허판관이 내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나이 40대 중반다마키상이 보통 인물이 아니구만! 그는 내심 암암리에 진행하고 있는 자기 고향의 부번강병책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가장 빠른 기간에 일본을 서구화하고 선진산업국으로 탈바꿈하려고 하는 비상한 꿈을 꾸고 있어.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가 되는 구만. 물론 지금 당장도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 ‘.

허판관의 구체적인 추론이 다음과 같다; “과연 부번강병책을 실시하고 있는 서남번의 군사력으로 오랜 세월 일본을 통치해온 쇼군바쿠를 이길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당면 문제야.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이 선진화가 되고 나면 반드시 지금의 서양처럼 이웃나라 후진국을 착취하려고 달려들 것이야. 그 대상이 당장은 조선이 되겠지. 그것 참 갈수록 첩첩산중이구만!... ‘;

다마키상허판관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저 쇼군의 바쿠보다 더욱 긴 잠에 빠져 있는 완전한 은둔의 나라 조선이 딱하기만 하다고 본다. 따라서 그가 감히 조카 노리카타(矩方)의 생각이라고 전제를 하고서 다음과 같이 운자를 떼고 있다; “나는 십년전에 청나라가 서양의 침탈에 맞서 전쟁을 벌였다가 철저하게 패전한 일을 오래 연구하고 그 이유를 분석했어요. 그리고 조카이자 제자인 젊은 노리카타에게 나의 연구결과가 가르쳐주었어요. 그러자 노리카타… “.

일단은 들어볼 만한 내용이다. 참으로 귀한 기회이므로 허판관다마키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고 장병화가 철저하게 통역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쇼군과 바쿠가 있는 에도를 방문하고 또한 천황이 있는 교토 그리고 부번강병책을 은밀하게 실시하고 있는 기타 서남의 번들을 찾아갔지요. 그 결과 그가 얻은 결론이 다음과 같아요!... “.

다마키는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나라가 서양과 전쟁하여 참패를 하였듯이 과학문명이 뛰어난 구미제국과 전쟁하면 일본은 청나라 꼴이 되고 말지요. 따라서 다음 4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그가 보고 있어요. 첫째로, 일본의 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제도가 필요하지요.  그것이 지금의 쇼군과 바쿠를 폐지하고 만세일계의 천황을 다시 옹립하고 신민교육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둘째로“;

허판관 일행이 경청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다마키가 계속 설명한다; “일본을 단기간에 서양처럼 과학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방책이 필요하지요. 무엇보다 서양에서 차관을 들여오고 기술을 배워와야 합니다. 공장제 공업으로 생산의 혁신을 가져와야 합니다. 셋째로, 그 다음에는 생산한 물량을 팔 수 있는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지요. 그 대상이 조선과 만주 그리고 청나라입니다. 나아가서 넷째로… “.

허판관은 다마키가 자신의 제자이자 조카인 노리카타(矩方)의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마지막 대목에 대하여 크게 의구심을 지니게 된다. 그의 설명이 한마디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새로운 패권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아무리 우리 일본이 선진화된다고 하더라도 서양 열강의 침탈을 결코 혼자서 상대할 수가 없어요. 따라서 조선과 만주 그리고 청나라와 동남아의 여러 나라가 일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그들 서양세력을 아시아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 점을 아시고 여러분들도 앞으로 최대한의 도움을 우리 일본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허굉필은 속이 쓰리다. 하지만 그도 일본인처럼 결코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를 할 따름이다; “장시간 참으로 감사한 말씀을 듣고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마키 선생의 좋은 말씀 깊이 뼈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더 좋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며칠간 다마키상의 사숙에 머물면서 그들 일행은 무슨 이야기를 듣고 또 어떠한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