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6. 09:16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4(손진길 소설)

 

18542월말에 장통역이 소유하고 있는 어선으로 일본의 혼슈(本島)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죠슈번(長州藩)하기시()에 도착한 허판관 일행은 8일간 다마끼()상의 사숙에 머물면서 그 지역의 선진문물을 두루 시찰한다. 비록 다마끼상이 3년 전에 곽생원을 개인적으로 만나 그와 벗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에서 온 4명의 손님을 그토록 극진하게 대접한 이유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도 다마끼상은 오랜 세월 서양의 문물 뿐만 아니라 병법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어떻게 하면 일본을 서양처럼 산업선진국으로 만들어 동양에서 지역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또한 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선구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조선에서 스스로 일본의 선진문물을 보고 배우고자 찾아온 곽생원과 그의 3친구가 앞으로 꽤 쓸모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들에게 죠슈번의 선진문물을 호의적으로 보여주고 이번 기회에 대접을 잘 해주면 틀림없이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면 훗날 죠슈번에도(江戶)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일본 열도를 산업선진국으로 만든 다음에 신식군대를 앞세워 조선으로 진출하게 되면 그들이 현지에서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40대 중반의 다마끼상은 그렇게 미래를 설계하면서 곽생원 일행과 친선을 도모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을 7일간 유심히 지켜본 허판관이 내심 그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다; ‘일본의 서남번이 지금은 쇼군의 막부가 은밀하게 보내고 있는 닌자(忍子)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처지이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부번강병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이 비밀리에 양성하고 있는 신식군대를 동원하여 에도의 정권을 뒤엎게 되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

허판관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다음과 같이 내심 중얼거리고 있다; “서남번의 하급무사들이 일본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때에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아니하고 일본국의 산업화와 서구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일본 열도가 서양처럼 변모하게 되면 그때에는 선진화된 서양 열국이 청나라를 침탈한 것과 같이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침략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

그것은 장차 조선의 조정에서 깊이 논의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자신과 같이 일개 지방 현령에 불과한 인물은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아주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당장은 자신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보아주고 있는 다마끼상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허판관이 슬쩍 그의 생각을 떠보고 있다.

그저 무심한듯이 질문하고 있는 허판관의 말이 다음과 같다; “다마끼상,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연일 받고 있으니 언제 우리가 그대를 조선에서 만나 그 보답을 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맙고 황송합니다!... “.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마끼상은 그저 기분이 좋아서 허허라고 웃으면서 즉시 대꾸하고 있다; “허허허, 걱정도 팔자이십니다. 살다가 보면 저도 조선을 방문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동지 여러분들이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되지 않겠어요.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장차 서양 강대국의 침입에 공동으로 대응할 방안을 미리 찾아보도록 합시다! 하하하… “.

일본의 병법연구자인 다마끼상의 포부가 그러하다. 그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이지만 그 말을 듣고서 허판관이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따라서 마음속으로 재빨리 판단을 내리고 있다.

허굉필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이자는 일본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우리 조선을 위해서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다. 서양선진국은 멀리 있지만 이자가 꿈꾸고 있는 새로운 일본은 굉장히 가까이에 있다. 가급적 이자의 호의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허판관이므로 이튿날 신식 공장의 시찰을 마치고 나자 저녁시간에 다마끼상이 잠시 자리를 비운 기회를 포착하여 그가 일행에게 말한다; “우리가 염치도 없이 다마끼상의 사숙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어요. 아무리 친한 벗도 열흘이나 공짜로 묵게 되면 제대로 손님대접을 받지 못하는 법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다마끼상에게 잘 말하고 내일은 이곳을 떠나도록 합시다. 내 생각에는… “.

다마끼상의 사숙에 머문 기간이 오래이므로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고 조용히 허판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이곳을 떠나 일단 동래로 들어갑시다. 그곳에서 공식적인 일정을 감안하여 왜관에 들러 볼 일을 보도록 하지요. 우리 영덕현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물건을 구입하여 다시 배로 영덕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어떻습니까?... “.

고맙게도 곽병방곽생원 그리고 장통역이 모두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8일간 다마끼상의 사숙에 머물면서 죠슈의 발전상을 시찰한 다음에 그 다음날 조용하게 조선의 동남단에 있는 동래로 출발한다.

뱃전에서 그들은 이제 일본 옷을 벗고 조선의 의복으로 갈아입는다. 3월이라 그런지 봄바람이 바다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뱃길은 곽생원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어선을 몰고 있는 장통역이 무사히 하루가 지나자 부산진에 도착하고 있다;

5일간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동래 초량에 있는 왜색풍의 료칸(旅館)이다. 그 주인이 허굉필과 친분이 두터운 왜국 말 통역인 김준우이다. 김준우가 그들을 얼마나 환영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허굉필을 만나게 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김준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굉필은 왜국 말에 능통하고 신의가 있는 김준우를 마치 자신의 가형처럼 잘 대접해주고 있다. 지난 1847년에 김준우는 동래를 방문한 허굉필을 처음 만났다. 그때에는 그가 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달 후에 료칸으로 자신을 방문했을 때에는 허굉필이 자신의 본명을 말해주었다.

그때부터 7년이 지난 1854년 지금까지 허굉필은 그 처신에 있어서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김준우를 마치 친형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준우의 처인 일본인 히로꼬( )도 허굉필에게 굉장히 친절하다.

그 료칸에 머물면서 허헌령 일행은 초량의 왜관에서 필요한 일을 처리한다. 허판관은 왜관의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옷감을 보고서 그것이 일본의 서남번에서 대량생산한 공장제품임을 직감하고 있다.

가격을 알아보니 조선에서 여인들이 손수 직조한 것보다 훨씬 싸다. 그러므로 조선의 지주와 양반들이 왜관을 방문하여 필요한 옷감을 많이들 사가고 있다. 일본의 경제적 침투는 벌써 동래 초량의 왜관에서 시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5일이 지나자 허판관은 왜관에서 구입한 물건을 장통역의 어선에 옮겨 싣고서 일행과 함께 영덕현으로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에 항구까지 환송 나온 김준우허굉필이 포옹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긴다; “준우형, 나중에 내가 아들을 형 집에 데리고 올께요. 약속대로 잘 키워주세요. 부탁해요. 또 보도록 할께요!... “.

그 말을 듣자 김준우가 마음속에 울컥하는 그 무엇이 있다. 허굉필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조선의 조정에서 은밀한 일을 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김준우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기에 아들의 장래까지 맡기고자 하는 것일까!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허굉필이기에 김준우는 어느 사이에 그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허현령이 영덕항에 도착한 다음부터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신상에 2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첫째, 18544월부터 허굉필을 조선의 조정에서 한 품계 승진시키고 있다. 허판관이 이제는 정5품인 허정랑이 된 것이다. 둘째, 5월이 되자 최다모가 허굉필에게 둘째아들을 낳아준다;

차남을 얻게 된 허굉필최선미에게 참으로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름을 허지서’(許知西)라고 짓는다. 그 의미는 장차 서쪽에 있는 청나라와 서양세력을 잘 알고 그에 대처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굉필은 관비인 최다모에게서 태어난 차남 허지서를 양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돈을 사용한다. 그가 경상감사인 조달웅(趙達雄)에게 속량금으로 많은 돈을 보낸다. 대구감영에서 경상도의 군사와 행정을 총지휘하고 있는 종2품의 조감사는 영덕 현령이 자신에게 너무 큰 돈을 보내오자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서 허굉필이 개인적으로 보낸 서찰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그 다음에 그는 싱긋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허허허, 허정랑이 정이 깊은 사람이구만. 그 신분이 관비인 다모와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자 그 신분을 양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사재를 사용하고 있구만! 그것 참 의리가 있는 인물이야. 내가 힘껏 도와 주어야지!... ”.

둘째가 태어나자 다모 최선미는 젖먹이 차남을 자신이 품에 안고서 관아에서 키우게 된다. 하지만 장남인 허지동까지 관아에서 계속 자라게 할 수는 없다. 양민의 신분으로 벌써 바뀌어져 있는 아들이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의 나이로 5살이 된 장남 허지동허현령에게 부탁하여 관아 바깥으로 보내어 양민인 장통역의 집에서 자라게 한다.

이듬해 10월이 되자 영덕 현령인 허정랑장병화 통역을 관아로 불러서 은밀하게 하나의 서찰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장형, 나는 작년에 그대와 함께 일본의 죠슈를 다녀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따라서 나는 나의 장남을 그대에게 맡겨서 자라도록 조치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 아들을 왜관이 있는 동래의 초량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요 “.

잠시 장병화를 바라본 다음에 허굉필이 말을 이어간다; “따라서 내가 동래에 살고 있는 왜국 말 통역인 김준우에게 보내는 서찰을 마련하였어요. 이 서찰과 함께 내 아들 허지동을 데리고 동래로 가서 그를 김준우에게 맡겨주세요. 이미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작년에 김준우 형에게 모두 해두었어요. 수고스럽지만 나를 대신해서 이 일을 좀 처리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장형!... “.

그 말을 하면서 허굉필장병화의 손을 잡는다. 작년에 함께 일본의 죠슈번을 다녀와서 그런지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끈끈한 사나이의 의리와 굳은 뜻이 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장병화가 허정랑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한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장병화가 별로 힘은 없지만 그래도 허정랑에게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허굉필은 그렇게 영덕 현령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좋은 동지를 얻게 된다. 곽병방곽생원 그리고 장통역이 함께하고 있기에 그는 그들과 일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장차 일본의 침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은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에 이듬해 18561월에 들어서자 허현령에게 두가지 큰 신상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