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19. 09:4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1(손진길 소설)

 

그날 저녁 이조 좌랑 윤일윤의 자택에서 만난 그 옛날 한성부의 4군자는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묻고 술잔을 돌리느라고 바쁘다. 특히 한양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 3사람 곧 윤일윤한우진 그리고 심한수8년이 지나서 대과 동기인 허굉필을 만났으므로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느라고 바쁘다.

대강의 이야기는 벌서 윤일윤을 통하여 들은 바가 있지만 소상한 이야기는 처음인 것이다. 따라서 허첨정은 벗들에게 지난 8년동안 구례현감과 영덕 현령의 자리를 거쳐서 작년부터 김포군수로 근무하고 있는 자신의 외직(外職)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려서 해준다.

물론 영덕에서 일본을 방문한 이야기나 구례에서 개천가의 땅을 개간하면서 개인적으로 일천 마지기의 땅을 확보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있다. 다만 여러 재력가로부터 사전에 투자를 받아 논을 개간하고 매년 소출을 얻어서 원리금을 장기로 갚아가는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고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영덕 현령으로 재직하면서 멀리 동래 초량의 왜관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값싸게 공급되고 있는 직조물을 구입하여 관내에 보급한 이야기를 동기들에게 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자 호조의 좌랑으로 근무하고 있는 심한수가 관심이 있어서 한가지를 친한 벗인 허굉필에게 묻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동래의 왜관에서 팔고 있는 직물이 어째서 우리 조선의 것보다 값이 싼가요? 그것은 왜국의 인건비가 더 싸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인가요?... “;

좋은 질문이다. 따라서 허굉필이 성심성의껏 대답한다; “한수, 네가 호조의 좌랑이라고 하더니 역시 그 점이 궁금하구나. 그 이유는 조선의 수공업에 비하여 일본의 수공업이 훨씬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야. 우리 조선에서는 여인들이 베틀에 앉아서 하루 종일 손과 발을 사용하여 직조를 해야 하지만 일부 왜국의 지방번에서는 그것이 아니야. 예를 들면… “.

허굉필의 이야기가 전개되자 모두를 궁금하여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부 왜국의 지방에서는 사람의 손과 발이 아니라 기계라고 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직조를 하고 있어. 그 기계를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이 바로 큰 솥에서 물을 끓일 때에 발생하고 있는 수증기. 그 힘이 대단하기에 그것을 집약하여 기계를 돌리고 있는 것이지. 대략 그 힘은 인력에 비하여 100배 이상으로 막강하고도 빠른 것이야!... “.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다. 호조 좌랑인 심한수는 물론 이조의 좌랑인 윤일윤 그리고 한성부의 야경총책인 한우진 좌랑이 모두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일동을 대표하여 심한수가 말한다; “허사또 그것이 정말인가? 그러한 놀라운 일이 실제로 왜국의 일부지방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야?... “.

우문현답이 나타난다. 허굉필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 동래의 왜관 뿐만이 아니야. 지금 청나라의 시장에서는 현지 상인들이 서양의 산업선진국들이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한 직물을 수입하여 백성들에게 싸게 판매하고 있다고 하네. 그 이야기를“;

허굉필은 잠시 말을 끊고서 벗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본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나는 구례현감을 지내고 있을 때에 벌써 청나라에서 이주한 통역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이웃나라에서는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서 급격하게 시대가 달라지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조선은 여전히 쇄국정책을 계속하고 있어요. 모두들 귀와 눈을 틀어막고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있는 셈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이조 좌랑인 윤일윤이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허굉필에게 말한다; “굉필이 자네는 어째서 지난 달에 내가 김포 관아를 방문하였을 때에 그러한 이야기를 내게 전혀 하지 아니한 것인가? 오늘에서야 다른 벗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듣게 되는구만. 시대가 그렇게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 조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 질문에 대하여 미처 허굉필이 대답을 하기 전에 호조 좌랑으로 근무하고 있는 심한수가 먼저 말한다; “그들 서양의 산업선진국과 경쟁하자면 우리 조선도 빨리 개방을 하고 그들의 선진기술을 도입하여 기계식 공장에서 값싸게 물자를 생산해야 하네. 그러하지 아니하면 종국에는 경제적으로 그들 산업선진국들에게 우리 조선이 잡아 먹히게 되고 말 것이야. 나는 그것이 크게 우려가 되네!...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수 자네가 먼저 말하고 있구만.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지!... “. 일동이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러자 허굉필이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허굉필한우진을 바라보고서 말한다; “그런데 우진이 너는 좌랑 벼슬을 가지고 있는 줄 아는데 어째서 한단계 아래의 주부가 맡고 있는 한성부의 야경총책을 아직도 맡고 있는 것이냐? 후임자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

그 말을 듣자 한우진이 대답한다; “하하하, 그것이 아니야. 지금의 한성부는 주부가 아니라 좌랑이 야경총책을 맡도록 직제가 변경되어 있어. 일종의 계급의 거품현상인 것이지. 그렇게 되다가 보면 나중에 관직의 값어치가 도매금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몰라!... “.

그때 이조 좌랑인 윤일윤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우진이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왜냐하면 지금 지방에서는 두가지 현상이 발생하고 있거든. 하나는, 돈이 많은 평민들이 양반의 족보를 돈 주고 사고 있어. 거기에 자신들의 조상을 등재하고 지방에서 양반행세를 하고 있지. 또 하나는… “;

어느 사이에 윤좌랑의 웃음이 사라지고 통탄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정말 딱한 노릇이야! 전국적으로 돈 있는 양반들이 죽은 조상들에게 높은 벼슬을 붙여주고자 권력자들에게 돈을 주고서 벼슬자리를 사고 있어요. 죽은 사람이 관청에서 일할 수는 없는 법이니 조정대신들이 마음 놓고 높은 벼슬을 거금을 받고서 그냥 팔고 있어. 그것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하고들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지. 국정의 문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아무튼 말세야, 말세!... “;

그 말을 듣자 좌중이 모두 침울하다. 그러자 한성부의 좌랑인 한우진이 자신의 잔을 높이 들고서 일동에게 말한다; “오늘은 모처럼 과거동기들이 만난 자리이니 그러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 다들 술잔을 높이 들고서 분위기를 살리자고. , 우리는 한성부의 4군자이다. 의리로 뭉쳐 한세상을 살아가자! 건배!... ”.

모두들 술을 채운 잔을 높이 들고서 한우진의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고 동시에 잔을 비운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자 좌중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때 허굉필이 이조 좌랑인 윤일윤에게 질문한다; “일윤아. 네가 근무하고 있는 이조에는 김철진(金鐵珍) 장령이 있지 않니? 그와 잘 알고 지내니?... “.

허굉필이 이조 장령인 김철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이유는 오래 전에 한성부의 야경담당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에 호조의 김유진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자리에서 이조의 김철진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김유진이 다음과 같이 그를 허굉필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내 사촌 형인 김철진이야. 이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 동기이며 벼슬이 같아. 나이는 철진 형이 나보다 1살이 많아. 앞으로 굉필이 자네가 나 보듯이 형님으로 잘 모시라고, 하하하… “. 허굉필이 자기보다 2살이 많은 김철진에게 예의 바르게 종로의 기방에서 인사한 적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윤좌랑이 허굉필을 보고서 대답한다; “그래, 내가 모시고 있는 상관이 바로 김철진 장령이야. 그리고 우리와 과거동기인 김호선(金好善)도 장령인데 그는 나의 상관이 아니야. 그것이 천만다행이지. 나는 처숙부 공진사의 서당동기인 이조참판 정학수(鄭鶴壽)의 도움이 있기에 이조에서 나름대로 보람 있게 일하고 있어”.

그 말에 심한수가 즉각 말한다; “김호선은 과거에서 장원을 했지. 게다가 그는 안동 김씨이지. 6품 주부에서 출발하여 벌써 막강한 이조에서 정4품 장령이구나. 역시 안동 김씨의 세도가 대단하구만!... “.

그러자 허굉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심한수에게 말한다; “하기야 김호선이 나보다 2살이 많지. 그리고 애초에 주부에서 벼슬을 시작했으니까 그럴 것이야”. 그 다음에 그는 윤좌랑에게 말한다; “그런데 일윤아, 이조에는 장천웅(張天雄) 참의가 있지 않니? 혹시 장 참의가 너의 직속 상관이 아니니?... “;

그 말을 듣자 윤일윤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 굉필아, 네가 이조의 벼슬아치들에게 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빨리 승진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 하하하그런데 내가 모시고 있는 김철진 장령은 그쪽 줄이 아니야. 사실은 김호선 장령이 장 참의를 모시고 있지. 왜냐하면, 장 참의가 본래 이판 김용범 대감을 모셨던 사람이고 김호선이 김대감의 조카이거든. 족보가 그래, 하하하“.

그 말에 허굉필은 시야가 확 트이는 것만 같다. 조정에서 특히 이조에서 안동 김씨 가운데 두 파가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파벌은 전직 이판 김용범 대감의 줄이다. 그 손발이 장천웅 참의이고 김호선 장령이다. 또 하나의 파벌은 전직 호판 김형술 대감의 줄이다. 그의 조카인 김철진 장령이 이조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호판 출신 김형술 대감의 아들이 호조에서 장령으로 일하고 있는 김유진이다. 따라서 김형술 대감은 조정의 대신 자리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호조와 이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판 출신인 김용범 대감이 역시 조정에서 물러나 여전히 백의정승처럼 행세하고 있다.

자연히 안동 김씨의 인물들이 한양에서는 김용범 대감의 파벌 또는 김형술 대감의 파벌 가운데 하나에 연줄을 대고 있다. 막후 실세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가 대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김용범 대감이 외아들 김학수가 장악하고 있는 쌍문점의 살수들을 동원하여 김형술 대감의 아들 김유진 장령을 제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생각을 정리한 허굉필이 속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며칠 전에 발생한 명월 기방의 괴한 침입사건은 그 살인대상이 병조 참의인 홍재덕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안동 김씨이지만 파벌이 다른 김형술 대감의 자제인 김유진 장령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면 김용범 대감의 심복인 이조의 장천웅 참의의 입만 봉하면 된다. 김대감까지 없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허굉필210일 저녁에 윤일윤의 자택에서 벗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야 이웃 마을에 있는 하숙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푹 쉰다. 윤일윤의 집에서 만난 여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최선미도 피곤하다고 하면서 하루를 쉰다;

다음날 12일이 되자 허굉필이 육조거리에 있는 병부로 가서 참의 홍재덕을 방문한다. 두사람이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허굉필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한다; “안동 김씨의 실권을 두고서 전직 이판과 전직 호판이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직 이판 김용범 대감이 쌍문점의 살수들을 동원하여 전직 호판 김형술 대감의 아들 김유진 장령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김용범 대감의 심복인 장천웅 참의의 입만 봉하면 충분합니다!... “.

그 말을 하고서 허굉필홍재덕의 얼굴을 쳐다본다.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면서 홍참의가 허군수에게 말한다; “굉필이 아우, 걱정하지 마시게. 이미 장천웅이는 내가 직접 처리를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안심을 해도 되겠구만. 하여튼 몇 년만 버티면 새로운 조선을 만들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

그 말에 허굉필이 일어나서 홍재덕에게 절을 하면서 말한다; “재덕이 형님, 좋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우리는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비밀리에 움직여서 지금의 조선을 끝내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세가 몰려들기 전에 스스로 자주, 자립, 자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너무 늦게 되면 서양세력에게 굴복하고 있는 청나라의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인사를 마치고 허굉필은 남산골 최경수의 집으로 돌아온다. 최선미와 아들 허지서를 데리고 212일 한양을 출발하여 저녁이 되기 전에 김포의 관아에 도착한다. 그는 김포군수로 어떠한 일들을 앞으로 더 처리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