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28. 00:5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5(손진길 소설)

 

1858년 늦은 봄과 여름 그리고 초가을에는 김포군수인 허굉필이 공무로 상당히 바쁘다. 어업을 주로 하고 있는 연안지역은 이제 무관인 통진 도호부사 조항준이 자신의 관할로 삼고 있기에 김포군수는 농업지역인 내륙의 들판만 잘 보살피면 된다.

그에 따라 정4품 장령 벼슬을 가지고 있는 허군수는 늦은 봄 모내기철부터 논에 나가서 군내의 농정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그는 치수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포평야가 한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풍부한 수량을 농업용수로 끌어들이는 시설을 사전에 보강하는 것이 풍흉의 관건이 되고 있다.

여름철 내내 허군수는 아침 일찍 기상하여 관내의 하천과 보 그리고 농수로를 살피고 다닌다. 군수보다 더 일찍 첫새벽에 부지런한 농민들이 들판의 논에 나와서 물꼬를 터주고 있다. 자신의 논에 물이 들어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농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벼는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다. 농민들이 애지중지 자식처럼 제때 물을 대어주고 가라지와 피를 뽑아주어야 쑥쑥 자라나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들은 자식 키우는 것이나 논에서 벼를 키우는 것이나 매일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농사꾼의 피와 땀을 먹고 자라는 것이 논바닥의 벼이다.

여름에 벼에서 열매가 맺히고 뜨거운 햇살에 수분이 증발하면서 벼의 열매가 영글어 간다;

 그리고  장마와 태풍에 쓰러지지 아니하고 버티어 내야 비로소 풍작으로 연결이 된다. 그 모든 과정에 농부들의 보살핌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니 한해 농사를 짓고 나면 농민의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지고 그 얼굴은 폭삭 늙어 보인다. 그렇지만 열매가 풍성한 벼를 낫으로 베어 날라 볏단을 탈곡할 때에는 그 얼굴에서 만족한 웃음이 끊이지 아니한다. 그것은 마치 자식농사를 잘 지은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 김포군의 수령인 허굉필이 농부의 심정으로 군민들과 애환을 나누며 현장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한해의 농사가 끝나고 농한기에 접어들자 통진 도호부사인 조항준이 연락을 준다; “허군수, 한해농사가 잘 끝났으니 이제는 나와 함께 서해안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 어떻겠어요?”.

3품 대호군 부장인 조항준은 이웃의 들판에서 정4품 장령인 허군수가 알뜰살뜰하게 농민들과 어울려서 한해동안 농정을 돌보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 인물이다. 그가 허군수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요즈음 친구삼아 지내고 있는 병조의 참의 홍재덕 때문이다.

홍참의가 허군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조정에서 소수파인 남양 홍씨와 풍양 조씨가 손을 잡고서 다수파인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은밀하게 반쪽짜리 왕족인 흥선군과도 손을 잡고 있다. 서로 연배가 비슷하기에 그 3사람은 정치적으로 친밀한 관계이다.

그러한 속사정을 가지고 있는 조부사이기에 허군수에게 호의적이다. 나이는 조항준허굉필보다 4살이나 연상이다. 그러나 연령에 상관하지 아니하고 좋은 벗으로 지내기를 원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양출신인 조부사가 시골출신인 허군수에게서 배울 점이 나름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늦가을에 함께 수군의 함정을 타고서 통진 도호부 관할의 연안을 순찰할 때에 조부사허군수에게 그의 성장과정에 관하여 물어본다; “허장령은 경상도 남부의 김해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은 여기 김포군과 들판이 비슷합니까? 한해동안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허군수가 농정에 상당히 밝아서 말입니다,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자신의 고향이야기와 더불어 경상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하기 시작한다; “경상도에서는 평야다운 평야라고 하면 저의 고향에 있는 김해평야 뿐입니다. 그 옛날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약간의 벌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평야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것이지요. 그리고 산이 많은 강원도와 충청도에도 평야다운 평야가 없어요… “.

조부사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서 허군수가 이어서 말한다; “제가 작년에 고향방문을 하고서 상경하는 길에 살펴보았더니, 역시 농지가 부족한 경상도와 충청도에는 산중턱에 천수답(天水畓)계단식 논이 많아요. 얼마나 들판에 농지가 부족하고 소출이 적으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산중턱에 힘들게 계단식 논을 만들어 경작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

그 말을 듣자 조부사가 아는 체를 한다; “나는 한양출신이지만 그래도 천수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요. 그것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어야 비로소 논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그것참 농사의 풍흉이 완전히 하늘에 달려 있군요. 참으로 고된 농사입니다. 먹고 살기가 정말 어려운 고장이군요… “.

허군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러한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와 비교하면 전라도는 그야말로 곡창 지대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구례현감을 지내면서 인근의 나주평야를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 평야는 비옥하고도 넓었어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

허군수의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흥미가 있다. 따라서 조부사가 경청한다; “전라도의 북쪽에는 더 비옥한 호남평야가 있어서 조선의 곡창 중의 곡창으로 불리고 있지요.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전라도의 곡식을 한양으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서해의 연안으로 북상하는 조운해로를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

갑자기 허군수가 말을 끊고서 조부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정답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허허허, 생각해보니 이것은 통진 도호부사인 조형님이 더 잘 아시는 내용이겠군요. 매년 조운선(漕運船)이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전라도에서 거두어들인 양식을 조심스럽게 물길을 따라 서해로 운반하여 한강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듣자 조부사가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맞아요. 통진 도호부에서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지요. 조운선이 마포나루에 도착하면 양곡을 호조에서 관리하는 창고에 저장합니다. 한양에 살고 있는 왕족들과 조정대신들 그리고 여러 관료들이 모두 조운창고에서 양식을 얻고 있지요. 왕궁에서는 직접 육로로 이천지역에서 좋은 품종의 쌀을 운반하여 오기도 하지요, 허허허… “.

허굉필이 듣고 보니 무관인 조항준이 나름대로 호조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속으로 생각한다; ‘한양 출신으로 금위영에서 오래 근무한 무관인 조부사가 생각보다 생각의 폭이 넓구만. 그 옛날에 이판의 아들 김학수와 각을 세우고 있던 이 사람이 나름대로 조정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홍참의와 함께 조정을 이끌어갈 지도 모르겠구만!... ‘.

그렇게 생각이 되자 허굉필조항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고자 한다; “통진부의 수장이시니 형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서해의 연안에는 조류의 변화가 심합니다. 더구나 간만의 차이가 크고 뻘이 많아서 수심이 얕아요. 게다가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어요. 따라서 경험이 많은 사공이 아니면 조운선을 몰고서 함부로 서해안으로 접근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

갑자기 허군수가 바다 이야기를 하자 조부사가 귀를 기울인다. 재미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옛날 충무공이 왜선과 해전을 벌일 때에 그 점을 잘 이용했지요. 일본의 간자들이 조선의 동해안과 남해 일부에 대해서는 사전조사를 철저하게 했지만 서해에 대해서는 그러하지가 못했어요. 따라서 멋모르고 서해로 침투했다가 조수간만과 와류 그리고 암초를 십분 활용한 충무공의 지략에 걸려서 그만 낭패를 당하고 말았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조항준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이 친구 허군수가 보통 인물이 아니구만! 농정에 밝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지세와 지형지물에도 박식하고 전략과 전술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허군수와 적이 되는 사람은 참으로 힘이 들겠어. 반대로 우군이 되면 그야말로 대단한 도움을 얻을 수가 있고 말이야. 그래서 홍참의가 허군수와 잘 사귀라고 내게 말했구만!... ‘.

그렇게 생각이 되자 조부사가 솔직하게 허군수에게 말한다; “이거 앞으로 허군수 그대가 나를 많이 도와주어야 하겠어요. 사실은 내가 통진 도호부사로 부임하게 되자 홍참의가 그대와 잘 지내라고 당부했지요. 그가 어째서 그러한 당부를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군요. 허군수가 세상이치에 밝으니 내가 배울 점이 많아요. 내가 좋은 아우를 얻게 된 셈이군요, 허허허… “.

그 말을 하면서 조항준허굉필의 손을 잡는다. 넓은 바다를 보면서 함께 군선을 타고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마음도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허군수가 조부사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한다; “이것도 인연이니 앞으로 형님으로 알고서 잘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쌍문점의 주인인 김학수와는 별탈이 없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조부사가 난감한 기색이다. 후유 한번 숨을 쉬고서 대답한다; “지금은 내가 통진 도호부로 나와 있기에  한숨을 돌리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한양의 조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그때에는 어떻게 될 지 몰라요. 김학수가 나름대로 한양의 밤을 지배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이니 참으로 위험하지요!... “.

허굉필이 파악하기로는 조항준은 심계가 깊고 무예도 출중한 인물이다. 그러한 그도 살수집단을 두고 있는 김학수의 암수에 빠지지 아니하기 위하여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조정에서 안동 김씨의 세력을 직접 견제하고 있는 홍참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정도의 정보교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날 선상에서의 두사람의 대화는 끝이 나고 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허군수는 시간을 내어 한양을 조용히 방문한다. 그 이유는 일전에 홍참의에게 말한 그대로 흥선군의 주위를 한번 은밀하게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흥선군이 살고 있는 집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허굉필은 간편하게 무인의 복장을 하고서 그 주위를 걸어본다. 그 옛날 한성부의 야경담당으로 오래 일하면서 그 일에는 익숙한 허굉필이기에 행동거지가 은밀하면서도 참으로 자연스럽다.

그렇게 이틀을 그 주위에서 맴돌면서 그는 흥선군이 출입할 때에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한다. 흥선군을 호위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상당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보이는 자가 적어도 4명이나 있다. 그들이 자신의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기에 흥선군이 한양의 거리를 활보할 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3일째가 되는 저녁시간에 흥선군의 집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골목에서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허굉필의 눈에 뜨이고 있는 그 사건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