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28. 20:4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6(손진길 소설)

 

12. 흥선군의 구명의 은인이 되다

 

18581212일 밤이다. 한해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12월 중순에 들어서서 그런지 한양의 밤이 흥청거리고 있다. 날씨는 차갑지만 종로의 기방은 부호들과 높은 관리들이 망년회를 겸하여 매일 밤 모임을 가지고 있기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자연히 왕족에 속하는 흥선군도 한해동안 자신을 지키느라고 수고한 호위무사들과 자신의 두뇌가 되어 주고 있는 문객들에게 한턱을 내느라고 기방을 빌려서 하룻밤을 즐기고 있다. 그 모습을 무복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허굉필이 무심한 듯이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 모임이 끝나자 모두들 별로 멀지 아니한 흥선군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뒤를 멀찍이 허굉필이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골목길에서 나타난 검은 옷의 사내가 흥선군 일행과 허굉필의 중간지점에 끼어들고 있다. 그 사내의 출현에 허굉필은 신경을 크게 쓰고 있다.

그 검은 옷의 사내는 행동이 민첩하고 등에는 장검이 비스듬히 메어져 있다. 아무래도 전문 살수의 냄새가 나고 있다. 허굉필은 한성부의 야경담당으로 5년간 재직한 경험이 있기에 그 점을 재빨리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그 사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용의주도하게 살피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내는 흥선군 일행이 저택에 들어설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아니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두운 골목에서 반()시진 정도 몸을 숨기고 있던 그 사내가 마침내 한 마리의 검은 새처럼 가볍게 흥선군 저택의 담을 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도 담을 넘어간다.

그런데 흥선군이 잠들어 있는 방이 어디인지 금방 파악이 된다. 그 이유는 그 방이 있는 사랑채를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 3명이 마당에 장작불을 지펴 놓고 숙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간 그 사내는 벌써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등에서 장검을 빼내어 숙직하고 있는 호위무사 3명에게 비호같이 달려든다;

비록 31의 대결이지만 복면의 사내의 무예가 월등하다. 따라서 단숨에 2명의 호위무사가 쓰러진다. 나머지 한 명도 살수의 검에 밀려서 멀리 넘어지고 만다. 그 순간 그 살수가 비호와 같이 방안으로 쳐들어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허굉필은 너무나 급하여 자신의 손에 활을 들고서 허리춤의 화살을 꺼낸다. 그리고 방안에서 비치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서 급히 조준을 한다. 살수가 들어서는 기척에 흥선군이 깨어나 급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순간이 포착되고 있다;

그 짧은 순간에 살수의 검이 흥선군의 목을 향하여 베어간다. 그러나 그의 검은 중간에 움직임을 중단하고 만다. 그 이유는 하나의 강한 화살이 날아와서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고 말기 때문이다. 흥선군은 어느 사이에 속옷이 젖어 있다. 생사의 고비를 경험하였기에 식은 땀이 전신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살아남은 호위무사와 함께 허굉필이 방안으로 뛰어들어간다. 허굉필의 손에는 활이 여전히 들려 있다. 그것을 보고서 흥선군이 급히 말한다; “자네는 누구인가? 그대가 이 긴박한 순간에 나의 목숨을 구해준 것인가? 나의 호위무사가 아닌 자네는 도대체 누구인가?... “.

방안에 함께 뛰어 들어간 호위무사도 그 점이 궁금한지 허굉필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때 허굉필이 예를 갖추면서 흥선군에게 말한다; “저는 병조참의 홍재덕 영감을 모시고 있습니다. 연말이라 대감의 안위가 염려되어 제게 비밀리에 경호를 부탁했지요. 마침 살수가 뒤따르고 있는 것을 운 좋게 제가 파악하게 되어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흥선군이 예를 갖추면서 말한다; “정말 고마우이. 나는 잠에 들려다가 마침 방안으로 뛰어들고 있는 기척을 발견하고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어. 그러나 살수의 칼날이 날아들고 있기에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어. 하지만 살수가 쓰러지고 있더군. 강한 화살이 그 자를 즉살했기 때문이지. 내가 자네에게 오늘밤 구명의 은혜를 입었어!... 그래 자네는 신분이 어떠한가?... ”.

흥선군허굉필과 대화하는 사이에 호위무사가 얼른 살수의 시신을 마당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자 다른 호위무사들이 변고가 발생한 줄 알고서 마당으로 집합하고 있다. 그때 그날 밤 호위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 수하에게 지시를 끝마치고 얼른 방안으로 들어선다.

허굉필이 그 자의 용모를 보니 안면이 있는 천용범이다. 한때 한양에서 이름깨나 날린 친구이다. 완력이 상당하고 검술도 뛰어난 인물인데 그 자가 오늘밤 흥선군 저택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용범이 무복을 입고서 손에 활을 들고 있는 허굉필을 보더니 입을 뗀다; “누구신가 했더니 그 옛날 유명한 한성부의 허 나으리셨군요. 이거 오늘밤 신세를 크게 졌습니다. 허 나으리, 감사합니다!... “.

허굉필이 야경담당시절에 한양에서 밤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무인 천용범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강무관의 고향친구인 천용범허직장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친구 강무관에게서 들었습니다. 문관이신 허직장께서는 명궁의 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참 문무를 겸비하셨으니 부럽습니다, 하하하… “;

흥선군이 그날 밤 호위대장 천용범의 설명을 듣고서 허굉필의 신상을 파악한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찍이 한성부에서 야경담당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는 허굉필 나리이군요. 그래 지금은 어디에서 근무하고 계신가요?... “.

그의 말은 단순히 병조참의 홍재덕 영감의 호위무사가 아닌 것을 알고서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말에 허굉필이 어쩔 수가 없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감, 밤이 깊었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술을 한잔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괜찮겠습니까?... “.

흥선군은 나름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더니 호위대장 천용범에게 지시한다; “천서방, 그대는 주방에 말해서 간단하게 주안상을 이 방에 들이도록 하게.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오늘은 밤새도록 허나리와 대작을 하고 싶구만. 그리고 이방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도록 부탁하네”.

천용범이 방안에서 나가자 흥선군이 갑자기 일어나서 허굉필 앞에 넙죽 절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깜짝 놀라서 맞절을 한다. 그의 귀에 흥선군의 진솔한 말이 들린다; “오늘 나의 생명을 구해 주셨으니 은인 중의 은인입니다. 그런데 당장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고마움의 절 밖에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 나으리“.

그 말을 듣자 맞절을 하면서 허굉필이 속으로 생각한다; ‘흥선군 이자는 은원(恩怨, 은혜와 원한)이 분명한 사내이구나. 은혜와 의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솔직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그 주위에 진심으로 따르는 인물들이 많겠군. 능히 하나의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는 왕족이야. 이거 편하게 반쪽짜리 왕족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사람이군!... ‘;

따라서 허굉필이 그날 밤 흥선군과 대작을 하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사실 저는 한성부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나중에 외직으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구례현감과 영덕현령을 지내고 지금은 김포군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병조참의 홍재덕 영감은 제가 한성부에서 근무할 때에 서로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그 말을 듣자 흥선군이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홍 참의가 두목 기질이 있지요. 따라서 호형 호제하는 벗들이 꽤 있다고 나는 알고 있어요. 그 중에 김포군수 허굉필 나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와 알고 지낸 세월이 제법 되는데 한번도 그 이름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허허허… “.

그 말에 허굉필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홍형님이 분명히 그렇게 처신했을 것입니다. 저와의 인연이 오래되었지만 제가 긴 세월 지방을 떠돌다가 한양 가까운 김포군으로 들어온 지가 몇 년 되지 아니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대감하고는 그 사이에 친교가 생겼기에 그렇겠지요, 하하하… “.

술잔을 서로 기울이다가 문득 흥선군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허군수홍 참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자연히 나보다 연하이군요. 그러니 이제부터 나 흥선군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러면 나는 오늘밤에 구명의 은인을 아우로 삼게 되니 이거 일거양득이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흥선군에게 절을 하면서 말한다; “제가 알기로는 대감께서 홍 참의보다 1년 연상입니다. 그러니 제가 대감을 큰 형님이라고 부르고 홍 참의를 작은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알고서 모시겠습니다.어떻습니까?... “.

그 말에 흥선군 역시 절을 하면서 말한다; “오늘밤에 기이한 인연으로 내가 김포군수 허굉필을 나의 아우로 맞이합니다. 그 의리 변하지 아니하고 조선의 앞날을 우리 함께 열어가도록 합시다. 나는 오늘밤 참으로 기쁩니다. 목숨을 새로 얻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기재를 아우로 얻었기 때문이지요. 자 일배를 합시다!... “.

흥선군은 많은 술을 마셨기에 크게 취하고 있다. 저녁부터 종로의 기방에서 마시고 또 자택에서 허굉필과 대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일 새벽에 내공수련을 하고 있는 허굉필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겉으로는 상대만큼 취하는 척한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취를 하게 되자 흥선군허굉필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마디 약속을 한다; 굉필 아우, 이 형이 힘은 없지만 훗날 힘을 얻게 되면 한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줄 것이야. 그것이 오늘 입은 은혜를 갚는 길이지. 흥선은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거든, 하하하“.

그 말을 허굉필취중진담(醉中眞談, 술이 취해서 무심결에 하는 정직한 말)으로 알아 듣고 있다. 따라서 그는 훗날 흥선군이 집권하게 되면 그의 힘을 빌려서 조선의 앞날도 열어가고 자신의 처족의 신원회복을 하려고 결심하게 된다. 과연 그의 소원이 훗날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