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5. 06:11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8(손진길 소설)

 

1860720일 한밤중 자시(子時)가 시작되고 1식경 정도가 지났을 때에 종로의 골목안에 자리잡고 있는 쌍문점(雙聞店)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24명의 무인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검은 복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등에는 장검이 하나씩 메어져 있다. 그 중의 한사람의 무인은 손에 강궁을 들고 있으며 허리춤에는 화살통이 걸려 있다. 그리고 등에도 화살통이 또 하나 메어져 있다. 대충 보아도 그 화살의 수가 20개나 된다. 그 자가 바로 장령 허굉필이다.

쌍문점 정문에는 두사람의 무사가 서있다. 그들이 수상한 자의 출입을 막고 있다. 그것을 멀리서 본 허장령이 두대의 화살을 한꺼번에 그곳으로 날린다. 정확하게 2명의 문지기가 찍 소리도 못하고 비명횡사를 하고 만다. 그 비정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고서 홍참판조참의가 새삼 놀라고 있다.

그러자 평소 흥선군을 모시고 있는 4명의 호위대장 가운데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천용범(千勇凡)이 가장 앞장을 서서 대문안으로 돌진한다. 그 뒤를 3명의 호위대장이 바짝 뒤따르고 있다. 그 다음에는 신임 병조참의 조항준이 검을 빼어 들고서 휘하 5명의 무인들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조금 뒤에 신임 병조참판 홍재덕 영감이 10명의 무장들을 이끌고 쌍문점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는 무인이 2명이다. 검을 앞세우고 돌진하고 있는 무사가 이제는 금위영에서 종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강천무이다. 그의 옆에서는 다모 최선미가 역시 검을 들고서 돌진하고 있다.

제일 후미에서 허장령은 그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서 대문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최다모와 강종사관이 벌이고 있는 적과의 대결장면을 유심히 살핀다. 생각보다 적들의 수가 많다. 아마도 백의정승으로 불리고 있는 이판 출신 김용범 대감이 아들 김학수에게 지시하여 쌍문점의 경계를 엄청 강화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에 병조의 인사에 있어서 파란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동 김씨가 조정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만 병조에서는 대비 남양 홍씨의 당숙인 홍재덕이 참판이 되고 또한 왕대비 풍양 조씨의 일가 조카인 조항준이 참의가 되었다. 그러므로 병조에서 세력을 형성한 그들이 언제 수하들을 이끌고서 쌍문점을 칠지 모르는 비상사태인 것이다.  

그렇지만 김용범 대감 부자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흥선군의 호위대장 4명과 허장령을 비롯한 3인이 거기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밤에 쌍문점의 여러 마당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투는 침입한 복면인 24명과 그들을 막고 있는 살수들 40명 및 그들의 두목인 김학수의 대결이다;

수적으로는 쌍문점 살수들이 우세하다. 그러나 초장의 우세가 어느 사이에 무너지고 있다. 그 주요인이 멀리서 날아들고 있는 강력한 화살 때문이다. 허장령의 화살에는 엄청난 내력이 실려 있으며 마치 예리한 눈이 달려 있는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가 어두운 곳에 숨어서 발사하고 있는 그 화살이 한창 최다모와 강종사관을 공격하고 있는 살수들의 심장과 목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순식간에 꽂히고 말기 때문이다. 그 화살을 적들은 막을 방도가 없다.

그렇게 10명의 적들이 비명횡사를 하고 무예가 뛰어난 홍재덕조항준 그리고 강천무천용범이 크게 활약을 하여 8명의 적을 단숨에 해치우게 되자 드디어 수적으로 침입조가 우세하게 된다;

 그런데 쌍문점의 주인 김학수가 열심히 전투를 하다가 한번 주위를 살펴보니 담벼락에 숨어 있는 무사가 연속 화살을 날리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부하를 가장 많이 쓰러뜨리고 있다.

그 점을 깨닫고 그가 급히 허장령이 숨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고 있다. 일찍이 어영청(御營廳)에서 종사관으로 크게 활약한 바가 있는 김학수는 그 무예가 상당한 경지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쌍문점의 주인이 되어 살수집단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김학수는 저격수가 화살을 날리지 못하게 되면 별볼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허장령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일생일대의 실수이다. 어느 사이에 강한 화살 하나가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그에게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급해서 김학수가 자신의 검으로 그 화살을 베어간다.

그러나 그 화살의 힘이 너무 강하여 칼을 맞고서도 멈추지 않는다. 분명이 두 동강이가 되었는데 불구하고 앞부분의 화살촉이 약간 방향을 바꾸어 기어코 김학수의 가슴에 박히고 만다. 다행히 심장을 피한 곳이다. 대노한 김학수가 그대로 허장령에게 돌진한다.

숨어서 화살을 날리고 있던 허굉필로서는 실로 난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몸놀림이 유연하다. 슬쩍 그 자리에서 옆으로 비껴 나더니 번개같이 날아들고 있는 김학수의 검을 교묘하게 피하고 만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강궁을 마치 몽둥이처럼 사용하고 있다. 빠르게 허장령이 자신의 강궁을 휘두르자 그것이 자신에게 돌진하고 있는 김학수의 얼굴을 가격하고 만다. 그 순간 김학수의 얼굴이 그대로 함몰되고 있다. 그것은 김학수의 머리가 허굉필의 강궁에 실려 있는 내력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 결과이다.

머리가 부서진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다. 허장령의 바로 앞에서 김학수가 그만 파란만장한 삶을 끝내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은 마음이 아프다. 안동 김씨의 실권자인 김용범 대감의 외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다하고 말았으니 앞으로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그 때문에 훗날 허굉필은 권력다툼과 정파 간의 음모와 쟁투가 끊이지 아니하는 조선의 왕도 한양을 그만 떠나고자 결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허장령은 김학수가 쓰러진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난다. 그리고 다른 마당으로 이동하여 역시 은신을 하고서 최다모강종사관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 두사람을 잘 지키는 것이 자신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허장령은 적들이 눈에 뜨이는 대로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 결과 10명 이내로 살수의 수가 줄어들자 그들은 담을 넘어 한꺼번에 도망을 치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두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발사한다. 그리고 무예가 뛰어난 홍재덕조항준 그리고 강천무천용범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검을 마치 비도처럼 날린다.

그 결과 담을 넘어 도망을 치려고 시도하던 살수들이 한사람도 살아서 피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침입조의 대장인 홍참판이 급히 명령을 내린다; “빨리 저택을 수색하라. 숨어 있는 적을 모조리 척살해야 한다. 한 놈도 살아서 이집을 빠져나가서는 안된다!”.

그날 밤 한 시진 안에 쌍문점의 살수들이 완전히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소탕이 있고 나서야 그날 밤의 작전이 끝나고 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어두운 골목을 타고 은밀하게 이동하여 흥선군의 저택에 다시 집합한다. 그곳에서 복장을 바꾸고서 아무 말이 없이 각자 헤어지고 있다.

새벽이 되자 허장령최다모와 함께 말을 타고서 김포군 관아로 되돌아온다. 전날 저녁에 김포에서 출발하여 한양에 들어간 두사람이다. 그들은 먼저 종사관 강천무를 만나 함께 흥선군의 집에 자시가 시작되기 직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동지들과 함께 쌍문점의 살수집단을 요절낸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백의정승 김용범 대감은 쌍문점 현지의 소식을 듣고서 그만 졸도를 하고 만다. 외아들 김학수와 그가 이끌고 있던 살수들 40명이 전원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넋이 나가버린 김용범 대감이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그것이 어쩌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하나의 큰 구멍이 생기게 된 것을 의미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김학수와 그의 살수집단이 그동안 조정대신들과 높은 관리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었는데 그것이 일시에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덕을 흥선군홍참판 그리고 조참의가 단단히 보고 있다. 그때부터 그 3사람에 대한 안동 김씨 세도가의 견제와 감찰이 크게 약화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김포군수인 허장령이 활동하기에도 상당히 수월해지고 있다.

그렇게 철종 11년인 서기 1860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밝아오자 1861년에 허굉필의 신상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그해 2월 초순에 허굉필이 승진하여 종3집의(執義)가 되자 더 이상 군수의 직책에 머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외직(外職)으로 부사가 되어 나가거나 조정에서 집의로 근무해야 한다.

그 문제를 두고서 2월 중순에 흥선군의 집에서 4사람이 모이고 있다. 병조의 홍참판조참의 그리고 김포군수인 허굉필이 흥선군과 숙의하고 있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허굉필이 한권의 책을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준다;

무슨 서적인가 궁금하여 그 내용을 살피고 있던 3인이 깜짝 놀란다. 오래전에 사라진 한양의 거상 오대방의 치부책이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허굉필의 말이 뒤따르고 있다; “이 장부는 제가 오대방의 딸인 오행수가 살해되는 그 현장에서 그녀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그녀는 이 책을 저에게 주고서 숨을 거두고 말았지요. 따라서 저는 “.

말이 없는 그들에게 허굉필이 분명하게 말한다; “오대방 부녀가 자신들의 목숨과 바꾼 이 치부책을 훗날 이 세상을 바꾸는데 사용하고자 은밀하게 보관하고 있었어요. 이제는 제가 이 책을 3분 형님께 보여드리고 이것을 왕족이신 흥선군 형님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그러니… “.

모두들 허굉필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가 말을 맺는다; “부디 조정의 정치를 개혁하는데 중하게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한가지 개인적인 청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처조부가 되시는 판관 하용만(河勇萬)의 억울한 사정을 파악하여 신원회복이 되도록 조치해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3인을 대표하여 흥선군이 확실하게 말한다; “잘 알겠어요. 이 치부책을 사용하여 우리 조선의 조정에서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할 것입니다. 우리 3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판관 하용만 집안의 신원회복은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면 가장 먼저 그 일을 조치할 것입니다. 허집의 정말 고맙소. 그 밖에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

그 말에 허집의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한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고향 가까운 거제부의 수령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세요. 오랜 세월 객지생활을 계속하다가 보니 이제는 고향 가까이에 가서 한번 벼슬아치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부디 힘을 좀 써 주십시요!”.

그 말을 듣자 동석하고 있던 홍참판이 껄껄 웃으면서 기분 좋게 말한다; “굉필 아우,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이조 참판에게 이야기하여 그대를 거제부의 수령으로 발령이 나도록 힘을 써줄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형들을 멀리 떠나겠다고 하니 그것은 서운합니다, 하하하… “.

그래서 그런지 18612월 하순에 허굉필이 경상도 남해안의 거제도부의 수령으로 발령이 난다. 그는 2월말에 김포군의 관리들과 유지들에게 하직인사를 하고서 최다모와 자녀들을 데리고 남행을 한다.

이제 거제부에 도착하게 되면 과연 종3집의 허부사의 가족은 어떠한 일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