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11. 08:57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0(손진길 소설)

 

18619월에 들어서자 갑자기 하동 관아에서 청나라 말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이인용이 거제 섬을 방문하여 허굉필 부사에게 예방을 요청하고 있다. 허부사는 매년 10월 하순이 되면 전라도 구례를 방문하는 길에 그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런데 금년에는 어쩐 일인지 그가 일찍 거제부의 관아를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허부사는 즉시 병방 조문용(趙問勇)에게 그를 데리고 집무실로 오라고 지시한다. 잠시 후에 이인용이 조병방과 함께 부사의 집무실에 들어온다. 허부사는 조병방에게 젊은 다모 지조영(池朝英)에게 다과를 부탁해달라고 말한다. 조병방은 허부사의 말이 차만 들여 보내고 둘이서 대화를 할 것이니 자리를 피해달라고 하는 뜻인 줄 알아 듣고 있다.

허굉필이 지난 봄에 거제부사로 부임하자 한가지 인사조치를 했다. 그 내용은 이제 나이가 37살이나 되는 최다모를 내아에서 두 자녀를 돌보면서 편히 쉬게 하고 다모의 일을 대부분 젊은 관비 지조영에게 맡긴 것이다. 20대 초반의 그녀는 늘 하던 일이라 관아에서 허부사를 잘 모시고 있다.

이인용은 자신보다 2살 연상이고 또한 거제부의 수령인 허굉필에게 깍듯하게 예를 차린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말한다; “이인용, 그대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은 아우로 여기고 있어요. 그러니 형의 집무실을 방문했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나와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으면 좋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말한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작은 고을 하동현의 일개 통역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종3품 거제부사인 허나리에게 그에 합당한 예를 차리지 아니할 수가 있겠어요… ”.  

그 말에 허부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이통역은 특별한 인물이니 괜찮아요. 여기 조선천지에서 매년 청나라의 홍콩 섬을 방문하여 영국의 문물을 접하고 또한 그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대 이인용 밖에 없는 줄 알아요;

 그러니 내가 그에 합당한 선각자 대접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인용 그대와 같은 아우를 두게 되어 참으로 마음이 기뻐요, 허허허… “.

그제서야 이인용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부사께서는 저의 둘째형 이지룡과 동갑이시고 또한 친분이 남다르시니 제가 앞으로 지룡이 형을 대하듯이 그렇게 처신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지요?... “. 그 말에 허부사가 웃으면서 말한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하하하그래 오늘은 어쩐 일로 나를 찾아 왔어요?... “.

사실은 이인용의 방문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러자 그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용건을 말한다; “굉필이 형님, 사실은 제가 홍콩 섬에서 만난 영국함선의 선장이며 제독인 스미스와 친합니다. 그가 제게 인편으로 서신을 보내왔어요. 그 내용이 중차대하여 거제부사인 형님과 상의하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깜짝 놀랄 내용이다. 그렇지만 허부사는 신중하게 이인용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나머지 이야기를 빨리 하라는 것이다. 허부사의 귀에 그의 설명이 들려온다; “스미스가 제게 부탁하고 있는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금년 추석한가위가 되기 전에 동래에 들린다고 합니다. 함선을 절영도에 정박하고 영국의 면직물을 왜관으로 운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현지에서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해요. 또 하나는, 차제에… “.

첫번째의 내용은 허부사와 별로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그 다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허부사가 귀를 기울인다. 이인용이 이어서 말한다; “동래부사에게 요청하여 조선의 조정에서 영국과 교역할 수 있도록 보고를 올리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일을 부탁하고 있기에 제가 거제부사이신 형님을 오늘 찾아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허부사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 다음에 신중하게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요. 그렇다면 스미스 제독이 동래부사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영국의 요청서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나요?... “.

이인용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스미스가 비공식적으로 제게 그 공문의 내용을 미리 서신으로 알려주었지요. 그리고 공식적인 공문은 그가 동래에 도착하여 동래부사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참고로, 그가 제게 알려준 문서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품속에서 영어로 작성되어 있는 서신을 꺼내어 허부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고 있는 허굉필은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그것을 보고서 이인용이 친절하게 말한다; “형님, 제가 대체적인 내용을 번역하여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가 조선말로 번역하여 읽어준 내용이 다음과 같다; “우리 영국은 청나라와 수교조약을 체결한지 20년이 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는 7년전부터 서로 문물을 교류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과는 아무런 교류가 없어서 불편하다. 본국의 훈령에 따라 나 스미스 제독은 차제에 조선과의 교류의 길을 마련하고자 한다. 동래부사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요청하니 조선의 조정에서는 조속하게 회답을 주기 바란다”.

내용을 파악하자 허부사이인용에게 말한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렇게 조치를 하면 좋겠어요. 먼저 그 내용을 영어와 조선말로 적어서 내게 한 부 주세요. 내가 미리 조정대신에게 알릴 수 있도록 요로를 통하여 조치하도록 하지요. 미리 조정에서 알고 있으면 그 다음에 동래부사가 정식공문을 조정에 올릴 때에 정책결정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거예요!... “.

이인용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문서를 만들어서 허부사에게 준다. 그리고나서 그가 말한다; “형님, 그렇게 부탁을 드리고요. 오늘 제가 형님에게 좋은 것을 하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저와 함께 부두로 나가시지요!... “.

이인용은 그 성격이 싹싹하고도 친절하다. 통역이나 장사꾼으로는 아주 적격인 성품이다. 그 점을 익히 알고 있는 허굉필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인용 아우,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내가 한번 구경하도록 하지요. 그래 부두로 나가봅시다”.

그날 이인용이 보여준 것은 그의 선박이다. 그런데 그것은 외양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큰 일반어선과 비슷하다. 그러나 선박 안에 들어가서 기계실을 보고서 허굉필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영덕현령 시절에 비밀리에 일본 죠슈의 하기시를 방문하여 본 적이 있는 바로 그 증기기관이기 때문이다;

크게 놀라고 있는 허부사를 보고서 이인용이 자랑삼아 말한다; “형님, 제가 범선으로 매년 홍콩을 방문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금년에는 큰 돈을 들여서 내부를 증기선으로 개조했어요. 지난 봄에 홍콩을 일부러 방문하여 영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조선소에서 내부를 증기선으로 만들었지요. 형님, 제가 한번 시운전을 할 테니 착석해주세요”.

이인용은 용의주도하고 신중한 인물이다. 부두를 벗어날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아니하도록 노와 돛대를 사용하여 천천히 선박을 몰고 있다.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지자 그때에는 증기기관을 돌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선박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그와 같은 사실을 허굉필은 뱃전에 나와서 확연하게 느끼고 있다. 물살이 갈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7년전에 허굉필장병화3인과 함께 일본 죠슈를 방문하였을 때에 타본 증기선과 비슷하다.

따라서 허부사가 이인용에게 부탁한다; “인용 아우, 내가 부탁이 하나 있어요. 우리 거제부에서 왜국 말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자가 장병화인데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가 선장으로 어선을 몰고 있는데 때로는 내 부탁으로 비밀리에 일본을 방문하고도 있어요. 그에게 내가 이 선박을 한번 보여주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

이인용이 좋다고 하자 허부사가 얼른 통역 장병화를 불러서 그날 그 선박의 실내를 구경하도록 만든다. 장병화의 관심이 지대하다. 그가 요청하기에 다시 한번 부두를 벗어나서 증기기관을 가동한다. 그날 장병화는 하동현의 통역 이인용을 알게 된 것이 무척 기쁜 모양이다.

그와 헤어질 때에 장통역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본의 발전상만 더듬고 있어요. 그런데 그대는 청나라는 물론 홍콩의 영국사람과도 교류가 있다고 하니 부럽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나도 그대를 따라 함께 홍콩에 가서 나의 선박내부에 증기기관을 설치하고 싶군요. 일본에서는 조선사람에게 그런 편의를 보아주지를 않아서 말입니다”;

이인용의 대답이 긍정적이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도 이러한 증기기관을 가진 배가 우리 조선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홍콩에 가서 많은 물건을 떼어 와서 판매하면 좋지요. 아무튼 우리 조선도 빨리 개화를 해야지요!... “.

이인용이 선박을 타고 하동으로 출발하고 나자 허부사장병화와도 헤어져서 혼자 거제부의 집무실로 돌아온다. 그는 이통역이 남기고 간 서찰을 한양의 병조참판인 홍재덕 영감에게 보내기로 한다. 정기적으로 한양으로 가는 파발이 있기에 그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나서 추석 한가위를 열흘 앞두고 거제부사 허굉필 일부러 동래부사인 참의 심원익(沈元翼)을 만나러 간다. 거제도에서 동래까지의 거리가 상당하지만 그가 준마를 타고서 곧장 달리고 있기에 이틀이면 충분하다. 허부사는 추석을 앞두고 있기에 가는 김에 먼저 초량에 있는 김준우의 료칸에 들린다.  

그는 장남 허지동이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수고비를 김준우 부부에게 미리 지급한다. 매년 10월말에 들렀는데 금년에는 한달 이상 먼저 들린 것이다. 12살이 되어가는 아들 지동이는 통역 김준우에게서 왜국 말과 일본의 문화를 배우고 익힌 지 벌써 6년이다. 따라서 이제는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그 다음에 동래도호부를 찾아가서 부사 심원익 영감을 만난다. 동래부사는 품계가 거제부사인 허굉필 자신보다 한단계가 높다. 따라서 정3품 참의 벼슬이다. 조선조정에서는 정3품부터가 당상관이며 영감 칭호를 듣고 있다. 그리고 정승과 판서가 대감으로 불리고 있다.

동래부사인 참의 심원익 영감은 사실 허굉필이 한성부에서 형님으로 모시고 있던 교리 심원익이다. 그는 상관이었던 한성판윤 김윤갑 대감이 은퇴하여 낙향하자 외직으로 나가 지방수령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정3품 참의로 승진하자 작년부터 동래부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허굉필보다 12살 연상이며 띠 동갑인 참의 심부사는 업무처리가 치밀하고 기획능력도 뛰어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허굉필은 거제부사로 부임하자 진작에 동래부로 가서 참의 심부사에게 인사를 드린 바가 있다.

심부사를 만난 허부사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얻은 정보를 미리 그에게 말해준다. 영국에서 홍콩에 상주하고 있는 해군제독을 추석 명절을 전후하여 동래 초량의 왜관에 보낸다는 내용과 그때에 조선의 조정에 올리는 공문을 동래부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심원익 부사는 자신이 신임하고 있는 허굉필이 알려주는 정보이므로 염두에 두고 있다.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추석 전에 과연 스미스 제독이 함선을 이끌고 절영도에 들어온다. 그가 인도에서 생산한 면직물을 왜관에 반입하면서 동래부사인 자신을 방문하여 영국의 공문을 주고 있다. 그 자리에는 영국말 통역으로 이인용이 배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해 추석 한가위가 지나고 동래부사가 정식으로 스미스 함장으로부터 받은 공식문서를 접수한 한양의 조선조정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대답이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세도정치를 펼치고 있는 안동 김씨의 대신들이 현상유지정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어떠한 변화도 싫어한다;

그와 같은 부정적인 답변을 받자 스미스 함장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국정부에 보고하고 만다. 만약 1861년 가을에 조선의 조정에서 긍정적인 검토를 하여 영국과의 문물교류를 허락하고 그것이 수교로 이어졌다고 한다면 조선의 공식적인 개화가 일본보다 빨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6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세도정치의 폐해 때문에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역사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면서 거제부사인 허굉필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빨리 세도정치가 끝나야 한다. 흥선군홍참판 그리고 조참의가 득세를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야!... “.

과연 허부사의 바램이 성사가 될 것인가? 훗날 그들이 득세하게 되지만 허굉필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 이유는 흥선군이 홍참판과 조참의의 세력까지 억누르면서 왕권의 강화에만 오로지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미래사를 아직 허굉필은 모르고 있기에 그의 암중모색은 나름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듬해 1862년에는 허굉필의 주변에서 또다른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