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14. 10:3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2(손진길 소설)

 

14. 격동의 1863년과 1864년을 한양에서 보내는 이조참의 허굉필

 

186335일 오후 늦게 허굉필이 몰고 있는 쌍두마차가 수원성에 도착한다. 다모 최선미는 오래간만에 친정부모를 만날 기대에 부풀고 있다. 따라서 어린 딸 허정순에게 속삭인다; “정순아, 이제 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나볼 수가 있게 되었다. 나는 참으로 마음이 기쁘다!... “.

그녀의 속삭임을 마부석에서 듣고 있던 허굉필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선미 당신의 마음이 참으로 기쁜 모양이군요. 나도 모처럼 장인과 장모를 만나게 되었으니 좋아요. 그리고 빠르면 일 이년 내에 당신 외조부의 양반신분이 회복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를 한번 기대해보세요, 하하하“;

그들은 수원 성안에 자리잡고 있는 최대환(崔大煥)의 집을 찾아 들어선다. 최대환은 젊은 시절 용인 현령을 지낼 때에 관비 하수련을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정5품 정랑이 되어 이조에서 근무하게 되자 하수련을 한양 가까이 있는 수원유수부의 관비로 이동시키고 그녀와의 사이에 얻은 딸 최선미를 한성부에 다모로 넣어주었다.

물론 딸 최선미를 다모로 만들기 위하여 이조정랑 최대환은 스승을 두사람이나 붙여서 그녀가 문무를 익히도록 10년간이나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비록 면천을 시켜줄 수는 없었지만 최선미19세가 되기 전부터 한성부에서 어엿하게 다모로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20살이 된 최다모가 운 좋게도 1살 연상인 야경담당 허봉사를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두사람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생을 내밀하게 부부로 함께 지내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21녀는 모두 돈을 많이 써서 허굉필이 면천을 시켰다.

이제 남아 있는 문제는 최선미의 외조부인 판관 하용만(河勇萬)의 역적 누명을 벗기고 양반신분을 회복하는 것이다. 1817년에 당시 조정의 실세 안동 김씨 대신들이 왕족 이성득(李成得)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에게 서양의 앞선 문물과 천주학에 대하여 말한 바 있는 하용만 판관을 역적으로 몰아서 처형한 것이다;

  

그것이 억지 누명임을 밝히고 양반신분을 회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용만의 남은 딸 하수련과 그녀가 최대환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최선미가 양반의 신분을 회복할 수가 있다.

그 일을 허굉필은 자신이 이조참의 벼슬을 얻어서 상경하는 이번 기회에 구체적으로 도모하고자 한다. 미리 18602월에 허굉필은 흥선군홍재덕 그리고 조항준이 있는 자리에서 흥선군에게 소위 오대방의 치부책을 넘겨준 바가 있다.

이제 자신이 이조에서 참의로 일하게 되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그 치부책을 활용하여 처족의 신분회복을 도모하고자 결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자초지종을 허굉필은 장인 최대환을 만난 자리에서 그날 저녁에 은밀하게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최대환이 진지하게 사위 허참의에게 말한다; “사위는 이제 이조참의 벼슬에 올라있기에 수원도호부에 들러 관비인 장모를 만나는 것이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가 있어요. 그러니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 처자식을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신중한 최대환의 말을 허참의가 경청한다. 장인의 말이 이어진다; “내일 내가 수원도호부에 가서 하수련을 만나 은밀하게 사위의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니 그리 알고 있어요. 나는 평소 도호부사와 잘 아는 사이이니 관비 하수련을 만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 같이 늙은 사람이야 별탈이 없는 법이지요, 하하하… “.

듣고 보니 그렇다.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신분의 차이를 괜히 따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조참의로 상경하고 있는 허굉필에게는 관비와 백년가약을 맺고 그 장모를 만난다고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노회한 장인 최대환의 충고에 허굉필이 고개를 끄떡인다. 따라서 그는 다음날 아침에 처자식을 데리고 한양으로 쌍두마차를 몰고간다. 남산골에 우선 들러 최경수의 하숙집에서 머물고자 한다. 최경수 내외와 아들 최한주 부부가 허굉필 가족을 반긴다;

허굉필이 이조판서 정학수와 참판 김철진에게 전입신고를 한다. 개인적으로 정학수는 허굉필의 절친 윤일윤의 처숙부의 오랜 벗이다. 그러므로 이판인 정학수가 허참의를 진심으로 반기고 있다.

또한 이조참판 김철진은 허굉필이 호형호제를 하고 있는 김유진의 사촌형이다. 김유진이 지금은 호조참의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허굉필이 이조참의로 상경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진작에 종형 김철진에게 말했다; “, 허참의가 이조에 나타나면 나를 본 듯이 잘 대해주세요. 내 동생으로 알고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철진이 한마디로 말한다; “, 유진아, 네 동생이면 허참의는 내 동생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유진이 네가 보증하는 인물이니 내가 그를 한번 크게 신용해보도록 하마, 하하하… “.

그렇게 허굉필은 운이 좋게도 안동 김씨의 한 축인 호판 출신 김형술 대감의 집안사람들과 친한 덕을 한양의 조정에서 톡톡하게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이조참의로 일하고 있는 1863년이 잘 지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해 11월에 들어서자 조정의 분위기가 참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한양의 조정대신 가운데 실권자인 안동 김씨 대감들이 비밀회동을 가지고서 시급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금상의 병환이 심각해요. 아마도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후사가 없으니 이제 어떻게 될까요? 왕궁의 최고어른은 전왕 헌종의 대비인 조씨인데 그가 우리 안동 김씨와 손발을 맞추지 않을 수가 있어요. 대책들을 말씀해보세요!... “.

3년전에 과격파의 수장인 김용범 대감이 장악하고 있던 살수집단 쌍문점 세력이 모두 사라져버렸기에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지 아니하고 있다. 그저 김형술 대감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일단은 대비 조씨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 보아야지요. 궁궐에서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시를 확실히 붙이도록 합시다. 그것을 보고서 우리가 움직이면 됩니다!... “;

아직 여유를 부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들은 진짜 족보로는 왕대비인 조씨흥선군이 수년간 비밀회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실책이다. 그리고 미리 흥선군은 병조의 판서인 홍재덕과 참판인 조항준을 구워삶아 놓고 있다.

흥선군은 꼭 필요한 만큼의 책략만 그들에게 언급하고 있다; “왕대비 조씨와는 이제 밀약이 성사되었어요. 금상이 승하하는 즉시 나의 막내아들을 신왕으로 등극시키도록 말입니다. 물론 조대비가 섭정할 것입니다. 단지 한가지 우려가 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흥선군이 말을 끊고서 두사람의 안색을 살핀다. 다행히 아무도 음흉한 흥선군의 내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설명을 이어간다; “우리의 후계체제를 뒤집자고 만약 안동 김씨들이 실력행사로 나서는 경우가 문제이지요. 그러니 두 분이 병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고서 그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막아주세요. 그러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날 것입니다!... “.

흥선군의 내심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그해가 가기 전에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그해 1863년 음력으로 128일에 드디어 금상이 병환으로 붕어하고 만다. 그러자 흥선군과의 밀약이 발동하여 왕대비 조씨가 궁중의 최고어른으로서 전격적으로 음력 1213일에 교지를 내린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빈틈이 없다; “용상을 한시도 비워 둘 수가 없다. 나는 흥선군의 막내아들 곧 적자로서 차남인 명복()을 입궁하게 하여 조선의 신왕으로 즉위하게 한다. 그의 이름을 이희()로 개명하고 익성군(益成君)으로 봉하며 동시에 나의 남편 익종의 양자로 삼는다. 신왕의 춘추가 11세에 불과하므로 내가 수렴청정을 하도록 한다. 모든 조정대신들과 왕족들은 나의 뜻을 받들라”.

그러나 왕대비인 조씨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조정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그동안 세도정치를 펼쳤던 안동 김씨들이 세를 과시하면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나름대로 논리가 정연하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보좌를 비워 둘 수가 없어서 궁중의 최고 어른이신 왕대비께서 신왕을 옹립한 것은 우리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금상을 자신의 양자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대비 혼자서는 수렴청정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정세는 여성인 대비가 정치적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

막상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정국의 안정을 시급하게 도모하고 또한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학식과 경륜이 있는 신왕의 부친 흥선대원군이 책임을 지고 정사를 돌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조대비께서는 뒤에서 섭정만 하시고 대원군이 전면에 나서서 대리청정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

그런데 조정회의에서 뜻밖에 남양 홍씨인 병조판서 홍재덕이 안동 김씨 대감들의 견해를 지지하고 나선다; “옳습니다. 소신의 생각도 그와 같습니다. 구중궁궐에 계신 대비께서 어떻게 지금의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시겠습니까? 지금은… “.

생각보다 병판 홍재덕 대감의 어조가 강경하다; “서세가 동점하고 대국인 청나라가 패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의 앞날도 어떻게 될지 풍전등화의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이 있고 경륜이 탁월한 흥선대원군이 전면에 나서서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째서 남양 홍씨인 홍대감이 왕대비 조씨의 편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일까?... ‘. 그 이유를 조대비는 알 것만 같다. 본래 조씨는 순조의 세자로서 일찍 죽은 익종의 아내인 세자빈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으므로 헌종의 모친으로서 대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헌종의 뒤를 강화도령 철종이 잇게 되었으므로 순리대로 하자면 조씨가 왕대비가 되고 헌종의 후비인 남양 홍씨가 대비가 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권력독점을 노리고 있는 안동 김씨들이 음모를 꾸몄다. 강화도령을 순조의 양자로 삼아 신왕으로 즉위하게 하고 풍산 조씨에게 대비의 자리를 주지 아니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흥선군의 아들을 신왕으로 옹립하면서 조씨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곧 신왕을 자신의 죽은 남편 익종의 양자로 삼아 조씨가 대비로서 섭정을 하고 남양 홍씨를 대비의 자리에서 밀어낸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병조판서 홍재덕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그는 대비 조씨를 버리고 흥선대원군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내밀하게 안동 김씨의 한 축인 김형술 대감과 손을 잡았다. 대비 조씨를 밀어내고 조정의 실권을 함께 장악하자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듬해 1864년부터 조정에서 김형술 대감의 아들 김유진과 조카 김철진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그 반대로 조대비의 조카인 조항준의 입지가 조정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정대신들의 권력투쟁을 머리가 좋은 허굉필이 조정의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조의 실무책임자인 참의로서 눈 여겨 보고 있다. 그는 그러한 이전투구의 권력투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가 조선의 조정에서 두가지를 얻고자 한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처족의 신원회복이다. 또 하나는, 조선의 개화와 산업화이다. 그 결과 신식군대를 양성하여 조국을 자력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허참의의 바램이 새로운 흥선대원군의 치하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향후 그의 일신상에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