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18. 08:51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3(손진길 소설)

 

허굉필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는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가 이조(吏曹)에서 실무적으로 조정의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참의(參議)이므로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연히 흥선대원군이 수하를 어떻게 조정에 심는가를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법이 상당히 교묘하다. 그 이유는 그가 허굉필에게서 얻은 오대방의 치부책을 이용하여 오랜 세월 조정의 실세였던 안동 김씨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당상관의 자리를 스스로 내어놓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치부와 더불어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오대방의 치부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기에 흥선대원군이 독대를 하여 당사자에게 으름장을 놓자 그들은 꼼짝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그렇게 흥선대원군의 신상 털기에 한번 걸려들게 되면 상대방은 조정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대의 자리에서 상대방은 흥선대원군2가지 요구에 순순히 응해야만 한다; 하나는, 공직에서 사퇴하면서 한양에 머물지 못하고 곧장 고향으로 낙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흥선대원군이 원하고 있는 액수의 정치자금을 반강제적으로 그에게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수법을 동원하여 흥선대원군은 반사적으로 두가지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하나는, 빈 자리에 자신의 수하를 심는다. 또 하나는, 안동 김씨의 돈을 빼앗아 그것을 자신의 정치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조정의 실권자가 된 흥선대원군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인물에게 당상관의 자리도 주고 또한 정치자금도 후히 주고 있으므로 그의 문전에는 언제나 많은 문객과 무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유능한 인물 그리고 충성심이 강한 인물을 선택하여 조정에 꼽아 두는 것이 흥선대원군의 첫번째 정치적인 행보이다.

그와 같은 흥선대원군의 정치행보를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면서 허참의는 그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의 욕심이 대단하다. 자신의 사람을 가지고 당상관의 과반수를 끝까지 채우고 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정회의에서 다수결로 사안을 결정할 때에 언제나 흥선대원군의 의견이 채택되고 만다.

그와 같은 조정을 만들어 흥선대원군은 독재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실정치가 그러하므로 국왕의 존재는 마치 인형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러니 재미가 없어진 조대비가 수렴청정의 권한을 흥선대원군에게 넘기고 만다. 이제는 흥선대원군이 모든 책임을 지고서 국정을 운영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물갈이를 하는데 걸린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 1864년초에 집권한 흥선대원군이 그해 가을에 들어서자 벌써 그러한 새 판을 완전히 짜고 있는 것이다. 일이 그렇게 빠르게 돌아가자 하루는 허참의가 개인적으로 병조판서인 홍재덕과 참판인 조항준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진지하게 말한다; “두 형님들, 지금은 확실히 흥선대원군 큰 형님의 시대이군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4년전에 당시 백의정승으로 불리고 있던 김용범 대감의 사병인 쌍문점의 살수집단을 제거한 결과 지금의 시대가 열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지요.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그 일을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아요!… “.

그 말을 듣자 병조참판인 조항준이 먼저 말한다; “그렇지요,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사람을 조정에 심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나머지 국사에 대해서는 별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국사에 관하여 의논을 일체 하지 아니하고 있어요. 이거 우리는 완전히 뒷방 늙은이로 밀려나고 있는 셈입니다, 허허허… “.

조참의는 고모뻘인 조대비가 수렴청정의 자리에 있었지만 실권행사가 불가능해지자 그 권한을 흥선대원군에게 완전히 넘겨버리고 말았기에 그것이 불만이다. 이제는 자신의 신세가 끈이 떨어진 연인 것만 같아서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홍판서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신중하게 말한다; “우리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제도 없이 그냥 흥선대원군을 만날 수가 없어요. 그러니… “.

두사람이 귀를 기울인다.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수년전에 오대방의 치부책을 내놓으면서 굉필 아우가 부탁한 것이 하나 있지요. 흥선군이 그 책을 사용하면 안동 김씨의 대신들을 조정에서 쉽게 물러나게 할 수가 있다고 말이지요. 그 대신에 판관 하용만의 역적혐의를 벗겨주고 그 집안에 대한 신원회복을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 일을 빌미로 삼아 한번 흥선대원군을 만나면 좋겠군요!... “;

듣고 보니 충분히 흥선대원군을 만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따라서 조참판과 허참의가 홍판서의 의견에 찬성하고서 적당한 기회를 찾고 있다. 드디어 3일후에 흥선대원군의 사저에서 그들 4인이 모처럼 회동을 하게 된다.

먼저 흥선대원군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을 꺼낸다; “허허허, 이거 아우들에게 그동안 내가 적조했어요. 갑자기 대리청정에 이어 섭정까지 하게 되니 정신이 없어서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3아우들의 도움으로 내가 수년전에 정적을 제거하고 조정에서 권력을 장악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즐겁게 술을 들도록 하지요, 하하하… “.

흥선대원군이 먼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딱히 할말이 없다. 그래서 홍판서와 조참판 그리고 허참의가 우선은 즐겁게 흥선대원군과 함께 술잔을 나누고 있다. 그러자 기회를 보아 조참판이 얼른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 옛날에 허참의에게 약조한 일이 하나 있는 것이 생각나서 오늘 함께 들렀습니다. 그것은… “.

조항준이 잠시 말을 끊고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눈치를 본다. 그것을 보고서 홍판서가 틈을 보아 대신 말한다; “그렇지요. 우리들 앞에서 당시 허참의가 오대방의 치부책을 내놓으면서 훗날 판관 하용만의 역적혐의를 벗겨주고 그 집안의 신원회복을 부탁했지요. 그러니 이제는 그 일을 추진해주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이 됩니다, 허허허… “.

두 사람이 먼저 말하고 있으므로 허참의는 조용히 흥선대원군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때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하응의 말이 들려온다; “하하하, 그것이 무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3분이 왕림을 했습니까? 내가 내일 당장 그 일을 처리해주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우리 즐겁게 술을 마십시다. , 건배!... “.

조선의 조정의 권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패기와 오만함이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보다. 이틀이 지나자 벌써 순조 17년에 발생한 판관 하용만의 역적혐의가 사실은 잘못된 누명이었다고 새로운 조사결과가 관보에 실리고 그의 집안에 대한 신원회복이 즉시 실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수원부에서 관비로 생활하고 있던 하수련과 다시 한성부에서 다모 생활을 하고 있던 최선미가 양반의 신분을 당장 회복하게 된다. 하수련과 최선미가 양반이 되자 최대환허굉필은 기회를 보아 함께 강화섬을 방문하여 하용만의 무덤을 찾아 상석과 비석을 세우고 판관의 신분에 어울리는 묘지로 다시 꾸민다;

그것은 분명히 경사이며 허참의최선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중순에 허굉필은 참담한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충격이 아직도 그의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다. 그것은 당시 경상감영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최제우가 그만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현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7년전에 허굉필이 동래 초량의 김준우의 료칸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의 이름이 최제선(崔濟宣)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나자 그가 이름을 최제우(崔濟愚)라고 바꾸면서 동학(東學)을 만들어 1861년부터 경주일원에서부터 포교하기를 시작했다.

허굉필은 거제부사로 근무하면서 경상도 경주일원에서 들려오고 있는 동학의 발생과 민심의 동향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그런데 동학의 창시자가 경주 현곡 출신인 최제우(崔濟愚)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그가 누구인지 개인적으로 조사를 했다. 그 이유는 그가 만났던 최제선(崔濟宣)시천주(侍天主)사상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혹시가 역시로 나타났다. 최제선이 자신의 이름을 최제우로 바꾸고서 개인적으로 체험한 옥황상제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학과 동양의 유불선 사상을 집대성하여 동학을 창시하여 주위에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요지가 다음과 같다; “마음속에 천주를 모시게 되면 인간이 곧 하늘이며 민심이 바로 천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천주의 뜻을 따라 공덕을 베풀며 어리석은 백성을 깨우치는 일에 나서도록 하라. 그리하면 능히 이 세상의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천지개벽의 시대를 맞이할 수가 있다!”.

확신에 찬 최제우의 목소리가 60년 세도정치에 시달려서 피폐해진 민심을 단 3년만에 전국적으로 크게 모으고 있다. 하지만 동학의 주장은 조선의 왕정국가에 있어서는 절대 발생해서는 아니되는 반역사상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주인이 국왕이 아니라 백성이라고 하는 사상이므로 조정에서는 결코 내버려둘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막내아들을 조선의 국왕으로 만든 흥선대원군은 발칙한 최제우를 당장 처형하라고 경상감사에게 명령한다. 그 결과 1863년말에 체포가 되어 경상감영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던 동학교주 최제우가 1864415일에 현지에서 처형이 되고 만다. 그리고 동학은 불법으로 규정이 되고 그 지도자들은 전부 관에 쫓기게 된다.

그런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그에 대한 대비를 이미 하고 있다. 그는 같은 고향의 경주 최씨인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을 그의 후계자로 삼았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여 동학사상을 전국에 전파하라고 제자들에게 유언삼아 미리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상제의 뜻이며 새로운 시대를 개벽하게 되는 동학제자들의 사명이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최제우의 처형으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2대 교주인 최시형이 도망을 다니면서 은밀하게 동학사상을 전국적으로 전파한다. 그러자 동학사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이 되고 전국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그 결과 흥선대원군의 집권은 10년 세도에 불과하지만 동학의 영향력은 100년 세월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 허굉필1864년 그해가 끝나기 전에 조용하게 관직을 떠나고 있다. 그는 흥선대원군에게 기대했던 두가지의 일 가운데 개인적인 처가 집안의 일은 해결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 한가지는 전혀 해결이 될 기미가 없었기에 그 실망이 대단하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이 없이 이조참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그가 조선의 조정이나 흥선대원군에게서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은 첫째, 서양의 선진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공장을 많이 짓는 것이다. 둘째, 산업근대화를 이루면서 신식군대를 양성하여 다가오는 서구열강의 침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변방에서 산업근대화와 신식군대가 먼저 발생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그것이 그 옛날 일본의 조선침략으로 나라가 망할 뻔했던 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아니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그러한 진취적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람을 당상관으로 조정에 심고 정치자금을 최대한 조성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서양의 학문과 선진문명이 들어오는 것을 전근대적인 쇄국정책(鎖國政策, 나라의 문에 빗장을 채우는 것)으로 계속 막고 있다.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허참의가 과감하게 1864년말에 사직을 하고 조정을 떠난 것이다. 그 후에 발생하는 사건을 정리해보면 허굉필의 선견지명이 맞다. 그후의 역사가 대충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흥선대원군이 조선에서 국왕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왕궁을 위엄 있게 다시 짓는다고 하면서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2)  그리고 낙향한 안동 김씨들이 자신들의 발판을 지방의 서원을 중심으로 하여 마련하는 것을 보고서는 아예 서원의 철폐에 전력투구한다;

한마디로, 흥선대원군의 정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퇴보이다. 그대로 가다가는 조선의 존망이 위태롭다. 그와 같은 조짐이 다분하기에 사직을 하기 전에 허참의는 개인적으로 홍판서조참판과 함께 흥선대원군을 그의 저택으로 찾아가서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강하게 국정의 방향을 국제정세에 비추어 새롭게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의지는 확고하다; “지금은 지난 60년 동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나락에 떨어진 조선의 국왕의 위엄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나의 조정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그 단결력으로 서양세력의 침입을 무력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오로지 그것이 우리 조선의 전통과 사상을 수호하는 길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사상이 너무나 확고하다. 옥 다물고 있는 그의 입술이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허참의는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가 사람을 완전히 잘못 보았구나! 흥선군은 세도정치를 끝낼 수는 있어도 조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인물이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

허참의는 흥선대원군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서 절망한다. 따라서 그는 다른 선택을 하고자 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