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19. 05:14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4(손진길 소설)

 

15. 관직에서 물러나 개인적으로 국제정세를 살피는 허선비

 

허굉필흥선대원군이 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조선의 근대화에 투신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런 미련이 없이 정3이조참의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출세길로 말하자면 몇 년 후에 참판이 되고 그 다음에는 판서가 될 노른자위 이조의 참의 자리인데 그 미련을 과감하게 버린 것이다;

그가 사의를 표명하자 처음에는 흥선대원군이 만류하는 척을 한다. 그러나 그의 속셈을 따로 있다. 역시 자신이 집권하는데 있어서 공을 세운 공신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흥선대원군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좋은 것이다.

병조판서인 홍재덕과 참의인 조항준을 제거하는데 있어서는 앞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은 이조참의의 자리에서 스스로 허참의가 사직을 청하고 있으니 그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는 얼른 허참의의 사직을 받아들이고 만다. 따라서 1865년초에 허굉필은 아내 최선미와 딸 허정순을 데리고 낙향하여 고향 김해로 간다.

그 다음에는 고향의 일을 전부 가형인 허상필에게 맡기고 자신은 가족을 솔거하여 멀리 경상도 경주부의 외곽인 내남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그 옛날 신라시대 화랑들이 심신수련을 하던 단석산(斷石山)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은거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경주 내남을 자신의 새로운 거주지로 삼은 데에는 은밀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난 20년 세월 관직을 지낸 자신이 신분을 속이고 숨어 살기에는 타향인 그곳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이름을 허굉필에서 단순하게 허선비로 바꾸고 살게 되니 그를 알아보는 인사가 없어서 너무나 편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내남의 남쪽에 있는 앞산을 넘어서면 언양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울산을 거쳐서 동래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니 허선비가 준마를 타고서 달리면 당일 동래 초량으로 가서 김준우의 료칸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장남 허지동(許知東)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훗날 허굉필은 울산의 항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통통배를 이용해서 바다로 진출하게 된다. 그와 같이 편리하게 행동의 자유를 가지게 된 허굉필 아니 허선비는 이제 두가지 일을 개인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첫째로, 허굉필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가족을 솔거하여 고종2년인 1865년 가을부터 경주부의 남쪽에 있는 내남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살게 된다. 그러자 허선비라고 이름을 바꾼 허굉필은 그해 10월에 쌍두마차를 구입한다. 그리고 아내 최선미와 딸 허정순을 태우고 먼저 동래 초량의 김준우의 료칸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김준우 부부의 보살핌으로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는 장남 허지동을 만난다. 지동이는 벌써 15살이다. 잘 성장한 장남을 보면서 허선비 부부가 김준우 부부에게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허선비는 마련해온 큰 돈을 김준우에게 준다.

최선미는 김준우의 부인 일본인 히로꼬(弘子)와 조선말로 대화를 하고 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린 저의 아들 지동이를 이렇게 오랜 세월 잘 키워주어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헌헌장부가 된 모습을 보니 제가 부인에게는 그저 고마운 생각 뿐입니다. 그리고 “.

말을 하다가 최선미히로꼬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이제는 저의 남편도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주 저도 남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제가 히로꼬 당신을 언니로 삼고 싶어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

그 말을 듣자 히로꼬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호호호, 딸만 있는 저에게는 지동이가 아들처럼 여겨집니다. 그렇게 자식을 맡겨서 오랜 세월 키울 수 있게 하였으니 그것이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 그러니 나는 지동이의 이모가 되고 지동이 엄마는 나와 자매지간이 되는 것이 맞지요, 호호호… “.

그 말에 최선미가 덥석 히로꼬를 포옹하면서 말한다; “히로꼬 언니, 동생 최선미가 정말 감사해요. 피를 나눈 언니보다 더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에게도 일본말과 일본문화에 대하여 가르쳐 주세요. 저도 열심히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훗날 때가 되면 저도 언니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고 싶어요!... “.

순간 히로꼬가 다정한 눈빛으로 최선미를 마주 보면서 대답한다; “그렇게 해요. 나도 선미를 나의 동생으로 삼게 되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자주 이곳에 들리세요. 아니 몇 달이라도 우리 료칸에 묵으면서 나에게서 일본말과 여러가지 일본에 관하여 배우도록 하세요. 우리 정말 친자매처럼 친하게 남은 세월을 함께 지내도록 합시다. 나는 그것이 좋아요!... “.

히로꼬의 눈에 순간 이슬이 맺히는 것을 최선미가 보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히로꼬 언니가 사실은 홀로 조선에 시집와서 살게 되어 오랜 세월 적적했던 모양이구나. 나도 언니가 없는데 참으로 잘 되었다. 앞으로 내가 좋은 동생이 되어주어야 하겠구나!... ‘.

허선비는 장남 허지동을 계속 김준우의 료칸에서 생활하도록 조치를 하고서 아내 최선미와 딸 허정순을 데리고 하동으로 간다. 쌍두마차가 겨우 다닐 정도로 조선의 도로사정은 열악한 형편이다. 따라서 천천히 마차를 몰아서 하동까지 먼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허굉필인 허선비는 하동에서 이인용의 기와집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차남 허지서(許知西)3년전부터 생활하고 있다. 청나라 사람인 이인용으로부터 청나라의 말과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벌써 11살이 된 차남 허지서를 만난 허선비와 최선미 그리고 허정순이 너무나 기뻐하고 있다.

허선비이인용에게 큰 돈을 주면서 말한다; “정말 고맙네, 인용 아우. 지서를 맡아서 이렇게 잘 키워주고 있으니 그저 감사한 생각 뿐이야. 이 돈은 필요한 경비에 사용하라고 주는 것이야. 나는 지난 봄에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을 했어. 이제는 나름대로 시간이 있어요“.

그 말을 듣자 대뜸 이인용이 말한다; “굉필이 형, 그러면 나중에 나하고 같이 홍콩을 한번 방문합시다. 혼자서 가기도 심심한데 형하고 같이 가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좋은 의형제이니까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좋고 말고. 내가 부탁하고 싶은 말을 아우가 먼저 말해주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우리 한번 그렇게 합시다. 나도 아우하고 같이 홍콩을 방문하고 싶어요. 그래 언제가 좋을까요?... “.

그 말에 이인용이 말한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우리 내년 8월초에 출발합시다. 2달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가 있어요. 물론 그곳에서 청나라사람도 만나고 영국사람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문물도 시찰하고 또 상품도 구입할 것이고요. 이곳에서 부자들에게 팔면 장사가 되지요, 하하하“.

이인용의 유쾌한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떡이던 허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러면 내가 내년에는 7월말에 이곳으로 다시 올께요. 그때는 아우와 함께 홍콩에 가는 것이니 통역에는 어려움이 없겠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나도 청나라말과 영어를 좀 배워야 하겠어요. 그래야 벙어리 신세를 면할 테니까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자신의 서재에서 서책을 한권 가지고 와서 허선비에게 주면서 말한다; “굉필이 형, 이 서책은 내가 청나라말과 영어를 조선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조선말로 한번 적어본 것이야. 지서에게 가르치려고 만든 교재이기도 한데 이것은 여분이야. 이것을 내가 형에게 줄 테니까 나름대로 미리 공부를 좀 하고서 오면 좋지요!... “.

허선비는 이인용의 배려가 고맙다. 이틀간 그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에 딸 허정순은 이인용의 딸 이청미와 친해진다. 이청미가 2살 연상이므로 허정순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금방 친해지는 것이다. 친언니가 없는 허정순이기에 이청미를 언니로 삼고서 그렇게 좋아한다.

한편 최선미는 이인용의 아내인 오화순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오화순이 화교와 살고 있는 조선여인이기에 최선미에게 할 이야기가 많다. 그녀는 남편 이인용으로부터 배운 청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영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최선미는 감탄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오화순이 솔직한 최선미가 마음에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서 어머니, 저는 언니가 마음에 들어요. 우리 서로 자매가 되어 친하게 지내요.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잘 들어주고 있으니 내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앞으로 자주 들러 주세요. 그리고 내년 8월에 남편이 지서 아버지와 2달간 홍콩을 다녀온다고 하니 그때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도록 해요”.

이틀을 이인용의 집에서 머물고 떠나올 때에 최선미는 바쁘다. 먼저 차남 허지서에게 잘 지내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다. 대범한 여장부로 보이는 다모(茶母) 출신의 최선미이지만 자식에게는 자상한 어머니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금방 친해진 오화순을 포옹하면서 말한다; “화순 동생, 이 언니가 내년 7월말에 일찍 이곳으로 올꺼야. 우리 그때 2달 동안 이야기를 많이 하자고. 나도 동생이 좋아!... “.

그 다음에 허선비의 가족은 구례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허선비는 거상 김상준을 만나서 백미 500석에 해당하는 ()을 받는다;

 그때 허선비는 자신의 아내 최선미를 김상준에게 인사를 시킨다. 그 뜻은 만약 자신이 10월에 들리지 못하게 되면 최선미에게 그 환을 주라고 하는 의미이다.

김상준은 최선미를 보고서 그녀가 바로 그 옛날 구례현감 허굉필의 다모(茶母)임을 알아보고 있다. 그래서 최선미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최다모이시군요. 정말 좋은 남편을 두셨습니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그 사랑을 이루시는 허사또를 저는 존경합니다. 장사치에 불과한 저에게도 아무런 거리감이 없지요”.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매년 정확하게 계산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내년 이맘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구례에 들린 김에 허선비는 가족을 데리고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이지룡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그동안 공무에 바빠서 구례에 들리더라도 매번 거상 김준우만을 만나고 바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관직을 떠났기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일부러 들리는 것이다;

마침 집에서 쉬고 있던 이지룡이 뜻밖에 허굉필 가족을 만나자 너무나 기뻐한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특히 그는 친동생 이인용을 통하여 그동안 허굉필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듣고 있었기에 더없이 기쁜 것이다.

그날 허선비가 진심으로 이지룡에게 인사한다; “지룡이, 그대와 나는 동갑이야. 이제 우리는 불혹의 나이를 2살이나 넘어섰어. 앞으로 남은 세월 더러 보면서 지내자고. 나도 이제는 관직을 떠났기에 시간이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이지룡이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헤어져 있었지만 나는 동생 인용이를 통하여 허사또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어요. 이제 자유가 생겼다고 하니 그렇게 합시다. 나도 좋아요!... “.

허선비는 가족을 데리고 전라도 남부의 구례를 떠나 경상도 남부의 김해 고향으로 들어간다. 쌍두마차를 타고서 다니는 편한 여행이지만 그래도 길이 멀기는 멀다. 고향에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형 허상필 가족이 잘 살고 있다.

매년 10월 하순에 허굉필은 엄청난 돈을 환으로 부친에게 맡기고 있다. 그 돈으로 김해의 좋은 전답을 많이 마련했다. 그 규모가 천마지기나 되고 있으므로 허선비야 말로 고향에서 알부자인 천석꾼이다. 물론 구례에 있는 천마지기도 실상은 허선비 부부의 소유인 것이다.

게다가 작년에 양반신분을 회복한 최선미는 이제 시집에서 더 대우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50년전에 벌써 판관 벼슬을 지낸 하용만의 외손녀이고 20년전에 종3품 집의를 지낸 최대환의 딸이기 때문이다;

고향 방문까지 하고서 186511월 중순에 천천히 허선비는 아내 최선미 그리고 딸 허정순을 데리고 경주부 내남에 마련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해 말까지 앞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아내 최선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결과 허선비 부부는 어떠한 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떠한 일에 투자하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