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21. 06:3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6(손진길 소설)

 

이인용의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서 허선비가 새삼 놀라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첫째, 조선사람들이 옛날부터 천축국(天竺)이라고 부르고 있던 불교의 발상지가 있는 대국(大國, 큰 나라)이 사실은 인도(印度, India)이다. 그 거대한 인도를 지금 영국(英國, England)이 식민지로 삼고 있다.

둘째, 국제정세를 알고 있는 학자들은 전세계의 절반을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인 영국이 벌써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해가 지지 아니하는 나라 영국을 달리 대영제국(大英帝國, British Empire)이라고 부르고 있다;

셋째, 노동력이 풍부하고 일찍 영국의 식민지가 된 거대한 나라 인도에서 정책적으로  면화생산이 싸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원료로 하여 영국이 현지의 공장에서 면직물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와 아편도 그 지역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요즘은 그 생산물의 상당부분을 이곳 홍콩으로 들여와서 청나라 사람들에게 싸게 팔고 있다. 그러니 청나라의 전근대적인 생산물로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가 않는다.

그와 같은 이인용의 자세한 설명을 듣자 허선비는 큰 걱정에 빠진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들이 조선의 시장에 그대로 들어오게 되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허선비는 눈앞이 캄캄하다.

경제적으로 조선이 그들 영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에게 종속이 되는 시대가 곧 다가올 것만 같다. 당면한 그 문제에 대하여 허선비는 홍콩에 이인용과 함께 머무는 기간에 깊이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가 그곳 현지에서 얻고 있는 새로운 지식과 그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  특히 구라파(歐羅巴, 유럽, Europe)영국 뿐만 아니라 법국(法國)인 프랑스, 덕국(德國)인 독일이 하나같이 아프리카에 이어서 아시아로 진출하여 경쟁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뒤늦게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메리카에서 모국인 영국의 내정간섭을 물리치고 1776년에 독립하여 오늘날 막강한 산업선진국이 된 미국(美國)도 서양의 열강들과 함께 후진국인 동양의 여러 나라를 자신의 식민지로 삼고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러한 험악한 시대에 오로지 조선의 조정만은 천하태평이다. 조정의 실권을 한 손에 장악한 흥선대원군이 그들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쇄국정책에 매진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2)  대국 청나라도 그들에게 굴복하고 있는데 약소국 조선이 나라의 빗장을 풀지 아니할 수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하면 보다 나은 정책은 무엇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를 허선비는 자신의 경험에서 하나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변방 서남번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그들의 부번강병책(富藩强兵策)이다. 만약 일본에서 변방의 지방세력인 서남번이 선진화 작업에 성공하여 신식군대를 많이 보유하게 된다고 하면 그곳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3)  허선비의 판단으로는 서남번의 신식군대가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중앙의 쇼군바쿠의 구식군대와 전쟁을 치른다고 하면 당연히 승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를 그는 홍콩을 방문하여 재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에서는 소위 1840년대초에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사람들이 청나라사람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는 산업선진국으로서 신식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서양의 열강이 구식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동양의 대국인 청나라와 전쟁을 쳐서 이기듯이 그렇게 일본의 서남번이 제휴하여 하나의 연합군을 형성한다면 능히 일본의 구식중앙군을 이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때에는 일본 서남번 출신의 젊은 개혁개방주의자들이 일본의 중앙무대에서 정치적이고도 경제적인 대변혁을 도모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전국적으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과연 산업선진국으로 일본 열도를 변화시키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하면 일본은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것이 허선비가 계산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미래이다;

(5)  그런데 그러한 일이 일본에서는 가능한데 조선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허선비의 걱정거리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영주가 다스리고 있는 지방세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조선이란 한마디로, 전국을 국왕과 조정이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중앙집권의 왕정국가이다.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수령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임기가 짧으며 연이어 중앙에서 후임자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지방수령이 하나의 지방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사정책이다. 그러므로 지방수령의 세습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조선이다;

(6)  조선에서는 지방의 영주가 없으니 부번강병책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선비의 깊은 고민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는 우선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민간인 차원에서 하고자 한다. 그것은 서양의 기계문명을 일부 도입하여 사용하면 획기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하는 것을 백성들과 조정에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선박의 동력을 증기기관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를 이용하는 방직공장을 세워야 한다. 그 두가지를 조선의 지방 변두리에서 시작하면 분명히 앞날을 대비하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허선비가 미구에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라고 하겠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가운데 허선비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가능한 일을 찾아서 우선 실천해보고자 한다. 그러한 결심을 하면서 홍콩에서 조선으로 돌아오고 있는 허선비이다.

그런데 이인용의 선박에는 홍콩에서 구입한 영국의 생산품이 가득 실려 있다. 이인용은 자신이 오래 살고 있는 하동 땅에 도착하면 그가 개척한 판로를 통하여 은밀하게 그 물품들을 처분하여 이익을 얻게 된다.

그 먼 길을 두 달간 다녀오면서도 한해를 살 수 있는 자금을 그 한번의 장사로 마련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증기기관을 가진 선박을 운전하면서 이인용이 자랑스럽게 허선비에게 설명하고 있다. 역시 국제무역이란 이익이 큰 사업이다. 허선비가 그러한 감각을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나름대로 익히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허선비가 이인용과 함께 홍콩을 다녀오는 사이에 그의 아내 최선미는 이인용의 아내 오화순으로부터 청나라말과 문화 그리고 영국의 언어와 문화를 재미나게 배우고 있다. 그리고 딸 허정순은 이인용을 딸 이청미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지내고 있다. 차남 허지서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 집에서 두 달을 함께 살게 되니 그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다.

허선비는 이인용에게 감사하면서 차남 허지서를 하동 그 집에 계속두고 이제는 아내 최선미와 딸 허정순과 함께 경주부 내남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0월 중순에는 혼자서 필마로 구례를 방문하여 거상 김상준으로부터 그해의 소출을 결산하면서 그에 대한 환을 받는다.

그 다음에는 김해의 고향을 방문한 다음에 얼른 거제부를 찾아가서 장병화를 만난다. 허선비는 구체적으로 장병화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일까?...

18661025일에 장병화의 집 사랑방에서 허선비는 동갑내기인 거제부의 통역 장병화에게 말한다; “병화, 내가 하동에 살고 있는 이인용의 선박을 타고 그와 함께 지난 2달간 홍콩을 다녀왔어. 홍콩에서 실로 놀라운 것들을 많이 보았지.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나!... “.

2년전까지만 해도 한양의 조정에서 이조참의를 지낸 고관이 허굉필이다. 그가 작년 초에 그 좋은 벼슬을 버리고 돌연 낙향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향 김해를 떠나 생소한 타향 경주부의 시골인 내남으로 들어가고 작년 가을부터 은둔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장병화는 개인적으로 고향인 경상도 동해안 영덕현에서 어선의 선장으로 어업을 경영하고 있던 그 시절에 그곳에 현령으로 부임한 허굉필을 처음 만났다. 그때가 1852년 봄이다. 그러니까 무려 14년 전이다. 당시 장병화 자신이 왜국 말 통역으로 관청일을 돕고 있던 시절이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1854년 봄에는 통역인 장병화허굉필 현령을 모시고 병방 곽수림 및 생원 곽병기와 함께 일본의 서남번인 죠슈의 하기시를 방문했다. 장병화가 젊은 시절 10년간이나 동래 초량의 왜관에서 점원으로 일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일본을 방문한 것을 그때가 처음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1861년 봄에 거제부사로 부임한 허굉필은 그해 여름에 영덕현에 있는 장병화를 거제부로 이주하게 했다;

 그리고 그를 측근에 두고서 일본의 정세를 염탐하게 했다. 그 일을 비밀리에 추진하느라고 장병화는 은밀하게 일본의 하기시를 여러 번 방문하였다.

장병화가 지방수령인 허굉필을 보좌하기에 서슴지 아니한 것은 개인적으로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허굉필은 높은 벼슬아치이지만 일개 통역인 장병화 자신에게 친절하다. 결코 하대를 하지 아니하는 참으로 특이한 지방수령이다. 서로 나이가 같은 동갑이라고 하면서 벗으로 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허굉필의 매력이다.

또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오고 있는 앞선 문물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하다. 그 점이 일찍이 왜관에서 10년이나 일한 장병화 자신의 관심사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것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취향이 같으니 묘한 동지의식을 장병화가 허굉필에게서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제부사 허굉필5년전에 영덕현에 살고 있는 장병화 자신에게 거제섬으로의 이주를 요청하였을 때에 그는 선뜻 그에 응한 것이다. 그 정도로 장병화는 허굉필을 신뢰하면서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거제부를 은밀하게 방문한 허굉필이 장병화 자신의 집을 찾아와서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장병화가 놀라서 말한다; “아니, 하동에 살고 있는 청나라말과 영어통역인 그 이인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증기기관을 가진 그의 동력선을 내가 5년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 선박으로 홍콩을 다녀온 것입니까?...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대답한다; “맞아요, 맞아. 그런데 장병화 그대는 어째서 아직도 나를 동갑내기 벗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거제부의 전임 부사로만 대하고 있는가? 나는 이제 벼슬아치 허굉필이 아니라 그냥 초야에 묻혀서 살아가고 있는 시골 양반 허선비. 그러니 편하게 허선비라고 불러주면 좋겠구만!... “.

그 말에 장병화가 신이 나서 말한다; “부사 나리가 그렇게 원하신다고 하면 그렇게 합시다. 그래 허선비, 홍콩에 가서 본 것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내게 한번 말해 주시게나! 하하하… “.

그때부터 1시진 동안 허선비는 자신이 홍콩에서 본 것과 느낀 것을 자세하게 장병화에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43세의 장병화는 그 옛날의 동경심이 다시 샘솟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5년전에 내가 이인용의 배를 타보고서 나도 그러한 배를 한 척 가지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러니 내년에는 나도 그와 함께 홍콩을 방문하고 싶군요!... “.

그 말을 듣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허선비가 말한다; “그렇지. 나도 사실은 그래서 장병화 그대를 방문한 것이야. 나하고 내년에 하동의 이인용을 만나러 함께 가도록 하자고. 우리가 그의 배를 타고서 홍콩으로 가서 동력선(動力船) 2척을 사오면 어떨까? 자금은 내가 댈 테니까 그렇게 하자고. 그 다음에는 말이지… “;

솔깃한 제안이다. 장병화는 사실 자신의 어선을 가지고 홍콩을 방문할 엄두가 나지 않는 차에 허선비가 좋은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허선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역시 상대방의 말은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

허선비가 말한다; “내 계획은 그 신식선박 2척으로 울산 방어진 쪽에서 어업을 경영하면 수지가 맞을 것 같아. 일찍이 영덕에서 어로작업을 한 경험이 풍부한 병화 자네가 그 일을 경영하면 분명히 소득이 많을 것이야. 필요하면 한 척은 병화 자네가 조종하고 나머지 한 척은 내가 조종하면 되니까!... “.

그 말을 듣자 장병화가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 5년전에는 영덕현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거제 섬으로 이주시키더니 이제는 내년에 또 울산 방어진으로 이사를 시키려고 하는구만. 이거 내가 수지가 맞는 일인지 아닌지 내년 홍콩을 다녀올 때까지 고민을 좀 해보아야 하겠구만, 하하하… “.

그 말에 허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요. 어쨌든 나 허선비는 내년에 장병화 그대와 홍콩을 방문하여 신식 어선을 2척 사와서 울산에서 그대와 함께 고기잡이에 나서는 것이지. 이거 얼마나 좋은 일인가! 벗이란 그렇게 함께 동업을 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야. 아무렴 그렇지, 하하하“.

장병화는 허선비야 말로 가장 매력적인 벗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이듬해 1867년 가을에 하동으로 가서 이인용과 더불어 그의 배를 타고서 홍콩을 다녀온다. 돌아오는 길에는 증기기관을 부착하고 있는 선박이 무려 3척이다.

홍콩에서 증기선을 사고 그 주변의 바다에서 한달이나 이인용으로부터 운전법을 배워서 숙지한 결과 장병화허선비가 각자의 증기선(蒸氣船)을 몰고 있다. 새로 산 선박 2척을 울산 방어진에 정박하고 있는데 그때에는 벌써 그 지역에 장병화 가족이 이주하여 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웃에는 허선비가 마련한 집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허선비가 울산 방어진을 자신의 새로운 어업의 기지로 삼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