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20. 00:17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5(손진길 소설)

 

1864년 가을에 양반신분을 회복한 다모(茶母) 최선미(崔善美)는 그때 비로소 한성부에서의 관비신세를 면하게 된다. 면천(免賤)이 되는 것만해도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인데 일약 판관 하용만의 외손녀이며 종3품 집의 최대환의 딸로 인정이 되었으니 그 기쁨이 대단하다;

돌이켜 보면, 그녀는 20세가 되던 해 곧 1844년 가을에 한성부에서 야경 담담으로 일하게 된 1년 연상의 종8봉사(奉事) 벼슬의 허굉필을 만났다. 두사람은 직장 상사와 부하로 만난 사이이며 신분상으로는 양반과 관비의 신세로 만난 사이이지만 그 애틋함과 관심이 남달랐다.

허굉필은 최다모의 여장부다운 면모가 좋았다. 성격이 시원시원할 뿐만 아니라 무예도 뛰어나고 학문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일 처리가 확실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여성이며 관비라고는 하지만 다모 최선미는 한마디로 믿고서 일을 맡길 수 있는 좋은 수하였다.

그렇게 수년간 한성부에서 같이 지내다가 보니 그만 정이 들었다. 그래서 허굉필은 그녀를 마음에 품고서 평생 함께 부부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접근하고 있는 허굉필을 평생 자신의 서방으로 받아들인 다모 최선미의 생각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허굉필의 학문과 무예가 최선미 자신보다 월등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가장 어려운 문과의 대과시험에서 차석을 차지한 수재가 바로 허굉필이기에 그의 학문이 뛰어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숨기고 있는 무인으로서의 경지가 너무나 대단한 것이다.

마포나루에서 국제 인신매매범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그녀는 선상에서 적들과 싸울 때에 위험한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강력한 화살이 날아와서 적들을 쓰러뜨려주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는가?’, 무예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고 있는 다모 최선미가 예리한 눈으로 주변을 정찰한 결과 그 자가 바로 나루터에서 화살을 쏘고 있는 문관 허굉필임을 파악했다.

문과에 합격한 인재가 명궁이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 솜씨는 무과에 합격하고도 남는 대단히 뛰어난 솜씨이다. 게다가 어째서 최다모 자신의 위기를 그냥 보지 못하고 계속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봉사 허굉필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허굉필의 무예가 명궁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검술에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함께 동래에서 밀수범을 소탕할 때이다. 최다모는 허굉필과 함께 적들의 마차를 추격하여 탈취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이고 있는 몸놀림과 칼솜씨가 굉장한 것을 보고서 다시 놀랐다.

그것은 은밀하게 조선제일검으로 불리고 있던 금위영의 종사관 홍재덕의 솜씨를 뛰어넘고 있는 경이로운 경지였다. 일개 문관인 허굉필이 어째서 문무를 겸하고 있는가? 게다가 그 수준이 어떻게 범인(凡人)의 경지를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이 다모 최선미의 머리에서는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

또 하나는, 처음에 최선미는 그저 자신이 문무에 뛰어난 허굉필에게 관심이 지대하다는 사실만 인정했다. 그러나 계속 함께 지내다가 보니 그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어느 사이에 허굉필이 가장 좋은 신랑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왕 부부로 살고자 하면 허굉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그녀가 벌써 작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서 너무나 놀랐다.

그러한 다모 최선미에게 허굉필이 본심을 털어 놓았다. 신분의 차이를 떠나서 함께 은밀하게 부부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최선미 자신의 신분을 되찾아 주겠다고 약조까지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약속이라고 하면 그것은 실현이 불가능한 사탕발림이라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천하의 기재(奇才)허굉필의 말이기에 최선미는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두사람은 20년 세월을 은밀하게 부부로 살아왔다. 그 사이에 함께 지방의 관아를 떠돌면서 21녀의 자녀를 생산했다. 다행히 두사람은 재물을 모았기에 자녀를 전부 면천시킬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격한 조선의 사회에서 특히 역적으로 낙인이 찍힌 가문의 외손녀인 다모 최선미의 양반신분을 회복한다고 하는 것을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기어코 현실로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 따지고 보면 이조참의 허굉필이다.

그가 20년 관료생활을 통하여 진작부터 병조판서 홍재덕, 참판 조항준 뿐만 아니라 흥선군 이하응과도 친분을 쌓더니 마침내 그들의 힘을 빌려서 1864년 가을에 최선미의 외조부인 판관 하용만의 역적혐의를 벗겨내고 그의 양반신분을 되찾도록 한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히 판관 하용만의 딸 하수련도 양반이 되고 그녀의 딸 최선미도 양반이 된 것이다. 비로소 최선미는 한성부의 다모가 아니라 떳떳하게 이조참의 허굉필의 부인이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그해 말에 남편 허굉필이 스스로 이조참의 벼슬을 내려놓고 그만 낙향을 하고 만다. 그 이유는 그가 기대를 걸었던 흥선대원군의 집권이었지만 그 다음에 대원군 이하응이 실시하는 정책이 전혀 엉뚱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이 내세우고 있는 개혁정책이란 한마디로, 조선을 전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또 하나의 독재적인 왕정복고이며 사대주의적인 쇄국정책이다. 청나라가 서구열강에 의하여 종이호랑이로 변하고 말았는데 조선의 대원군은 아직도 청을 대국으로 섬기며 스스로 부국강병책을 실시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멀지 아니하여 산업근대화를 이루고 신식군대를 양성하고 있는 외세에 의하여 조선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굉필은 관직을 떠나서 이제는 개인자격으로 조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싶다고 아내 최선미에게 설명하고 있다. 양반이 된 최선미는 남편 허굉필의 의견에 적극 찬성한다.

그에 따라 1865년초부터 허굉필 부부는 관직을 떠나서 그저 지방의 양반으로 지내기를 시작한다. 그것도 고향 김해를 벗어나 경주부 내남 시골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허굉필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서 그저 허선비라고 이웃에게 말하고서 지낸다.

그런데 186510월과 11월 두 달에 걸쳐서 동래의 일본어 통역인 김준우와 하동의 청나라말과 영어 통역인 이인용을 만나고 돌아온 허굉필은 그때부터 7개월간 두문불출이다. 그는 아예 시골 내남의 집에 칩거하고서 오로지 한가지 일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인용이 그에게 준 서책을 주야로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서책이 바로 통역 이인용이 저술한 것으로서 조선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청나라말과 영어에 대한 입문서이다. 그 내용을 익히기에 42세의 허굉필이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허굉필은 방문을 닫아 걸고서 홀로 새벽마다 운기를 하고 있다. 그의 내공수련은 25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집중력이 대단하다. 기어코 그는 이듬해 18666월이 되자 나름대로 청나라말과 영어를 자동적으로 입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준비가 끝나자 그는 그해 7월 하순에 다시 쌍두마차에 아내 최선미와 딸 허정순을 태우고 하동으로 출발한다. 7월말에 이인용의 집에 도착하자 83일에 이인용과 함께 그의 선박을 타고서 두사람이 홍콩으로 향하고 있다. 두사람은 홍콩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허선비가 찾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조선의 산업을 근대화하고 신식군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그가 홍콩에서 본 것은 역시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많은 자동차가 시내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홍콩 섬의 주변에서는 영국의 모든 선박이 증기기관을 사용하고 있는 기선들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오로지 통역 이인용이 보유하고 있는 기선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홍콩을 방문하면서 허선비는 어떻게 하면 기선을 조선에 도입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면 그 일에 합당한 인물을 만날 수가 있다. 특히 허선비가 대동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조선에서 최초의 기선을 보유하고 있는 이인용이다. 그가 홍콩에 온 김에 자신의 선박을 수리하기 위하여 영국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소규모 조선소를 방문하고 있다.

그곳에서 허선비가 이인용의 소개로 영국인 선박기술자 버터필드(Butterfield)를 만나게 된다;

 35세의 버터필드는 모험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난 허선비를 마음에 들어 한다. 청나라에서 진작에 조선에 건너가서 화교로 살고 있는 이인용보다는 완전한 조선사람인 허선비가 더 신기한 모양이다.

허선비가 집에서 7개월 동안 이인용이 저술한 영어입문서(英語入門書)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화의 상대방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저 기초적인 대화법을 암기하고 익힌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상대방 버터필드의 말을 알아 듣는데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허선비의 옆에는 홍콩 섬을 방문한 경력이 10년 이상인 이인용이 있다. 그의 도움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허선비가 한가지 잘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논리가 정연하고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선비의 질문이 예리하다.

그것을 보고서 버터필드는 처음 만난 허선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리고 조선사람 허선비가 영어로 질문하는 것을 듣고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성심성의껏 설명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이인용이 조선말로 허선비에게 한마디를 한다; “제가 준 서적을 열심히 공부하신 모양입니다. 이거 참으로 보람이 있습니다, 하하하 “.

그때서야 허선비가 말한다; “도움이 되고 말고. 아우가 저술한 그 책 덕분에 이 정도 간단한 질문이라도 영어로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기 홍콩에서 한 2년만 살면 그래도 생활영어는 될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그 책을 열심히 공부한 것을 보니 굉필이 형은 충분히 그럴 것 같아요. 이거 조선사람 중에서도 이제는 영국의 문물을 익히는 인물이 한사람 발생한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굉필이 형, 하하하“.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 조선소에서 한가지 허선비가 마음속에 결심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선에 돌아가면 먼저 거제부에서 일본어 통역일을 하면서 어선의 선장으로 일하고 있는 동갑내기 장병화를 만나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와 의논하여 조선의 어선에도 증기기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싶다.

홍콩에서 증기기관을 설비하고 있는 선박들을 살펴보니 두가지 종류이다. 하나는 나무를 원료로 사용하여 보일러에서 물을 수증기로 만들고 있다. 또 하나는, 그보다 화력이 강한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두가지 모두 조선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허선비가 홍콩에서 보고 있는 것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청나라 사람들이 영국사람의 위세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홍콩에서는 영국사람이 양반이고 청나라 대국사람이 상놈인 셈이다. 그러므로 청나라를 대국으로 섬기고 있는 조선위정자들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다.

또 하나는, 영국이 기선으로 실어와서 홍콩에서 팔고 있는 면직물의 값이 엄청 싸다는 것이다. 허선비가 동래 초량의 왜관에서 팔고 있는 면직물과 비교할 때에 그보다 훨씬 싼 값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허선비의 의문에 대하여 이인용이 속 시원하게 대답하고 있다. 과연 이인용의 설명이 무엇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