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26. 05:0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8(손진길 소설)

 

허지동이 공손하게 그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기회를 보아 허선비가 옆방을 찾아가서 젊은이 최강일과 수인사를 나누고 그에게 질문한다; “그대는 내 아들 지동이보다 4살이 연상이라고 하니 이제 약관의 나이 20살이겠군요. 그래 그대의 숙부인 최경상(慶翔)이 혹시 동학의 창시자이며 초대교주인 최제우(崔濟愚)의 후계자가 아닌가요?... “;

그 말을 듣자 최강일(崔康鎰)이 놀란 눈으로 허선비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잠시 숨을 내쉬고서 조용히 대답한다; “제가 그렇다고 하면 저를 해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지동이 아버님은 그러하지 아니하실 것으로 보입니다만… “.

그 말에 허선비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뜨면서 말한다; 그래, 나는 최제우의 이름이 최제선이었을 때부터 그와 친분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어찌 그의 후계자인 최경상의 조카를 해칠 생각이 있겠는가? 나는 그저 옛날 최제선을 여기서 만났던 기억이 새로워서 그대를 잠시 만나고 있는 것이야….

최강일은 허선비의 눈에서 그 옛날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을 읽고 있다. 따라서 공손하게 말한다; “저의 선친은 최경상 숙부의 하나밖에 없는 친형이었지요. 그런데 조실부모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동생과 함께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어요. 나중에 숙부님은 경주의 제지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저의 선친은 머슴으로 계속 일하다가 가정을 이루었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 그만 돌아가셨어요. 그후에… “.

갑자기 최강일의 눈에서 눈물이 고인다. 잠시후에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어머니가 저를 경주의 제지공장 일꾼으로 있는 숙부에게 맡겨버렸어요. 그후 저는 최경상 숙부의 손에서 자랐지요. 그런데 숙부님이 1863 8월부터 동학의 제2대 교주가 되고 이듬해 4월에는 초대교주께서 대구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숙부님은 쫓기는 몸이 되었지요. 다행히 저는 이곳에 맡겨져서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최강일에게 말한다; “그래 고생이 많구나. 내가 최제선과의 그 옛날 인연을 생각하여 그대를 돌보아주고 싶구만. 여기 주인장 김준우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 젊은이는 주인장으로부터 왜국말을 배우고 지금은 왜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 어려움은 없는가?... .

친절한 말에 최강일이 마치 숙부를 만난듯이 정답게 말을 한다; “마치 저의 숙부를 다시 만난 것만 같습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당장은 생활이 됩니다. 나중에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때 부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자 1868년 겨울에 22살이 된 최강일이 그동안 사귀고 있던 처녀와 결혼하고 있다. 그 자리에 허선비 가족이 참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신부가 바로 김준우와 히로꼬의 장녀인 20살의 김추자(金秋子) 아끼꼬 상인 것이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나자 1870년 겨울에는 20살의 허지동이 김준우와 히로꼬의 차녀인 19살의 김옥자(金玉子) 다마꼬 상을 신부로 맞이한다. 허지동 6살이 되기 전부터 김준우의 료칸에서 생활하고 있으면서 다마꼬와는 마치 오누이처럼 자랐다. 그런데 두사람은 십대 후반이 되면서 서로 애틋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1870 12월 중순에 서로 사돈이 된 허선비김준우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쁨은 안사돈 최선미히로꼬 사이에서도 공유가 되고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최강일과 그의 아내 아끼꼬가 또한 즐거워하고 있다.

그날 모처럼 하동에 살고 있는 이인용이 그 멀리서 허선비의 차남인 16살의 허지서를 데리고 참석하여 혼례식도 보고 김준우의 료칸에서 3일을 푹 쉬고 간다. 또한 동해안 울산의 방어진에서는 장병화가 일부러 어선을 동래의 초량까지 몰고 와서 허선비 장남의 혼례식에 귀빈으로 참석하고 있다.

그날 장남의 혼례식을 보고서 허선비가 속으로 한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이곳에 작은 직물공장이라도 하나 세워서 지동이에게 경영을 맡기면 좋겠구나! 이왕이면 지동이의 윗동서가 되는 최강일도 함께하면 좋겠고. 그러자면 일본의 서남번을 다시 방문하여 그곳의 직물공장을 견학하고 많이 배워야만 하겠구만!... ‘.

 허선비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어쨌든 나로서는 다소 힘이 들더라도 조선의 산업선진화를 위해서 일본어와 일본문명을 알고 있는 두 젊은이에게 창업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겠어!… ‘. 과연 그 일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이 되는 것일까?...

허선비1868년부터 한겨울이 되면 아내인 최선미와 딸 허정순을 데리고 통통배로 동래 초량을 방문하고 있다. 그 이유는 김준우의 료칸에 묵으면서 장남 지동이에게 학문과 무예를 남몰래 전수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김준우로부터 일본어와 일본의 역사 및 문화에 관하여 배우기 위한 것이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허선비가 김준우로부터 일본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데 아내 최선미도 동일하게 히로꼬 상으로부터 그러한 지식을 얻고 있다. 하기야 히로꼬(弘子)는 본래 동래 초량의 왜관에서 일을 하던 에이지 아라키(英治荒木)의 딸이다;

 그러므로 최선미가 일본인인 그녀로부터 일본에 관한 지식을 조선말로 배우고 있으니 그 습득이 빠르다.

히로꼬의 부친은 나이가 많아 지금은 일본의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있다고 한다. 1869년 겨울에 그 이야기를 아내 최선미로부터 우연히 듣게 된 허선비가 그녀에게 질문하고 있다; “선미, 히로꼬의 부친이 살고 있는 고향이름이 무엇이지요?”. 즉시 대답이 들려온다; “사쯔마의 대도시 가고시마(鹿兒)라고 히로꼬가 제게 말했어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작년 1868년 1월 하순에 일본에서는 서남의 죠슈, 사쯔마, 도사, 히젠4()이 연합하여 그들의 신식군대로 에도의 막부를 치고 쇼군의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허울 뿐인 천황을 옹립하고 명치유신의 주도세력인 하급무사들이 화족(華族)이 되어 지금은 일본 열도의 산업근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허선비의 중얼거림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히로꼬 상의 부친이 그곳 샤쯔마의 중심도시 가고시마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훗날 그곳을 방문하면 그들의 도움으로 산업선진화가 이루어져 있는 현장을 방문할 수가 있겠군. 참으로 좋은 정보야!... “.

그 이듬해 1870 12월 중순에 허선비는 장남 허지동이 김준우와 히로꼬의 차녀 김옥자다마꼬와 결혼을 하자 그때 그는 모종의 결심을 한다. 그 내용이 바로 아들 부부와 최강일 부부를 내세워서 일본으로부터 직물기계를 도입할 생각인 것이다. 요컨대, 그들에게 조선에서 직물공장을 세우고 경영하게 할 작정인 것이다.

따라서 허선비12월 하순에 김준우료칸(旅館)에 계속 머물면서 하루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사돈, 안사돈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일본 가고시마에 있는 처가를 한번 다녀오신 적이 있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준우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여기 료칸을 경영하면서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어요!... “.

그 말에 허선비가 웃으면서 말한다; “형님, 우리는 이제 사돈간이지만 남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냥 제가 편하게 형님이라고 예전처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그러면 우리 한번 부부동반으로 가고시마를 다녀오도록 하시지요. 경비는 제가 전부 부담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준우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게 되면 좋고 말고. 나도 일본구경을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아우님은 가고시마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또 누구누구가 같이 가는가?... “.

김준우허선비와 오래 교제를 하면서 그가 굉장히 치밀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 일찍이 조정에 출사하여 높은 관직을 지낸 허선비이다. 그러므로 그의 구상이 궁금하여 자세하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선비의 구체적인 계획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계획이 다음과 같다; “이왕 가는 김에 형님과 형수님은 사위 부부를 어른들께 소개를 시켜야 하지요. 그래서 저는 최강일 부부와 허지동 부부를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통통배로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가본 적이 있는 장병화 선장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부부도 함께 가도록 하지요. 그리고… “.

그 말에 김준우가 궁금한 표정으로 계속 허선비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따라서 허선비가 본론을 말한다; “그렇지요. 저는 가고시마에서 신식 직물공장을 견학하고 그 기술을 배워오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곳 동래에서 조선 최초의 직물공장을 하나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물론 공장의 경영은 젊은 두 가정이 맡도록 하고요!... “.

그제서야 김준우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사돈, 아니 허선비, 나는 뛰어난 그대 허굉필과 사돈지간이 된 것이 너무나 좋아요. 나의 두 딸 부부가 살아갈 방도를 벌써 그렇게 계획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래 그렇게 합시다. 그러면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단숨에 말한다;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지요.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날씨가 풀리면 내년 봄에 출발하도록 합시다. 형님은 그렇게 아시고 형수님에게 잘 말씀을 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김준우는 허선비 보다 4살이 많다. 그러므로 이듬해 곧 18713월 중순에 일본으로 출발할 때에 허선비48살이고 김준우52살이다. 함께 가고 있는 선장 장병화가 허선비와 동갑이므로 48살이다. 그리고 최강일25살이고 허지동21살이다.

그들 5쌍의 부부들이 장병화가 몰고 있는 어선과 허선비가 몰고 있는 어선에 분승하고 있다. 때마침 봄날씨가 좋아서 뱃길이 평안하다. 그래서 그런지 꼬박 이틀을 통통배가 쉬지 아니하고 달리자  조선의 동래에서 일본의 가고시마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선박 2척을 정박한 다음에는 김준우의 아내인 히로꼬가 앞장을 선다. 그녀가 화목 트럭을 대절하고 일행을 인솔하여 가고시마의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히로꼬 일행 10명이 에이지 아라키(英治荒木)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자 그들이 깜짝 놀란다.

당시 히로꼬의 부친 아라키 상이 77세이고 그의 부인 유끼꼬 상이 75세이다. 하지만 부부가 정정하다. 그들은 조선의 동래에 살고 있는 딸 부부를 만난 것이 꿈만 같은 모양이다. 유끼꼬히로꼬는 모녀지간에 너무 기뻐서 서로 부둥켜 안고서 펑펑 울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아라키가 사위인 김준우에게 조선말로 말한다; “사위는 일행을 데리고 우리집 거실로 들어가자고. 아직 봄날씨가 쌀쌀한 편이야”. 거실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김준우 부부가 아라키와 유끼꼬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 다음에는 히로꼬가 두 딸이 전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고 친정부모에게 말하면서 2쌍의 부부로 하여금 어른들께 큰절을 하도록 시킨다.

허선비가 바라보니 아라키 부부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그때 아라키가 말한다; “내가 오래 살고 있으니 손녀들이 결혼하여 배필과 함께 절을 하는 것을 받고 있구나. 조선에서 여기 가고시마까지 찾아왔으니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사위, 같이 온 분들은 또 누구신가?... “.

김준우가 장인과 장모에게 허선비 부부장병화 부부를 소개한다. 그 말을 듣자 두 부부가 역시 어른들께 큰절을 올린다. 아라키 부부도 반절을 하고서 말한다; “이거 사돈부부와 그 친구 부부의 큰절을 받게 되어 황송합니다. 참으로 멀리 오셨습니다. 잘 지내시고 또한 가고시마의 발전상을 많이들 보시고 귀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잠깐 기다리세요. 저의 아내가 차와 다과부터 내올 것입니다”.

그러자 허선비와 최선미는 조선에서부터 가지고 온 선물보따리를 아라키에게 전달한다. 그것을 보고서 아라키는 아내 유끼꼬가 다과를 내오자 얼른 그녀에게 풀어보라고 말한다. 조선의 불상과 도자기 그리고 비단을 선물로 받게 되자 그들 부부는 너무나 기뻐한다.

그날 저녁에 소식을 듣고서 이웃에 분가하여 살고 있는 아라키 부부의 아들이 찾아온다. 그의 이름이 에이지 스즈끼(英治鈴木)인데 매제인 김준우보다 1년 연상이므로 53살이다. 그는 50살인 여동생 히로꼬보다 3살이 많다. 그리고 스즈끼는 히로꼬의 하나뿐인 친정 오라비인데 그날 부부동반으로 들린 것이다.

스즈끼의 아내가 마유미(由美)인데 그녀는 상냥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런데 그녀가 자랑삼아 시누인 히로꼬에게 말한다; “아가씨, 잘 오셨어요. 저도 아가씨를 한번 보고 싶어 했어요. 멀리 조선 동래에 살고 있으니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언제 우리 남편이 경영하고 있는 공장을 한번 방문해보세요. 참으로 멋있는 신식 방직공장이랍니다!... “;

그 말을 듣자 히로꼬보다 먼저 그녀의 남편인 김준우가 일본말로 손위 처남댁인 마유미에게 질문한다; “마유미 상, 처남이 신식 방직공장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마유미가 생긋 웃으면서 즉시 대답한다; “여기서 가까워요. 내일이라도 한번 가보세요. 방직기계가 씽씽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참으로 볼만 하답니다, 호호호… “.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서 허선비는 이번에 돈이 많이 들었지만 참으로 이곳을 잘 방문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허선비는 그곳 가고시마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