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28. 22:1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0(손진길 소설)

 

16. 전답의 절반을 처분하여 창업에 나서는 허선비

 

고종 8년인 187110월과 11월에 허선비는 아내 최선미와 상의하여 두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에 방직공장을 건설하는 비용을 미리 마련하여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해 10월 중순에 허선비 부부가 통통배를 타고 구례까지 들어간다.

그들은 곡물상인 김상준을 만나 백미 500석에 해당하는 환을 받는다. 허선비 부부는 구례지역에서 1851년에 개간한 천석지기 논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주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문중의 여러 어른들의 돈을 거두어서 개간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허선비가 그곳의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김호방의 도움을 받아서 2년 동안 대대적인 이조천변(利助川邊)의 땅에 대한 개간에 나섰다. 그 결과 3년째인 1851년부터 추곡(秋穀)이 생산되고 있다;

 따라서 소작료를 단지 25부로 싸게 곡물로 받도록 규정하고 그 곡식을 소작농들이 직접 구례지역의 최대 곡물상인 김상준의 가게에 넘기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

개인적으로 구례의 거상인 김상준이 당시 김호방의 가형이다. 그러므로 개간사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여 투자한 허현감과 그 사업을 추진한 실무책임자 김호방 두 사람이 서로 합의하여 그러한 편리한 제도를 고안하여 시행한 것이다. 그 제도는 김호방이 현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그대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 결과 1851년부터 20년이 지난 1871년 지금까지 허선비 부부는 매년 10월 중순에 거상인 김상준과 결재를 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대충 백미 500석이다. 워낙 싸게 소작료를 받고 있기에 기타 비용은 전부 소작농의 책임으로 되어 있다. 그에 따라 소작농들은 정해진 소작료만 매년 추수가 끝나면 곡물상인 김상준에게 넘겨주면 되는 것이다;

그해의 소출에 대한 환을 받은 다음에 허선비가 곡물상인 김상준에게 중요한 부탁을 한다; “김사장, 그대에게 한가지 긴요한 청이 있습니다. 사실은 나를 통하여 이곳에 투자한 집안의 어른들이 이제는 구례에 있는 천석지기 논을 전부 처분하여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들이 노령이어서 재산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상준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별로 어렵지 아니하게 대답한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제가 이곳에서 오래 곡물상을 하다가 보니 인근 나주평야의 큰 지주들을 많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이곳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제법 있지요. 그리고 차제에… “.

김상준이 허선비의 얼굴을 보더니 슬며시 웃으면서 말한다; “그 분들에게 소개를 하고 남는 논이 있으면 저도 사들이고 싶습니다. 마침 추수가 끝나서 큰 돈들을 만지고 있는 시점이므로 제가 금년안에 전부 처분하여 연말에 환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좀 싸게 파시지요. 그래도 거간비용을 제하고 대략 백미 5천석에 해당하는 가격이 될 것 같습니다만!… “;

무슨 말인지 허선비가 금방 알아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김사장은 그 오랜 세월 저와 거래하면서 신용을 철저히 지켰지요. 그러니 제가 믿고서 그 금액으로 처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12월 하순 빠르면 중순에 다시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댁네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는, 허선비 부부가 무역상회(貿易商會)를 하나 열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그들은 구례에서 받은 환을 재빨리 김해에 살고 있는 부친에게 전달한 다음에 곧바로 하동에 들린다. 그곳에서 먼저 차남 허지서를 만나고 아들을 돌보고 있는 이인용 부부에게 사례비를 전달한다. 그 자리에서 허선비가 한가지 특별한 요청을 이인용에게 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아우님, 다음달에 배를 몰고서 홍콩으로 갈 때 나도 통통배를 몰고서 뒤따라가면 좋겠어요왜냐하면 나도 아우님처럼 그곳에서 영국제품을 좀 사가지고 와서 동래와 울산 등지에서 한번 팔아보고 싶거든요!“;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왕 배를 몰고 같이 가신다고 하면 제가 형님이 홍콩에서 영국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서양의 제품을 사서 형님이 조선의 동해안 지역에서 파는 것이 좋지요. 수입품의 질이 좋다고 그곳에서 두루 소문이 나면 이곳 하동일대에서도 더 잘 팔릴 것이니까요!... “.

듣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이다. 같은 경상도이지만 동래는 동남의 끝자락이고 하동은 서남의 끝이다. 그러니 거래지역이 전혀 겹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품에 대한 소문은 경상도 일원에 널리 퍼질 것이다. 그러니 장사에 이골이 난 이인용이 금방 찬성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인용이 은근히 허선비를 놀리고 있다; “그런데, 형님. 조선의 조정에서 높은 관직을 하시던 분이 뜬금없이 장사를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을 내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확실히 이제는 조선도 장차 개화를 하고 새로운 신분이 대거 등장할 모양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선비도 따라서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자네 말이 맞아. 새로운 개화의 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 양질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술자와 공장을 건설하는 자본주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앞으로 조선에서도 전개되지 않겠는가?... “.

그 다음에 허선비가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인용 자네를 만났기에 그 정도의 안목을 지니고 있어요! 그대는 30년전에 벌써 전란 중에 있는 고향 광동성을 떠나서 조선으로 이주한 집안의 사람이야. 그러니 나는 자네를 통하여 그 당시 발생한 청국과 영국과의 전쟁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

허선비가 잠시 말을 끊고 이인용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게다가 10여년전부터는 인용 아우는 매년 홍콩에 가서 영국제품을 구입하여 하동 일대의 부자들에게 팔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조선 최초의 무역상인은 조선사람이 아니고 사실은 화교인 자네 이인용이야!”.  

이인용은 허선비의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대단한 모험을 한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렇다. 자신의 집안은 1841년에 청나라에서 영국과의 전쟁이 발생하자 전란을 피하여 안전한 조선으로 무작정 배를 타고 떠나왔다. 그들이 하동 땅에 도착했는데 당시의 지방수령이 한자로 필담(筆談)하면서 자신들을 받아 주었다.

그래서 큰형인 이천룡은 부모님과 함께 곡성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때로는 관아에서 청국 말 통역일도 하고 있다. 둘째형 이지룡이 구례관아에서 통역일을 하면서 그곳 현감으로 부임한 허선비와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이인용 자신은 하동 관아에서 통역일을 했는데 나중에 자신을 방문한 허선비와 크게 친해진 것이다.

허선비는 그의 차남 허지서(許知西)이인용 자신의 가정에 오래 위탁하고 있다. 그가 이인용 자신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부디 아들 허지서에게 청국말과 영어를 가르쳐주고 국제적인 안목을 열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일은 이인용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매년 홍콩까지 가서 영국의 제품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용 자신은 10여년전에 처음으로 조선의 하동에서 청국의 홍콩까지 자신의 어선인 범선을 타고 출발하였는데 그것은 정말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 옛날에는 부모님이 가족을 솔거하여 그러한 모험에 나섰는데 이제는 자신이 그러한 시도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고생 끝에 항해에 성공하였더니 그 결과는 달콤했다;

왜냐하면, 홍콩에서 그는 영국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영어실력이 왕창 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영국의 제품을 보고서 필요한 것을 사와서 하동지역의 부자들에게 팔았더니 그것이 큰 수익을 가져온 것이다. 몇년간 크게 재미를 보았다. 그래서 그 돈을 모아서 아예 홍콩에 간 김에 자신의 범선에 증기기관을 설치했다.

그때 만난 홍콩의 작은 조선소의 기술자가 버터필드(Butterfield)이다. 그가 이인용의 튼튼한 목선인 어선에 증기기관을 설치하고 시운전을 해보고서 한 말이 생각난다; “Wow, Mr Lee, Congratulation! It works well. You have the first steam engine boat in Korea. Now You can enjoy a fast trip from here to Korea!”.

그의 말이 사실이다. 그때부터 이인용은 쉽게 조선의 하동과 청국의 항구 홍콩을 왕래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매년 홍콩에서 영국의 제품을 많이 사와서 하동 일대에서 장사를 했다. 부자 고객들에게 암암리에 팔고 있는 밀거래이다. 그것이 큰 돈이 되고 있다. 이제는 그 사정을 알고 있는 허선비가 그 사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인용은 조선에게 만난 인물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자가 바로 자신보다 2살 연상인 허선비이다.  그 이유는 선진문명에 큰 관심을 보이고 또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그 모험정신이 이인용 자신과 크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허선비는 굉장히 총명한 인물이다. 조선에서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20년간이나 요직을 지낸 인물이다;

 그리고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그 높은 관직을 버리고 개인적으로 조선의 산업을 선진화하고 개화를 촉진해보겠다고 분투하고 있다.

그러한 진취적인 인물과 의형제를 맺고 있으니 이인용허선비를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다. 함께 홍콩에 갔을 때에도 그가 보는 안목 가운데 이인용은 개인적으로 배울 점이 많다.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고 있음에도 허선비의 분석과 판단이 유달리 뛰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에 대한 습득능력이 빼어나다. 이인용 자신이 저술한 청국말과 영어에 대한 입문서를 혼자서 단지 7개월간 공부했다고 하는 허선비이다. 그러한 허선비가 이인용 자신과 함께 홍콩을 두 번 다녀오는 사이에 현지에서 2달 씩 체류한 것에 불과한데 그 사이에 영어가 엄청 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이인용은 참으로 유능한 인물을 의형으로 삼았다고 은근히 기뻐하고 있다.

그렇게 허선비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이인용이므로 그는 그해 187111월에 허선비 부부와 함께 홍콩에 들리자 솔선하여 두사람을 많이 도와준다;

 가장 먼저 홍콩에서 한 일은 버터필드가 일하고 있는 조선소에 들러 그에게 이인용 자신의 선박과 허선비의 선박에 대한 안전점검과 일부 필요한 수리를 부탁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인용 자신이 홍콩에서 오래 사귀고 있는 사람들을 허선비 부부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그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친분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 대부분이 영국제품을 홍콩에서 중개하거나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인용허선비 부부를 데리고 홍콩의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지리를 더 많이 익히게 하고 동시에 매장에 들러서 좋은 제품을 싸게 구입하는 요령을 가르쳐준다. 그렇게 한달을 지내면서 필요한 상품을 천천히 구입한다. 그것을 수리한 선박에 싣고서 조선에 돌아오니 벌써 12월 중순이다.

허선비 부부는 그 물건을 울산 방어진에 있는 자기집의 창고에 보관한다. 그 다음에는 그 상품을 가지고 울산과 이웃지역의 부자들에게 보여주고 판로를 개척하고자 한다. 그 사업에 대해서는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와 사전에 상의를 많이 했다. 특히 자신들의 통통선을 타고서 홍콩까지 가고 오는 사이에 계속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그 결과 최선미가 기가 막힌 의견을 하나 제시하고 있다; “여보, 영국제품을 부자들에게 파는 방법은 조선의 방물장수의 수법을 그대로 사용하면 간단해요. 당신은 지게에 상품을 지고 나는 머리에 이고서 부잣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판매하면 되지요“;

그 말을 하면서 최선미가 남편 허선비의 얼굴을 슬쩍 쳐다본다. 크게 안색의 변화가 없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잇는다; “양반체면에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러한 방문판매가 사실은 가장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옛말에도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하지요. 좋고 신기한 물건을 직접 보게 되면 누구나 사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

확신에 차 있는 아내 최선미의 말을 듣고서 허선비는 한순간 정신이 아찔하다. 오랜 세월 관비로 그리고 관청에서 다모로 생활한 최선미는 바닥의 삶에 정통한 여인이다. 그와 달리 아무리 실용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 허선비라고 하더라도 행상을 직접 할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허선비가 과연 어떠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