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27. 07:34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59(손진길 소설)

 

허선비 일행은 이튿날 아침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가고시마에 있는 스즈끼의 방직공장 견학에 나선다. 김준우가 전날 저녁에 손위 처남 스즈끼에게 부탁하여 공장견학을 서두른 결과이다. 그는 허선비가 큰 돈을 대고서 가고시마를 방문한 목적이 다음 두가지임을 벌써 알고 있다.

첫째는, 일본 가고시마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찾아 뵙고 히로꼬 부부를 비롯하여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히로꼬의 두 딸과 사위들이 전부 문안인사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일본과 조선에 떨어져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상봉이다.

둘째는, 일본에서 방직공장을 찾아 견학하고 장차 조선에 그러한 공장을 하나 건설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히로꼬의 오라비가 가고시마에 방직공장을 경영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좋은 기회이다. 따라서 김준우허선비가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스즈끼의 방직공장에는 두가지 종류의 기계설비가 되어 있다. 허선비 일행은 사장인 스즈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있다. 스즈끼 사장이 일본말로 설명하면 그 여동생인 히로꼬가 조선말로 알기 쉽게 통역하는데 정말 귀에 쏘옥 들어온다. 그 내용이 대충 다음과 같다;

(1)  조선에서도 전통적으로 실을 뽑는 물레가 있고 그 실로써 천을 짜는 베틀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의 손과 발로써 작동이 된다. 그러므로 밤새도록 물레질을 하고 베틀에서 천을 짜도 그 생산성이 높지 못하다. 그와 달리 영국에서 개발된 방적기(紡績)직조기(織造)는 그 생산성이 대단하다. 그 이유는 사람의 인력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영국에서는 사람의 손과 발로써 실을 뽑고 천을 짜는 것을 가내수공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와 달리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서 방적을 하고 직조를 하는 것을 공장제 기계공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 스즈끼의 방직공장에서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공장제 기계공업인 것이다;

(3)  3년전 18681월 하순에 죠수, 사쯔마, 도사, 히젠 등 4()의 신식군대가 북상하여 구식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에도의 바쿠를 치고 쇼군의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대권을 차지한 서남 4번의 하급무사들은 18672월에 명목 뿐인 천황의 자리에 오른 메이지 덴노186810월에 새로운 일본의 상징이며 국가원수로 받아들이고 메이지(明治)시대를 개창한다. 그렇지만 내각의 실권은 명치유신의 주역들이 국가원로인 화족(華族)이 되어 완전히 장악한다.

(4)  명치유신의 주역들은 자신들의 번에서 부번강병책(富藩强兵策)을 실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일본열도 전체에 산업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한다. 그 다음에는 강력한 신식군대를 만들어 서양세력의 침투를 막고자 한다. 그것이 소위 일본의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이다. 그러므로 많은 일본인들이 지금은 서남번에서 경영되고 있는 신식공장을 견학하고 자신들의 고향에서도 그러한 공장을 짓고 운영하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허선비는 내심 다음 한가지 사실을 염려하고 있다; ‘산업근대화를 이룬 서양의 열강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의 소비시장을 찾아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그 결과 아프리카에 이어 아시아가 그들의 식민지가 되고 있다. 만약 일본이 산업근대화에 성공하게 되면 그 대열에 그들 역시 합세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조선의 산업근대화는 시급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와 같이 생각한 허선비가 그날의 견학이 끝나고 김준우의 장인인 아라키의 집에 돌아오자 김준우에게 은밀하게 말한다; “형님 덕분에 오늘 스즈끼의 방직공장을 잘 견학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장차 그러한 공장을 조선에 세우고 경영하자면 무엇보다 그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 형님이 스즈끼에게 부탁하여 두 사위 부부를 한 일년만 이곳에 머물면서 연수를 하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준우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오늘 저녁식사가 끝나면 처남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드려볼 생각입니다. 꼭 성사가 되도록 하겠어요”.

일단 그렇게 이야기가 되자 김준우와 허선비는 자신들이 합의한 내용을 최강일 부부와 허지동 부부를 불러서 말한다. 그들은 허선비가 사재를 들여서 조선에 그러한 방직공장을 시범적으로 건설하여 운영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감격에 겨워한다.

그리고 최강일이 대표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열심히 배워서 반드시 조선의 산업선진화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지동도 부친의 뜻을 알고서 아내인 다마꼬의 손을 꼭 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온 식구가 모여서 티타임을 가지는 자리에서 김준우스즈끼에서 그러한 청을 한다. 그 부탁을 듣자 스즈끼가 먼저 호탕하게 웃는다.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웃기부터 하는 것일까?..

그의 대답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매제, 그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것은 부탁도 아니야. 우리 공장에는 명치유신 이래로 전국에서 몰려오고 있는 연수생들이 많아. 그러니 히로꼬의 딸과 사위들도 그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연수를 받으면 되지. 사실은 우리 공장에서도 좋아요. 많은 임금을 주지 아니하고 좋은 노동력을 사용하게 되니 말이야, 하하하“.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어 가자 다음날부터 최강일 부부와 허지동 부부는 스즈끼 사장의 방직공장 기숙사로 들어간다. 조선의 산업선진화를 빨리 이루자면 그들에게는 허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고시마가 고향인 히로꼬는 친정부모님께 부탁한다; “아버지 어머니, 저도 조선에서 살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20여년이 지나서 가고시마를 방문하고 보니 완전히 다른 나라인 것만 같아요. 더구나 일본을 처음 방문한 남편과 사돈 부부 그리고 장선장 부부는 어리둥절하고 있어요. 그러니 가고시마를 샅샅이 구경을 좀 시켜주세요”.

그 말을 듣자 아라키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래, 히로꼬 네 말이 맞다. 이곳 가고시마는 옛날의 가고시마가 아니지.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선진문명이 앞서고 있는 도시야. 그러니 내가 이번 기회에 전부 보여주도록 하지. 나만 믿고 내일부터 한번 나서 보도록 하자고”.

열흘동안 허선비 일행은 아라키 덕분에 가고시마의 이곳저곳을 방문한다. 신식공장이 가동 중에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벌써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여 방직공장 외에 인쇄소와 정미소 등이 건설되어 가동되고 있다. 그리고 열차, 자동차, 기선 등의 운송수단이 등장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가고시마의 뛰어난 경관을 구경한다. 그것을 보고서 최선미가 말한다; “조선에서 통통배로 이틀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일본의 규슈 섬이 있고 그곳에 있는 가고시마에 이러한 선진문명이 벌써 들어와 있군요. 이것을 보면 조선은 아직 깜깜한 한밤중인 것만 같아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그것이 문제이지요. 나는 일찍이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게 되면 한심한 쇄국정책과 매관매직에 빠져 있는 세도정치를 끝내고 조선을 개혁하고 개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어요. 대원군의 조정 역시 두가지 오판을 하고 있어요. 그것은“.

모두들 허선비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1840년대 초에 청국이 영국과 전쟁을 쳐서 크게 패했어요. 그런데 그 소식을 청국과 일본의 나가사키를 왕래하던 네델란드의 무역선이 서남번에 전해주었어요;

 그렇지만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조선에는 일체 전해주지 못했어요. 더구나… “.

흥미로운 설명이다. 따라서 모두들 경청하고 있다. 허선비가 말을 이어간다; “매년 조선에서는 청국의 황도인 북경에 사신을 보내고 조공을 드리고 있지요. 하지만 서양열강이 진출하고 있는 동해안지역에는 가보지를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전히 깜깜무소식인 것이지요. 또 하나는… “.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허선비가 하고 있다; “조선이 대국으로 섬기고 있는 청국이 서양열강의 함대와 신식군대에 의하여 패배하고 말았으며 그들 세력이 동해안에 진출하여 있다는 소식이 은밀하게 조선의 조정에도 사실은 전달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그에 대한 대신들의 판단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

허선비가 잠시 한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은 지극히 가난한 나라이므로 뜯어먹을 것이 없어서 서양 열강들이 결코 침입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오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웃 섬나라 일본이 명치유신을 일으키고 산업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

그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만약 일본이 서양의 자본과 기술을 대대적으로 들여오고 산업을 근대화한다면 그 다음에는 엄청나게 생산이 된 물품을 팔기 위하여 이웃의 반도와 대륙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신식군대를 만들어 그렇게 나설 것입니다. 그러면 만주와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에 해당하는 조선반도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

허선비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예지적인 설명에 대하여 일동은 할말을 잊어버리고 만다. 일찍이 허선비를 모시고 일본의 조슈 하기시를 방문할 적이 있는 장병화 선장은 눈을 감고서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런데 김준우가 한참 생각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돈, 너무 염려하지 마시게나. 이제 젊은 부부 두 쌍을 이곳 방직공장에 연수를 보내지 아니하였는가! 그리고 통통배를 동해안에서 운영하면서 많은 선주들에게 그 구입을 알선하고 있지 않는가? 사돈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하고 있어요. 그 모범을 보고서 우리 조선사람들이 앞으로 떨치고 일어날 것이야! 나는 그 저력을 믿고 있어요”.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렇게 시대에 앞선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일본 가고시마에서의 시찰을 마치고 있다. 그런데 3개월 후에 허선비 부부는 딸 허정순을 데리고 가고시마를 다시 방문한다. 이번에도 김준우의 장인 부부의 집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을 한다; “저희 부부는 지난 번에 어른께서 가고시마의 여러 곳을 안내해 주셔서 참으로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드님 공장에서 연수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그것은… “.

많은 선물을 받고서 즐거워하던 두사람은 허선비가 청이 있다고 하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청이 의외이다; “제게는 여기 있는 허정순이 하나밖에 없는 딸입니다. 금년 10월이면 14살이 됩니다. 제 딸을 어른들이 맡아서 여기서 신식으로 학문을 배우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간곡하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허선비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에서부터 가지고 온 금괴를 여러 개 아라키 부부에게 내놓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라키가 잠시 아내인 유끼고와 상의를 한 다음에 대답한다; “잘 알겠네. 허상 그대는 성심이 놀라워. 개인적으로 그대는 내 딸과 사돈이 아닌가. 그리고 내 손주사위인 지동이가 여기 정순의 오빠가 아닌가. 그러니… “.

아내인 유끼꼬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아라키가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 부부가 정순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신식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네. 아무 염려하지 마시게나. 5년 우리 부부가 책임지고 공부를 시켜주면 되겠는가?...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먼저 고맙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는 허선비가 말한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조선에 있을 때에 우리 부부는 정순이를 서당에 보내어 한문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일본어를 조금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곳에서 신식학문만 한 5년 공부하면 됩니다. 그리고 부족한 일본어와 일본의 지식에 대해서는 어른들께서 틈틈이 집에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 부탁 올립니다”.

허선비최선미는 일어나서 어른들께 큰 절을 다시 올린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아라키유끼고가 즐겁게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자식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고 하더니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이군요, 허허허호호호… “.

이제 조선에 돌아가서 허선비는 또 어떠한 일들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