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3. 23:3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2(손진길 소설)

 

1874년은 허선비 부부에게 바쁜 일이 두가지 겹치고 있다. 그 하나는, 사업의 확장으로 바쁘다. 또 하나는, 차남의 혼사문제로 바쁘다.

먼저 허선비 부부는 3년전인 187111월에 이인용과 함께 홍콩을 방문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홍콩에서 사들인 영국의 직물을 자신들의 통통배에 싣고서 울산에 들어와서 그해 12월 하순부터 인근의 부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팔기 시작했다.

그 행상이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따라서 이듬해 1872년 초여름에는 아예 울산에서 허선비 부부는 ‘허가물산(許家物産)을 창립했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에 두차례나 홍콩을 방문하여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그것이 큰 이익을 가져오고 있다.

그 결과 허선비 부부는 허가물산의 분점을 1874년 여름에 대도시 동래에 내고서 그해 가을부터 영국에서 생산한 직물류를 그곳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 상점의 이름이 허가상회(許家商會)이다;

그런데 동래의 초량에는 왜관(倭館)이 있어서 1860년대부터 그곳에서는 일본에서 생산한 직물류를 팔고 있다. 명치유신 이전에는 서남번에서 생산한 직물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팔더니 명치유신(明治維新)이 발생하고 1870년대가 되자 그때부터는 일본의 생산품을 적극적으로 가지고 와서 대대적으로 조선에서 팔고 있다.

그러므로 허가상회는 일본에서 생산한 직물류를 팔고 있는 동래 왜관의 상점과 경쟁하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동래에서 생산하고 있는 스즈끼 방직공장의 제품도 들어 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이 일본의 직물과 더불어 허가상회에서 팔고 있는 영국의 직물도 사고 있다;

그 결과 동래의 허가상회도 나름대로 이익을 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허선비가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다; ‘소비자는 제품의 다양성을 좋아하고 있구나! 그 이유는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조선이 개화를 한다면 서양의 여러 나라와 동시에 통상조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사업에 바쁘지만 허선비 부부는 매년 가을이 되면 하동으로 가서 이인용 부부가 돌보고 있는 차남 허지서를 만나고 있다. 그런데 1874년 가을에 허지서가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저도 이제 20살입니다.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집의 따님 이청미와 사귀고 있어요. 그러니 청미를 한번 만나 보시고 혼사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최선미4년전에 장남 허지동20살 나이에 김준우 부부의 차녀인 김옥자다마꼬와 결혼시킨 생각이 난다. 그래서 최선미가 관심을 가지고 허지서에게 물어본다; “청미라고 하면 우리 정순이보다 2살이 많으니 이제 19살이겠구나. 그 위로 오빠가 한사람 있는데 그는 3년전에 결혼을 했지?… “.

허지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날 저녁에 최선미가 이인용의 아내인 오화순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화순 동생, 나는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어. 내 아들 지서를 맡아서 친아들같이 잘 돌봐 주고 있고 또한 나에게 청국말과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오화순은 대범한 성격의 최선미가 친언니처럼 의지가 되고 좋다. 그래서 허물이 없이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최선미가 정색을 하고서 말하고 있으니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먼저 긴장이 된다.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말이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 지서가 부모인 나에게 처음으로 말했어요. 댁의 딸인 이청미와 사귀고 있으니 결혼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나는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런데 화순 아우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고 싶군요… “.

그 말을 듣자 오화순이 진지하게 대답한다; “지서를 우리 부부는 8살때부터 20살이 되도록 지금까지 친아들처럼 키워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서는 2살 위인 우리 아들 정근이를 형이라고 부르고 또한 1살 적은 청미를 누이라고 부르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재작년부터 청미와 지서가 서로 사귀는 애틋한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을 알고서 제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사실은“;

최선미가 신중하게 듣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오화순이 솔직하게 말한다; “재작년에 청미는 하나 뿐인 오빠 정근이가 결혼하고 분가를 하고 나자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도 곧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예요. 그러다가 마치 오누이처럼 정답게 지내온 허지서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 사귀고 있는 것으로 보고서 저도 이제는 언니에게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말에 최선미가 웃으면서 말한다; “호호호,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청미는 마치 화순 아우를 보는 것과 같아요. 인물도 닮았고 성품도 닮았어요. 그래서 나는 청미를 며느리감으로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화순 아우도 우리 지서가 사위감으로 싫지가 않은 것이지요?... “.

딱 부러지게 묻고 있다. 그 말을 듣자 오화순이 역시 웃으면서 대답한다; “호호호, 내가 언니를 친언니처럼 좋아하고 있는데 어째서 내 딸을 언니에게 며느리로 주지 아니할 수가 있겠어요. 저도 찬성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

그 말에 최선미오화순의 손을 마주 잡고서 말한다; “그러면 되었어요. 지서와 청미를 불러 놓고 우리가 다시 한번 본인들의 의사를 확인한 다음에 내년 봄에 혼례식을 올리는 것으로 하지요. 그리고 두사람의 앞날에 어떤 일을 맡길지는 제가 지서 아버지하고 상의를 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이인용의 집에서 최선미가 남편 허선비에게 말한다; “제가 화순이와 함께 지서청미를 불러 놓고서 어젯밤에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었어요. 그들은 빨리 혼례식을 올리고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내년 봄에 결혼을 시켰으면 좋겠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

그 말에 허선비가 즉시 대답한다; “당신 생각대로 그렇게 하지요. 빨리 혼례를 올리면 좋겠지만 겨울철에는 우리가 홍콩을 다녀와야 하고 바쁘니 내년 초봄에 일찍 결혼을 시키는 것으로 합시다. 나는 좋습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자 그날 허선비이인용을 만나서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첫째, 겨울에 홍콩에 갈 때에 양가의 부부는 함께 만나서 통통배 2척으로 같이 가기로 한다.

(2)  둘째, 한달간 그들 4사람은 홍콩에서 선박도 수리하고 영국상품을 사들이도록 한다. 그런데 그 다음의 합의사항이 중요하다.

(3)  셋째, 내년 초봄에 지서와 청미의 혼례식을 하동에서 올린다.

(4)  넷째, 이인용의 사업을 장남 이정근이 장차 승계하고 허지서 부부는 동래의 허가상회를 맡아서 운영하도록 한다.

그들의 합의에 따라 이듬해 곧 18753월 하순에 하동의 이인용의 저택에서 허지서이청미의 혼례식이 거행이 된다. 그날 허선비 부부의 통통배를 타고서 사돈과 가족들이 참석한다.

구체적으로, 김준우 부부와 허지동 부부 그리고 허선비의 부모님과 가형 부부가 참석한 것이다. 그리고 울산 방어진에서는 장병화 선장이 자신의 통통배에 하객들을 태워서 하동까지 와서 혼례식을 보고 있다;

그날 모처럼 이인용의 형들과 부모님이 곡성과 구례에서 와서 참석을 하고 있다. 허지서와 함께 자란 이정근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그는 2살 아래인 허지서10살때부터 함께 살아왔기에 마치 친 동기 같이 그 정이 깊은 것이다.

또 한사람이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데 그 자가 바로 구례의 거상인 김상준이다. 그가 혼례식을 보고서 허선비에게 말한다; “나는 구례 관아에서 때로 청국 말 통역을 하고 있는 이지룡의 이야기를 듣고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어요. 허선비, 이지룡의 동생인 이인용과 사돈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허리를 크게 굽히면서 대답한다; “김행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20년이나 매년 저와 만난 행수님이신데 그만 제가 요즈음 사업에 바빠서 그후 구례에 들리지도 못하고 찾아 뵙지도 못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씨가 되시는 그 옛날 김 호방 어른에게도 문안을 부탁드립니다!”.   

그날 거상 김상준의 행차를 통하여 허선비가 한가지 큰 깨달음을 얻고 있다; ‘역시 사업도 모든 중요한 일도 사람들이 하는 것이구나. 김행수처럼 평생 신의를 지키고 사람을 잘 챙기는 것이 상도(商道)이고 사업의 번창이야. 나도 그렇게 해야 하고 앞으로 조선의 개방과 개혁도 국제간에 그러해야 하겠구만!... ‘.

허선비는 한달이 지나자 차남 허지서 부부를 하동에서 동래로 이사를 시킨다. 그리고 두사람에게 동래의 허가상회를 맡아서 운영하도록 훈련을 시킨다. 청국말과 영어에 능통한 허지서이청미이기에 영국의 직물류를 판매하는 일에는 아주 적합하다.

그것을 보고서 그해 여름에 홍콩에 물건을 수입하려 갈 때에 허선비가 차남 허지서 부부를 데리고 간다. 아내 최선미가 혼자서 허가상회에서 근무하느라고 바쁘다. 하지만 홍콩을 처음 방문한 허지서 부부는 신이나 있다.

그런데 그해 1875년 가을에 허선비 내외가 통통배로 일본의 가고시마를 방문한다. 아라키 부부를 만나고 딸 허정순을 만나기 위하여 먼 길을 온 것이다. 먼저 허선비 부부는 딸 허정순을 잘 돌보고 있는 어른들에게 후하게 사례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벌써 저희 딸 허정순을 어른들께 맡긴 지 4년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아라키와 그의 부인 유끼꼬가 허선비 부부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우리 부부는 노년에 재미가 납니다. 정순이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정순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요. 똑똑합니다. 저희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앞으로 결혼도 시키고 계속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질문한다; “혹시 우리 정순이가 사귀는 청년이 이곳에 있나요? 벌써 18살 과년한 나이가 되었어요”. 그 말에 유끼꼬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래요, 정순이가 한번은 이곳 가고시마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선인 청년을 모처럼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어요. 그자의 이름이 권동률(權東律)이라고 했어요 “;

중요한 정보이다. 따라서 저녁에 최선미가 딸 정순이를 만난 자리에서 그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자 딸의 답변이 다음과 같다; “맞아요. 이곳 가고시마에는 조선인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작년에 우연히 학교를 다녀오다가 이웃의 남자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조선인 청년 권동률을 만났어요. 서로가 조선인임을 알고서 깜짝 놀랐지요… “.

그 말을 듣고 있는 최선미가 계속 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그러자 허정순의 설명이 계속된다; “그는 안동권씨 문중에서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어 유학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이유는… “.

조선의 청년이 유학을 일본에 오다니 ‘, 놀라운 일이기에 최선미가 계속 경청한다. 허정순의 설명이 이어진다; “자기 집안에 일본을 잘 아는 선각자가 한 분 계시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저는 동률 오빠의 하숙집에도 가보고 우리집에도 한번 초대를 했어요. 그것이 다입니다. 엄마가 걱정할 만한 다른 일은 전혀 없어요!... “.

아내 최선미로부터 그 말을 들은 허선비가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러더니 그가 조선에 돌아오자 일부러 동래 초량의 료칸을 방문하여 사돈인 김준우에게 질문한다; “사돈, 혹시 안동권씨 가운데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

혹시나 싶어서 허선비가 한번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김준우의 설명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내용이 과연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