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8. 08:4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4(손진길 소설)

 

허선비 부부는 1876년 가을에 통통배를 몰고서 일본의 가고시마에 들린다;

 그 이유는 딸 허정순아라키유끼꼬 부부에게 맡긴 지 벌써 5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의 약속이 5년간 허정순을 그 집에 맡겨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문화를 익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어느덧 아라키 노인의 연세가 82살이고 그의 부인 유끼꼬78살이다. 고령이 되어가고 있으므로 더 이상 그 집에 딸 허정순을 신세지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허선비가 많은 금품으로 그 동안 노부부의 수고에 대하여 먼저 보상을 한다.

그 다음에 진지하게 말한다; “두분 어르신,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희 딸 정순이를 돌보아 주셨기에 이곳에서 중학과정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순이 나이도 19세가 되었으니 마땅한 혼처가 있으면 시집을 보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조선으로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유끼꼬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정순이보다 한살이 많은 조선청년 권동률이 이곳 가고시마에서 중학교를 먼저 졸업하고 작년부터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권상이 정순이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시간만 나면 저희 집에 일부러 찾아오고 있지요, 호호호… “;

 그 말에 허선비는 물론 최선미도 귀를 쫑긋한다. 그리고 아라키도 아내 옆에서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들에게 유끼꼬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정순이를 권상과 짝지어주고 작은 집을 얻어서 신접살림을 차려주면 좋겠어요. 우리 부부도 정순이를 가까이 두고서 계속 보고 싶답니다!... “.

그렇지만 허선비 생각에는 혼인이란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신중하게 아라키유끼꼬에게 대답한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부부가 당사자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의 말씀도 참조하여 좋은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순에게 유끼꼬의 의견을 말했더니 그녀가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권상은 저보다 한 살 연상에 불과하지만 생각이 깊고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저보다 1년 먼저 이곳 가고시마에 와서 혼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중학교를 다녔어요. 그런데… “.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허선비 부부의 궁금한 표정을 보고서 허정순이 설명을 한다; “권상은 작년에 졸업을 앞두고서 제게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곳 일본 가고시마에서는 조선인 권상에게 교사자리를 주지 아니했어요. 그 결과 작년부터 조그만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어요. 따라서 혼인할 입장이 되는지 그에게 한번 물어보아야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웃으면서 말한다; “호호호, 정순이 너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청년만 좋다고 하면 너는 그대로 혼인할 생각이구나! 네 입장이 그러하다면 내가 너의 아버지와 함께 그를 우선 만나보마. 언제가 좋을까?... “.

그 말에 허정순이 적극적이다; “제가 오늘 저녁에 그의 하숙집에 들러 한번 만나도록 주선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하루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속으로 생각한다; ‘정순이는 성격이 외탁을 했구나. 그 옛날 최다모를 다시 보는 것과 같구만, 허허허… ‘.

허정순이 어떻게 주선을 했는지 다음날 저녁시간에 권동률이 과일바구니를 들고서 아라키 부부의 집으로 찾아온다. 허선비 부부는 아라키 부부와 함께 청년 권동률을 맞이한다. 그가 어른들께 먼저 절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서 유키꼬가 말한다; “권상, 큰 절이 급한 것이 아니야.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함께 저녁식사들을 하자고!”.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말한다; “그렇지요. 유끼꼬 상의 말이 맞아요. 우리 다 함께 식사를 하고나서 대화를 하도록 합시다”. 그날 저녁식사는 허정순과 최선미가 유끼꼬를 도와서 준비를 했는지 일본식에 한식도 더해져 있다.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한다.

식사자리에서 허선비최선미 20살 약관의 나이인 청년 권동률의 인상을 유심히 살펴본다. 반듯한 인상이다. 그는 학자나 문관의 풍모가 엿보이는 알맞은 키의 남자이다.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허정순을 슬며시 보고 있는 그의 눈가에 정감이 묻어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여성인 최선미가 먼저 생각을 한다; ‘이 청년은 진심으로 내 딸 정순이를 좋아하고 있구나. 보기에는 샌님으로 보이지만 6년이나 혼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가고시마에서 공부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강단이 있는 청년이야. 내 딸 정순이를 고생시키지는 아니할 사람으로 보이는군!… ‘.

그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허선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일본의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니, 그것은 그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그렇다면 정순이와 결혼하게 되면 그들을 해외에 유학 보내는 것이 좋겠어. 많이 배우고 와서 조선에서 다양한 신학문을 가르치게 되면 참으로 보람이 있을 것이야!... ‘.

저녁식사가 끝나자 권동률은 바쁘다. 먼저 아라키와 유끼꼬에게 큰 절을 한다. 그 다음에는 허선비와 최선미에게 큰 절을 한다. 그리고 허선비 부부에게 말한다; “제가 당장은 월급이 많지 못하여 정순이와 혼인하고 신혼생활을 풍족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열심히 일하여 잘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혼자서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대단한 일이지. 그런데 자네를 이곳까지 가도록 권유하신 분이 혹시 안동의 권상조 선생이신가?... “.

권동률 청년이 깜짝 놀라서 말한다; “아니, 정순이 아버님께서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저희 집안의 숙부님이신데 일찍이 가고시마에서 오래 사셨지요. 고향에서는 저희 학동들에게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가르쳐 주셨어요. 그리고 그 숙모님이 일본여성이기에 저희들의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숙부님 내외의 도움으로 저는 이곳에 와서 중학교에 다닌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허선비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내가 들은 바가 있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이 사실이군요. 참으로 좋은 선각자 숙부님을 가지고 있군요. 그렇다면 만약 자네가 내 딸과 혼인을 한다고 하면 내가 다른 혜택을 좀 주고 싶은데, 한번 들어볼 의향이 있는 가요?... “.

권동률은 고개부터 끄떡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신중하게 말한다; “나는 여기 가고시마에서 중학을 나온 자네가 일본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는 것이 조선으로 보아서는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어. 따라서 자네가 내 딸과 혼인하면 함께 홍콩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서양학문을 더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어떻게 그렇게 한번 해보겠는가? 물론 거기에는 한가지 의무조건이 있어요!… “.

그 말에 권동률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의무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조용히 말한다; “그 조건은 다른 것이 아니라 조선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과 영국의 선진문물과 어학을 교육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야. 어때 내 딸과 부부가 되어 그 일을 전담해주겠는가?... “.

말이 끝나자 권동률이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허선비를 향하여 큰 절을 하면서 결의에 찬 음성으로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집안의 숙부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순이의 아버님을 뵙고 말씀을 듣고 보니 마치 고향의 스승님을 다시 뵌 것과 같습니다. 제가 사부님으로 알고 먼저 큰 절을 다시 올립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허선비가 속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권동률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면서 웃으며 말한다; “허허, 나는 그대와 같은 뜻이 있는 청년을 나의 딸 정순이의 짝으로 만나게 되어 기쁘다네. 그리고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조국을 위하여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그러면 우리 그렇게 한번 해보자고, 하하하… “.

그날 저녁에 아라키 부부의 집에서 허정순권동률은 결혼하기로 일단 약속한다. 그리고 혼인식은 조선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행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자 허선비 부부는 아라키 부부에게 자세하게 그 사정을 말씀드린다. 설명을 듣자 노부부는 어쩔 수가 없는지 단념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하직인사를 드리고 허정순과 함께 권동률이 지내고 있는 집을 방문한다. 모든 짐을 챙긴 후에 허선비 부부는 두사람을 데리고 통통배로 조선으로 돌아온다.

허정순의 혼인식은 그해 11월초에 울산에서 거행이 된다;

 그리고 3일을 지낸 후에 신랑신부가 안동의 본가로 들어가서 한달을 지낸다. 그해 1876년 겨울 12월 중순이 되자 허선비 부부는 허정순 부부를 통통배에 태우고 함께 홍콩으로 들어간다.

그곳 작은 조선소의 선박기술자 버터필드(butterfield)에게 통통배의 수리를 맡기면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 “Do you happen to know a person who works at an English College in Hongkong?”. 그가 즉각 대답한다; “Yes, I have one. What kind of help do you need?”.

그 말에 허선비는 자신의 딸과 사위에게 영국말과 문화를 배울 기회를 주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버터필드가 흔쾌히 자신의 친구 윌리암(William)을 소개해준다. 그 인연으로 윌리암이 근무하고 있는 영국의 작은 대학에서 허정순권동률3년간 공부하게 된다.

본래는 홍콩에서 자라고 있는 영국인의 자녀들을 위하여 만든 대학인데 그곳에서 최초로 조선인 젊은 부부를 학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3년이 지난 그 다음해 1880년 여름에 허선비 부부가 홍콩에 직물 구입 차 들리면서 허정순 부부를 데리고 조선으로 들어온다;

그들 부부를 선생으로 삼아 허선비 부부는 동래에 선진문물과 어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개설한다. 비록 조그마한 규모이지만 알찬 수업을 진행하는 신식학교이다. 1881년 봄에 소수의 학생으로 개학한 그 학교가 체계적으로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국과 일본의 새로운 문화를 가르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때쯤 허선비는 자신의 나이가 벌써 예순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그는 울산 방어진에서 통통배로 어업을 영위하고 있는 장병화 선장에게 2척의 신식어선을 홍콩에서 더 구입하여 그 운영을 전적으로 위탁한다.

그리고 동래에 있는 스즈키 방직공장의 경영을 전적으로 김준우 부부에게 일임한다. 게다가 울산의 허가물산과 동래에 있는 허가상회의 경영을 전부 차남 허지서 부부에게 맡기고자 한다. 부친의 뜻을 알고서 허지서는 조선에서 어선을 몰고 있는 유능한 젊은이를 찾아서 먼저 통통배를 운전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한다.

그 다음에는 조선에서 홍콩까지 가고 오는 항로를 익히게 한다. 충분한 교육과 연수가 있은 다음에 그들은 함께 홍콩을 방문하여 영국제 직물을 구입하여 온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는 완전히 차남 허지서 부부에게 무역회사의 경영을 맡긴 것이다.

한편 김준우 부부는 1876년에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 개화를 시작한 이후 빠른 속도로 신문물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최강일 부부 및 허지동 부부와 상의하여 서서히 경영을 젊은 세대에게 맡기기 시작한다. 1883년이 되자 김준우히로꼬의 나이가 많아지고 있기에 딸네들과 사위들에게 완전히 맡기고 이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가 있자 허선비 부부는 가끔 동래에 들러 딸 허정순과 사위 권동률이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있는 광경을 살펴본다. 자신들이 신경을 쓰지 아니하더라도 학교수업은 물론 재정과 운영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김해에 있는 천석지기의 논에서 얻은 소득을 알뜰히 모아서 학교설립에 투자했는데 그것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1883년이 저물 무렵에 허선비가 내남의 집에서 아내 최선미에게 말한다; “여보, 내가 벌써 환갑을 지냈어요. 이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가 않아요. 다행히 나는 문무를 같이 익혔기에 아직은 몸이 말을 들어요. 따라서 내가 움직일 수가 있을 때에 한가지 더 뜻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무엇이 좋을까요?... “.

크게 기대를 하고서 묻고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선미의 의견이 허선비의 마음에 쏘옥 들어온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