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9. 14:5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5(손진길 소설)

 

17. 눈을 북쪽으로 돌리다.

 

최선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여보, 당신은 어째서 조선의 남쪽에 대해서는 신경을 무척 쓰면서 북쪽에 대해서는 전혀 나 몰라라 하고 계신가요? 저는 그것이 좀 이상해요. 이제부터는 함경도와 그 국경너머의 지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 남은 여생을 지내보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자신은 조선의 동남부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평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다. 그런데 머리가 좋아서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양의 한성부에서 관료로 잔뼈가 굵었다. 그 다음 외직으로 지방수령을 오래 지냈지만 모두가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지역이다.

아내인 최선미 역시 그 친정이 본래 강화 섬과 수원이니 허선비 부부는 한양 이북으로 눈길을 돌린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여생은 북쪽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지역에서 조선의 선진화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허선비는 잠자코 아내 최선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 최선미의 설명이 들려온다; “제가 알기로는 1863년말에 흥선군의 아들이 조선의 국왕이 되었는데 그해가 이북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하여 흉년이 든 시기라고 해요. 대규모 홍수가 3년후에 또 발생했는데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이 나 몰라라 했어요. 그 결과 3년후인 1869기사년(己巳年)에 이북지역에서 그만 대참사가 발생했어요. 그것은… “.

최선미의 설명이 진지하다; “이번에는 홍수가 아니라 그 반대로 가뭄이 이북지역에 너무나 심하게 들어버렸어요. 특히 조선의 동북지역의 끝자락인 함경도 변경에서는 굶어 죽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해요. 그러므로 굶주린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눈을 피하여 간도지역으로 들어갔어요. 그 숫자가 적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

허선비는 아내 최선미의 또다른 측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가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869년부터 1871년까지 3년 동안에 6만명이 넘는 이북의 백성들이 두만강을 건너가서 간도지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조선의 왕도인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남짓이니 6만명은 실로 대단한 숫자이지요. 그러니 12년이 지난 지금 1883년에는 그 수가 얼마로 늘어나 있는 것일까요?... “.  

아내 최선미의 설명을 듣고서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허선비가 한가지 걱정을 꺼낸다; “내가 알기로 거대한 청국(淸國)은 본래 만주의 여진족이 중원을 정복하고 그곳으로 이주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주지역을 떠나면서 그곳을 조상들의 거룩한 땅으로 선포하고 다른 민족이 들어와서 살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그것이 이름하여 청조의 봉금정책’(政策)이지요. 그런데… “.

드디어 허선비는 자신의 염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면서 아내 최선미의 의견을 물어본다; “한족이 아닌  조선백성이 월경하여 만주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그것이 장차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

그 질문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하더니 최선미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호호호, 그것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 만주의 여진족의 수가 5백만명이 못되지요. 그들이 중원으로 이주하여 2억이 넘는 한족을 통치하고 있어요. 그러니 고향인 만주를 돌아볼 여력이 없지요. 게다가… “.

 그녀의 결론이 확실하다; “지금은 서양의 강대국들을 상대하느라고 청조(淸朝)가 정신이 없어요. 그러니 어떻게 두만강 유역에 살짝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통제할 수가 있겠어요? 더구나 두만강 이북의 간도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의 조상들이 말달리던 고장인 걸요!... “.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허선비는 장래일이 여전히 걱정이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 시작한다; “청국이 나름대로 중앙집권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만주에 살려고 들어온 조선백성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아니하겠지요. 하지만… “.

그 말을 듣자 최선미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알기 쉽게 설명한다; “만약에 청국이 전국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지방에서 군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는 변방에 속하는 만주에서 강력한 군벌이 탄생하고 조선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릴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겠어요!... “.

이해가 되는지 최선미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단정적으로 말한다; “여보, 당신 나이가 벌써 진갑을 넘겼어요. 그러니 먼 훗날의 일을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제가 장담하기로 당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아니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신식 통통배를 하나 마련하여 두만강 이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합시다. 그곳에 가보면 분명히 우리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니까요!”.

역시 부창부수(夫唱婦隨)인가! 아니 그 반대인가?... 아내 최선미가 신이 나서 제안하는 말에 허선비가 크게 웃으면서 화답하고 만다; “하하하, 당신 말이 맞아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청국이 여전히 건재하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간도로 건너가서 우리 동포나 돌보면서 그들을 개화하는 일에나 신경을 쓰도록 합시다, 하하하… ”.

새해 1884년 정월에 허선비 부부는 차남 허지서 부부가 영국제 직물을 수입하기 위하여 홍콩으로 가는 통통배에 함께 합승한다. 그 배를 조종하고 있는 선장의 이름이 강한성(姜韓盛)이다. 통통배를 몰고 있는 솜씨와 해도(海圖)를 보는 재주가 남다르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수차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조용히 물어본다; “강군은 어떻게 그렇게 통통배를 익숙하게 운전하지요? 해도를 보는 능력도 대단한 것을 보니 어디서 많이 배운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자 강한성이 조용하게 대답한다; “저는 본래 남해 섬에서 어선을 몰던 아버지에게서 그런 것들을 배우고 젊은 나이에 선장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

 그가 설명을 하다가 허선비를 한번 쳐다보고서 말을 잇는다; “허선비님의 통통배가 남해를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서 사실은 그것을 한번 몰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허가상회에서 젊은 어선장을 대상으로 하여  통통배를 운전할 사람을 뽑는다고 하기에 취직을 했지요. 그 사이 홍콩을 여러 번 다녀오게 되자 이제는 상당히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강한성을 보고서 말한다; “내가 젊은 강선장에게 하나의 꿈을 가지게 하고 또한 그 길을 열어주었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군요. 아무튼 우리 젊은 사장 허지서를 도와서 허가무역회사를 크게 발전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허선비 부부는 홍콩의 작은 조선소에서 여전히 선박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든 버터필드(Butterfield)를 만나서 그에게 부탁한다; “I need an advanced style boat to go faraway. Could you recommend me a new one, please?”.

버터필드가 소개하는 최신형선박을 보니 상당히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한번 시승을 해보자고 했더니 그가 허선비 부부를 태우고서 홍콩 섬을 벗어나자 배의 속력을 높인다. 그 속도가 기존의 통통배와 비교하면 거의 두배나 된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깜짝 놀라서 버터필드에게 질문한다.

그의 질문과 버터필드의 답변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증기기관과 구조가 상당히 다르군요. 그리고 엄청 빠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신형 터빈엔진입니다. 석탄가루를 연료로 태우지만 일종의 터빈기관이지요. 최근에 유럽에서 나온 동력이론을 가지고 내가 한번 만들어본 것입니다. 그러니 최신형이지요, 하하하 “.

허선비가 크게 만족하고서 그 최신형 통통배를 하나 구입하고서 동시에 운전법을 상세하게 배운다. 석탄가루는 증기기관에서도 연료로 사용하고 있기에 조선에서도 구입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물을 끓여서 수증기를 만들어 미는 힘과 이제는 수증기를 급냉하여 흡입력을 이용하여 또 한번 구동장치를 움직이게 되니 갑절의 힘이 빠르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엄청 달라지고 있다. 산업기계와 과학이론의 진보가 눈부신 것이다. 그 점을 이번 홍콩여행에서 허선비가 크게 깨닫고 있다. 그러니 조선의 개화와 선진화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늦어지게 되면 그만큼 산업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홍콩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허지서 부부가 영국제 직물을 잔뜩 구입하여 강한성이 운전하고 있는 통통배에 싣고서 앞장을 선다. 그 뒤를 허선비 부부가 자신들이 구입한 최신형 터빈 통통배를 운전하면서 천천히 따라 간다;

허선비최선미는 최신형 통통배를 울산 방어진에 정박하여 두고서 내남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여 그해 1884년 봄이 되자 그들의 통통배를 타고서 함경도 동해안으로 들어간다. 두만강의 하류에서 중류로 들어가기 전에 그 북쪽에 있는 간도지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사람이 가장 먼저 자신들의 통통배를 강변에 정박하고서 찾아가는 곳이 바로 도문()이다. 그 위치는 함경도의 최북단 온성()에서 두만강을 건너 마주보고 있는 지점이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조선백성의 수가 그리 많지 아니하다;

허선비 부부가 그곳 조선인 이장에게 알아보니 대체적으로 서쪽 130리 지점에 있는 연길(延吉)에 많은 조선인들이 여러 부락을 이루고 대규모로 정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내륙인 그 지역에 들판이 넓어서 조선인들이 그동안 농지를 많이 개간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허선비는 강이 깊고 산이 많은 도문()지역에서 준마를 2필 산다;

 만주지역이라 말을 사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이장 겸 어부인 김혁필(金革筆)에게 자신들의 통통배를 맡기고 연길(延吉)로 달려간다. 오후에 도착하고 보니 조선인 3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큰 성읍이다.

우선 요기를 하고 쉴 수 있는 주막을 찾아야 한다. 마침 그러한 주막을 하나 발견하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손님들에게 술과 국밥을 팔고 있는 주모(酒母)가 말을 2필 끌고서 들어오는 허선비 부부를 보고서 반색을 한다. 한눈에 보아도 멀리서 온 조선인임을 알아본 것이다.

40대후반으로 보이는 주모가 상냥하게 말한다; “멀리서 오신 분들이시군요. 평상에 앉으시지요. 혹시 멀리 남쪽에서 오셔서 추위를 많이 타시면 끝에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군불을 지펴 놓아서 뜨뜻할 거예요!”. 그때 떠꺼머리 총각이 부엌에서 나와서 허선비 부부의 말 2필의 고삐를 넘겨받고서 마구간으로 간다.

오후 늦은 시간에 허선비 부부는 주모가 말한 끝방으로 들어가서 맛있는 국밥을 먹는다. 고맙게도 주모가 숭늉까지 가져다 준다. 숭늉을 마시면서 허선비가 주모에게 말한다; “우리 부부는 여기 연길에서 며칠 머물 생각입니다. 밥값과 방값 그리고 말을 먹이는 비용을 미리 드리고자 하는데 어떻게 계산을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선불을 주겠다고 말하는 손님을 만나니 주모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따라서 미소를 띄면서 대답한다; “손님 부부께서는 1박에 쌀 1말로 해드릴 테니 이방에 오래 머무시지요. 저희 주막에서 손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습니다”.

시원한 대답이다. 일단 3일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허선비가 가지고 온 은화로 미리 지불하면서 주모에게 말한다; “먼저 3일치를 드립니다. 나중에 더 머무르게 되면 추가로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날이 밝으니 저희들은 시내구경을 하고서 저녁에 들어오겠습니다”.

허선비 부부는 북쪽여행이 처음이다. 더구나 조선사람들이 월경을 하여 간도지방에 만든 큰 성읍 연길을 둘러보는 것이 생소하다. 1869년에 국경을 넘어온 조선사람들이 간도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15년이 되어가는 지금 연길은 어엿한 조선인의 도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신작로를 걸어가면서 허선비최선미는 조선백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고 있다. 그때 마주 걸어오고 있는 조선인 두사람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가 깜짝 놀라고 있다. 그들이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