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11. 11:2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6(손진길 소설)

 

조선의 고종 21년인 18844월 하순에 허선비 부부는 간도지역 조선인들의 중심도시인 연길(延吉)시내를 둘러보고 있다. 187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한 성읍이 연길인데 많은 조선인들이 계속 두만강을 넘어 간도로 들어오자 그 도시의 발전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이제는 3만명이 넘는 조선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중심지역에는 나름대로 새로 건설한 넓은 도로 곧 신작로(新作路)가 뚫리어 있다. 그 이유는 우마차가 사람과 물자를 빠른 속도로 실어나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도지방의 북쪽에는 광활한 만주 벌판이 마치 하나의 대륙처럼 넓게 펼쳐 있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조선반도의 4배가 넘는다. 그러니 신작로를 통하여 사람이 말을 타고 빨리 달리며 동시에 마차에 많은 물자를 싣고서 여러 도시에 신속하게 수송해야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허선비가 연길시내를 아내 최선미와 함께 휘적휘적 구경삼아 걷고 있다.

그때 맞은 편에서 나이가 허선비 자신과 비슷하게 보이는 조선노인 두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오고 있다. 그들을 보자 허선비최선미가 동시에 외친다; “아니, 강천무(姜天武)심한수(沈漢秀)가 어떻게 나란히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가? 분명히 그들 두 사람이 맞는데!... “.

허선비최선미가 그렇게 놀라는 소리를 들었는지 마주 오던 두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허선비 부부를 빤히 쳐다본다. 다음순간 그들이 더 놀라서 부르짖는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허참의최다모가 아니신가? 두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나요?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

굉장히 놀란 모양이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러서 모두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지만 이목구비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서로 마주보고 놀랐기에 재삼 정체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가장 먼저 대과동기인 허선비심한수가 너무 반가워서 서로 와락 껴안는다.

강천무도 너무 반가워서 최다모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잡고 흔들고 있다. 1840년대 중반에 한성부(漢城府)에서 5년이나 직장동료로 함께 일한 사이이니 그 정이 남다른 것이다. 특히 남녀의 구분을 떠나서 두사람은 나이가 비슷하니 마치 좋은 친구와 같다.

그 모습을 보고서 허선비강천무를 돌아보고서 대뜸 한마디 한다; “강천무, 최다모는 기실 나의 오랜 집사람이야. 그러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말고 이제는 정중하게 형수님으로 대접하고 인사를 다시 하는 것이 어때?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강천무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심한수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굉필이 이 친구. 자네 정말 최다모하고 기필코 결혼을 했구만. 하기야 최다모의 외가가 20년전에 양반신분을 회복했으니 이제는 어엿한 허참의 영감 댁의 안방 마님이시지... 하하하, 정말 반갑습니다. 제수씨!... “.

그 말에 대담한 성격의 최선미도 다소곳이 심한수를 향하여 허리를 약간 굽혀 예를 차리면서 대답한다; “그 옛날의 최다모가 황해도 평산의 도호부사를 지내신 심한수 나리를 뵙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심한수가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이거 옆구리 찔려서 절 받기 입니다. 제수씨, 그만 두시지요. 이제는 어엿한 정3품 이조참의 허영감의 부인이신데 어떻게 한 품계 낮은 도호부사 출신인 제가 감히 하대를 하겠습니까? 그러니 서로 인사는 이정도로 끝내고 어디 가까운 주막에라도 들어가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나 나누도록 하시지요”.

그 말을 하면서 심한수가 옆에 서있는 강천무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가 허선비를 바라보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굉필이 형님, 제가 인근에 있는 주막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이동하여 뜨뜻한 국밥이라도 드시면서 또 탁배기를 나누면서 지나온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도록 하시지요. 그러면, 모두들 저를 따라오시지요!”.

모두들 강천무의 뒤를 따라간다. 허선비는 강천무의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한다; ‘강천무는 이곳 연길의 지리를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 온 지가 오래된다는 말이군. 조선의 왕도 한양에서 무관생활을 계속한 그가 어째서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인가? 그리고 심한수도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

강천무는 주모에게 부탁하여 아예 조용한 방을 하나 빌린다. 간도지방의 4월 하순날씨가 아직 쌀쌀하여 뜨뜻한 방을 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듣는 사람이 없는 방안에서 그들 4사람이 서로 허심탄회하게 신상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그리한 것이다.

우선 국밥을 한 그릇 씩 비운 다음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다. 먼저 허선비가 대과동기인 심한수에게 한잔 권하면서 말한다; “한수, 어떻게 이곳 간도지방에 들어와 있는가? 몇 년 전까지 그대가 황해도 평산도호부의 수령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나는 소식을 듣고 있었어… “;

그 말에 심한수가 정겨운 눈빛으로 허선비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굉필이, 자네는 나와 대과 동기이며 한성부에서 4년간 함께 근무한 절친이지. 자네가 이조참의 벼슬을 내려놓고 한양을 떠나자 나는 외직을 희망하여 지방수령으로 일하기 시작했어. 나는 본래 이북출신이기에 황해도와 함경도에서 근무했어. 그러다가“.

심한수가 눈길을 서서히 천정으로 향하면서 마치 혼잣말처럼 말한다; “홍수와 가뭄으로 이북지역에서는 흉년이 번갈아 찾아오고 있는데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중앙의 조정에서는 별다른 지원책을 마련하지 아니했어. 그것은 대원군의 집권시기나 민비의 시대나 마찬가지야. 따라서… “.

그가 허선비 부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는 평산도호부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아예 함경도의 고향사람들과 함께 이곳 간도지방으로 들어오고 말았어. 그것이 배짱이 편한 일이지. 우리 심씨(沈氏) 문중사람들이 부락을 일구어 함께 의지하며 집단적으로 앞길을 개척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 말을 들으면서 허선비는 잠시 눈을 감는다. 자기보다 한살이 많은 심한수이다. 그는 그 옛날 한성부 시절에 서고에서 근무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허굉필에게 많은 책을 빌려주면서 허물없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했던 친밀한 벗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렇게 다정다감한 성격의 심한수이다. 그러니 혼자서 도호부사로 호의 호식하는 것이 고향사람들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그는 고향의 문중사람들이 흉년으로 굶주리는 것을 보고서 마음이 많이 아파서 관직을 버리고 이곳으로 함께 들어온 모양이군!... ‘.

심한수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강천무가 신상이야기를 시작한다; “굉필이 형님, 저는 형님이 이조참의 자리에 있을 때에 금위영에서 근무했지요. 1881년에 종래의 5군영이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통폐합이 되자 저는 무위영에서 종4파총(把摠)의 벼슬을 가졌지요. 그런데… “.

그것은 불과 3년전의 변화이다. 그 다음에 강천무2년전의 이야기를 한다; “그만 이듬해 1882년 여름에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했어요. 그때 한달 남짓 대원군이 다시 집권했지만 한양에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그만 청으로 끌려가고 말았지요. 그것을 보고 나는 관직을 버리고 아주 이곳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울분에 찬 무관 출신 강천무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지금의 한양은 청나라 군대와 일본의 군대가 서로 으르렁대고 있으며 조선의 군대는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어요. 조선에는 일본장교들이 훈련시키고 있는 별기군(別技軍)이 일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수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은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최선미는 그 옛날 한성부에서 강무관과 가까운 사이였기에 그의 이야기에 심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렇지만 냉철하고도 이성적인 성격의 허선비는 그와 다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강무관에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강무관은 이곳에서 조선의 국방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요?... “.

강무관의 짤막하지만 결의에 찬 한마디가 허선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제가 간도에 들어온 이유는 이곳에서 한양의 조정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모아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장차 조선군의 간부로 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허선비가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당한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만약 강무관이 그 일에 있어서 장차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말해주세요. 내가 앞장서서 그대를 도와주고 싶어요. 나는 조선을 집어삼키고자 한양에서 일본군과 청국군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설치는 꼬락서니를 결코 보고싶지가 않아요!... ”;

그 말을 듣자 강무관이 갑자기 허선비의 두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한다; “굉필이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씀만 들어도 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 같습니다. 조선내에서 못하는 일을 이곳 간도에서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저는 다시 그 옛날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것만 같아요, 하하하… “.

그 말에 허선비강무관의 두 손을 꼬옥 잡는다. 그러자 심한수가 와락 허선비와 강무관을 껴안으면서 말한다; “이거 나를 빼어 두고 두사람만 의기투합하고 있으니 내가 샘이 나서 말이야, 하하하나도 한자리 끼워 주시게나!... “.

이왕 분위기가 그렇게 전개되자 허선비심한수에게 웃으면서 질문한다; “하하하그래, 한자리 끼워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한수 자네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니 고향의 문중사람들과 두만강을 건너와서 이곳 연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게 솔직하게 한번 이야기를 해주게나!”.

심한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작년에 진갑을 지낸 이 늙은이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지만 한가지가 아직 남아 있어요. 그것은 교육사업이야. 전통적인 교육에 신식교육을 병행하여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해. 그들이 조선의 앞날을 이곳에서 개척하고 나아가서 조선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지 않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은 문중의 힘을 빌려서 조그만 서당을 열고 있어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질문한다; “한수, 그렇다면 자네의 서당에는 지금 신식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별도로 있는가?”. 심한수가 허선비를 보면서 대답한다; “그것이 지금 문제야. 그러한 선생을 여기서 구할 수가 없거든. 왜냐하면… “.

잠시 한숨을 쉬더니 심한수가 이어서 말한다; “우리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농토 개간을 하고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데 바빠서 신학문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 일손이 부족하니 젊은이를 유학 보내지도 못하고 있고. 그래서 조선에서 신학문 선생을 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적임자가 없어요. 그것이 문제이지!… “.

그것이 현안문제인 모양이다. 심한수가 두번이나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허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말이네. 내가 여기 집사람과 함께 당분간 신학문선생이 되어 자네의 서당에서 근무하면 어떻겠는가?... “.

허선비의 제안에 심한수가 깜짝 놀라서 말한다; “굉필이 자네와 부인이 언제 신학문을 배웠는가? 그것참 환갑 진갑을 지낸 노인들이 신학문을 익히고 있다고 하니 정말 놀랄 노자로구만! 참 잘 되었어. 당장 내일부터라도 서당에서 나를 좀 도와 주시게나. 굉필이, 부탁하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하는 옛말이 있다.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연길에 들린 허선비 부부가 뜻하지 아니하게 심한수를 만나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서당에서 심씨(沈氏)촌락의 학동들에게 신식학문을 가르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허선비는 영국의 문화와 영국어를 가르치고 최선미는 일본의 문화와 일본어를 가르친다.

한편 강천무는 연길의 조선족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젊은 조선사람에게 신식총을 제공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계획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는 필요한 재정을 지원하는데 있어서 일익을 감당하고자 한다.

그 다음에 허선비 부부는 간도지방에서 또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