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16. 11:4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8(손진길 소설)

 

188510월 중순에 허선비 부부는 심한수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오후수업을 마치고 심씨부락(沈氏部落)에 있는 자신들의 숙소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 그때에 부락 중앙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종각에서 급한 종소리가 사방으로 터질 듯이 울리고 있다;

그것은 외적의 기습이나 큰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 울리는 경보의 종소리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허선비최선미가 얼른 학교로 달려간다. 혹시 그곳에서 화재라도 발생했는지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는 멀쩡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굳이 동네주민을 붙잡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갑자기 심씨부락의 북녘에서 연거푸 총소리가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한족(漢族) 마적단(馬賊團)의 내침이다. 심씨부락연길(延吉)을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큰 하천의 남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강남(江南)이다. 그러니 마적단이 북쪽의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만주의 화적 떼라고 불리고 있는 악명 높은 한족 마적단은 요즘 자주 남진하여 연길의 북쪽마을을 야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특이하다. 왜냐하면, 아직 해가 지지 아니한 늦은 오후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북쪽마을에서 대항하는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그리고는 쥐 죽은 것과 같은 적막한 기운이 찾아 들고 있다. 그로 미루어 보아 마적단이 별 소득 없이 물러간 모양이다. 그때서야 심씨부락의 촌장인 심한종(沈漢宗)이 젊은 사람 두 명을 차출하여 전령으로 삼아 북쪽마을로 보내고 있다.

전령들이 돌아오자 촌장 심한종이 마을종을 치게 하여 부락회의를 소집한다. 마을에서는 종소리의 고저장단(高低長短)을 듣고서 그것이 외적의 침입인지 아니면 부락회의의 소집인지 등을 구별하고 있다. 작년부터 심씨부락의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허선비 부부도 이제는 그것을 분별하고 있다.

부락회의가 열리는 마을회관에 먼저 참석한 심한수 부부가 허선비 부부를 보고서 자신들의 옆자리에 와서 앉도록 권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 자리를 잡은 허선비에게 심한수가 슬쩍 말한다; “촌장인 재종형님이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우리들을 불러모으셨는지 모르겠군. 허선비, 자네는 혹시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으신가?... “.

그 말에 허선비가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허, 한성부 시절부터 한수 자네가 우리 동기들의 소식통이 아니었는가? 그러니 자네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허허허다만 한가지, 오늘은 야습(夜襲)이 아니고 낮에 그들이 기습을 했어. 그러니 그와 관련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구만!“.

그 말을 듣자 심한수가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딴은 그렇지. 내가 모르는 일이 이 심씨부락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재종 형님인 한종(漢宗) 촌장이 어째서 교장인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가 부락회의를 소집한 것일까? 그것참 흥미로운 일이구만허선비 자네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그때에 부락의 어른들이 대충 모인 것을 파악한 촌장 심한종이 신중하게 말을 꺼낸다; “오늘 저는 급하게 부락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날이 저물기도 전에 북쪽마을을 습격한 마적단이 이상한 이야기를 남기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

모두들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그들의 귀에 촌장의 말이 뚜렷이 들려온다; “해가 바뀌기 전에 그들은 다른 마적단과 연합하여 대규모로 쳐들어오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락이 불타고 많은 인명이 다치기 전에 자진하여 금년에 추수한 곡식의 절반을 바치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물러갔다고 위쪽의 부락에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습니까?”.

듣고 보니 보통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좌중이 조용해진다. 잠시후에는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가 나이가 족히 예순이 되어 보이는 노인이 좌중에서 일어선다.

그가 분노를 삭히지 못한 음성으로 말한다; “추수의 절반을 바치고 나면 우리들은 먹고살 양식이 너무나 부족해집니다. 보리고개를 만나기도 전에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할 지경이지요. 그러니 도저히 그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어요. 나는 우리 농군들이 낫과 괭이 아니면 쇠스랑이라도 손에 들고 나가서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자 촌장 심한종이 천천히 말한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장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우리가 농기구를 가지고 대항한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일이지요. 그것은 채택할 수가 없는 대안입니다”.

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년대표로 참석한 젊은이가 발언권을 얻어서 말한다; “저는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심경준(沈敬俊)입니다.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대처방법은 연길의 자경단원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있는 강천무(姜天武) 교관과 상의하여 그들 마적단을 공동으로 막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

강교관의 이름을 말하고 있기에 허선비가 주의 깊게 심경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온다고 하면 우리들도 여러 부락이 전부 연합하여 자경단을 앞장 세워서 전투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부락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가 없어요. 제게 맡겨 주시면 제가 강천무 교관 및 자경단 간부들과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상의하여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좌중의 어른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고개를 연신 끄떡이고 있다. 허선비도 그 의견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회장인 심경준이라고 하는 청년에게 관심이 간다. 따라서 옆에 앉아 있는 심한수에게 슬쩍 물어본다; “청년회장은 어느 댁의 자제(子弟)이신가?... “.

그 말에 심한수가 미소를 띠면서 대답한다; “허선비, 심경준은 촌장인 심한종 형님의 막내아들이야. 본처를 사별하고 젊은 후처를 얻었는데 거기서 막내아들을 생산한 것이지. 재종형 심한종이 나보다 2살이 많으니 금년에 춘추가 65세야. 그런데 40대에 막내아들을 얻었기에 경준이가 금년에 23살이지. 그는 “.

허선비가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심한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재작년에 강천무의 손녀와 혼인을 했지. 강무관은 일찍 결혼하고 무과에 급제를 했어. 그래서 금년에 61세인 그의 장남 강무용(姜武容)의 나이가 41세이고 무용의 장녀인 강신혜(姜信惠)21살이야. 그녀가 재작년 19살 나이로 심경준과 혼인했어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는 자신이 강천무에 관하여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따라서 옆에 앉아 있는 아내 최선미에게 질문한다; “선미, 당신은 강천무의 부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최선미가 호호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호호호, 당신은 남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대목이 많아요. 그래요, 저는 한성부에서 강무관과 5년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으니 처음부터 알고 있지요. 그의 부인은… “.

허선비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심한수도 흥미가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 최선미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이름이 주용녀(朱容女)이지요. 내가 용녀로부터 들은 바로는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고향에서 유명한 무인입니다. 동향인 그녀의 집에 어려서부터 강천무가 무예를 배우고자 출입을 했고요“.

최선미가 요령 있게 압축하여 설명한다; “고향에서 젊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19살의 주용녀가 동갑인 강천무와 혼인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해에 남편이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이듬해 1843년 가을부터 한성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지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심한수가 동시에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데 다음 순간 허선비가 심한수에게 질문한다; “한수, 그대는 강천무가 어째서 장남 가족만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그 내막을 알고 있는가?”.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심한수가 즉각 대답을 한다; “그야 아들은 장남 밖에 없는데 나머지 딸들은 전부 조선에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어요. 그러니 친정부모를 따라서 간도로 들어올 필요가 없지요. 자연히 강천무가 아들 가족만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

부락회의가 젊은 심경준의 의견을 결론으로 채택하고서 끝난다. 그러자 다음날 허선비는 일부러 북쪽의 마을로 가서 강천무를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 물어본다; “천무 아우, 그대는 어제 마적단이 남기고 간 경고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

강천무의 대답이 신중하다; “어제 오후 늦게 우리 연길을 침입한 마적의 수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경단이 지니고 있는 총기로 그들을 막을 수가 있었어요. 그것은 모두 굉필이 형님이 재정지원을 크게 해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

그가 잠시 말을 끊고 있다. 그리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 자경단의 인원과 무력만으로는 대항하기 힘이 들어요.  후유, 그것이 실제로는 큰 문제입니다”.

그의 말을 듣자 허선비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질문한다; “천무 아우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겠는가?... “. 강천무의 대답이 들려온다; “무력을 증강시키면 됩니다. 그 방법이 하나 있지요. 그것은… “.

허선비가 바짝 귀를 들이대고서 강무관의 설명을 경청한다; “제가 일전에 총기류를 구입하기 위하여 재차 밀수업자를 방문했지요. 그때 희한한 물건을 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발로 사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기관총이었어요. 최신식이라고 하는데 그 값이 엄청났지요!… ”;

귀가 솔깃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허선비가 즉시 물어본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 화포만큼의 살상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값이 얼마이기에 그러는가?”. 당장 강천무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의 설명이 다음과 같다; “20년전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개발이 된 그 기관총은 수십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린 수 있으므로 그 위력이 거의 화포와 같다고 해요. 워낙 최신식이라 그 값이 소총 100자루의 값과 맞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감생심이지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결심한듯이 강천무에게 말한다; “천무 아우, 사람이 상하는 것보다는 돈을 손해보는 것이 좋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따라서 내가 그 기관총 한대의 값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내일 그 돈을 금괴로 가져다 줄 것이니 한대를 사서 자경단의 화력을 보강하게. 그리고 기필코 마적단을 물리쳐주게!”.

그 말에 강천무가 놀란 눈으로 허선비의 얼굴을 다시 본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서 말한다; “형님, 작년에 큰 돈을 희사하셔서 저희 자경단이 소총으로 완전무장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기관총까지 한대 사서 마을 입구에 설치하게 되면 마적단이 연합으로 쳐들어오더라도 막을 수가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우가 절을 한번 하겠습니다!... “.

역시 강천무는 무인이다. 어느 사이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깜짝 놀라서 그의 팔을 잡아 일으키면서 말한다; “천무, 내가 자네와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40년이 넘어. 친형제와 같은 사이인데 새삼 무슨 큰절인가? 일어나서 우리 한번 연길의 동족들을 제대로 지켜내도록 함쎄!”.

그날 기분이 좋은 지 강천무가 아내 주용녀에게 말하여 사랑방으로 술상을 차려내게 한다. 술잔을 서로 기울이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허선비는 그 기회에 강천무의 손주사위가 되는 심경준에 관하여 물어본다.

강천무가 함빡 웃으면서 말한다; “형님, 내 손녀 강신혜가 남편복이 있어요. 심경준은 아주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리고 믿음직하고요. 앞으로 이곳 연길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하하하 “.

강천무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을 허선비는 오래간만에 듣고 있다. 따라서 그도 기분이 좋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강천무가 정색을 하면서 허선비에게 말한다; “굉필이 형님, 혹시 우리 연길의 남쪽에 있는 용정(龍井)지역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뜬금이 없는 질문이라 그 취지를 모르고 허선비가 단숨에 대답한다; “아니, 나는 가본 적이 없어. 그냥 사람들 말을 듣기로는 거기에 해란강(海蘭)이라고 하는 큰 강이 지나고 있다고 하더군. 따라서 아주 비옥한 지역이라고 듣기만 했지. 천무 아우, 왜 그러는가?... “;

조용히 웃으면서 강천무가 허선비에게 말한다; “형님, 도문에서 서쪽으로 130리를 오면 여기의 연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남쪽으로 꼭 그 절반인 65리를 남하하면 용정이 나타나지요. 그곳에는 형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두만강의 지류로 볼 수 있는 큰 강 해란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어요. 그러니 여기보다 훨씬 비옥한 땅입니다. 따라서… “;

허선비가 대충 다음말을 짐작하고 있다; ‘더 비옥하고 더 남쪽이라고 하면 여기 연길보다 더 안전하고도 살기가 좋은 땅이다. 그렇다고 하면 자기 부락이 없는 강천무가 그곳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과연 그날 강천무가 허선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