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17. 13:42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69(손진길 소설)

 

강천무의 말이 허선비의 예상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굉필이 형님, 저는 40년전에 형님을 모시고 한성부에서 무관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정말 신나는 한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비록 6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따라서 저는… “.

강무관20대였던 당시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한성부 야경담당 허굉필 나리와 함께 한밤중에 한양의 골목길을 누비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이어 말한다; “지금 당장 새로운 개척지 용정(龍井)으로 형님을 모시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허선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이곳 연길에서 강천무는 중책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당장은 이주를 할 수가 없는 형편인 것이다. 허선비의 예상이 맞다. 강천무가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간절하게 부탁한다; “저는 한족 마적단으로부터 이곳 연길(延吉)의 동족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부득이 형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립니다. 저의 아들 무용(武容)의 가족을 데리고 새로운 개척지 용정으로 이주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훗날 제가 반드시 뒤따라 가겠습니다”.

허선비는 금방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 역시 심씨부락(沈氏部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눈치챘는지 강천무가 언급한다; “그곳에서 여기까지는 준마로 달리면 반()시진 안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굉필이 형님, 그렇게 아시고 저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무리한 부탁인가? 아니면 또다른 일의 계기인가?’, 허선비는 두가지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우선 내일은 자네에게 약속한 금액을 금괴로 가져다 주겠네. 그 돈으로 신식 기관총을 사서 마적단의 내침에 대비하도록 하시게. 그리고 자네의 부탁 건은 내가 집사람과 상의한 후에 내일 확답을 주도록 하겠네. 그러면 내일 보도록 하지!”.

심씨부락으로 되돌아온 허선비가 그날 오후수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내 최선미와 상의를 한다. 두가지 주제이다; 하나는, 최신식 기관총을 사서 연길의 동족을 지킬 수 있도록 강천무에게 재정지원을 해주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65리 남쪽에 있는 신개척지 용정으로 이주하는 건이다.

곰곰 생각한 후에 최선미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지난 여름에 어째서 동래의 방직공장과 무역회사에 들러서 수익분담금을 전부 금괴로 받아서 왔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군요. 당장 이곳의 동족들을 마적단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그것이 군자금으로 사용이 되고 있군요. 그리고… “.

잠시 후 최선미가 각오를 단단히 했는지 결단을 보인다; “이제는 신개척지 용정을 개발하는 일에 또 그 돈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우리 부부는 그렇게 자립(自立) 자주(自主) 자강(自强)의 조선을 만드는 일에 끝까지 매진하도록 하십시다.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이다. 바늘 가는데 실 가고 실 가는데 바늘이 따라간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40년 세월을 동료로 그리고 부부로 살아온 허선비최선미의 마음이 일심동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그날 허선비는 아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크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인가 봅니다! 하하하… “.

이튿날 아침식사를 끝내고 허선비가 곧바로 강북으로 가서 강천무를 만난다. 그에게 약속한 그대로 소총 100자루를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을 금괴로 준다. 그것으로 미국산의 신식기관총을 한대 구입하여 자경단의 화력보강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강천무에게 말한다; “최다모도 찬성을 했어요. 그러니 내가 자네의 아들 강무용과 그 가족을 데리고 신개척지 용정으로 이주하도록 하겠네. 그곳을 답사하고 미리 집을 지은 다음에 이주를 해야 하니 이사는 내년 봄이 되어야 할 게야… “.

그 말을 듣자 강천무가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형님, 제가 아들과 함께 여러 번 용정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당장 거처할 수 있는 허름한 움막집을 2채 마련해 두었지요. 그러니 일단 내달 초에 그곳으로 이주하시고 아예 그곳에 살면서 제대로 터를 잡은 후에 살림집을 다시 짓는 것으로 계획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허선비가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강천무가 부연한다; “제 아들 무용이가 오늘 저녁에 심씨부락 형님의 숙소를 찾아갈 것입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무용이와 나누도록 하시지요. 무용이도 마흔이 넘은 나이라 형님이 그곳으로 이주하는데 있어서 그런대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날 저녁에 허선비가 자신의 숙소를 방문한 강무용을 만나보니 그 옛날의 강무관을 다시 만나는 것과 같다. 어쩌면 그렇게도 부자사이에 모습이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최선미강무용을 무척 반긴다.

허선비가 꼭 필요한 말만 물어보고 있다; “자네가 나의 오랜 벗 강천무의 아들이라고 하니 내가 말을 놓도록 하겠네. 자네의 식솔은 전부 몇명인가?”.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 아들 둘입니다. 딸은 재작년에 시집을 갔습니다. 아들 둘이 미혼입니다. 저희들은 진작부터 용정으로 이주할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나중에 합세할 것입니다”.

그들의 결심이 확고하므로 허선비 부부는 11월초에 곧바로 함께 이주하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결정이 되자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에게 말한다; “우리 기회를 보아 준마를 타고서 용정지역으로 달려보도록 합시다.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이제는 직접 답사하여 사전에 그곳의 지세를 자세하게 살펴야 할 때입니다”.

말 그대로, 두사람은 기회를 보아 마구간에서 준마 2필을 꺼내어 남행에 나선다;

 ()시진을 열심히 달렸더니 불모지인 용정지역에 들어선다. 역시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는 해란강(海蘭)이 무척 아름다운 고장이다.

물길 따라 일부 농토가 개간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토지는 아직 미개척의 황무지 상태이다. 하기야 수년 전 1880년대초부터 일부 조선인들이 용정지역으로 들어왔다고 하니 마을을 이루어서 살고 있는 조선사람의 수가 많지 아니하다. 그 가운데 하림(河林)마을이라고 하는 곳으로 허선비 내외가 천천히 말을 타고서 가본다;

두사람이 말에서 내려 고삐를 쥐고서 터벅터벅 마을로 들어서고 있는데 왁자지껄하게 동네아이들이 먼저 마중을 나오고 있다. 나중에는 장년이 한사람 아이들의 뒤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른을 보자 허선비가 깍듯이 인사하면서 말을 걸어본다; “저는 허선비라고 합니다. 혹시 이 마을에 연길에 사는 강천무라고 하는 분이 사 놓은 움막집이 2채 있는 가요?... 저희 부부는 그 집을 찾고 있습니다마는“.

그 사람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우리 하림마을이 이곳 용정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조선사람이 형성한 촌락이지요. 일전에 연길의 자경단 교관인 강무관이 이곳을 다녀갔지요. 우리들이 움막을 여러 채 지어 놓은 것을 보고서 2채를 구입하셨답니다. 제가 어르신을 안내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허리를 굽히면서 말한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연세가 쉰이 넘으신 것 같은데 저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황송합니다. 저는 금년에 예순 둘에 불과합니다. 나이가 10년 안쪽이면 서로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것이 맞지요,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그 중년인이 자신도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웃으며 대답한다; “,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름이 하상수(河尙壽)입니다. 금년에 55살입니다. 그러니 허선비 어르신보다는 7살이나 연하입니다. 편하게 말씀을 놓으시지요. 그래도 됩니다. 하하하… “.

그 말에 허선비가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나이 차이 7살에 불과한데 어르신이라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저 형님 동생으로 생각하고 말을 편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름이 듣기에 편하고 기억하기에도 편하게 허선비라고 개명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행은 저의 집사람인 최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상수가 앞장서서 안내한 허름한 집은 정말 움막집이다. 그렇지만 보기보다 실내가 넓고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이북에서 움막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니 그런대로 지낼 만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허선비가 하상수에게 말한다; “내달 초에 제가 강무관의 자제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서로 한 채 씩 차지하고 살다가 나중에 땅을 개간하기 편리한 곳 양지바른 곳에 주택을 다시 지을 생각입니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하선생님!... “.

그 말을 듣자 하상수가 조심스럽게 허선비최선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문득 기억이 나는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시 연길 심씨부락에서 학동들에게 신식학문을 가르치고 계시는 허선비님 내외분이 아니십니까? 제가 작년에 그곳에 들렀다가 수업 광경을 한번 본 기억이 나서 여쭈어 봅니다”.

그 말에 허선비가 깜짝 놀라서 하상수의 얼굴을 자세하게 본다. 그 인상이 범상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농사꾼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보니 오래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 아니시군요. 제 눈에는 학문을 오래한 선비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그제서야 하상수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선비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아니하셨는데 제가 그만 정체를 숨겨서 미안합니다. 저는 하문재(河文宰)라고 하는 이름으로 작은 벼슬을 지내다가 천주학을 신봉하게 되어 관직을 내려놓고 자의로 한양을 떠났습니다. 조선천지를 방황하다가 이곳까지 흘러왔습니다. 지금은 이곳 조선인 개척마을에서 훈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허선비가 볼 때에 크게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도 인연입니다. 서양의 천주학을 신봉하고 있는 하선비를 만나게 되니 신식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저로서는 동지를 만난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하상수는 자신보다 7년이나 연상인 허선비의 그 소탈한 성품이 마음에 든다. 따라서 그날 헤어지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외로이 이곳 용정에서 지내고 있는데 좋은 동지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무사히 내달 초에 이곳으로 이주하셔서 자주 교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

그날 해란강(海蘭) 이북에 있는 하림마을을 떠나 허선비 부부는 이남에 있는 황무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말을 타고서 황야를 달리면서 대충 살펴보고 있으니 말 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다. 그리고 멀리 눈을 들어 남쪽을 바라본다. 150리 정도 가게 되면 두만강에 이른다고들 말하고 있는 지점이다;

조선이 그곳에 있는데 굶주린 백성들이 고향을 버리고 자꾸만 두만강을 건너 간도지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홍수와 가뭄으로 백성들이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는데 중앙의 조정에서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수령들의 착취가 심하다.

그러니 함경도와 평안도의 백성들이 야반도주가 아니면 살 길이 없어서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하여 간도로 들어오고 있다. 1870년을 전후하여 도문으로 조선백성이 들어오더니 그 다음에는 연길에 몰려들었다.

그런데 한족의 마적 떼가 자주 출몰하자 이제는 그 남부에 있는 용정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허선비 부부는 188511월초에 심씨부락의 숙소를 떠나서 짐을 마차에 싣고 용정 하림마을로 이주한다. 물론 강천무의 아들 강무용의 가족과 더불어 이사를 하고 있다;

두 채의 움막집에 짐을 풀었더니 이웃에 살고 있는 하상수 부부가 식사초대를 한다. 그날 허선비 부부와 강무용 가족 4명 도합 6명이 그 댁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다음날부터 이틀 간은 학교가 쉬는 날이다.

그렇지만 3일째가 되자 허선비 부부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준마를 타고서 연길로 향한다. 반시진을 달리자 멀리 연길의 심씨부락이 보인다. 학교에 들어서서 나름대로 그날의 수업준비를 한다.

그와 같이 용정과 연길을 말로 달리면서 허선비 부부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