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20. 01:21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1(손진길 소설)

 

18.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허선비 부부

 

때는 조선의 고종 33년인 1896년 봄이다. 정월에 통통배를 타고서 동간도(東間島)도문(圖們)에서 조선의 동해안 경상도의 울산(蔚山)으로 들어온 허선비 부부는 말을 타고 경주부(慶州府)의 시골 내남(內南) 부남면(府南面)으로 들어와서 모처럼 집에서 푹 쉬고 있다. 3월 봄이 되니 따뜻한 바람이 남쪽 울주(蔚州)방향에서 불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부남면의 월산리(月山里)는 남쪽의 앞산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봄바람의 기세가 많이 꺾이어 있다. 그래서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를 바라보고서 한마디를 한다; “허허, 바위가 많은 앞산 때문에 봄기운이 빨리 오지를 못하고 있군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오히려 북편에 있는 이조(伊助)덕천(德泉)이 더 따뜻하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호호라고 웃으면서 대꾸를 한다; “여보, 당신도 70대 늙은이가 되더니 이제는 추위를 많이 타는가 봅니다. 춘풍이 더디 온다고 타박을 다 하고 계시는 것을 보니까요, 호호호… “.

그 말에 허선비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부인, 그래도 나는 그 추운 만주 벌판에서 겨울철 12월을 10년 이상 버틴 사람입니다. , 아직 젊은 사람 너무 무시하지 말기요, 허허허… “. 그렇게 우스개소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립문을 열고서 노인부부 두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마루에 앉아서 앞산을 바라보고 있던 허선비 부부가 얼른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는 노인 두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고서 반가운 김에 말이 먼저 나간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멀리 하동(河東)에 살고 있는 사돈내외가 아니십니까? 그래, 이 먼 곳까지 어인 행차이신가요!... “;

허선비2살 연하인 사돈 이인용을 만나자 반가워서 포옹을 한다. 최선미는 안사돈 오화순의 두 손을 잡고서 다정하게 말한다; “화순동생, 아니 안사돈 정말 잘 왔어요. 나도 하동으로 가서 사돈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래 잘 지냈어요?... “.

그 말을 듣자 오화순이 왈칵 최선미를 껴 앉으면서 대답한다; “선미언니,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요. 모처럼 동래에 들러 딸과 사위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고서 오래간만에 이곳까지 찾아왔어요. 저도 나이가 일흔이 가까워지니 갑자기 사돈인 언니가 보고싶더라고요!... “.

허선비가 이인용에게 말한다; “사돈 우리 마당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대청에라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런대로 봄날의 햇살이 따뜻하군요”. 최선미가 얼른 오화순을 대청으로 데리고 가서 말한다; “잠깐만 대청에 앉아 있어요. 내가 부엌에서 따뜻한 차와 떡을 좀 내올 테니까요”.

대청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인용이 허선비에게 말한다; “사돈, 아니 형님, 내가 사위 지서(知西)에게서 들으니 이제는 간도에서의 일을 전부 끝내고 여기 부남으로 완전히 돌아오셨다고 하더군요. 그래 여기 시골에서 지내시기가 좀 어떻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허, 간도에서는 그동안 일이 너무 바빠서 얼른 매듭을 짓고 따뜻한 조선에 돌아가서 집에서 푹 쉬어야지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막상 연초에 돌아와서 2달 이상을 푹 쉬어 보니 이제는 좀이 쑤십니다. 역시 나는 일거리가 있어야 되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

그 말에 이인용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천천히 한가지 제안을 한다; “형님, 그렇다고 하면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와 함께 세상구경을 좀 하러 나가시지요! 마침 홍콩의 조선소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던 영국인 기술자 버터필드(Butterfield)가 금년에 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뜻밖의 제안이라 허선비가 귀를 쫑긋한다. 사돈 이인용의 말이 계속된다; “저희 부부는 그에게 부탁하여 세상구경을 좀 하려고 작년말에 벌써 말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차제에 형님 부부도 같이 가시지요!”.

참으로 좋은 제안이다. 그래서 허선비가 호기심을 가지고 먼저 물어본다; “버터필드의 고국이라고 하면 구라파의 영국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하는가?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 아니했는데 우리 부부가 갑자기 그와 동행할 수가 있겠는가?... “.

이인용이 막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최선미가 다과상을 가지고 온다. 일단 따뜻한 차를 나누어 마신다. 그 사이에 오화순이 방금 남편 이인용이 제안했던 이야기를 최선미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선미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허선비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렇게 두 가정의 부부가 마주보고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이인용이 드디어 이야기를 계속한다; “버터필드의 설명으로는 홍콩에서 영국으로 가는 기선을 타고 간다고 합니다. 4월초에 떠나는 배인데 그 운임과 노선이… “.

갑자기 이인용이 자신의 품에서 글을 적어 놓은 종이를 한 장 꺼낸다. 그것을 보면서 그가 말한다; “선박의 이름이 빅토리아(Victoria)입니다. 노선이 홍콩, 태국, 말레이, 인도, 남아공, 포르투갈, 홀란드, 그리고 영국입니다. 운임은 일인당 왕복으로 5천 파운드이므로 부부가 1만 파운드입니다. 그 값어치는 고급 기와집 한 채 값이 됩니다. 그리고… “;

이인용이 잠시 허선비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어 말한다; “워낙 운임이 많이 들어서 손님이 크게 없다고 버터필드가 말하고 있어요. 따라서 형님 부부가 우리와 같이 지금이라도 홍콩에 가서 돈을 내고 곧바로 신청하면 됩니다. 형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잠시 최선미의 옆얼굴을 다시 쳐다보다가 무슨 표정을 확실하게 읽었는지 대답한다; “사돈 부부가 같이 간다고 하면 나는 찬성이야. 우리는 벌써 70줄에 들어섰는데 이번에 한번 세계를 돌아보지 않으면 언제 나서 보겠는가?... “. 그리고 허선비가 고개를 돌려 최선미를 보고서 말한다; “여보, 우리 한번 그렇게 합시다!... “.

허선비가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을 계속 쳐다본다. 그때 최선미가 얼른 고개를 돌려 남편을 쳐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이면서 남편의 얼굴을 정답게 바라보면서 한마디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다; “여보, 그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는 항상 따라다닐 것이니까요! 호호호“.

그 모습을 보더니 이인용이 쾌활하게 말한다; “맞습니다. 저희 부부도 진작에 그렇게 결정을 했지요. 그러면 이제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 돈을 마련해가지고 저희와 함께 홍콩으로 가시지요. 저의 통통배를 홍콩 항구에 맡겨 놓고서 버터필드를 만나 그의 가족과 함께 세계일주에 나서면 됩니다!”.

하동에서 무역업을 경영하고 있는 이인용의 재력이 대단하다. 그는 벌써 여행경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 사돈인 허선비에게 한마디를 한다; “형님, 갑자기 그렇게 큰 돈을 마련할 수가 없으면 제가 대신 대납을 해도 됩니다. 그리고 대금은 다녀오신 다음에 천천히 제게 주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 우리 부부를 데리고 세계여행에 함께 나서자고 일부러 찾아온 고마운 사돈에게 그런 부담을 드리면 안되지요. 마침 내가 다른 일에 사용하려고 집에 마련해 놓은 돈이 좀 있어요. 그것이면 충분하니까 그런 걱정은 마세요, 허허허… “.

화교출신인 이인용이 사돈인 허선비의 재력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역시 해외사정에 밝으시고 재력 또한 대단한 사돈 내외분이십니다. 이번에 함께 영국까지 다녀오시게 되면 조선인 가운데 가장 선구자이며 선각자가 되실 것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그것은 사돈이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선에서 가장 선각자이며 해외사정에 밝은 사람은 작년에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徐載弼)이지요. 나이가 30대초반에 불과하지만 그는 약관이 되기 전에 벌써 대과에 급제하여 출사를 하였고 일본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미국에서 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왔으니까요. 참으로 대단한 인재이지요!... 하하하“;

그 말에 이인용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조선의 천재 서재필이 있군요. 그렇지만 그는 나이 20살에 김옥균갑신정변에 참여하여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 다음에는 미국으로 들어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지요. 그와 달리 형님은 조선의 조정에서 이조참의까지 지낸 인물로서 보기 드물게 그야말로 선각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말한다;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군요. 하지만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제는 구미지역에 나가서 선진문물을 살피고 돌아오게 될 것이니 우리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해외시찰에 나서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여행은 참으로 그 시기가 적절한 것입니다. 이게 모두 사돈 잘 둔 덕분입니다, 하하하… ”.

그 말에 이지용이 따라서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조선의 개화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하하하… “.

그날 오화순최선미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 지 호호라고 웃고 있다. 그렇게 그들 4명은 18963월에 준비를 단단히 하여 이지용의 통통배를 타고서 홍콩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반갑게 버터필드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운임을 치르고 빅토리아호에 승선하게 된다.

그때부터 허선비 부부는 이인용 부부 및 버터필드의 가족과 함께 긴 여행을 하게 된다. 봄철인 4월초에 홍콩에서 출발하였는데 구라파의 영국에 도착하게 되자 어느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다. 그 사이에  태국, 말레이, 인도, 남아공, 포르투갈, 홀란드를 짧게 방문하였는데 현지에서 허선비가 느낀 감회가 대충 다음과 같다;

(1)  태국은 왕정국가인데 유럽의 열강과 당당하게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자주독립국이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는 두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해가 지지 아니하고 있다는 대영제국의 식민지 경영에서 예외가 되고 있는 태국왕실의 자주성과 그 외교능력이 대단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남진하고 있는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하여 대영제국이 신경을 쓰다가 보니 태국까지 정복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허선비는 영국의 해군이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고 있는 러시아의 해군을 막기 위하여 지난 18854월부터 2년간 조선의 남해안 여수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유한 사실에 비추어 그와 같이 짐작하고 있다. 그때 서구열강이 영국의 움직임을 경계하자 그만 그들의 해군이 2년만에 물러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열강들이 태국을 일종의 완충지역으로 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2)  말레이는 홀란드에 이어 영국의 오랜 식민지이다. 영국이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들어오는 좁은 해협 말라카를 장악하기 위하여 1824년에 홀란드와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그 결과 남부지역 곧 인도네시아는 홀란드가 차지하고 그 대신에 싱가포르를 포함하는 말레이반도는 영국령이 되어 있다. 지난 1786년에 동인도회사를 앞세워서 영국이 말레이를 지배하고 1819년에는 싱가포르까지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허선비는 대영제국이 남진하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한편 그야말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허선비 부부는 말레이에서 홀란드 곧 네덜란드 풍의 건물과 영국식의 건축물을 두루 만나보게 된다.

(3)  인도는 대영제국의 식민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그 땅의 크기가 서구라파와 맞먹는다고 버터필드가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인구가 많고 가난한 나라 인도를 구태여 영국이 식민지로 삼고 있는 이유가 허선비가 보기에는 3가지이다; 첫째, 풍부한 인력을 사용하여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면화와 차 그리고 양귀비가 그러한 것들이다;

 둘째, 북방의 강대국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셋째, 인도의 뛰어난 인재를 영국에 데리고 가서 교육을 시키면 대영제국의 경영에 앞잡이로 사용할 수가 있다.  

(4)  남아공은 두가지의 이유로 영국이 일찍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로 삼은 곳이다; 하나는, 풍토병이 많고 더운 아프리카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그 남쪽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남아공은 기후가 온난하고 비옥하며 참으로 살기가 좋은 곳이다. 또 하나는,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지나가야 영국의 배가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쉽게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해상로의 확보와 바다의 지배를 위해서는 남아공을 대영제국이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영국이 남아공의 남부를 1814년부터 일찍 차지하고 있다.

(5) 빅토리아 호가 대서양으로 북진하면서 유럽에 들어서자 포르투갈에 들리고 그 다음에는 네덜란드에 정박하고 있다. 그 이유가 포르투갈에서는 연료를 얻고 신선한 식물을 구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탑승한 손님들이 구라파대륙의 관문인 네덜란드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해외진출에 앞장을 선 나라들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이다. 그러므로 빅토리아호는 영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네덜란드에 들리고 있는 것이다. 허선비 부부와 이인용 부부는 네덜란드를 관광하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다; “대서양에서 유럽대륙으로 들어가는 물자들이 네덜란드의 항구를 이용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대륙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고 그 시기가 빠르다. 그와 달리 유럽대륙이 아니고 유럽의 섬나라인 영국은 독자적으로 대서양을 통하여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따라서 섬나라인 영국과 대륙국가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가 서로 견제하고 식민지에서 무섭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북아메리카의 미국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앞으로 영국의 패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 ;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허선비 부부와 이인용 부부는 버터필드의 가족을 따라 영국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