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23. 09:4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3(손진길 소설)

 

18969월말에 허선비 부부와 이인용 부부는 빅토리아호를 타고서 홍콩에 도착한다. 지난 715일에 테임즈 강 하구의 선착장에서 빅토리아호를 타고서 영국을 출발하였는데 목적지 홍콩에 도착하는데 무려 2개월 반이 걸린 것이다. 물론 도중에 여러 나라의 도시를 들렸다;

지난 4월초에 홍콩을 출발하여 목적지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들린 도시들을 다시 관광한 것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는 감흥이 못하지만 그래도 유럽대륙의 관문인 도시, 아프리카 남단의 도시, 인도남부의 도시, 말라카 해협의 도시, 중립국 태국의 도시 등을 재차 관광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다.

따라서 홍콩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사돈인 이인용의 통통배를 타고서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허선비가 아내인 최선미와 사돈 이인용 부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에 참으로 좋은 세계여행을 했어요. 나는 그 소중한 경험을 우리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해외사정을 잘 모르고 있는 동족들에게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돈의 생각은 어떠세요?... “.

그 말에 통통배를 운전하고 있는 이인용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아들 내외와 딸 내외에게 그 이야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사돈 형님께서는 장남 부부와 딸 내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홍콩에서 사온 물건을 일단 하동에 있는 창고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동 저희 집에서 좀 쉬셨다가 함께 통통배로 동래에 들리시지요?... “;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니, 번거롭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부부는 하동 마시장에서 말 2필을 사서 그 말을 타고 곧장 경주 시골 부남면(府南面)으로  달려갈 생각입니다. 그 편이 도리어 편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인용이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형님은 아직 젊으신가 봅니다. 금년에 춘추가 73세이신데 말을 타고서 그 먼 길을 달려갈 생각을 다하시고 말입니다. 제가 나중에 사위 지서(知西)에게 야단을 맞지 않을까 모릅니다, 하하하… “;

그때 최선미가 웃으면서 남편 허선비를 대신하여 말한다; “호호호, 사돈은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부부는 아직도 준마를 타고서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하고 기분이 좋답니다. 만주 벌판을 필마로 달리던 저희들인데 염려하실 필요가 전혀 없지요,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그때서야 생각이 나는지 새삼스럽게 말한다; “아차, 제가 안사돈이 그 옛날 한성부에서 무예가 탁월한 다모(茶母)였다는 사실을 그만 깜빡했습니다. 그렇지만 문관출신인 사돈 형님에 대해서는 걱정이 좀 되는군요. 부인의 뒤를 따라가기에 헉헉거릴 것만 같습니다, 하하하… “.

선박의 조종간을 잡은 채 이인용이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기어코 한마디를 한다; “허허허, 인용이 동생은 사돈이 되더니 이제는 아예 나를 놀리고 있구만. 그렇게 연장자를 놀리면 못써요. 내가 나중에 구례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이지룡(李地龍)을 만나서 아우를 혼내 주라고 말할 것이야, 하하하“.

그 말을 듣자 최선미는 물론 이인용의 부인 오화순까지 호호라고 웃는다. 허선비와 이인용이 주고 받는 농이 짓궂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도리어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더니 일흔이 넘은 남정네들이 그러한 것이다.

경주 부남면의 시골집에 돌아와서 보름동안 푹 쉬고 있던 허선비10월 하순이 되자 마구간에서 2필의 말을 끌고 나온다. 그들 부부의 마구간에는 더 이상의 말이 없다. 그 이유는 늘 준마 2필을 마구간에 매어 두고 있었는데 지난 봄에 6개월 이상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기에 그만 마시장에 몰고가서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에게 말한다; “여보,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서서히 움직이도록 합시다. 나와 함께 말을 타고서 부남면을 한바퀴 돌아봅시다. 그리고 이조(伊助)에 있는 서당(書堂)에서는 신식학문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파악해봅시다!”.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다; ‘그냥 하는 말씀이 아니시구만. 해외여행을 통하여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들을 젊은 학생과 교사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이야. 좋은 생각이다!’.

역시 그 남편에 그 아내이다. 허선비의 생각을 훤히 짐작하고 있는 최선미인 것이다. 그날 두사람은 각각 말을 타고서 시골길을 달린다.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논과 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름대로 상쾌하다. 이제 논두렁 밭두렁에서는 일하는 농부가 보이지 않는다. 일년농사를 잘 지었으니 집안에서 푹 쉬면서 농한기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부남면에서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가 이조이다. 그곳에는 오래된 서당이 있으며 여러 해 전부터는 신식학문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허선비 내외가 한번 들리고 있다. 언뜻 보니, 서당이 아니라 학교처럼 보인다. 유리창을 통하여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이제는 조선도 개화를 한 새로운 세상인가 보다!...

교실이 2동이지만 그래도 교장실이 별도로 있고 2명의 선생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선비 부부가 타고 온 말을 교정 가장자리에 매어 두고 교장실을 방문한다. 이조에는 경주 최씨(崔氏)가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교장도 최씨이다. 50대로 보이는 최인식(崔仁植) 교장이 허선비 부부를 맞이한다.

70대로 보이는 노인부부가 갑자기 말을 타고 와서 교장실을 방문하고 있으니 의아한 표정이다. 그 표정을 보고서 허선비가 먼저 말을 꺼낸다; “저는 오랫동안 월산리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허선비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우리 내외가 교장선생님을 방문하여 한가지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

최교장이 얼떨떨한 표정이다. 하지만 연장자를 맞이하고 있기에 먼저 자기소개부터 한다; “저는 조천(助川) 최부자의 일족인 최인식(崔仁植)입니다. 이 서당이 본래 저희 문중에서 설립한 것이기에 이렇게 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

허선비가 즉시 말한다; “저희 부부는 홍콩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늘그막에 해외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그것이 희귀한 경험이기에 시간을 배분하여 주시면 교실에서 며칠동안 학생들과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최인식 교장이 깜짝 놀라면서 허선비의 얼굴을 천천히 살핀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혹시 여러 해 전에 동래에 신식학교를 설립하신 그 허선비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그곳에서 교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권동률 선생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허선비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그 권교장이 사실은 제 사위가 맞습니다. 저는 이곳 월산리에서 은거하여 살고 있는 선비인지라 미리 자신의 소개를 정확하게 하지 아니한 점을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부는 간도지역 연길(延吉)의 서당 겸 신식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이미 있습니다. 그 점을 참작하여 주시지요”.

사실은 그렇게 저자세로 부탁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최인식 교장은 연하인 권동률 교장과는 인척이기 때문이다. 최교장의 부인이 안동 권씨이며 권교장의 집안 누님이므로 서로가 다소 촌수는 있지만 어쨌든 매부와 처남사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인식 교장이 깍듯하게 허선비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대답한다; “사실은 저희들이 먼저 요청을 드려야 할 사항입니다. 그와 같이 좋은 경험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시니 당장 내일부터라도 오후에 특별강의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수업은 2시간 정도로 생각하시고 며칠이라도 진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허락이 떨어지자 다음날부터 허선비는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일 오후에 이조의 학교에 출근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최선미도 다른 한 반을 맡아서 수업을 진행한다;

당시는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국과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관하여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참으로 귀한 시절이다. 그 점 때문에 최교장은 이듬해 1897년에도 일년간 수업을 진행하여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다.

모처럼 명절에 동래에서 경주 시골 허선비 집을 방문한 사위와 딸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부디 동래의 자신들 학교에 와서 그러한 수업을 진행하여 달라고 떼를 쓰듯이 요청한다. 그래서 그 이듬해 1898년에는 한해동안 동래에 가서 머물면서 딸 부부의 학교에서 신식학문 선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 옛날 간도 연길의 심씨부락 학교에서 수업한 것처럼 최선미가 일본어와 일본문화 등을 가르친다. 그리고 허선비는 영어와 영국의 문화와 국제관계 등을 가르친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해 189812월말이 되자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에게 말한다; “이제 해가 바뀌면 내 나이가 70대의 절반을 넘기고 당신의 나이도 절반의 고개에 올라서게 됩니다. 팔순이 될 때까지 4, 5년의 세월 밖에 없군요. 따라서 나는 그 시간을 보다 새롭게 사용해보고 싶어요. 나의 계획을 한번 들어보겠어요?... “.

최선미는 한해동안 동래에서 사위와 딸이 경영하고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진행하던 남편이 12월 방학전에 모든 수업을 끝내고 사퇴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런데  월산리 시골집에 들어와서 며칠을 푹 쉬고서 허선비가 드디어 내심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시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남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때 허선비의 놀라운 계획이 나타난다; “여보, 우리 통통배를 몰고서 다시 홍콩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아예 그곳에서 몇 년간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기 조선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심히 답답합니다!”;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잠시 눈을 깜빡이면서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 다음에 신중하게 말한다; “당신은 전혀 노년의 삶을 여유롭게 쉬려고 하지 않는군요. 그래요, 열심히 일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당신의 의견대로 마지막 남은 세월을 이국 땅에서 또 한번 달리 살아보도록 합시다. 앞장을 서세요. 제가 어디든지 당신의 뒤를 따라갈 테니까요!”.

그 순간 최선미의 새까만 눈망울이 깊은 지혜를 간직한 남편 허선비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그 눈에는 여전히 설렘과 동경의 빛이 담기어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는 말을 하지 아니한다. 그 대신에 평생 사랑하고 있는 조강지처 최선미를 포옹할 따름이다.

그가 조용히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미, 참으로 고마워요. 나는 한성부에서 최다모를 만나서 그때부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무예실력은 강무관에 필적하고 그 담력은 여장부 이상이었지요. 지금도 그 옛날의 최다모가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기에 비록 나는 노년이지만 감히 홍콩에 가서 새로운 삶을 한번 일구어 보자고 마음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 고맙소, 최선미!... “;

그의 품에 안긴 채 최선미가 말한다; “여보, 그 말은 내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예요. 당신은 한성부 시절과 지방수령의 시절 그리고 은퇴한 이후의 삶에 있어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사람이예요. 그 점을 내가 익히 알고 있어요. 그 결과 얻은 경륜을 가지고 동족사랑에 힘쓰고 있으니 나는 그것이 자랑스러워요. 그러니 어디든지 달려가세요. 제가 동행해드릴 거예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는 자신이 참으로 행운아라고 여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랑하는 아내 최선미를 포옹한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젊은 시절 21살에 한성부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삽시간에 돌아가는 것만 같다. 나이도 세월도 그 아름다운 추억과 환상 앞에서는 사라지고 마는 모양이다.

1899년 새해가 되자 정월에 모처럼 동래에 살고 있는 장남 허지동의 가족들, 차남 허지서의 가족들, 그리고 딸 허정순의 가족들이 모두 경주부 부남면 월산리에 있는 허선비의 집에 모인다.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음식으로 최선미가 자녀와 손주들을 대접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녀가 남편 허선비의 계획을 발표한다; “우리 부부는 노년을 적적하게 보내지 아니하기 위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서 봄이 되면 홍콩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몇 년이 걸릴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통통배로 다시 동래를 방문하여 너희들에게 알려주마.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라!”.

최선미의 발표에 자녀들과 손주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자 49세의 장남 허지동이 대표로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시원하게 말씀을 해주세요. 무엇이 섭섭하셔서 그렇게 저희들을 떠나서 노년에 이국 땅으로 들어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

이번에는 아내 대신에 허선비가 말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팔순의 나이가 닥치기 전에 몇 년 남지 아니한 세월을 가장 값있게 사용하고 싶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지금 조선의 운명은 스스로 헤쳐 나갈 힘이 전혀 없다. 국제관계의 풍향에 따라서 휘둘리다가 운명을 다할 형편이다. 그러니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서 국제정세를 면밀하게 살필 도리밖에 없다. 그렇게 이해를 해주기 바란다”;

허선비의 그 조국사랑과 동족사랑의 충정 앞에 아무도 더 이상 말리거나 입을 뗄 수가 없다. 그래서 멀리 떠나고자 하시는 부모님을 자녀들이 바라보고 또한 조부모의 모습을 그 손주들이 오래 기억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렇게 18993월에 조선을 떠나 홍콩으로 들어간 허선비 부부는 과연 그곳에서 어떠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