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29. 23:43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5(손진길 소설)

 

서기 1,900년 정월 초순에 허선비 부부는 홍콩에서 통통배를 타고서 북상하여 조선의 동래로 찾아가고 있다. 남쪽 홍콩에서 출발한 때에는 아직 따뜻한 날씨였는데 조선의 남해안 가까이 접근하자 겨울의 바닷바람이 상당히 차다;

 두사람은 정월 20일에 동래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장남 허지동(許知東)의 회사에 들린다.

금년에 쉰 나이가 되는 허지동은 손위 동서인 최강일과 함께 스즈키 방직공장을 여전히 잘 경영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회사의 공동대표인 두사람에게 말한다; “내 나이가 금년 가을이면 벌써 일흔 일곱이야. 이제는 신변과 살림살이를 정리할 때이지. 그래서 말인데!… “.

허지동최강일은 그 말씀이 바로 방직공장의 설립자인 허선비 부부의 재산의 정리에 관한 것임을 눈치채고 있다. 따라서 귀를 쫑긋하고 있는데 허선비의 말이 담담하게 들려온다; “내가 울산 방어진에서 수산업을 경영하고 있는 장병화 사장에게 맡겨 놓은 신식 통통배가 2척 있어요. 그런데… “.

본론이 다음과 같다; “그 선박 2척을 장사장이 어선으로 사용하여 매년 수익이 크게 발생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 수익금을 전부 연말에 정산 받아서 내년초부터 스즈키 방직공장에 투자하도록 해요. 명의는 지동이와 강일이가 반반 씩으로 하도록 해요! 이것은 내가 집사람과 벌써 합의한 내용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

지동이는 허선비의 장남이므로 그 정도의 재산증여는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최강일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단지 지인(知人)의 조카에 불과한 자신을 거두어 자식처럼 생각하여 큰 회사의 운영에 참여시키고 이제는 재산의 분배도 똑같이 해주겠다고 하니 그 은혜가 백골난망이다.

따라서 최강일허선비에게 말한다; “제게 그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만 해도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장남인 지동이와 동일한 몫을 저에게 분배하여 주신다고 하시니 제가 황송하여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재산을 전부 지동이에게 주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 스즈키 방직공장은 조선에서 처음 지은 기계식 방직공장이야. 일본에서 그 기술을 자네가 지동이와 함께 배워와서 이만큼 키워 놓았으니 강일이 자네의 공이 크지. 그러니 얼마 되지는 않지만 어선에서 나오는 수익을 그렇게 지동이와 똑같이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리고 동서사이에 앞으로도 사이좋게 공장경영을 잘해주기 바라네, 허허허“;

그 다음날 허선비 부부가 들린 곳은 동래에서 허가무역을 경영하고 있는 차남 허지서(許知西) 부부의 집이다. 미리 연락하여 동래에서 신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딸 허정순(許貞純) 부부도 불러 놓았다. 오래간만에 대식구가 모여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 차를 마시면서 허선비가 아들과 딸에게 말한다; “지서정순이는 들어라. 우리 부부는 너희들을 만나러 오면서 벌써 모종의 합의를 했다. 그 내용은 우리 부부에게 남아 있는 큰 재산이 고향 김해에 있는 전답 오백 마지기이다. 매년 추수가 끝나면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을 너희 큰 집에서 관리해오고 있어. 그런데… “.

잠시 숨을 돌리고 허선비가 본론을 이야기한다. 지서정순이 귀를 기울여서 그 내용을 듣고 있다; “우리는 그 재산을 지서정순이 너희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고자 한다. 지금까지 경영해오고 있는 무역회사학교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주면 좋겠다. 이미 장남 지동에게는 다른 것을 주었으니 그렇게 알고서 금년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고향 김해에 들러 소출에 대한 정산을 받도록 해라! 그리고… “;

또 무슨 용무가 남아 있는 것일까?’, 허지서 부부와 허정순 부부가 허선비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가 조용하게 말한다; “우리 부부는 지난 일년간 홍콩에 가서 살았다. 그런데 국제정세를 그곳에서 살펴보니 크게 변하고 있더구나. 그래서 우리는 너희의 자녀들 가운데 희망하는 자가 있으면 홍콩에 데리고 가서 유학을 시키고 싶은데 누구가 좋을까?... “.

그 말을 듣자 차남 지서가 손을 들고서 발언권을 얻어 먼저 말한다; “저희 부부는 무역업을 경영하고 있기에 정기적으로 홍콩의 영국인 공장과 상사를 방문하고 있어요. 따라서 저희 차남인 용우(勇宇)와 딸 지미(志美)를 그곳으로 보내어 유학생활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더구나 아버지 어머니가 그곳에 계시니 안심하고 보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허선비최선미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나서 허선비가 딸 정순과 사위 권동률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허정순이 말한다; “저희들은 어차피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니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별로 문제가 없어요. 벌써 맏이를 일본에 유학을 보내 놓고 있는 걸요. 그러니 오빠네 자녀만 데리고 가시면 될 거예요”.

그렇게 되자 한달 후 서기 1,9002월말에 허선비최선미는 손자 허용우(許勇宇)와 손녀 허지미(許志美)를 데리고 동래를 떠나 신식 통통배를 타고서 홍콩으로 출발한다. 당시 허용우의 나이가 21살이고 허지미의 나이가 18살이다. 중등교육은 고모네가 운영하고 있는 신식학교에서 벌써 수료했다. 영어와 일본어까지 전부 배운 그들이다.

홍콩에 도착하자 이웃에  살고 있는 중국인 장샤오핑(張小平) 부부가 그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한다. 그 자리에서 허선비가 손자 허용우를 장씨 가족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최선미는 손녀 허지미를 소개한다. 장샤오핑의 아들인 장쩌둥(張澤東)은 반갑다고 허용우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서 식사를 함께하고 있던 장샤오핑의 딸인 장메이린(張美琳)이 눈을 반짝이면서 허용우에게 영어로 질문한다; “My name is Meilin Chang. Nice to meet you! Yongwoo, how old are you?”. 그 말에 허용우가 좀 놀랐지만 미소를 띄고서 대답한다; “Meilin, how are you? I am 21 years old”.

그들의 풋풋한 대화를 들으면서 허선비최선미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조선의 미래와 청국의 미래는 이제 저 젊은 세대들에게 달려 있겠구나! 우리는 어느 사이에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있구나. 저들이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좋은 시대를 열어가면 참으로 좋겠구나!… ‘.

다음날부터 장메이린이 앞장서서 허용우허지미를 자신이 다니고 있는 영국계대학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입학수속을 도와주고 있다. 그 덕분에 두사람은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홍강주(洪江州)도 만나게 된다. 그는 간도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여 3년전부터 살고 있는 홍순구(洪順求)의 손자이다.

홍순구 부부는 작년부터 허선비 부부의 어선에서 일하게 되자 손자를 대학으로 보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손자 홍강주허용우허지미를 만나자 무척 반가워한다. 그 대학에는 조선인 유학생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2년이 지나자 19022월 하순에 허선비 부부의 손자인 허용우가 장샤오핑의 딸 장메이린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허지미는 홍순구의 장손 홍강주와 사귀더니 혼인을 하게 된다.

특이하게도 합동결혼식을 하고 있다. 멀리 조선에서 허용우허지미의 부모가 홍콩에 와서 참석하여야 하므로  이왕이면 합동결혼식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들의 나이를 보면, 신랑 허용우23살이고 신부 장메이린20살이다. 그리고 신랑 홍강주24살이고 신부 허지미의 나이가 20살이다;

그날의 합동결혼식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와 장샤오핑 부부 그리고 홍순구 부부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자손들이 서로 부부가 되었기에 그들은 사돈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허지서 부부가 참석하고 있다. 두사람은 사돈이 되는 장샤오핑 부부와 홍순구의 아들인 홍민국(洪民國) 부부에게 인사를 하느라고 바쁘다.

비록 결혼을 했지만 그들은 대학에서 더 공부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와 홍순구 부부는 열심히 통통배를 타고서 생선을 잡아 재정지원을 한다. 그것은 장샤오핑 부부와 홍민국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해 연말에 조선에서 허지서 부부가 신식 통통배를 타고서 다시 홍콩을 방문하고 있다. 선장 강한성(姜韓盛)이 여전히 그 선박을 운전하고 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영국제 직물류를 구입하기 위하여 홍콩 출장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 부부는 그 편으로 그만 조선에 들어가고자 한다.

그들의 나이가 고령이다. 내년 가을이면 허선비가 여든 살이 된다. 그리고 내후년이면 최선미가 또 여든이 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인생이 70이고 강건해야 80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러니 허선비 부부가 이제는 경주부 부남면 월산리 자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차남 허지서 부부가 고맙게도 자신들이 자식들을 돌볼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그렇게 하시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허선비 부부는 자신의 신식 통통배 어선의 갑판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는 홍순구 부부에게 말한다; “사돈, 이 어선을 우리는 사돈 부부에게 드리고 싶은데 생각이 있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홍순구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한다; “좋은 어선이 있으면 수익이 크게 나겠지요. 하지만 당장 우리가 이 최신식 어선을 살 돈이 없으니 그것이 문제이지요, 허허허… “.

그 말에 허선비가 말한다; “우리 손녀 허지미가 사돈의 손주 며느리 종부가 되어 있지요. 그러니 살림 밑천으로 삼으라고 이 배를 그냥 드릴 테니 이제부터 홍씨 가문의 살림을 한번 크게 일구어 보십시오!”.

그 순간 홍순구 부부는 너무나 송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은 마치 좋은 집을 한 채 그냥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거 너무나 고마운 말씀이군요. 그렇지만 이 비싼 배를 그냥 받을 수는 없지요. 저희 부부가 아들 내외와 함께 열심히 이 어선을 사용하여 돈을 벌어서 장손 부부의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 부부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크게 기뻐한다. 그 일을 처리하고 두사람이 허지서의 통통배를 타고서 조선에 들어오니 벌써 서기 1,9032월말이다. 그때부터 허선비 부부는 경주부 부남면 월산리의 자택에서 조용하게 지낸다;

최선미가 보기에 자신보다 1살이 많은 남편 허선비는 건강이 아주 좋다. 그 이유는 새벽마다 방안에서 운기조식을 언제나 규칙적으로 평생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보다 더 오래 살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인간적인 판단이다. 왜냐하면, 그해가 가기전에 허선비가 잠에서 깨어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몸을 흔들고 이름을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고 전혀 움직이지 아니하고 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는 것인가?...

숨이 끊어진 사람을 두고 그 자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족이나 친지들에게 위로가 될지 언정 당사자에게는 별무소용이다. 그렇게 허선비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진실로 철저하게 열심히 다하다가 일년도 채 완전한 휴식을 취해보지 못한 채 그만 영면에 들어가고 만다.

그는 무덤 하나를 월산리 남쪽에 있는 앞산에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최선미는 스무 살에 한성부에서 한해 연상인 허굉필을 상관으로 만나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온 여인이다. 허굉필최선미 자신의 외가를 끝내 양반가문으로 신원 회복하여 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남편을 맞이하여 한평생을 살아본 여인이다. 이제 남편 허선비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무덤을 자주 찾아보고 집에서 조석으로  49제까지 상식을 올리는 그 일 뿐이다.

그 일이 끝나자 그녀는 철상을 하고서 아예 부남면 월산리 자택을 처분하고 동래로 떠나고 만다. 월산리에 오래 있어보아야 슬픔만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살고 있는 동래에서도 오래 지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그녀마저 다음해에 남편의 뒤를 따라 역시 자는 듯이 하룻밤 사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모친 최선미의 산소를 선친의 산소 옆에 나란히 쓰고 있다. 평생 얼마나 사랑하고 서로를 의지한 부부인지 자녀들과 자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국과 동족을 지극하게 아끼고 그 미래를 걱정한 허선비 부부이다.

그러므로 그 산소에 들리게 되면 후손들이 언제나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도 조상인 허선비 부부처럼 살아야 한다. 그 애국애족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번영하는 조국, 세계에 등불을 밝히는 한민족 그것이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보답이 되어야 한다!... “.

그것은 남아 있는 후손들의 다짐일 뿐 오늘도 백 년의 세월을 넘어 그 산속에서는 묘지를 휘감아 불고 있는 바람소리만이 공허할 뿐이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것과 떠나간 자리가 너나없이 모두 한줄기 바람소리와 같은 그러한 것일까? 어쩌면 허선비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