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24. 11:5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4(손진길 소설)

 

때는 1899315일 화창한 날이다. 지난 3월초에 조선을 떠나 신식 터빈을 장착한 통통배를 몰고서 허선비 부부는 무려 5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남진하여 홍콩의 연안에 진입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신식 통통배는 성능이 좋아서 하루에 5백리를 너끈하게 달린다.

그렇지만 도중에 작은 항구에 정박하여 연료를 보충해야 하므로 홍콩의 연안에 도착하기까지 보름이 걸리고 있다. 이제는 한시진이면 항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허선비 부부는 신기한 광경을 그 연안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것은 허선비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신식 터빈형 통통배와 똑같은 모양의 어선을 그곳에서 본 것이다. 마치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같다. 더구나 그 어선에서는 끊임없이 바다 생선을 그물로 걷어 올리고 있다. 아마도 풍어기(漁期)인 모양이다;

쌍둥이처럼 생긴 선박을 보았으므로 최선미가 남편 허선비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한번 가까이 가서 구경하도록 합시다. 그것참 우리 선박과 똑같은 배가 어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네요! 정말 신나게 생선을 잡아 올리고 있군요. 저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해요. 틀림없이 버터필드(Butterfield)에게서 선박을 구입했을 겁니다!... “.

허선비의 생각도 같다. 따라서 어로현장에 가까이 접근한다. 그때 영어로 급히 외치는 소리가 그 어선에서 들려온다; “Do not approach. Stop there! Do not disturb our fishing”. 깜짝 놀라서 허선비가 통통배의 접근을 멈추고 천천히 선회하기를 시작한다.

더 이상 접근하지 아니하고 빙빙 돌면서 신나는 어로현장을 구경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상대방 어선의 갑판에서 어로작업을 하고 있던 젊은 사내가 손을 흔들면서 유쾌하게 외친다; “Thank you! Watching is free”.

그 말을 듣자 최선미가 뱃전에 나가서 상대방에게 소리친다; “Wow, a lot of fish. Do you live at Hongkong?”. 들려오는 답변이 우호적하다; “Yes, I live at Hongkong. Today’s fishing is nearly finished. Would you follow our boat later? We are interested in your boat because it’s same one as like as ours!”.

그들의 만남이 홍콩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허선비 부부에게 있어서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날 허선비 부부가 그들 어부들의 배를 뒤따라가서 그들의 가정에서 식사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어선은 물양장(物揚場)이 있는 선착장에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어선의 선장이 그날 잡은 생선을 모조리 생선조합에 넘기고 전표를 받는다. 그 다음에 중국인 어선장(漁船長)이 선착장 가까이에 배를 대고서 기다리고 있는 허선비 부부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Please follow my boat again. My home is not far from here. We have a village dock!”.  

통통배를 몰고서 그 어선을 따라 조금 진행하자 어촌마을 가까이 조그만 선착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접근하더니 어선장이 자신의 어선을 정박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 옆에 허선비가 자신의 통통배를 정박한다;

  

그 어선의 주인은 50세 정도로 보인다. 그리고 갑판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자는 20대로 보이는데 선장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아들의 어로작업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한다.

허선비 부부가 알고 보니, 선장의 이름이 장샤오핑(張小平)이고 그 아들의 이름이 장쩌둥(張澤東)이다. 그리고 부인의 이름이 쑨밍메이(孫明美)이다. 허선비는 자신의 이름과 아내 최선미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서로 인사를 교환한다.

장샤오핑은 그날 어획고가 많아서 기분이 좋은지 허선비 부부를 쾌히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한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날 가장 먼저 장샤오핑허선비에게 물어본 것이 도대체 그 선박을 어디서 구입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홍콩에 오래 살고 있어서 장샤오핑 가족은 영어를 잘 구사하고 있다. 허선비 부부가 자연히 영어로 그들과 대화한다. 허선비장샤오핑에게 자신은 오래전에 홍콩에 있는 조그만 조선소에서 그 배를 샀는데 당시의 선박기술자가 버터필드라고 대답해준다.  

그 말을 듣더니 장샤오핑이 말한다; “I bought my boat from Mr. Butterfield too. I heard he quitted his job and returned to his country three years ago”. 서로가 버터필드에게서 최신식 선박을 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술술 풀리고 있다.

특히 허선비가 버터필드 가족을 따라 영국까지 다녀온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장샤오핑 가족이 귀를 기울여서 경청한다. 허선비는 자신이 3년전에 홍콩에서 영국으로 가는 빅토리아호를 타고서 여행할 때에 겪은 일과 현지에서 깨달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재미나게 설명한다.

그 가운데 버터필드의 부인 샐리(Sally)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자 장샤오핑 가족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허선비는 식사시간에는 상대방의 이채로운 반응이 어째서 그런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식사 후에 차를 나누어 마시는 자리에서 장샤오핑이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Mr. Hur, you told me about the political view of Sally. How do you think about the opinion of Sally?”. 예상하지 못한 질문인지라 허선비가 잠시 생각을 한다.

그 다음에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I think the Sally’s viewpoint is right. Because the current Korean dynasty and their centralised government cannot accept the capitalism and democracy. So we need new democratic government to boost the economic growth and to encourage the human rights”.

그 대답을 듣자 장샤오핑허선비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두 손을 잡는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대강이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허선비가 이야기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곳 홍콩에 살고 있는 일부 한족 지식인들이 벌써 하나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하여 중화시민모임이다. 그들은 현재의 청국의 황실과 조정은 서양 열강의 세력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유일한 방법은 중화의 백성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중화시민모임을 결성하고 지금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2)  둘째로, 그 모임의 결성에 개인적으로 도움을 준 인물이 바로 버터필드의 부인인 샐리(Sally)이다. 그녀는 비록 홍콩주재 영국영사관의 관리였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을 사랑한 인물이다. 국제정치에 밝고 정치학이론에 뛰어난 그녀가 한족 출신인 자신들에게 가르쳐준 민주주의 이론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중화시민모임을 홍콩에서 결성하고 민주주의 사상을 중국전역에 확산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셋째로, 장샤오핑은 허선비 부부에게 개인적으로 두가지를 요청하고있다; 하나는, 자신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그것을 배워서 조선에서도 그러한 조직과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 집을 마련하고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족들이 청의 황실과 조정을 물리치고 민주적으로 한족의 나라를 세우는 것 그리고 조선의 백성들이 왕정을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족과 조선백성들이 서로 협력하여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장샤오핑이 보고 있는 것이다.

상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허선비 부부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그 인근에 집을 구하는 것과 생업을 마련하여 정착하는 문제를 전부 장샤오핑에게 일임한다. 그는 마치 자신의 숙부를 도와주는 것과 같이 그렇게 성심성의껏 허선비의 일을 도와준다.  

그 결과 허선비 부부는 장샤오핑의 집 가까이에서 생활하면서 그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낮시간에는 어업에 함께 나서는 것이다. 필요한 장비는 그의 도움으로 쉽게 구입하였다. 그 다음에 허선비가 어선장이 되어 자신의 통통배를 어선으로 사용하고 최선미가 인부를 구하여 함께 갑판에서 어로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 수익이 상당하다. 따라서 홍콩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열흘에 한번씩 열리는 중화시민모임에 허선비 부부가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한다. 그곳에서 허선비는 뜻하지 아니하게 조선사람을 한사람 만나게 된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두사람이 서로 알만한 사이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연길에서 자경단원으로 활동했던 홍순구(洪順求)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 교관이었던 강천무(姜天武)를 통하여 자경단이 신식무기를 갖추는데 있어서 허선비 아니 허굉필()의 개인적인 후원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허선비도 홍순구강천무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를 반긴. 그러면서 강무관의 소식을 물어본다. 홍순구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아시는 대로 강교관은 연길을 떠나서 남쪽의 용정으로 이주를 했지요. 그곳에서 허선비님10년 동안 4개의 부락을 만들고 개간사업을 계속했지요. 지금은 남쪽부락에서 원로로 지내고 있습니다. 내외간에 강건하신 것을 보고서 제가 재작년에 남행하여 홍콩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홍순구의 가족이 어째서 간도에서 여기 홍콩까지 그 먼 길을 이주해왔는지가 궁금하다. 허선비의 물음에 그가 말하기를 시작한다; “재작년 제 나이가 60이었을 때에 우리 마을에 한족 마적 떼가 야습을 했어요. 부락민이 일체 단결하여 그들을 물리치기는 하였는데 그만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던 둘째아들이 전사하고 말았어요. 우리 부부는 너무나 허탈하여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지요. 그것을 보고서… “.

옛날 일이 생각나는지 홍순구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다. 조금 진정한 다음에 천천히 설명을 계속한다; “장남이 우리 부부에게 말했어요. 연길을 떠나서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자고요. 아예 다른 세상 홍콩으로 가서 한번 살아보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부부는 장남 가족과 함께 정처없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어요. 요즘은 아들 내외가 어업에 종사하여 그런대로 먹고 살만합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가 물어본다; “직접 어선을 사서 어업을 하는가요? 아니면 남의 배를 타고 인부로 일하고 있는가요?”. 홍순구가 대답한다; “아들과 며느리의 나이가 42살 동갑이고 장손이 21살이지요. 그들 3사람이 모두 남의 배를 타고서 인부로 일하고 있어요”.

그 말에 허선비가 제안한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제가 마침 이곳에서 최신식 통통배를 가지고 어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홍선생님 내외분이 저희 배에서 함께 일을 하시지요. 그리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62세에 불과하니 충분히 일하실 수가 있지요!... “.

그 말을 듣자 홍순구가 좋아라 하면서 말한다; “허허허, 예순이 넘은 노인들을 인부로 써주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자리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가 있지요. 허선비님의 어선에서 일하고 말고요. 좋습니다, 하하하… “.

그렇게 우연히 홍순구 가족을 만나서 허선비 부부는 외롭지 아니하게 홍콩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열흘에 한번씩 개최가 되는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참으로 유익하다. 많은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고 정치적이고도 경제적인 식견을 넓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는 동안에 새로이 허선비가 알게 된 사실이 다음과 같다;

(1)  첫째, 일찍이 샐리(Sally)에게서 들은 말 그대로 동아시아의 식민지를 두고서 영국이 묘하게 외교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은 나날이 국력이 커가고 있는 일본이 시베리아에서 남진하고 있는 러시아의 세력을 막아 주기만 한다고 하면 조선반도로 진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아니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1895년에 청국과 전쟁을 하여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서양의 열강들은 아무리 그래도 일본의 군대가 거대한 러시아제국의 군대를 물리칠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군대를 앞세운다고 하면 자신들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  둘째, 구라파대륙국가인 프랑스 독일의 입장도 영국의 입장과 별로 다르지가 않다. 그리고 이미 태평양으로 아시아에 진출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더욱 진일보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북쪽에서 자신들은 그 남쪽에서 서로 간섭하지 아니하고 식민지를 넓혀갈 수만 있다고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입장임을 중화시민모임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해관계를 분석하면서 그들 모임에서는 지금의 청조(淸朝)를 붕괴할 시민봉기(市民蜂起)를 서서히 조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해가 바뀌어 1900년 정월에 들어서고 있다. 과연 20세기에 있어서는 허선비의 주변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