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1. 22. 12:17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72(손진길 소설)

 

1896허선비 일행은 여름이 시작된 615일에 드디어 영국에 상륙한다. 기선 빅토리아호는 승객을 테임즈(Thames) 강 하구틸버리(Tilbury) 선착장에 내려주면서 안내방송을 한다; “우리 빅토리아호는 정확하게 한달 후 715일 정오에 이 선착장에서 손님을 태우고 다시 홍콩으로 출발합니다. 왕복표를 가지신 손님께서는 그날 오전 10시까지 이곳에 오셔서 승선을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국에서 한달간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짐을 챙겨서 항구에 내리자 그때부터 영국출신인 버터필드(Butterfield) 부부가 앞장을 선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인원과 짐을 점검한다. 인원은 허선비 부부, 이인용 부부, 그리고 버터필드 가족 6명이다. 버터필드 부부와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와 손녀가 각각  1명이다.

그것을 보고서 이인용버터필드에게 질문한다; “I know you have two daughters and one son. Why your daughters do not come along with you?“. 그 말을 듣자 버터필드가 금방 대답한다; “They prefer to live in Hongkong because their husbands have good jobs there”.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버터필드에게 다시 질문한다; “Butterfield, how long have you stayed in Hongkong?”. 버터필드가 이인용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대답한다; “Almost 35 years. Both me and my wife Sally were 29 years old when we arrived at Hongkong for the first time. Now we are in the middle of sixties. It was really a long journey!... ”.

그날 버터필드 부부는 일행을 테임즈(Thames)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선박에 태운다. 그리고 런던(London)을 지나서 한시간반 정도 더 진행한 다음에 일행을 데리고 선착장에 하선한다. 그때 버터필드가 하는 말이 다음과 같다; “This is Winsor port. Sally’s parents live around here”.

그날 버터필드의 처가에 도착하니 연세가 8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반갑게 그들 일행을 맞이한다. 다음날이 되자 버터필드의 부인 샐리(Sally)가 앞장을 서서 근방에 있는 윈저(Winsor) 성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립명문 이튼 칼리지(Eaton College)를 보여준다;

허선비가 유심히 살펴보니 테임즈 강의 북편에 윈저 성, 남쪽에 이튼 칼리지가 위치하고 있다. 그날 샐리의 설명에 따르면, 빅토리아 여왕1860년대에 사랑하는 남편을 런던의 버킹엄(Buckingham) 궁전에서 사별하게 되자 이곳 윈저 성으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런던의 버킹엄 궁전으로 가게 되면 여왕은 검은 옷을 입고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말을 듣자 허선비최선미는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고통스럽기가 매일반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이 작고한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샐리는 이튼 칼리지는 영국에서 명문 중의 명문이라고 말한다. 완전 기숙사 학교이므로 영국에서 재력이 막강한 집안에서 자녀들을 안심하고 이튼 칼리지에 유학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튼 학교 출신이 런던의 서북쪽에 있는 옥스포드(Oxford) 대학 그리고 북쪽의 캠브리지(Cambridge) 대학에 대거 합격하여 다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참고로, 옥스포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은 중세에 시작이 되었다고 하며 그 역사가 장구할 뿐만 아니라 학문의 수준이 세계에서 첫째와 둘째를 다투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기에 허선비최선미는 이틀이 지나 런던(London)의 관광에 나섰을 때에 잊지 않고 그 유명한 명문 대학교를 꼭 보여달라고 샐리에게 요청한다.

그런데 샐리가 안내하고 있는 일행은 허선비 부부와 이인용 부부만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 버터필드와 아들 가족을 전부 데리고 다닌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동안 홍콩에서 사느라고 바빠서 이렇게 가족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차제에 런던구경을 하고 또한 그동안 변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이인용이 어째서 남편 버터필드에게 안내와 설명을 맡기지 아니하고 부인이 직접 나서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 말을 듣자 크게 웃으면서 샐리가 대답한 내용이 다음과 같다; “호호호, 내 남편 버터필드는 잉글랜드 출신이 아니라 북쪽 산악지대 스코틀랜드 출신입니다. 대학도 북쪽 서해안에 있는 글라스고(Glasgow) 공과대학을 다녔어요. 그러니 남부 잉글랜드 지방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요, 호호호… “;

 

그 말을 들은 버터필드가 하는 말이 재미가 난다; “나를 북쪽 시골 출신이라고 또 샐리가 놀리고 있군요. 하기야 샐리는 명문대학 옥스포드에서 그것도 국제정치를 전공한 재원이지요. 내가 운이 좋아서 샐리와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샐리는 홍콩의 영국영사관에서도 그 계급이 높았어요. 하여튼 대단히 유능한 여성이지요, 하하하“;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샐리이기에 일행에게 런던구경을 안내하고 있으면서도 실로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있다. 그 내용을 허선비는 머리속에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1)  첫째로, 런던은 영국의 수도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회의사당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헌 군주국이지만 영국의 국왕은 직접 통치를 하지 아니하고 명예직인 국가원수이다. 영국의 국왕과 토지소득에 의지하고 있던 귀족들이 상공업의 발달로 부자가 된 시민계급에게 밀려서 그들에게 정치권력을 이양해준 결과이다. 1689년에 발생한 영국의 명예혁명이 그와 같은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은 진작부터 내각책임제 국가이며 제1당의 당수가 수상이 되어 3년간 집권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국왕은 민족통합의 상징이며 귀족 출신들은 나름대로 상원을 구성하고 있다. 허선비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흥미로운 신()제도이며 특히 그 정치제도를 일본의 명치원로들이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의 관심을 끌고 있다.

(2)  둘째로, 조선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하나의 민족국가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이름하여 그것이 한민족의 정통성이다. 그런데 영국은 다르다고 한다. 북쪽에는 바이킹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남쪽에는 잉글랜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서남쪽에는 소수민족으로서 웨일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사실은 영국의 왕실을 배태하고 있다. 많은 귀족들이 웨일즈의 가문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큰 섬 두개가 남쪽과 북쪽에 있는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거기에 살고 있다. 그렇게 크게 보아 4개의 민족이 하나의 영국을 구성하고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 점에 관하여 허선비가 주로 질문하고 샐리가 정성스럽게 답변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선거제도에 있어서 소선거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선거구에서 다수이면 그 대표를 선출하여 국회에 보낼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2)   둘째, 다민족국가일수록 정치안정을 위해서는 2개의 큰 정당이 서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가 있도록 양당정치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4개의 민족이 4개의 정당을 구성하여 서로 인종적으로 대결하고 있으면 정치안정이 어렵다. 그러므로 정책을 정당에서 다듬는 과정에 있어서 많은 이해집단의 의견을 수용하고 절충하여 큰 대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3)   셋째, 인종보다는 이차적인 이익과 정책으로 서로 대결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여 만든 정책을 가지고 결국은 양당이 서로 정책대결을 하고 있다. 승리한 정당이 집권하고 제1야당은 정권교체를 위하여 평소에 그림자내각을 구성하여 치열하게 정부여당과의 정책대결을 펼쳐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타협에 의하여 양당정치를 만들어가고 양당이 사이좋게 정권교체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 영국식 민주주의의 특징인 것이다. 

4)   넷째, 그렇지만 조선과 같이 단일민족의 나라에서는 구라파대륙의 국가들이 주로 선택하고 있는 대선거구제도비례대표제가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샐리가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차피 하나의 민족이므로 다양한 견해가 나타나고 다당제국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족의 이익이라는 큰 틀 안에서는 능히 하나로 수렴이 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샐리가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전체주의 국가에 있어서는 소수의 희생이 발생할 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샐리허선비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3)  셋째로, 허선비가 어째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발생할 수가 있었는지 그 점을 개인적으로 샐리에게 질문하자 그녀가 성심성의껏 대답해 준다. 그 내용이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1)   하나는, 유럽대륙에서는 로마교황의 카톨릭교회와 신교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섬나라인 영국은 그것이 아니다. 영국의 국왕이 로마의 교황과 대결하고자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만들고 그 수장을 겸하고 말았다. 그 결과 성공회가 영국의 유일한 국교가 되었지만 그 종교적인 조직력과 기반이 미흡하다. 자연히 봉건사회에서 토지에 기속되어 있던 농민들이 느슨한 성공회의 교구를 탈출하여 상업도시로 대거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도시에 빈민촌이 생겨나고 국가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상업과 산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2)   또 하나는, 마침 그동안 사람의 힘에 의존하고 있던 가내수공업을 기계식 공장제 공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작은 발명들이 영국에서 발생했다;

국가적으로 산업혁명과 고용의 창출이 급했던 영국에서는 산업의 기술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1830년경에는 성공회의 교구를 탈출하더라도 정치적 종교적으로 문제를 삼지 아니하도록 하는 법개정을 추진했다. 그러한 인위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꽃을 피운 것이다.

그와 같은 토론을 하면서 허선비는 샐리에게 조선을 바라보고 있는 영국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그러자 샐리는 자신이 홍콩에서 국제정치 자문을 맡고 있었기에 그 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퇴직하여 고향에 돌아왔기에 허심탄회하게 허선비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허선비가 사의를 표하면서 그녀에게서 얻은 이야기를 차제에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금의 왕정국가인 조선에서는 근대산업이 꽃을 피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별과 신분의 차별이 엄격하기에 상업과 공업을 발전시킬 사상적 기반과 인적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제도가 강력한 중앙집권제이기에 지방에서 산업화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본의 경우와 정반대이다. 그러한 설명은 조선의 관료출신인 허선비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다.

둘째로,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정부는 열도의 산업화를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계식 공장생산을 위하여 산업선진국으로부터 과감하게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기술인력의 양성을 위하여 유학을 많이 보내고 있다. 그와 같은 국가적인 노력이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조선의 산업근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왕정을 폐지하고 중앙집권제를 완화하여야 한다. 그리고 근대사상을 고취할 수 있는 교육을 폭넓게 실시해야 한다.

셋째로, 국가의 산업화와 근대화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왕을 나라님으로 섬기는 사상을 빨리 청산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상을 함양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나아가서 사농공상의 구분과 양반 상놈이라고 하는 전근대적인 신분제도도 확실하게 철폐해야 한다. 조선에서는 최근 1894년에 갑오경장(甲午更張)을 통하여 그러한 제도적인 개혁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왕정국가 그것도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상명하복(上命下服)식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므로 크게 대단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끝으로, 샐리는 영국이 선택하고 있는 세계적인 ()전략(the Greatest Strategy)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해양국가인 영국은 바다를 통하여 해군을 보내어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여 대영제국을 형성하여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의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영제국에 도전하고 있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1)  첫째, 뒤늦게 산업발전을 이루고 무력을 강화하여 남진하고 있는 러시아가 가장 큰 위협이다. 그 이유는 한때 유럽대륙을 석권했던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의 세력을 꺾은 자들이 바로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부동항을 찾아 남진하고 있는 러시아의 해군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영국이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2)  둘째, 그 일에 도움을 준다고 하면 영국정부는 일본이나 기타의 열강들과 손을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해외식민지의 지형도 바꿀 것이다. 장차 그러한 영국의 정책이 조선과 일본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를 깊이 생각해보라고 샐리가 허선비에게 말하고 있다.

(3)  셋째, 영국의 해외진출을 뒤쫓아오고 있는 구라파의 강대국이 바로 프랑스독일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독립한 북아메리카의 강대국 미국의 산업생산력과 군사력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현재 조선은 이상의 모든 국가와 수교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결탁하고 식민지를 서로 나누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조선의 정치지도자는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샐리(Sally)의 설명과 답변을 들으면서 허선비는 영국에서 무엇을 견학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찾기에 바쁜 것이다. 그 결과 허선비는 개인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