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0. 7. 10:59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9(손진길 소설)

 

13. 거제부사 허굉필 집의의 활약

 

18613월 보름에 종3허굉필 집의가 거제부사로 부임하여 업무를 시작한다. 허부사 주로 맡고 있는 일은 이제 농정이 아니라 주민들의 어업보호와 연근해의 어장을 지키는 일이다;

허부사는 자신이 그동안 밟아온 지방수령의 자리가 상당히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전라도 남부의 구례현감을 시작으로 하여 경상도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영덕현의 현령으로 일한 다음에 왕도인 한양의 서부인 김포평야에서 김포군수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허굉필은 본래 경상도 남부의 김해평야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다. 그가 묘한 인연으로 경기도의 김포군수가 되어 김포평야에서 지난 5년간 농정을 펼친 것이다. 허굉필이 보기에 자신의 고향인 김해평야와 그가 군수로 일했던 김포평야는 상당히 비슷하다;

왜냐하면 2곳이 모두 큰 강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는 낙동강이 동래의 서쪽으로 내려와서 남해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의 평야를 만들고 있는데 그것이 경상도에서 보기 드문 김해의 넓은 평야이다;

마찬가지로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서쪽인 경기도로 흐르고 있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중간에서 만나 큰 강 한강이 되어 한양을 통과하여 서해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전에 하류에서 넓은 평야를 만들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김포의 들판인 것이다;

김포평야는 한양의 서쪽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기에 높은 벼슬아치들의 전답이 많다. 따라서 한양의 고관대작들은 김포군수가 농정을 잘 펼쳐서 풍년이 계속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들의 기대를 김포군수 허굉필5년간이나 흡족하게 만족시킨 셈이다. 

사실 김포군수로서는 김해의 농촌이 고향인 허굉필이 적격이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대농인 부친의 농사일을 도운 그이므로 자연히 농정에 밝아서 치수사업도 잘하고 농번기에는 군관민을 총동원하여 농촌 일손 돕기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허굉필은 김포군수로 재직하면서 마치 김포평야를 품고 있는 그곳이 자신의 제2고향인 것만 같아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농정을 펼쳤다. 그 결과 지방수령으로서 업무의 성과도 좋았으며 개인적으로 보람도 컸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다. 김해평야의 서남쪽에 멀찍이 자리를 잡고 있는 거제 섬은 어업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연근해로 들어오는 적들을 막아내는 국방의 요지인 것이다. 그는 거제도에서 멸치어장을 크게 경영하고 있는 당숙 허영도(許英道)의 집을 자주 방문한 경험이 있기에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조선의 역사에 해박한 허굉필 260여년 전에 충무공 이순신이 거제도의 서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섬 한산도에 수군의 기지를 설치하고 그 근해에서 일본수군의 서쪽 진출을 철저하게 봉쇄한 바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군의 조선에 대한 재침이 좌절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15989월에 일본의 오사카에서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별세하자 일본군들이 배를 타고서 철수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왜적이 쉽게 귀국하도록 허용할 수가 없었다. 조선의 백성이 겪은 고통과 피해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꾸만 일본군과 타협하려고 하는 명나라 장수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수군과 연합하여 남해 섬의 서쪽연안 노량에서 그해 11월에 일본의 함대를 대파한 후에 그만 전장에서 순국하고 만다. 그 때문에 하동까지 남하한 일본의 육군은 그해 12월 추운 겨울에 멀리 동래까지 걸어가서 비로소 배를 타고 본국으로 건너가는 생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충무공 이순신이 자신을 희생하고서 지켜낸 조선 땅이다. 그런데 허굉필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조선의 조정은 한심하다. 이순신 장군처럼 군함을 건조하고 적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미 서구열강의 먹이감이 되어버린 대국 청나라를 섬기면서 안일하게 세도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사대주의가 성행하고 있으므로 만약 일본이 산업근대화를 먼저 이루어 조선으로 다시 쳐들어올 때에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는 허굉필이다. 따라서 그는 일본과 서구열강의 조선침탈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그는 미흡하지만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로, 일본의 서남번 가운데 가장 부번강병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는 죠슈의 하기시로 간자를 내보내어 그곳의 정세를 살피고자 한다. 그 일의 적임자로 허부사는 영덕현에 살고 있는 왜국 말 통역 장병화를 선택한다. 허굉필 자신이 영덕 현령 시절에 그와 함께 죠슈의 하기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장병화의 가족을 거제 섬으로 이주시키고 그를 측근에 두고 있다. 장병화는 허부사와 함께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거제부에서 왜국 말 통역으로 그리고 어선의 선장으로 일하면서 때로는 일본의 하기시로 들어가서 정탐업무까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허부사는 하동(河東)의 관아에서 청국 말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화교 이인용을 매년 만나고 있다. 허굉필은 개인적으로 매년 10월 하순에 구례에 들러 거상 김상준에게서 한해 소출에 따른 배당금을 ()으로 받고 있다. 그때 그는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하동에 들러 그곳의 통역 이인용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에게서 청나라의 사정을 듣기 원하기 때문이다.

허굉필은 수년전에 동래의 김준우의 료칸에서 경주 현곡 사람 최제선을 만나서 하동의 통역 이인용에 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은 적이 있다. 이통역이 매년 정기적으로 청나라의 동남 끝에 있는 작은 섬 홍콩과 마카오에 들러 서양의 상품을 떼어와서 은밀하게 하동에서 부호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인용이 청나라를 방문하는 숨은 목적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서양의 선진문물과 청나라의 국제관계를 개인적으로 파악하기를 그가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은 청나라를 떠나서 동남아와 조선에서 생활하고 있는 객가족(客家族) 출신 화교(華僑)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 전쟁의 조짐이 발생하게 되면 즉시 다른 나라로 떠날 준비를 미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곳으로 다시 이주하여야 장차 큰 돈을 벌 수가 있는지도 미리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국제정세에 밝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허굉필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선진문물을 조선이 독자적으로 받아들여 산업선진화를 이루고 동시에 신식군대를 양성하지 못하게 되면 미구에 부국강병에 성공한 외세에 의하여 조선이 점령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그는 이인용을 통하여 서구열강의 청나라 침략의 정보를 매년 얻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거제부사인 허집의는 무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직접 거제도 주변의 바다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은 조선의 수군을 경상도 남부의 연안에서 통제하고 있는 경상우수사의 직무이다. 왕도인 한양에서 경상도를 내려다볼 때에 남해가 오른쪽이고 동해가 왼쪽이다. 따라서 경상우수영이 남해연안에 있고 경상좌수영이 동해연안에 있다;

그런데 당시 경상우수영은 통영(統營)에 본부를 두고 있다. 통영의 위치가 거제도의 서쪽을 마주 보고 있는 육지의 동쪽이다. 그리 멀지 아니한 거리이므로 허부사는 시간이 나면 경상우수사를 방문한다.

당시 이채언(李彩言) 수사는 그 품계가 정3품 참의에 해당한다. 그는 종3품 집의인 허부사보다 한 품계가 높다. 하지만 그는 무관 출신이므로 문관 출신이며 자신보다 10살이나 젊은 허부사에게 상당히 친절하다. 허부사 또한 예의범절이 밝다. 따라서 두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허굉필은 거제부사로 부임하는 길에 잠시 김해의 고향집을 방문하였다. 그때 그는 자신과 함께 거제부로 부임하고 있는 다모 최선미와 그녀가 데리고 있는 차남 허지서(許知西)와 장녀 허정순(許貞純)을 큰방에서 부모와 형 내외에게 보여주었다. 부모 뿐만 아니라 가형과 형수도 깜짝 놀라고 있다.

그때 부친 허정도(許正道)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굉필아, 금년에 너의 나이가 38살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혼인을 하지 아니하고 있더니 그것이 네가 오랜 세월 최다모와 관아에서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구나. 여기의 아들이 차남이라고 하니 그러면 장남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

허굉필이 순순히 대답한다; “, 아버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의 장남은 이름이 허지동(許知東)인데 지금 동래 초량 지인의 집에서 일본말과 그곳의 선진문물을 한창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의 두 아들과 딸은 모두 면천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아니하면 최다모도 양반의 신원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믿고서 둘째 며느리로 인정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부친 허정도가 허어하고 눈을 감는다. 하지만 모친 신정옥(愼貞玉)은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최다모의 근골이 튼튼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최다모의 손을 잡고서 말한다; “그래, 나는 굉필이 네 말대로 하마. 이미 두 아들과 딸을 생산한 며느리가 아니냐! 나는 인정한다”.

그 말을 듣자 여장부인 최다모가 순간 눈물을 글썽인다. 그동안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허굉필의 모친에게 말한다;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양반신분을 회복하지 못한 저를 며느리로 받아 주신다고 하시니 그 은혜를 평생 갚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큰절을 받아주세요”;

최다모가 새로 시집오는 새 색씨처럼 얌전하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모친 신정옥이 얼른 남편 허정도를 자신의 옆에 앉힌다. 따라서 부모가 모두 둘째 며느리의 절을 받게 된 셈이다.

그것을 보고서 최다모가 이번에는 허굉필의 가형인 허상필()과 형수 진강해(陳江海)에게 큰 절을 한다. 그러자 그들은 같이 절을 하면서 최다모를 제수씨와 아래동서를 받아들인다.

허굉필이 거제부사로 근무하게 되자 편리하고 좋은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장남 허지동을 방문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그가 준마를 타고서 달리면 동래 초량을 이틀만에 다녀올 수가 있다. 따라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는 최다모와 함께 말을 달려서 동래를 방문한다.

이제 거제부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허부사인데 그해 1861년 가을에 접어들자 관내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