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29. 12:2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7(손진길 소설)

 

이듬해 1859기미년(己未年)은 훗날 철종이라고 불리게 되는 19세의 강화도령이 조선의 임금이 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는 29세가 되었기에 철종이 친정(親政)을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그는 임금의 정치적인 권한을 대부분 조정대신들에게 맡겨 놓고 정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를 백성들이 두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강화도령은 본래 임금이 될 수 있는 소양과 자질이 전혀 없기에 세도정치를 펼치고 있는 안동 김씨에 의하여 선택이 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겨우 소학(小學)만 익히고 있는 임금이기에 정사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을 붙들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조정대신들에게 국사를 맡기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 점과 관련하여 김포군수인 허굉필금상(今上, 지금의 임금)에 대하여 인간적으로는 일종의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가 세가지나 된다;

(1)  첫째, 비록 한양에서 태어나 14세까지 자랐다고는 하지만 그의 처지가 엄청 불운하다. 그는 서출인 왕족이며 ()의 칭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안이 정적(政敵)으로 몰려서 유배생활을 반복하고 있기에 왕족의 특권이 그가 태어날 때부터 사라져버린 것이다;

(2)  둘째, 겨우 한양에서 소학만 익히고 강화도에 유배가서 평민보다 못한 삶을 살았기에 강화도령으로 불린 그에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학문과 경륜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3)  셋째, 비록 대운(大運)을 만나 조선의 임금으로 모셔졌지만 그것은 세도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안동 김씨 집안의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다. 그러니 금상은 비록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임금 노릇은 애초부터 하지 아니하는 것이 그의 처지에 맞는 처세술인 것이다;

그와 같이 금상에 대하여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있지만 지금의 국제정세는 그것이 아니다. 서양의 강대국들이 동양으로 진출하여 황제가 중원을 통치하고 있는 거대한 청나라의 이권(利權)을 마치 이리처럼 늑탈하고 있다. 지난 1840년대에 2차례나 그들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청나라 군대가 대규모 전투를 벌였지만 그 결과는 참혹한 패배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실상을 이웃나라 조선에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그 사실 때문에 김포군수 허장령은 속이 쓰린다. 여전히 청나라가 강요하고 있는 전통적인 쇄국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황제국 청나라를 조상보다 더 받들어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국 청나라 황제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사대부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열도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비록 중앙의 쇼군(將軍)바쿠(幕府)가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大名)들을 은밀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일부 서남번(西南藩)에서는 하급무사들이 서양으로 건너가서 그들의 선진기술을 암암리에 배워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앞장서서 고향의 영주인 다이묘를 설득하여 부번강병책(富藩强兵策)을 은밀하게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죠슈(), 사쯔마(), 도사(), 히젠() 등에서 공업이 발전하고 신식군대가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힘이 강해지면 외세의 힘에 서서히 굴복하고 있는 중앙의 쇼군과 바쿠가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그러한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상을 허수아비로 앉혀 놓고 조정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안동 김씨들이 지금의 좋은 세월을 마냥 즐기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바깥정세를 전혀 모르고 자신들의 좋은 날이 천년만년 갈 것처럼 여기고 있다.

따라서 중앙에서는 돈이 된다고 하면 벼슬자리도 팔고 있다. 지방에서는 수령들이 중앙의 요직을 선호하여 빨리 외직을 벗어나 내직으로 들어가기에 혈안이다;

 그러니 지방발전사업이라고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인 셈이다.

조정대신들과 벼슬아치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기득권유지와 특권만을 누리고 안이하게 살기에 여념이 없기에 미구에 들이닥칠 외세의 침입에 대하여 아무런 대비가 없다. 허굉필과 같은 선각자들이 때로는 조정대신들에게 국제정세의 변화를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콧등으로도 듣는 체를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논리는 그 옛날 선조시대의 경험과 인조시대의 교훈을 되돌아 보라는 것이 전부이다. 선조때에는 명나라의 도움으로 왜적의 대규모 침입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인조때에는 괜히 청나라에게 미움을 사서 조선이 사라질 뻔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한마디로 황제의 나라 청국에게만 잘 보이면 언제나 무사태평이라는 주장이다;

그와 같이 답답한 그들의 인식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뜯어고칠 수가 있을 것인가?’, 허굉필은 지금의 정치체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먼저 세도정치를 끝장내고 선진문명을 도입해야 한다. 재빨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지 아니하면 청나라에 이어 조선이 서양의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와 같은 기본인식 때문에 김포군수인 허장령은 조정의 소수파인 남양 홍씨의 병조참의 홍재덕 영감, 풍양 조씨인 통진 도호부사 조항준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비록 반쪽짜리 왕족이기는 하지만 두뇌회전이 빠른 흥선군과도 개인적으로 호형 호제하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과 연합하여 지금의 세도정치를 끝낼 수만 있다고 하면 무엇보다도 조선의 정치와 경제를 개혁할 것이다. 국제정세를 먼저 살펴서 조선이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아니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멸문을 당한 처가 집안의 신원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새해 기미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정월 보름이 지나자 한양의 흥선군에게서 기별이 온다. 일부러 인편으로 허장령에게 전해주고 있는 흥선군의 서신에는  거년 1212일 한밤중에 그의 자택에서 발생한 암살시도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다.

허굉필에 의하여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신분이 쌍문점의 전문 살수인 까마귀라는 것이다. 까마귀라는 별호를 가진 그 자는 수년간 살수행에 있어서 실패를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쌍문점의 살수집단을 장악하고 있는 백의정승 김용범이 조정의 소수파벌과 암암리에 제휴하고 있는 왕족 흥선군을 제거하고자 과감하게 살수 까마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미 허굉필이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제 흥선군은 큰 생사의 고비를 하나 넘긴 셈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역시 홍참의조부사에게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허굉필 자신이 그들과 호형호제를 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암살단의 손길이 그에게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깊이 생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허굉필이 속으로 모종의 결심을 굳히고 있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이다. 그러므로 때가 되면 일거에 쌍문점의 살수집단을 소탕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허굉필이기에 김포군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한양의 홍참의흥선군은 물론 통진도호부의 조부사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들 4인은 적어도 춘하추동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양에서 비밀회담을 가진다. 그 장소가 흥선군의 집이다. 그곳에는 호위무사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비밀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1859년이 지나가고 1860년도 상반기가 지나가고 있다. 한양의 조정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런데 후반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7월에 병조의 홍참의가 승진하여 종2품인 병조의 참판으로 올라서고 있다. 그리고 통진도호부사로 근무하고 있던 조항준이 진급하여 정3품인 병조의 참의로 발령이 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포군수인 정4품 장령 허굉필이 바쁜 여름이지만 일부러 준마를 타고서 한양으로 들어간다. 병조에 들려서 신임 참판과 참의에게 축하인사를 드린다. 홍재덕조항준이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들 3인이 흥선군의 자택으로 들어간다.

그날 밤 그들이 다루고 있는 논의가 심각하다. 먼저 홍참판이 말을 꺼낸다; “이판 대감이 갑자기 병환으로 등청하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들이 이판의 권한을 잠시 대행하고 있는 참판 정학수 영감을 설득하여 이번의 인사를 해치웠습니다. 그러므로 백의정승인 김용범 대감이 반드시 살수를 동원하여 우리를 해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조참의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조정에서 우리가 살아남자면 안동 김씨의 실력행사를 사전에 와해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쌍문점 검은 세력을 일망타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은밀하게 우리가 세력을 모아 그들을 기습하여 모조리 소탕해야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지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고 있던 흥선군허장령을 보고서 말한다; “허군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허굉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뗀다; “우리가 병조에서 군사력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면 한양에서 살수집단을 완전히 소탕해도 별로 잡음이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조정대신들과 상위직 관료들이 쌍문점의 암살의 위협에서 너나없이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

그 말을 듣자 병조의 홍참판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허장령,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병조의 참판으로 있는 이상 군부의 동요는 전혀 없을 것이야. 그러니 이제는 쌍문점의 살수집단을 완전히 소탕할 계책을 마련하자고!... “.

그 말에 흥선군이 결단을 보인다; “나는 작년말에 쌍문점에서 보낸 살수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이 있어요. 그러니 원수를 갚아야지요. 내 집에 있는 사병을 전부 동원하여 차제에 그들을 치고 싶습니다. 적어도 무예가 뛰어난 호위대장 4명이 앞장을 설 것입니다”.

허굉필흥선군의 말을 받아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저도 동참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예가 출중한 인물 2명과 함께 합세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조참의가 말한다; “좋습니다. 저도 종사관 이상의 무인 5명을 데리고 동참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홍참판이 결단을 내린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도 수하 10명과 함께 그들을 치겠습니다. 도합 24명의 무사입니다. 그들을 우리들이 각자 지휘하여 720일에 종로 골목에 있는 쌍문점을 공격하도록 합시다. 이곳에 집합하는 시간은 자시가 막 시작되는 시점으로 하고 한 시진 안에 작전을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5일의 여유밖에 없다. 따라서 허굉필이 바쁘다. 그는 다음날 일찍 개인적으로 강무관을 만난다. 그에게 쌍문점을 소탕할 것이니 합세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쾌히 승낙을 얻자 김포로 돌아가서 최다모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실 가는데 바늘이 가야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합세를 합니다!... “.

아무리 보아도 여장부이다. 이제 720일 자정에 한양의 쌍문점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