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75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5(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5(손진길 소설) 17. 눈을 북쪽으로 돌리다. 최선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여보, 당신은 어째서 조선의 남쪽에 대해서는 신경을 무척 쓰면서 북쪽에 대해서는 전혀 나 몰라라 하고 계신가요? 저는 그것이 좀 이상해요. 이제부터는 함경도와 그 국경너머의 지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우리 남은 여생을 지내보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 말을 듣자 허선비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자신은 조선의 동남부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평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다. 그런데 머리가 좋아서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양의 한성부에서 관료로 잔뼈가 굵었다. 그 다음 외직으로 지방수령을 오래 지냈지만 모두가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지역이다. 아내인 최선미 역..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4(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4(손진길 소설) 허선비 부부는 1876년 가을에 통통배를 몰고서 일본의 가고시마에 들린다; 그 이유는 딸 허정순을 아라키와 유끼꼬 부부에게 맡긴 지 벌써 5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의 약속이 5년간 허정순을 그 집에 맡겨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문화를 익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어느덧 아라키 노인의 연세가 82살이고 그의 부인 유끼꼬도 78살이다. 고령이 되어가고 있으므로 더 이상 그 집에 딸 허정순을 신세지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허선비가 많은 금품으로 그 동안 노부부의 수고에 대하여 먼저 보상을 한다. 그 다음에 진지하게 말한다; “두분 어르신,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희 딸 정순이를 돌보아 주셨기에 이곳에서 중학과정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이..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3(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3(손진길 소설) 허선비 부부가 일본 가고시마를 다녀와서 동래 초량의 료칸에서 김준우 부부를 만나고 있는 시점이 1875년 10월 하순이다. 그때 김준우가 일본을 잘 알고 있는 안동 권씨가 누구인지를 말하기 시작한다. 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사돈도 알다시피 나는 20살이 되기 전부터 이곳의 왜관에 취직이 되어 사환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 당시 왜관에는 조선인으로서 저보다 먼저 점원이 된 선배가 한사람 있었어요. 그가 조선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왜관에서 점원으로 일했던 권상조(權尙朝)인데 그가 바로 안동 권씨입니다. 그는… “; 그 옛날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김준우의 눈에 아스라한 그리움이 어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운이..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2(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2(손진길 소설) 1874년은 허선비 부부에게 바쁜 일이 두가지 겹치고 있다. 그 하나는, 사업의 확장으로 바쁘다. 또 하나는, 차남의 혼사문제로 바쁘다. 먼저 허선비 부부는 3년전인 1871년 11월에 이인용과 함께 홍콩을 방문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홍콩에서 사들인 영국의 직물을 자신들의 통통배에 싣고서 울산에 들어와서 그해 12월 하순부터 인근의 부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팔기 시작했다. 그 행상이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따라서 이듬해 1872년 초여름에는 아예 울산에서 허선비 부부는 ‘허가물산’(許家物産)을 창립했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에 두차례나 홍콩을 방문하여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그것이 큰 이익을 가져오고 있다. 그 결과 허선비 부부는 허가물산의 분점을 1874년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1(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1(손진길 소설) 그런데 놀랍게도 허선비가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말한다; “그래요, 나는 선미 당신의 판단과 예상이 맞다고 생각해요. 실로 탁월한 견해이군요. 일단 조선에 도착하면 내가 양반체면을 내려놓고 상품을 지게에 싣고서 당신을 따라 한번 행상에 나서 보도록 할께요. 게다가… “; 이제는 허선비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마침 겨울철이니 한해 농사를 잘 지은 지주들과 풍어기를 만났던 선주들이 돈을 좀 만지고 있겠군요. 그러니 우리가 영국제 직물류를 가지고 가서 가가호호 방문해보면 생각보다 쉽게 판로를 개척할 수가 있을 겁니다!”. 최선미는 남편 허선비의 결단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야 외가의 양반신분이 회복되어서 7년전에 비로소 관비..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0(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0(손진길 소설) 16. 전답의 절반을 처분하여 창업에 나서는 허선비 고종 8년인 1871년 10월과 11월에 허선비는 아내 최선미와 상의하여 두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에 방직공장을 건설하는 비용을 미리 마련하여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해 10월 중순에 허선비 부부가 통통배를 타고 구례까지 들어간다. 그들은 곡물상인 김상준을 만나 백미 500석에 해당하는 환을 받는다. 허선비 부부는 구례지역에서 1851년에 개간한 천석지기 논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주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당시 문중의 여러 어른들의 돈을 거두어서 개간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허선비가 그곳의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김호방의 도움을 받아서 2년 동안 대대적인 이조천변(利助川邊)..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9(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9(손진길 소설) 허선비 일행은 이튿날 아침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가고시마에 있는 스즈끼의 방직공장 견학에 나선다. 김준우가 전날 저녁에 손위 처남 스즈끼에게 부탁하여 공장견학을 서두른 결과이다. 그는 허선비가 큰 돈을 대고서 가고시마를 방문한 목적이 다음 두가지임을 벌써 알고 있다. 첫째는, 일본 가고시마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찾아 뵙고 히로꼬 부부를 비롯하여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히로꼬의 두 딸과 사위들이 전부 문안인사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일본과 조선에 떨어져서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상봉이다. 둘째는, 일본에서 방직공장을 찾아 견학하고 장차 조선에 그러한 공장을 하나 건설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히로꼬의 오라비가 가..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8(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8(손진길 소설) 허지동이 공손하게 그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자 기회를 보아 허선비가 옆방을 찾아가서 젊은이 최강일과 수인사를 나누고 그에게 질문한다; “그대는 내 아들 지동이보다 4살이 연상이라고 하니 이제 약관의 나이 20살이겠군요. 그래 그대의 숙부인 최경상(崔慶翔)이 혹시 동학의 창시자이며 초대교주인 최제우(崔濟愚)의 후계자가 아닌가요?... “; 그 말을 듣자 최강일(崔康鎰)이 놀란 눈으로 허선비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잠시 숨을 내쉬고서 조용히 대답한다; “제가 그렇다고 하면 저를 해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지동이 아버님은 그러하지 아니하실 것으로 보입니다만… “. 그 말에 허선비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뜨면서 말한다; “그래, 나는 최제우의 이..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7(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7(손진길 소설) 사실 허선비는 1866년 10월 하순에 거제부로 가서 장병화를 만나기 전에 새로운 어업기지로 어디를 선정하면 좋을까? 깊이 생각을 했다. 그 결과 그는 경주부 내남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고기잡이 항구인 울산 방어진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울산 방어진에서 어민들이 때로 상어를 잡아 오고 있다. 그런데 상어고기는 특이하게도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시골 양반들이 상어고기를 벽장속에 몇달을 보관하여도 ‘쇄에’한 냄새만 풍길 뿐 그 고기가 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맛은 변하고 있다. 따라서 그 고기를 경상도 내륙에서는 ‘돔배기’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돔배기를 구워서 먹거나 탕으로 끓여서 먹으면 그 맛이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6(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56(손진길 소설) 이인용의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서 허선비가 새삼 놀라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첫째, 조선사람들이 옛날부터 천축국(天竺國)이라고 부르고 있던 불교의 발상지가 있는 대국(大國, 큰 나라)이 사실은 인도(印度, India)이다. 그 거대한 인도를 지금 영국(英國, England)이 식민지로 삼고 있다. 둘째, 국제정세를 알고 있는 학자들은 전세계의 절반을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인 영국이 벌써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해가 지지 아니하는 나라 영국을 달리 대영제국(大英帝國, British Empire)이라고 부르고 있다; 셋째, 노동력이 풍부하고 일찍 영국의 식민지가 된 거대한 나라 인도에서 정책적으로 면화생산이 싸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