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47(작성자; 손진길)
9. 시련과 천명
1976년 2월에 선더말 아재는 기쁜 소식을 하나 얻는다. 그것은 4남인 손진웅이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하여 일명 ‘뺑뺑이’라고 불리고 있는 ‘추첨’을 했는데 그 좋은 ‘경북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선더말 아재의 고명딸인 손정애가 ‘경주여자고등학교’를 마치고 대구에 가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전문대학에서 가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따라서 선더말 아재는 대구 대명동에 방을 얻어 주고서 오누이가 자취를 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4남인 손진웅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둘째형이 그렇게나 입학하고 싶어했던 그 ‘경북고등학교’에 자신이 진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추첨을 통하여 그 명문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경북고등학교’는 실로 좋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교로 진학을 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손진웅은 경북고등학교에서 한번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보고자 결심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밖에 없는 누나인 손정애이다.
손정애는 남자형제가 많은 집에서 고명딸로 자라나서 그런지 그 성격이 자기 위주이다. 그래서 형제에 대한 배려심이 별로 없다. 예를 들면, 남동생인 손진웅이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 그렇게나 맛있게 밥을 해주고 잘 대접을 해준다. 그러다가 한번 기분이 나빠지면 그때에는 밥을 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매번 누나의 비위를 맞추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것인가? 그 성격이 평소에는 유순하여 남을 잘 배려해주는 손진웅이지만 그 역시 한번 틀어지면 쉬이 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따라서 오누이가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손진웅이 식사를 거르고 등교를 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것 참 걱정이다.
그렇지만 손정애나 손진웅이나 그러한 상황을 부친인 선더말 아재에게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보고를 했다가는 당장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경주로 내려오라고 말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는 그러한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고 지내게 된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고향 경주에서 1976년 11월 하순까지 방위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남이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 선더말 아재는 나름대로 마음이 든든하다. 그 이유는 장남인 손진목이 분가를 시켜 달라고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재산을 떼어 달라고 소동을 벌이다가도 바로 밑의 동생인 손진길에게 눈치가 보여서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차남 손진길이 방위근무를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에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혼자서 장남 부부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에도 자신이 홀로 버틸 수가 있을까? 은근히 속으로는 염려가 되지만 워낙 겉으로 자신의 고민을 내품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의 성격이라 그냥 모르는 척 지내고 있다.
그런데 선더말 아재가 일이 늦어져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에는 손진목이 마치 그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그는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내가 차려오는 밥상을 발로 차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에게도 폭언을 한다;
연애를 할 때에는 그토록 살갑게 굴다가 이제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얻었으니 제멋대로인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쳐다보면서 그의 아내인 김선생이 죽어지내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두사람만 있을 때에는 남편인 손진목이 자신에게 꼼짝 못하면서 그저 동생들 앞에서만 큰소리를 치고 있는 줄 번연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러한 장남의 행패에 대하여 안방마님인 고복수가 한번도 입을 대지를 않는다. 그녀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것은 장남의 권세가 세어지면 세어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복수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워낙 똑똑한 남편을 만나서 벼락 출세를 한 여인이다. 시집을 와서 보니 내남 너븐들의 그 넓은 농지가 거의 남편의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선산도 전부 남편이 산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천석꾼의 마님인 것이다. 그 정도의 재력가인 줄을 모르고 결혼을 했더니 횡재를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의 인물이다. 근검절약과 부지런한 생활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다. 따라서 그 성격과 행동양식에 맞추어서 한평생 살아오느라고 조강지처인 고복수가 고생깨나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똑똑하고 능력이 많은 남편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장남 손진목에게 섭정을 하면서 한번 마음껏 돈을 쓰면서 살아보고 싶어한다. 그러한 그녀의 소원을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장남 손진목이 이루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손진목의 옆에는 그보다 머리회전이 훨씬 빠른 며느리 김선생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생은 친정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상대방의 재산의 정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선천적으로 영리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자신이 장악하여 마음껏 사용할 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기민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그러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난폭한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그러니 시어머니인 고복수가 쉽게 속아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 3사람이므로 가장인 선더말 아재가 집을 비우는 경우에는 지차들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언제나 그 시나리오가 같다; 장남인 손진목은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상을 뒤엎고 집안을 공포분위기로 만든다. 그의 아내인 김선생은 자기 방에서 우는 척을 한다. 안방마님인 고복수는 안방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말릴 사람이 없다. 선더말 아재는 부재중이고 차남인 손진길은 과외선생으로 저녁에 일을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남인 손진학은 군에서 헌병으로 복무하고 있다.
손진학은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한번도 고향에 내려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경주에서 사귀던 애인이 서울까지 쫓아가서 군대근무의 뒷바라지를 그렇게 성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진학은 고향에 내려올 생각도 아니하고서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1976년 3월부터 선더말 아재의 고명딸인 손정애와 4남인 손진웅이 대구에서 자취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선더말 아재의 아들이 막내인 손진희 뿐이다. 이제 경주 신라중학교 1학년인 손진희는 큰형이 그렇게 행패를 부리면 그것을 막을 힘이 없다. 그래서 자기방에서 문을 닫고 귀를 막으면서 공부만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행패는 가장인 선더말 아재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소동이 끝난다. 하지만 그때까지가 문제이다. 그런데 한번은 손진길이 일찍 과외를 마치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성격이 칼과 같은 부친 선더말 아재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있는 손진길이다. 그래서 그는 참지를 못한다. 얼른 빨래방망이를 찾아서 그냥 대청으로 뛰어올라간다. 그것으로 손진목의 어깨를 내리친다. 술에 취해서 제멋대로 행패를 부리고 있던 손진목이 푹 고꾸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의 아내가 그때서야 뛰어나와서 시동생인 손진길에게 싹싹 빈다. 도련님 부디 용서를 해달라고 한다. 그것을 보고서 손진길은 그들이 한통속으로 짜고서 쇼를 한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보기가 싫어서 그대로 집을 나와버린다. 그 꼴을 더 보기도 싫고 또 손진목이 그 다음에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가늠이 되지를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부친 선더말 아재가 귀가를 하는 것을 보고서 조용히 손진길이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다음날부터 손진목이 일체 행패를 부리지를 않는다. 그러한 조용한 세월이 1976년 11월 하순에 손진길이 전역을 하고서 직장인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사무소에 복직을 할 때까지 계속된다.
손진길은 직장에 복귀를 한 결과 그동안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더이상 그는 ‘웨스팅 하우스’ 현장사무실에서 일하는 파견직원의 신분이 아니다. 그 자리는 다른 동료가 벌써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정공무과에서 ‘건설일지’를 적고 나중에 그것을 책으로 내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한 일을 손진길은 참으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1971년부터 기본공사가 시작이 된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의 건설일지를 1975년 6월에 그 현장에 투입이 된 자신이 책으로 발간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은 처음부터 그 건설공사에 관여한 직원이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그런데 한전에서는 그렇게 조치하지를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건설일지’라고 하는 역사책을 펴내는 것이 그저 형식적인 것이지 그렇게 의미가 있는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역사가 없는 민족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역사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건설현장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기술자가 중요한지를 정확하게 깨닫지를 못하고 그저 기능공위주로 중공업을 경영하고 있는 자들의 헛된 자만심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업과 같은 ‘기능집약적’인 산업에서는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순수과학이나 전문기술분야에 있어서는 취약하기 그지 없다;
예를 들면, 기능올림픽을 오래 석권하는 한국이다. 그러나 기술과학의 최고 영예라고 하는 노벨상에는 한사람도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방에 있는 교토대학교에서도 여러 명의 교수들이 벌써 노벨상을 받았음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손진길은 그 직장을 그냥 다니고자 한다. 그는 한번 선택한 길을 그냥 가는 사람이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생각을 못하는 고지식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손진길은 주말이 되면 경주로 간다. 그곳에는 그가 닮고 싶은 마치 가장 좋은 멘토와 같은 부친 선더말 아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6년 12월말에 고향집을 방문했더니 그 분위기가 무겁기 그지없다.
무슨 일인가 파악을 해보았더니 손진목이 부친에게 분가를 해주고 한 재산을 떼어 달라고 달려들다가 마침내 부친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속이 상한 선더말 아재가 안방에서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는 안방마님 고복수가 한 재산을 장남에게 떼어주자고 틈을 보아가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러한 집안의 형편을 보고서 직장으로 돌아온 손진길은 참으로 걱정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혈압이 높은 부친이다. 장남이 그렇게 속을 썩이고 있으니 그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데 그 다음해 1977년 1월 중순이 되자 형 손진목이 회사돈을 빼내어 일본 동경에 있는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고 집을 떠났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된다;
처자식을 모두 부모에게 맡겨 두고 일본에서 자신의 꿈을 한번 펼쳐보겠다고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손진목이 진실로 일본에서 공부도 하고 또 성공도 해보고자 하는 것일까? 손진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아닌 것만 같다. 그가 알기로 형은 끈기가 부족하고 즉흥적이다. 그리고 그 얼굴에 좋고 싫고가 금방 표시가 난다. 반면에 한번 움켜쥔 자신의 것은 절대로 내놓는 법이 없다. 그리고 남의 것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움켜쥐면 모두 제 것인 줄 아는 그러한 성격이다. 과연 그러한 성품의 사람이 사업에서 성공하고 공부로도 두각을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만 같다. 그러므로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부친 선더말 아재가 잘 버틸 수가 있을까? 유교정신에 철저한 부친 선더말 아재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남이 자신의 속을 썩여도 역시 장남이 장자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이다.
그런데 장남이 부친인 자신을 버리고 일본으로 떠나 버렸으니 그것이 남에게 말은 못하지만 마음의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상처를 무사히 극복하기만을 차남 손진길이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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