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45(작성자; 손진길)
1974년 가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서울서 차남 손진길이 보내어온 돈을 받는다. 21만원이나 되는 큰돈이다. 당시 경주시내의 기와집 한 채 값이 200만원 상당이므로 그것은 적은 돈이 아니다. 차남 손진길은 자신이 최근 몇 달 과외를 하여 번 돈과 남는 돈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부친에게 그냥 드리는 것이므로 사업에 사용하시라고 전화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선더말 아재는 아들이 보내어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받은 날짜와 금액을 표시하여 자신의 비망록 ‘채무란’에 잘 기입해 둔다. 앞으로 전망이 좋은 사업에 투자를 하는 ‘종자돈’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돈을 그냥 아비에게 부처온 것은 아들의 뜻이지만 선더말 아재 자신으로서는 애비가 된 입장에서 그 돈을 잘 불어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1974년 11월달이 되자 차남 손진길은 자신이 한국전력 원자력부에 입사시험을 보았는데 합격이 되었다고 전화상으로 전해온다. 내년 1975년 2월 10일부터 한전 신입사원 제 64기가 되어 서울 쌍문동에 있는 ‘한전연수원’에서 몇달간 교육을 받은 다음에 6월경 원자력발전소 1호기 건설현장에 투입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쌍문동 한전연수원 자리에는 1988년에 ‘한전병원’(오늘날의 ‘한일병원’)이 신축하여 들어오고 그 연수원은 공릉동 ‘원자력병원’ 근처로 이전하여 ‘한전 중앙연수원’ 또는 ‘한전 인재개발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군입대를 위하여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동갑인 1952년생이 많아서 그런지 방위근무를 하는 요원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그것도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건설사업이므로 현장에서 건설요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면 군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러한 내용을 선더말 아재가 전화로 들으면서 차남 손진길에게 질문한다; “길아, 서울대학교 졸업식 날짜가 언제이냐? 그날은 이곳 고향에서 가족들이 한번 상경하여 너의 졸업식을 구경하고 싶다. 우리 집안으로서는 처음 서울대 졸업생이 사회로 나오는 날이 아니냐?”.
아들이 정확하게 대답한다; “아버지, 서울대학교의 이번 졸업식 일자는 1975년 2월 26일로 벌써 정해져 있어요. 저희들 제29회 졸업생들이 서울 ‘동숭동’에서 졸업하는 마지막 졸업생이 된다고 해요. 1976년 2월부터는 관악산 캠퍼스에서 졸업식을 하게 되겠지요”. 선더말 아재는 졸업식 예정시간이 오전임을 확인한 다음에 전화를 끊는다.
1974년 가을에 손진길은 고교 및 서울공대 2년 선배가 되는 김석준을 서울공대 회관에서 만나게 된다. 김석준 선배는 작년 2월에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하여 한창 행정학 공부를 하고 있다.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한 이유는 행정고시에 도전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손진길이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고시공부에 바쁜 김석준 선배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대회관으로 후배들을 찾아온 이유는 최근에 그가 결혼을 하고 신접살림을 봉천동에 마련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후배들을 잘 챙기는 지도력이 뛰어난 선배이다. 그러므로 후배들을 봉천동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하루 ‘집들이’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손진길은 졸업반이다. 공대교회와 회관의 일은 한해 후배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김석준 선배의 신혼집을 방문한다. 상당히 규모가 있는 기와집이다. 그날 선배 내외가 후배들을 정성껏 대접한다. 아주 선후배지간에 분위기가 좋은 날이다.
그 자리에서 손진길이 궁금하여 김석준 선배에게 질문한다; “우리 공대생들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문과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생소하고 공부하기에 힘이 들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김석준이 웃으면서 답변한다; “나는 공대생이지만 평소에 사회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어.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아…”.
좌중을 돌아본 다음에 김석준이 이어서 설명한다; “우리 공대생들이 행정학을 공부하는 경우에 오히려 장점이 있지. 오늘날 ‘계량분석’이 사회과학에서도 대세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통계학과 응용수학을 많이 공부한 공대생들이 더 잘 이해를 할 수가 있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행정대학원 정도는 도전을 해볼 만한 거야”;
손진길을 비롯한 후배들이 그제야 고개를 끄떡인다. 그들은 김석준 선배의 말을 듣고서 자신들도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고시준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거기서 들은 말이 장차 손진길의 장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그때에는 스스로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1975년 2월 10일은 그 달 26일날의 졸업식을 2주 이상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 원자력부’에서는 신입사원들을 그날부터 쌍문동에 있는 ‘한전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게 한다. 그 자리에는 서울공대 원자력과 졸업예정자 가운데 군 미필자는 단지 3사람이다. ‘손진길’과 ‘권성환’ 그리고 ‘김주영’ 등이 1971년 학번이다.
나머지 7명 정도의 복학생 선배들이 역시 함께 연수를 받게 된다. 그들은 군대를 재학중에 벌써 다녀왔으므로 사실은 손진길보다 3년 정도 선배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손진길과 같이 졸업식을 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함께 한전에 입사한 것이다. 그러나 군미필자인 재학생과 군필자인 복학생은 입사 당시에 한전으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재학생은 그렇지가 않은데 복학생의 경우에는 한전에서 졸업학년에 미리 장학금을 주고서 선발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원자력공학과 졸업생이 참으로 귀하다. 전국적으로는 서울공대와 한양공대에만 원자력공학과가 설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양공대에서는 방사화학을 위주로 가르치고 있고 서울공대에서는 핵물리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국내적으로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기본공사가 1971년에 벌써 시작이 되어 1978년에 상업운전에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당시의 중화학과 중공업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발전소이다. 그래서 정부가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공학을 전공한 원자력과 졸업생이 굉장히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를 운전하자면 핵물리를 공부한 핵공학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전력에서는 서울공대 원자력과 졸업생 가운데 군필자 복학생에 대해서는 장학금을 미리 주고 데려가는 등 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971년 입학생인 손진길과 김주영 그리고 권성환이 한국전력 원자력부에 입사시험을 치르자 전원합격이 된다. 그리고 1975년 2월 10일부로 쌍문동에 있는 한전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으라고 지시를 받는다. 그곳에서 석 달간 집중교육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원자력과 출신이 워낙 적어서 한국전력에서는 기타 학과의 공대생을 많이 선발했다. 이제는 그들에게 원자력공학을 3개월만에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쌍문동 한전연수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참으로 모든 것이 편리하다. 손진길과 동기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시 복습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이론들을 아울러 배우게 되니 실용적인 교육이라서 마음에 든다. 더구나 용돈까지 받아 가면서 교육을 받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다.
도중에 딱 하루 2월 26일에는 서울공대생들이 전원 졸업식에 다녀온다. 동숭동에 있는 졸업식장에 전원이 교복을 입고서 참석한다. 그날 경주에서 손진길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상경한다. 손진길의 형인 ‘손진목’과 막냇동생인 ‘손진희’가 함께 상경한 것이다. 손진희의 바로 위의 형인 손진웅은 작년 가을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상경하지 아니한다. 그들 일행은 하루 일찍 상경하여 종로에 있는 여관에서 일박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손진길을 만나 함께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운동장으로 이동한다;
그때 경주 황남국민학교 졸업반인 6학년이 되고 있는 막냇동생 ‘손진희’가 참으로 즐거워한다. 둘째 형의 서울대학 졸업식도 보고 서울구경도 할 수가 있으니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날 서울대 마지막 동숭동 졸업식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졸업식이 끝나자 선더말 아재는 가족들을 데리고 큰 중국음식점으로 간다. 그곳에서 맛있는 청요리를 시킨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기쁘게 외식을 하는 것이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손진길은 쌍문동에 있는 한전 연수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더말 아재는 가족과 함께 시흥에 있는 ‘기아자동차’를 방문하고자 한다. 그곳에 장남 손진목이 주문해 놓은 승용차 ‘브리사’가 출고가 된다고 한다. 그것을 손진목이 운전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서 경주까지 가고자 하는 것이다;
당시의 ‘브리사’는 배기량 1,000cc가 약간 안되는 작은 엔진을 부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잘 달린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선더말 아재 일행은 무사히 경주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승용차를 가지게 된 손진목은 그것이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선더말 아재는 장남이 자가용을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자수성가자 답게 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서 경주시내를 누비고 있다. 결코 돈부자의 티를 내지 않는다. 그 일은 장남이 대신 티를 내고 있다고 하겠다;
옛말에 자수성가자는 부자인 부친이 없기에 검소하지만 그의 아들은 부자 아버지가 있기에 돈을 펑펑 쓴다고 한다. 그 말이 묘하게도 선더말 아재와 그의 장남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손진길은 쌍문동에 있는 한전연수원에 입사를 할 때에 벌써 서울공대 앞에 있는 공릉동 하숙집을 떠났다. 그리고 한전연수원에서 먹고 자면서 석 달간 교육을 받고 있다. 그 사이에 그는 첫번째 월급을 받았다. 아직 연수생 신분이라 정식 봉급의 70% 정도를 받은 것이다. 그 금액이 4만 6천원 정도이다. 그 금액을 보고서 손진길이 깜짝 놀란다. 자신의 한달 과외수입보다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여 처음으로 받은 봉급이다. 그러므로 의미가 있게 사용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이 학창시절에 신세를 진 사람들의 집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많이 사서 공릉동 하숙집 두 군데에 들린다. 자신이 1년간 하숙한 충청도 집과 3년간 하숙한 전라도 집이다. 그 다음 주말에는 다시 쇠고기를 사서 연희동 오대원 선교사님 댁을 찾아간다;
그런데 오래 하숙을 한 전라도 집의 주인내외는 돈을 많이 모아서 면목동 쪽에 이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다음주말에는 다시 선물을 사서 그 집으로 찾아간다. 3년간 하숙생활을 했기에 주인내외께서 참으로 반긴다. 주인 아저씨는 전라도 광산군 사람인데 다시 강원도에 다니면서 작은 건설업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 부부에게 3년간 맛있는 광주음식을 얻어 먹었기에 손진길이 그것을 고마워한다.
1975년 5월과 6월에 걸쳐서 1달 동안은 손진길이 ‘당인리 발전소’에 가서 화력발전의 실무에 대하여 연수를 받는다;
이제는 쌍문동 연수원에서 퇴소를 한 입장이므로 다시 하숙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동출신인 친구 ‘권성환’과 함께 전농동에 하숙집을 구하여 함께 당인리까지 출퇴근을 한다. 그 교육이 끝나자 모두들 고리원자력 1호기 건설현장에 투입이 된다.
손진길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당연히 원자력발전소 운전요원이 되는 줄 알고서 현장에 내려간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실시하는 영어시험에서 낙제를 한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만 건설요원이 된다. 원자로 운전연수를 받기에는 영어성적이 너무나 형편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손진길은 후회를 한다. 서울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시내버스가 공릉동으로 오기 전 반드시 청량리 대왕코너를 지난다. 그때 손진길은 그곳에 큰 간판으로 ‘SDA 영어학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수시로 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한번도 그 학원에 들어가서 영어회화공부를 할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일까?
사회에 나오면 서울공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라는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어회화가 가능한지 아니한지를 먼저 식별한다는 사실을 어째서 까마득히 몰랐던 것일까? 이제는 후회해도 너무 늦어버렸다. 현장요원이 된 손진길은 그해 여름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그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을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공정검사를 한다;
구체적으로, 지하 2층 지상 6층 도합 8층 건물에 해당하는 그 원자로 속에서 기계설비가 어느 정도 장치가 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그 일을 맡아서 손진길이 건설사무소 공정공무과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하루는 직장상사인 김과장이 자신을 부른다. 서울공대 전기과를 나온 한참 선배이다.
공손히 부름에 응하여 갔더니 갑자기 김과장이 묻는다; “자네가 경주 출신인가? 나도 경주사람이야. 그런데 원자력공학과 출신이 어째서 그렇게 영어를 못해서 이곳 건설현장 공정공무과에서 기사로 일하고 있는가?”. 손진길은 자신의 상관인 김과장이 경주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깜짝 놀라고 있는 손진길에게 그 과장이 말한다; “자네가 전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가 하나 있어. 그래서 내가 불렀어. 잘 알다시피 고리원자력 1호기는 완전히 미국의 ‘웨스팅 하우스’ 회사에 의하여 ‘Turn-Key’ 베이스로 지어지는 거야. 우리 한국이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처음이라 전혀 기술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이 건설공정을 어느 정도 진행했는지 통보하는 대로 우리는 그것을 기성고로 삼아 일방적으로 건설대금을 지불하고 있는 형편이야. 주무과장인 나는 그것이 답답해…”.
그렇게 쉬운 설명을 먼저하고 김과장이 본론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차제에 ‘웨스팅 하우스 현장사무실’(Westing-House Local Office)의 공정담당인 “Mr. Tobin’에게 부탁을 했어. 우리도 공정기술을 나중에 알아야 하니 먼저 연수생을 하나 받아 달라고 말했지. 그래서 모처럼 허락을 받았으니 그 자리에 자네가 가서 일해보면 어떻겠나?... 앞으로 그 ‘Scheduling Engineer’의 업무는 무지하게 중요한 것이거든”.
그 다음에 그 기술이 어째서 중요한지를 김과장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있어서는 공정기술 가운데 최신의 것을 사용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그 기술이 처음 사용되고 있지. 이름하여 ‘PERT’ 와 ‘CPM’이야. 우리말로 구태여 번역하자면, ‘성과평가기술’과 ‘최적공정기법’인데 먼저 도면을 그리고 그것을 보는 방법을 자네가 이제부터 배워와야 해”;
정작 중요한 비밀임무가 있다고 김과장이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밀한 지시 사항인데 그들 웨스팅 하우스 간부들이 틀림없이 회의를 자주 할거야. 그 이유는 공정상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 여기서 파악할 도리가 없어. 그러니 그 사무실에 파견나가 있는 자네가 표나지 않게 좀 알아보고서 내게 보고를 직접 해주면 고맙겠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매사 신중하게 처신해 주게나. 믿고서 내가 부탁하는 일이야. 잘할 수 있겠지?...”.
김과장님의 그 말씀에 손진길이 자기도 모르게 참으로 씩씩하게 대답한다; “염려 마십시오. 그러한 일이라면 제가 보람을 느끼면서 신중하게 잘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 사무실에 출근하면 됩니까?”. 그 말을 듣자 김과장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만. 물론 자네는 누구보다 잘할 것이야. 그러니 바로 나를 따라 나서게…”.
‘김과장의 그 말이 무슨 뜻일까?’ 일단은 그날 바로 가서 미국사람 공정담당관 ‘토빈’을 만난다. 손진길보다는 10살 정도 많아 보이지만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총기가 넘쳐 보인다. 그는 기분이 좋게 손진길을 환영한다. 그리고 책상과 의자가 있는 방을 하나 주면서 거기에서 자신이 주는 도면을 보고서 그대로 한번 그려보라고 말한다;
그 미국회사의 현장사무실에서 손진길은 공정의 최신기법을 공짜로 배운다. 그리고 가끔 옆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Jim”과도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미국의 따뜻한 남부에서 왔는지 계속 한국의 날씨가 추워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토빈’ 메니저와도 영어로 말하면서 손진길이 아주 조금 영어회화의 진보를 보이고 있다.
한달이 지나지 아니하여 갑자기 경주에서 선더말 아재가 손진길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손진길이 깜짝 놀라서 부친을 쳐다본다. 그러자 그 뒤에 김과장이 다소곳이 서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의아해하는 손진길에게 김과장이 말한다; “허허, 자네도, 경주사람 치고 자네 부친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자네 부친의 도움을 받은 서울대출신이 제법 있어.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지…”.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오히려 부친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선더말 아재는 경주가 낳은 인물들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들이 꼭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때에는 그저 도와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김과장은 손진길이 자신의 과에 배속이 되었을 때에 그 프로필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손사장의 차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렇게 1975년 11월까지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중에 손진길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는 웨스팅 하우스 간부들이 긴급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떠나게 되면 곧바로 그곳으로 들어가본다. 아직 책상위에는 회의에 사용한 자료가 한두 장 남아 있다. 그것을 얼른 수거하여 화장실로 가서 곰곰이 읽어본다. 중요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공정상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정도면과 일일이 대조를 해보면 그 심각성을 파악할 수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파악한 사항을 첨부하여 그 서류를 직속상관인 김과장에게 보고한다. 그것이 한전으로서는 참으로 귀한 정보이다. 왜냐하면, 그 자료에 의거하여 한전 측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공정을 스스로 점검하여 알아낸 것처럼 ‘웨스팅 하우스’에 따지는 것이다;
미국회사는 갑자기 ‘한전’(Kepco)이 똑똑하게 공정상의 문제를 따지는 것을 보고서 경악한다. 그래서 기성고를 많이 받지를 못한다. 나중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 마자 사무실을 청소한다. 게다가 한전직원의 출입을 엄금한다. 그러나 손진길의 기지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의 쓰레기가 청소부에 의하여 소각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파악한 후에 그 쓰레기 속에서 서류들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나게 근무를 하는 도중에 그만 1975년 11월 하순에 손진길의 신상에 변화가 발생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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